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맥 있다는 소문 돌던 섬... 정말 '신이 남겨둔 땅'이네

[여행]by 오마이뉴스

절이도 해전에 대한 역사부터, 생태숲까지... 거금도를 둘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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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대교 모습. 소록도를 지나면 거금도가 나온다. 거금대교 끝에 절이도 승전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 오문수

23일 거금도를 다녀왔다. 거금도는 고흥군청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28.6㎞ 떨어진 곳에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소록도 바로 아래 위치한 섬으로 면적이 6498㏊나 되는 큰 섬이다. 남쪽 해안에 익금, 금장, 서쪽 해안에 연소, 고라금 해수욕장이 자리하고 있어 여름철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섬이다.


최고점은 적대봉(592m)이며 400m 내외의 산지가 많다. 서쪽과 북쪽은 경사가 완만한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다. 해안은 사질해안이 많으나 돌출한 갑(岬) 일대는 암석해안을 이루고 있으며 해식애도 발달해 있다. 문화재로는 대흥리에 있는 조개더미가 대표적이며 송광암, 금산리성지, 상하리 고인돌군이 있다. 전통문화로는 당산제, 월포농악 등 민속놀이가 있다.


거금도는 조선시대에 절이도(折爾島)라 불렀다. 그 후 강진군에 편입되었다가 광무 원년(1897년)에 돌산군 관하의 금산면(일명 居金)으로 개칭되었으며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에 고흥군 금산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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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대교 휴게소에 있는 동상으로 나로도 우주발사기지를 형상화한 조각상이다. ⓒ 오문수

구전에 의하면 거금도에 큰 금맥(金脈)이 있어 거금도(居金島)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중기의 문헌에는 속칭 "거억금도(巨億今島)"라고 기록되어 왔다. 적대봉의 산록에 형성된 마을 중 진막금(眞幕金), 전막금(箭幕金), 욱금(旭金), 청석금(靑石金), 고라금(古羅金) 등 "ㄱ(받침)+금"으로 된 지명이 많아 거금도(거억금)와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10여 년 전까지 거금도를 방문하려면 녹동과 소록도를 거쳐 배로 20분을 달려야 했지만 지금은 거금대교(2028m)가 건설되어 자동차 통행이 가능하다. 코로나로 입도가 금지된 소록도를 지나 거금대교를 건너자 휴게소가 나왔다.

잊혀진 역사가 된 절이도 해전

휴게소에는 하늘을 향해 손을 내민 동상이 서 있다. 나로호 우주발사기지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바닷가로 몇 발자국을 걸어가니 '절이도 해전승전탑'이 있었다. 필자가 처음 들어본 해전이라 집에 돌아와 자료를 구해보니 그럴만한 연유가 있었다. 다음은 1598년 7월 24일에 있었던 절이도 해전에 대해 이순신이 조정에 보고한 <선조실록 103>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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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대교 휴게소 인근에 세워진 '절이도 해전승전탑' 모습. 절이도해전은 조선수군에게 복수하려던 왜군의 기세를 꺾어버린 해전이었다.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에게 참패한 왜군은 이순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절이도 인근까지 왔다가 참패당했다. ⓒ 오문수

"통제사 이순신이 치계하기를 '지난번 해상 전투에서 아군이 총포를 일제히 발사하여 적선을 쳐부수자 적의 시체가 바다에 가득했는데 급한 나머지 끌어다 수급을 다 베지 못하고 70여 급만 베었습니다. 명의 군대는 멀리서 적선을 바라보고는 먼 바다로 피해 들어가 하나도 포획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군사들이 참획한 수를 보고 진도독이 뱃전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그 관하를 꾸짖어 물리쳤으며 신 등에게 공갈 협박을 가하여 못하는 짓이 없었으므로, 신 등이 마지못해 40여 급을 나눠 보내줬습니다. 계금도 가정을 보내어 수급을 구하기에 신이 5급을 보냈는데 모두들 글을 보내 사례하였습니다'... (중략)

자료를 살펴보면 절이도 해전은 녹도만호 송여종이 이끈 현지 수군의 독자적인 전승이었다. 위 승첩은 명량해전 이후 왜군의 보복 공세가 남해안 지역에 휘몰아친 상황에서 적에게 타격을 주었고, 서남해안이 평정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해전의 결과는 당일 고금도에 보고되었고 운주당에서 주연을 베풀고 있었던 통제사와 진린에게 보고됐다. 이 보고를 들은 진린은 명군이 활약하지 못한 것에 격분해 술잔을 내던졌다. 이에 통제사 이순신은 진린과 계금에게 각각 40급과 5급의 수급을 취하게 하며 이들을 달랬다. 이순신은 조명연합군이 형성되고 첫 번째로 치러진 전투에 명 수군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했고, 이 보고서는 그대로 공식화됐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전투력에 크게 기여한 고흥수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전라좌수영은 5관 5포로 이루어졌다. 5관은 순천도호부(여수), 보성, 낙안, 흥양(고흥), 광양현이었고, 5포는 흥양의 사도진, 발포진, 여도진, 녹도진과 돌산 방답진으로 이루어졌다.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수군이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흥양지역 1관 4포 수군부대의 전투력이 있었다.


수군편제상 전라도 연해지역은 해상 전투의 근거지일 수밖에 없었고, 실제 이 지역에서 동원된 인력과 물자들이 해전의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즉, 군비 일체가 이 지역에서 마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선의 격군, 사부 등 실전을 수행한 병사들 역시 현지의 고흥사람들이었다.


뿐만 아니다. 개전 당시 경상도수군이 패주한 상태에서 영남의 바닷길 사정에 어두운 전라좌수군으로서는 쉽게 진군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이순신 휘하 장수들 대부분이 경상도 지역으로 출전하는 데 부정적이었다. 이때 녹도만호 정운이 이순신에게 자신의 뜻을 주장했다.

"적세가 이미 서울까지 박두했으니 더없이 통분함을 이길 수 없다. 만약 해전에서도 싸울 기회를 잃고 나면 뒷날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좌수영군관 송희립도 영남지역 출전을 주장해 이순신이 영남지역 출정을 결심하는데 일조했다.

"영남은 우리땅이 아니란 말인가? 적을 치는데 이 지역 저 지역 차이가 없으니 먼저 적의 선봉을 꺾어놓게 되면 본도 또한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산과 해안선이 아름다운 거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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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생태숲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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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숲에서 바라본 태평양 모습 ⓒ 오문수

연홍도 관광을 마치고 거금도를 안내한 이는 금산면 농협조합장과 고흥군의회 의장직(전)을 수행했던 장세선씨다. '박치기 왕' 김일체육관을 둘러본 후 거금도 일주도로를 따라 태평양이 보이는 해안선은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였다.


거금도에는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바다와 울창한 숲이 온산에 가득했다. 해안선을 따라 10여 분을 달리니 생태숲이 나왔다. 조그만 섬에 생태숲이 있다는 건 섬이 건강하다는 걸 의미할 뿐만 아니라 예부터 보존할 가치가 높은 나무들이 자랐다는 걸 의미한다.


고흥문화원이 발행한 <고흥향토문화유적사> 자료에는 "절이도에는 황장이 설치되었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황장'은 궁과 왕실에 쓰였던 소나무를 생산하던 곳이었을 뿐만 아니라 선박을 제조할 목재를 생산한 지역이기도 하다.


생태숲을 향해 걸어가던 장세선씨에게 고흥의 자랑거리와 문제점에 대해 얘기해달라고 부탁하자 그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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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도에 있는 김일기념체육관 모습. 프로레슬러 김일은 '박치기 왕'으로 유명했던 선수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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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에게 연홍도와 거금도를 안내한 장세선(좌측)씨가 주민과 기념촬영했다. ⓒ 오문수

"고흥은 고령화 비율이 높은 곳입니다. 전국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는 현상은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고령화 비율이 높다는 건 역설적으로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의미합니다. 고흥은 무공해 청정지역으로 일조량이 제주도보다 약 500시간이 많은 곳이에요.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덕분에 신이 남겨놓은 땅으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자연환경의 보고입니다."

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생태숲(151만8819㎡)은 참수리, 새홀리기, 말똥가리, 흑비둘기, 매미꽃과 함께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좀수수치'의 서식지이도 하다. 잠시 쉬어가기 위해 한 카페에 들러 차를 시켜놓고 주인과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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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도에서는 다시마 수확이 한창이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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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도 해변을 따라도는 드라이브 코스에 있는 OO까페 모습. 전주에 살다가 거금도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귀촌했다고 한다 ⓒ 오문수

"사장님, 고흥분이세요?"


"아니요. 전주에서 공방을 하다가 4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 왔어요. 남편과 함께 30대부터 이런 생활이 꿈이었어요. 10여 년 전에 청산도에 놀러갔는데 펜션 주인이 2000만 원을 투자해 성공했더라고요. 동일시의 대상이 됐죠. 이곳에 이사 왔을 때 처음에는 벌레가 무서워 소리 지르고 했는데 지금은 적응이 됐어요. 금산면 청석마을이 예뻐요. 마을 분들 인심도 좋아요. 바로 옆에 생태공원이 있어서 더 좋아요."

한때 금이 많이 묻혀 있다는 소문이 나 거금도라고 불렸지만 한 바퀴 빙 둘러보고 난 후 느낀 소감은 산과 자연이 더 아름다운 섬이었다. 사람들이 이 섬을 왜 '비단처럼 아름다운 산'인 금산(錦山)으로 불렀는지 수긍이 갔다.


고흥의 9미(味)는 참장어, 낙지, 삼치, 전어, 서대, 굴, 매생이, 유자향주, 붕장어이다. 코로나로 지친 분들은 청정지역인 고흥을 방문해 아홉 가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 무더위를 날리고 힐링해보면 어떨까.


오문수 기자(oms114kr@daum.net)

2020.07.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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