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에 대해 '다 안다' 생각했는데... 이 가족이 준 충격

[컬처]by 오마이뉴스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


"넌 그렇게 너밖에 몰라서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니?"


20대 중반. 사회초년생일 때 아버지가 한 말을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당시 나는 꽤 즐겁게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고, 나름 밖에서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족 앞에만 서면 나는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이 되곤 했다.


'왜 가족들은 나를 몰라주는 걸까?'


아버지에게 한마디 들은 후, 나는 한동안 이런 고민을 했다. 그리고 점점 가족들에게 나의 '바깥 생활'에 대해 입을 닫았다.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오랫동안 굳어진 가족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변할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나는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그 후 차차 이 질문은 기억 속으로 묻혀갔다.


그러던 내가 아버지의 말을 다시 떠올린 건 바로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아래 '가족입니다') 때문이다. 서로를 매우 잘 안다고 여겨왔던 이 드라마 속 가족 구성원들은 어머니의 '졸혼' 선언 후, 몰랐던 가족의 '바깥 생활'에 대해 알아간다. 그리고 가족들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도대체 왜 이들은 가족에 대해 다 안다고 착각하며 살아온 걸까? 또한, 왜 그토록 중요한 일들을 말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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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안다 믿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몰랐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포스터 ⓒ tvN

가족이긴 한데 참 모르겠다니까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상식(정진영), 헌신하는 어머니 진숙(양미경), 차갑지만 똑부러지는 큰 딸 은주(추자현), 애교 많은 중재자 둘째 딸 은희(한예리), 그리고 철부지 막내 아들 지우(신재하). 이들이 한 '가족'이 되어 살고 있다. '사랑으로 화목한 가족'이라는 가훈 아래 40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이들은 서로를 걱정하고 위하는 마음 가득한 평범한 한국의 가족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레 어머니가 졸혼을 선언한다(1회). 어머니는 매우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해 내린 결정이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삼남매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충격을 받는다. 이후 아버지는 자살 시도로 의심되는 산행에서 사고를 당해 22살로 돌아간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에 당황하던 찰나, 은주는 남편이 동성애자임을 알게 된다. 또한 은주의 친아버지가 따로 있음도 밝혀진다.


이들은 가족에 대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충격을 받으며 이렇게 말한다.


"가족이긴 한데 참 모르겠다니까."(지우)

"가족인데 우리는 가족인데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은희)

"남편을 몰랐네. 지금 생각해보니까 나한테 엄청 신호를 보냈었거든. 남편이 아니었으면 알았을 텐데 가족이니까 몰랐어. 가까이 있어서 몰랐어."(은주)


그뿐 아니다.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에 대해서도 새로운 걸 발견해 간다. 은희는 5회 은주의 기사노릇을 해주다 은주의 말에 까르르 웃는 동료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린다. "설마 김은주가 사람을 웃긴다고?" 은주 역시 동생 은희의 절친 찬혁(김지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종종 이렇게 말한다. "은희가 그런 건 몰랐네 요."

너의 경험과 나의 경험이 같을 거라는 착각

도대체 이들은 왜 40년이나 함께 지낸 가족이면서 가족의 삶에서 중요한 일은 물론, 일상 속 사소한 모습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을까?


"어떤 과학자가 그랬어. 우리는 지구 내부 물질보다 태양계 내부 물질을 더 많이 안다고. 지구에 살고 있는데 지구 내부는 알아서 뭐하냐 이런 거지. 가족이 딱 그래."


3회 찬혁의 이 대사가 아마 정답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들은 아니 우리는 가족에 대해서 더 알려고 하지 않는 걸까?


심리학에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다를 수 있음을 알고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을 '정신화'(혹은 심리화)라고 한다. 정신화 능력은 같은 경험 속에서도 다른 사람은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성찰할 수 있는 이 능력은 타인의 마음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능력의 초석이 된다.


이런 정신화 능력은 가족과 같은 중요 타인들로부터 자신의 감정을 반영 받는 경험을 통해 길러진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가족을 통해 기른 이 정신화 능력을 우리는 가족에겐 잘 발휘하지 못한다. 인생의 주요사건들을 함께 겪어내기에 가족은 나와 같은 방식으로 그 사건을 경험했으리라 쉽게 믿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보듯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받아들이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5회엔 엄마가 은주와 가출했던 사건에 대한 은주와 은희의 상반된 경험이 나온다. 은주가 대문을 열고 집에 돌아온 그 순간, 은주와 은희는 분명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이들의 기억과 정서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이들은 상대방의 감정을 묻지도 않은 채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서로에 대한 서운함을 쌓아간다. 이처럼 늘 함께 있기에 우리는 가족의 마음이 나와는 다를 수 있음을 종종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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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이해할 수 없었던 사이인 언니 은주(추자현)과 동생 은희(한예리)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서로 조금씩 거리를 좁혀간다. ⓒ tvN

왜 그 중요한 일들을 말하지 못했을까?

이렇게 '정신화' 능력이 발휘되지 않을 때 우리는 종종 '그 사람에 대해 내가 다 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상대방을 단정지어 버린다. <가족입니다>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드라마 속 은주는 가족들 사이에 '차갑고 독한 아이'로 규정된다. 하지만 직장에서의 은주는 동료들과 농담도 즐기고 예의 바르며 적당히 선을 그으며 현명하게 처신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은희는 가족에게 '다른 가족을 배려하고 기쁘게 하는 존재'다. 하지만, 은희에게 이런 꼬리표는 때로는 피곤함으로 다가온다. 은희는 집에서와는 반대로 건주(신동욱)와의 연애에서는 정확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단호함도 갖췄다. 그런데 가족들은 이런 은희의 모습은 모른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대로 '중재하고 배려해주기'를 원하고, 은희 역시 가족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일종의 '낙인효과'와도 유사한 가족들이 붙인 꼬리표는 가족 안에서 각 구성원의 역할이 되고, 이를 통해 가족은 질서를 유지해간다. 이럴 때 가족들이 규정지은 것과 반하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결국 가족의 질서를 깨뜨리는 일이 되고 만다. 때문에 상식은 22살의 자상한 모습을 애써 부인하고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로 돌아가려 하고, 은주는 여린 속마음을 끝끝내 가족에게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은희는 피곤함을 무릅쓰고 둘째딸 역할에 충실하며, 지우는 깊은 속내를 숨기고 철부지 막내로서 행동한다. 이들이 자신들의 비밀을 가족에게 말하지 않은 채 살아온 것 역시 이런 질서를 깨는 게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방이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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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로 22살로 된 상식(정진영)은 자신의 삶을 새롭게 보게 된다. ⓒ tvN

<가족입니다>의 가족은 이처럼 서로가 만든 틀을 깨지 않기 위해 조심한 채 살아온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을 때마다 '충격'에 휩싸인다. 상대방이 알려준 새로운 사실 그 자체보다 '이토록 모르고 살았음'에 더 충격받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은 가족 내 확고했던 질서에 균열을 내고 이제 이들은 '다 안다'는 생각을 버리고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려 애쓴다. 9회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은주는 그 충격적인 순간 엄마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이를 통해 그동안 '아빠 편'에 서 왔던 자신의 입장을 바꿔 엄마를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은희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엄마를 힘들게 한다고만 생각해왔던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비로소 이들은 자신의 틀을 깨고 나와는 다른 상대방의 입장을 상상해보는 '정신화'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6회 찬혁과 효석(이종원)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 운전할 줄 아냐고 물어보는 사람 있어요?"(효석)

"거의 없죠. 자기들 맘대로 내가 운전하는 줄 알았다가 운전 못한다고 하면 뭐 이런 쓸모없는 놈, 이런 눈빛?"(찬혁)


자신이 규정한 세계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물어보지도 않는 사람에게 우리는 절대 진실을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족에 대해 너무나 쉽게 자신의 방식대로 판단하고 규정지어 버린다. 때문에 우리는 가족에게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기가 너무나 어렵다. 20대의 나 역시 이런 마음이었을 테다.


상대방에 대해 '다 안다'는 신념이 깨어진 드라마 <가족입니다>의 인물들. 서로 잘 몰랐음을 깨달은 이들은 이제 서로에 대해 당연하다 여겼던 것을 내려놓고 많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 이들이 만들어갈 새로운 관계가 나의 오래된 고민에 답이 되어 주길 기대해본다.


송주연 기자(serene_joo@naver.com)

2020.07.1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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