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성석제가 말하다 "왜 짧은 소설이냐고요?"

[컬처]by 오마이뉴스

[인터뷰] 일상의 웃음과 감동을 담아낸 '내 생애 가장 큰 축복' 출간


코로나19 확산 장기화와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으로 '집콕 생활'도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다. 평범한 일상이 그 어느 때보다 귀하고 소중해진 지금, 소설가 성석제의 짧은 소설 모음집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이 샘터에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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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짧은 소설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이 샘터에서 출간되었다. ⓒ 샘터

작가는 형식의 제한이 덜한 짧은 소설을 통해 삶의 다채로운 단면을 펼쳐 보인다. 7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눈 감고도 그려질 풍경, "학교마다 혹은 학년마다 한두 명씩 권투 챔피언을 연상케 하는 강력한 펀치를 자랑하는 교사가, 아니 스승이, 아니 선생님이 있었다"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펠레의 전설>, 그리도 무뚝뚝하고 무심하던 아버지가 반려견에게는 어찌도 그리 다정한지 섭섭함과 의아함이 교차하는 것을 한 번쯤 느껴본 자식이라면 역시 폭풍 공감할 <진정 난 몰랐었네> 등등.


조급하게 결말을 예상해 보다가 맞닥뜨리는 반전은 소설 읽기의 재미를 더한다. 빠르고 시원시원한 전개, 이따금 '현웃'이 터지는 작가 특유의 해학과 익살, 풍자와 과장의 문장이 어우러져 여름 더위를 날려줄 피서책(冊)으로도 손색이 없다.


장기전이 돼버린 코로나19와 집콕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소소한 웃음과 일상의 감동을 안겨줄 신작과 함께 돌아온 이 시대의 이야기꾼, 성석제 작가를 서면 인터뷰로 만나봤다.

일상은 소설의 광산, 매일 되풀이되는 생활은 소설의 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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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일상은 소설의 광산이고 매일 되풀이되는 생활은 소설의 원석이지요. ⓒ 샘터

<내 생애 가장 큰 축복> 수록작들을 읽다 보면 우스꽝스러운 상황과 익살스러운 인물들 때문에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시 음미하면 사실 누구나 늘 만나고 경험하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점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일상이라는 말 앞에는 '사소한', '흔한', '소소한', '반복적인' 같은 일상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듯한 단어들이 붙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 일상이, 지금은 영원히 다시 회복하기 힘든 귀중한 순간으로 꿰어진 진주목걸이 같은 게 돼버렸습니다. 제게 일상은 소설의 광산이고 매일 되풀이되는 생활은 소설의 원석 같은 것이지요. 일상, 생활,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에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의 씨가 숨어 있습니다.


어떤 계기, 적절한 환경에서 소설이 싹을 틔우고 잎을 내밀고 가지를 뻗고 꽃을 피웁니다. 그 덕분에 저는 살고 있습니다. 인간 모두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겪고 생각하고 흥미로워 하는 것에 대해 누구에겐가 이야기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해서 크고 작은 이야기가 연쇄되고, 서로 비추며 되먹임되는 기억의 네트워크(인트라망) 같은 게 생겨난다고나 할까요. 어쩌면 우리는 문학을 통해 거대한 기억의 호수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책에 실린 작품 <투 잡>에서 '사회적 거리'라는 표현이 등장하며 주인공이 자주 찾는 구멍가게 주인 부부와 일정 거리를 두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진실, 사람과 거짓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너무 바짝 붙어 있으면 서로의 실상을, 진면목을 볼 수가 없으니까요. 냄새나 열기 같은 건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요즘 같은 여름에는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덥기도 하고요. '코로나 시대'인 지금은 그 거리가 강제적으로,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강력히 요구되는 상황이죠.


우리의 삶과 건강에 관련된 긴박한 요구이긴 하지만 이게 언제까지 계속될지, 또 어디까지 감내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인간적 소통과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해줄(것으로 기대된) 메신저, SNS, 미디어가 과거 어느 때보다 발달해 있고 그것들이 가진 영향력이 우리 존재 자체를 뒤바꿀 정도까지 되었지만 과연 그 때문에 우리가 서로 가까워졌는지는 의문입니다.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도. 재택근무나 화상회의를 떠올려보면 말이죠."


소설이 사람들 간의 소통과 연대의 매개가 될 수 있을까요?


"결국 우리가 간절히 인간적인 소통과 관계를 원한다면 그런 것을 가능케 해주었던 인간친화적인 미디어를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령 선선한 여름 저녁의 맥주 한 잔과 카페에서의 잔잔한 대화(거리두기가 필요할 겁니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도란도란 나누는 일상의 이야기, 편지 쓰기 같은 것. 내 일이 아니고 서로의 관심사도 아니며 내가 잘 아는 게 아닌 이야기에 열을 올릴 필요는 없겠지요.


그런 사람이 당장 옆에 없다면 대안으로 예술이, 음악이, 바람소리, 천둥소리, 대나무에 비 듣는 소리 등등이 대신할 수 있겠지요. 좀 더 정련된 형태의 대화, 이야기를 통해 자신과 세상을 알고 현실과 과거를 해석하며 스스로를 고양시킬 수 있게 하는 도구로서 책과 소설이 필요할 겁니다.


인간과 인간, 비인간의 관계를 매개하는 인간적 미디어를 흔히 '기억'이나 '추억'이라고 부르죠.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에는 여행 경험, 일상의 사건, 살아오면서 일생에 한두 번 겪을 법한 에피소드, 같이 먹고 싶은 음식, 친구들과의 말장난 같은 게 담겨 있는데 그런 것이 우리가 공유하는 것들입니다.


꼭 유쾌하고 우습고 즐겁기만 한 건 아니고 심오하고 아련하고 서글프기도 하면서 입에 침이 고이게 만드는 것도 있죠. 인간은 인간만이 공유하고 있는 '추억의 무대'에서 스스로의 삶과 우주를 몇 배로 확장하기도 하고 심화된 본질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번뜩이는 반전과 자유로움, 짧은 소설의 매력

신작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에 붙은 '짧은 소설'이라는 부제가 눈에 띕니다. '미니 픽션'이나 '엽편(葉篇)'이라는 말은 낯설지만 SNS와 블로그, 인터넷 기사 등 짧은 글을 쓰고 소비하는 요즘 젊은 세대가 오히려 친숙하게 즐길 수 있는 장르가 아닐까 싶습니다.


"짧은 소설은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제 인생 여정과 함께 한 장르입니다. 1986년 시로 등단한 이후 첫 시집을 1991년에 냈고 1994년 여름 두 번째 시집을 내기 위해 준비하던 중 '시가 아닌 이상하고 불순한 문장과 이야기'를 정리하게 됐는데 그것이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는 책으로 나온 것이 결국 저를 시인이 아닌 소설가로 살게 했으니까요(그 책을 낸 이후 시 청탁이 거의 오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요).


짧은 소설은 소설 가운데 가장 짧고 번뜩이는 반전이나 흥미로운 이야기, 실험성, 자유로움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소설가는 물론이고 남녀노소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하는 특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짧은 소설이라고 해서 표현의 한계가 따로 있지는 않아요. 오히려 현실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지요."


짧은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바는 무엇이었나요?


"시적이고, 우주적이고, 찰나적이며 극한적인, 소소한, 앉은 자리에서 끝장을 보고자 하는 어떤 느낌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거의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독자 역시 작가의 의도가 뭔지 알려고 하는 부담은 조금도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책, 소설을 매개로 서로 재미있는 한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이따금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고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지치지 않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온 것에서 '농부'와 같은 우직함과 성실함을 느꼈습니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집중도가 떨어질 때도 있겠지요.


"오늘날 작가들을 둘러싼 작업환경은 집중도를 약탈하기 위해 몰려와 날뛰는 공룡 벨로키랩터 떼에 포위된 것 같은 형국입니다. 물론 작가만 그렇지는 않겠지만요.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작가에게 상당히 위험한 일입니다. 멍한 상태에서는 구두점, 단어 하나라도 결정지어서는 안 되니까요.


집중력을 약탈하는 것들의 첨단에 스마트폰이 있지요. 불필요한 뉴스,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선정적인 광고, 피싱, 스미싱과 해킹에 대한 공포 같은 것부터 지인들로부터 오는 안부 인사, 메시지, 어디 놀러 가자는 유혹… 그런 것들에 시달리면서 쓴 원고를 나중에 보면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이걸 내가 쓴 게 맞나? 차라리 안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실제로 그런 원고는 두고두고 손이 가고 나중에도 제 이름을 지워버리고 싶도록 부담스럽(겠)지요."


집중도가 떨어질 때 대처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


"여러 가지 방법을 써봤습니다. 원고를 쓰는 동안은 스마트폰 작동을 중지시킨다든지, 와이파이가 안 되는 산골짝으로 들어간다든지, 메신저와 커뮤니티, SNS를 탈퇴한다든지… 또 하나의 방법은 집중력이 떨어지기 전에 원고를 끝내는 것입니다. 한 원고를 완전히 장악하고 시종일관 같은 집중력을 유지하려면 손이 따라줘야 하는데, 지금은 꼭 그렇다고 자신할 수가 없으니 힘을 모아 짧고 강력하게 치고 나가서 자연스럽게 끝이 맺어지기를 바랍니다. 귀결점은 '짧은 소설'이네요."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은 월간 <샘터>에 5년 동안 '만남'을 주제로 연재했던 원고를 다시 다듬어 엮은 책입니다. 소설 연재를, 그것도 매번 다른 소설을 연재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마감을 어긴 적이 없다고요.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요?


"연재이기는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라서 크게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프로기사 이세돌 9단의 어록을 살짝 변용해 인용하자면 '마감을 어기는 법을 몰라서' 어긴 적도 없고요. 한 회에 한 번의 이야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2회, 3회로 이어지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정작 힘든 건 '설렁설렁 쉽게 쓴 것은 어렵게 고쳐야 한다'는 고금의 진리가 작동할 때죠.


고치고 고치다 보면 처음 썼을 때의 감흥, 펄펄 뛰는 생명력 같은 것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고. 마감은 잘 넘겨놓고 그때부터가 고생이죠. 저보다는 편집자가 훨씬 고생했을 겁니다. 항상 고마워하지만 늘 인사를 까먹는 게 제 천성입니다. 샘터 이종원 편집장님, 그리고 지금까지 제 책을 만들어주신 모든 편집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시대와 국적을 넘어, 문학을 통한 정서적 유대와 연대

성석제를 읽는 독자는 작품의 어떤 매력에 빠져드는 것이라 생각하나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라는 작가는 독자가 왜 제 작품을 좋아하는지, 왜 재미있어하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나중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그렇습니다. 작가에게 홍길동 같은 분신술이 있지 않는 한 동시에 여러 가지 삶을 살 수 없고 그 삶에서 동시대인들이 공감하고 흥미로워할 만한 소설의 자원을 충분히 얻을 수도 없습니다. 고맙게도 제 주변에는 저와 매우 다른 삶과 생업을 영위하고 다채로운 인간관계를 가진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물어다 준 '박씨'를 심고 기다렸더니 이런 박 저런 박이 지붕에 둥실둥실 달렸나 봅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타봐야 알겠죠."


비록 어떤 독자가 왜, 어떤 상황에서 작품을 선택해 읽는지 알 수는 없지만 작품을 통해 독자와 어떤 교감을 나누고 싶은가요?


"아마 알프레드 노벨씨도 몰랐을 겁니다. 한국의 농촌 마을에서 저와 같은 소년이 모깃불 곁에 있는 멍석에 앉아서 여성으로서는 가장 먼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8회) 스웨덴의 작가 셀마 라게를뢰프(1858~1940)의 <늪텃집 처녀>를 읽으며 이상한 동경심에 사로잡혔다는 것을요. 예, 알 수 있을 리가 없죠.


그런 곳에 인생의 신비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 때문에 저는 바뀌었으니까요. 저는 문학을 포함 인간이 무상의 행위로서 광대무변한 추억을 공유하는 것은 가장 인간다운 일로 인간이 존속하는 한 계속되리라 봅니다. 기왕이면 그것이 재미있고 웃기고 남 눈치 볼 것 없이 울고 싶을 때 맘껏 울 수 있는 것이기를 바랍니다. 운이 좋았을까요? 전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거든요."


이효미 기자(afterworkbooks@naver.com)

2020.07.1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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