'소수자 이해할 올바른 지도', 이게 왜 필요하냐면

[컬처]by 오마이뉴스

[리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디스클로저>


'PC 묻었다', '과도한 PC가 작품을 망쳤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게임이나 영화 등 다양한 대중문화를 놓고 이런 말을 던지기 시작했다. PC(Political Correctness), 즉 정치적 올바름이 멀쩡한 작품에 오점을 남겼다는 뜻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긴 시간 동안 다양한 함의가 담긴 채 사용되어온 단어인데, 최근에는 성적 지향·성별정체성·인종 등에 있어 다양성을 추구하는 경향을 주로 의미한다. 이 'PC'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좋아하는 프랜차이즈 영화에서 아시아계 여성이 주역을 맡거나, 혹은 즐기는 게임의 캐릭터가 동성애자임이 드러났을 때 볼멘소리를 낸다.


최근에는 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의 배경에 무지개 깃발이 등장했다는 이유로 비슷한 불만이 터져 나왔는데 다소 황당한 기분이었다. 지금도 여기저기에 걸려 있는 무지개 깃발이 세상이 망함과 동시에 일거에 사라질 리가 없을 텐데, 황량한 도시의 폐허에서 그 깃발이 등장한 게 그리도 이질적으로 여겨졌을까.


성소수자인 나에게 이런 식의 정치적 올바름은 환영할 만하다기 보다는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종종 까먹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는 비백인·동성애자·양성애자·트랜스젠더·젠더퀴어들이 함께 섞여 살고 있다. 그런데 대중매체에서 이들이 마치 지워낸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 아닌가.


이는 한 작품의 무대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일 때도 마찬가지다. 그 공간이 아무리 작가가 창조한 것이라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 그 세계의 뿌리는 현실을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발달된 문명을 지닌 외계의 고등 생명체들이 백인 남성의 외형을 하고 이성애나 다름없는 행위를 하는 것에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이 비백인 모습으로 동성애를 하는 건 이상하다고 주장한다면? 글쎄 그건 그냥 본인이 평소에 대중문화 속 비백인과 동성애자를 이상하게 여겼다는 의미가 아닐까.

'정치적 올바름', 당연하지만 늘 달갑지는 않았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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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포스터 ⓒ Netflix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이 이런 나에게도 마냥 늘 달갑지만은 않았다. 대중매체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활약을 펼치는 와중에도 현실은 소수자들에게 그다지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령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 범죄는 세계적으로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휴먼 라이츠 캠페인(HTC)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 내에서 '혐오 범죄'로 살해된 트랜스젠더들의 수가 최소 157명에 달한다고 한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범죄나 살인을 제외한 사건들까지 고려한다면 트랜스젠더들이 심각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으며 최근에는 보건 분야에서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을 철회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차별을 딛고 사랑을 성취하는 동성애자·전문가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며 경력을 쌓아가는 비백인·차별을 뚫고 성공한 트랜스젠더의 모습을 매체에서 보여주는 것이 이런 세상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질문하게 된다. 어쩌면 이들의 모습이 개인의 노력으로 혐오를 극복할 수 있다거나 혹은 이미 세상이 평등해졌다는 '잘못된 상징'으로 오용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은 조금 나아졌다 그만큼 나빠지기를 반복하는데 마치 사람들은 소수자들을 둘러싼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런 고민을 홀로 끌어안는다고 답을 찾을 수는 없을 터, 이 와중에 마침 반가운 다큐멘터리가 한편 찾아왔다. 바로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을 맞아 공개된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디스클로저>다.

소수자에 대한 얕고 좁은 묘사가 미치는 악영향

<디스클로저>는 할리우드의 영화와 드라마들이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조망하는 다큐멘터리다. 많은 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크로스 드레서와 트랜스젠더가 구분되지 않았던 무성영화 시절부터, 성별 규범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은 영화에 줄곧 등장해 왔다. 초창기 이들은 우스꽝스러운 존재나 웃음거리로 스크린에 등장했다.


후에는 자신의 '지정 성별'을 감추었고 그리고 그것이 폭로되어야 할 비밀스러운 존재로 묘사되었다. 심한 경우 때로는 범죄나 이상성욕과 강하게 결부된 캐릭터로 그려졌다. 그리고 이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반영함과 동시에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역으로 형성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작품 내에서 언급되는 미국 성소수자 단체(GLAAD)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80%는 자신의 주변인으로 트랜스젠더를 둔 경험이 없다. 그렇다면 이들이 무엇을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겠는가.


영화 <디스클로저>에는 이와 관련한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배우 젠 리처즈는 자신이 성 전환을 시작할 무렵 한 동료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그 동료는 세상 물정에도 뛰어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그런데 그 사람의 입에서 바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는 것이 아닌가.


"버펄로 빌처럼 되겠다고?"


익히 알려져 있듯 버펄로 빌은 영화 <양들의 침묵>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마이다. 그는 여성을 사냥해서 가죽을 벗기고 여성의 몸을 가지겠다고 그걸 입는 캐릭터인데, 영화 속에서도 등장하듯 버펄로 빌은 트랜스젠더로 보기 어렵고 그저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연쇄살인마에 불과하다. 설사 그 캐릭터가 정말 트랜스젠더가 맞았다고 한들 리처즈의 동료가 보인 반응은 의아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트랜스젠더들 대신 왜 살인마 캐릭터를 먼저 입에 올렸을까. 다소 거친 비유지만 대통령이 꿈이라는 사람에게 '도널드 트럼프처럼 되겠다고?'라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을까? 상대방을 증오하지 않을 바엔 말이다. 이 아리송한 상황에 대해 젠 리처즈는 이렇게 말한다.


"당시에 (그 친구가)트랜스젠더를 이해하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틀이 그런 것 밖에 없었어요, 변태 정신병자 연쇄살인마 뿐이었죠."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그 결과물을 붙들고 나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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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스틸 사진 ⓒ Netflix

사실 미디어가 발휘하는 이런 식의 영향력에서 당사자도 자유롭지 않다. <디스클로저>에 등장하는 GLAAD의 활동가 닉 아담스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역시도 자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 중에 트랜스젠더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래서 당사자조차도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미디어를 참고할 수밖에 없다.


물론 트랜스젠더에 대한 얕은 묘사가 늘 부정적인 효과만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디스클로저>에는 자신이 본 것이 트랜스젠더를 조롱한 캐릭터임을 나중에서야 깨달았지만, 어린 시절에는 그 인물을 통해 지정 성별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도 있음을 알게 된 이의 사연이 등장하기도 한다. 대중문화는 맥락과 수용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점이 소수자를 멸시하고 격하시키는 묘사가 가진 해악을 없는 것으로 만들어주진 않는다.


<디스클로저>에서 가장 정서적 울림이 컸던 부분은 배우 젠 리처즈가 TV를 통해 트랜스젠더 자녀에게 우호적인 부모를 본 경험을 이야기 하는 순간이다. 리처즈에 따르면 그녀의 엄마는 자신의 딸을 '젠'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젠이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고 하며 트랜스젠더인 딸에게 거부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심지어 '남자처럼' 입고 오라는 요구 때문에 젠은 자신의 할머니의 임종조차 지킬 수 없었다.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그런 일이 괜찮다고 여겨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삶을 견딜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자녀를 인정하는 부모를 보며 젠은 왜 부모와 친구들이 자신을 인정해주고 자기의 경험을 가치 있게 존중해주지 않았는지 질문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실은 자신조차도 스스로에게 인정을 주지 않았음을, TV 속의 부모들처럼 트랜스젠더인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경이롭게 여기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후의 젠 리처즈가 과연 이전과 같이 살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대중문화의 긍정적인 힘을 믿는다. 이 강력한 매체는 일상에서 잘 보이지 않고 우리에게 낯선 존재들을 인식하고 이해할 경로를 제공한다. 미디어는 우리의 세계를 확장시킨다. 그런데 그 지도가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지도가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었다면. 답은 간단하다. 지도를 다시 그리면 될 일이다.


<디스클로저>에 등장하는 말처럼 트랜스젠더에 대한 제대로 된 이미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트랜스젠더를 인식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사처럼 미디어는 하나의 도구일 뿐 궁극적으로 우리가 목표해야 할 것은 세상의 변화다. 그렇다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이에 대해 자신의 작품에 트랜스젠더 캐릭터를 등장시키기도 했던 영화감독 릴리 워쇼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마술 같으면서도 아주 재미있는 현상인데 무에서 무언가를 창작해 내면 그 결과물을 붙들고 앞으로 나아가게 돼요."


그리고 그녀의 말처럼,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다양한 소수자 캐릭터들이 우리가 보다 진전된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제공할 것이라 나는 믿는다.


신필규 기자(mongsill@gmail.com)

2020.07.0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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