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관광지'라는데, 스타벅스 빼곤 다 지옥이네

[여행]by 오마이뉴스

무더위 속 흥정꾼에게 시달린 델리... 서둘러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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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의 여행자 거리 빠하르간즈 ⓒ 이원재

델리에 얼마나 머무는 게 적당할까. 사흘로 계획했던 일정을 하루라도 줄이고 싶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떠나는 게 맞다. 정말이지 델리는 여행자가 있을만한 곳이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떠나 적당한 날씨의 마날리로 가는 게 옳다.


나도 안다. 델리에 관광 명소가 있다는 것도 알고, 이전 여행에서는 다음에 오기로 기약했던 곳이라는 걸. 여행에서 다음을 기약하고, 여지를 남긴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은 없다. 결말을 눈앞에 둔 드라마처럼 상상의 나래를 피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열린 결말, 해피 엔딩으로 가도 좋고, 새드 엔딩으로 가도 좋은 그런 결말.


하지만 가끔, 굳이 결말을 보지 않더라도 눈앞에 선한 드라마가 있다. 시청자마다 각기 다른 결말을 내세우는 게 아닌, 모든 이로 하여금 같은 줄거리를 도출시키게 만드는 그런 결말.


여기 8월의 델리가 그랬다. 구태여 관광 명소를 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여행지. 에어컨 바람 밑에서 스타벅스 커피 한 잔 마시면 그것만으로 되었다 싶은 여행지. 40도를 오가는 무더위 속에서 그나마 누릴 수 있는 행복이라곤 오직 스타벅스를 가는 것밖에 없었다. 이건 델리가 사실상 여행지로서의 매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인도 스타벅스라고 해서 여타 국가의 것과 다른 점이 있다는 건 아니다만, 델리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도 널리고 널린 스타벅스에서의 경험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다음 여행지로 떠나는 게 옳다.

델리는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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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내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델리의 거리 ⓒ 이원재

여행자들은 보통 빠하르간즈라 불리는, 뉴델리역 바로 맞은 편으로 이어진 거리로 운집한다. 여행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위치인 탓도, 애초에 그곳에 여행자들이 있을 만한 숙소나 식당, ATM 같은 인프라가 모여있는 탓도 있다. 사람들이 델리와 빠하르간즈가 그렇게 싫다면서도 이곳으로 모이는 데엔 이유가 있다. 선택의 여지가 딱히 없기 때문이다.


물론 델리에도 구르가온이나 노이다 같은 신시가지가 여럿 있지만, 당장 서울에 대입해봐도 이들이 강남 같은 신도심이 아닌 명동이나 홍대 같은 구도심에 여장을 푸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빠하르간즈 같이 값싼 숙소가 많다거나, 아니면 공항과 접근성이 좋고 주변에 갈 만한 곳이 많다거나.


하지만 구태여 서울과 델리를 같은 비교 선상에 놓는 건 무의미한 일이겠다. 지나치게 떠들썩하지 않으며 그저 길거리를 걷는다고 하여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만들어지는 일은 서울에선 없으니까. 혼잡하나 고요한 도시, 자신과 다름은 틀림이나 이상함으로 인지하여 최대한 일반 대중과 비슷함을 추구하는 사람들. 관용이 덜해 보일 수는 있으나 그런 마음 또한 일반 대중과 비슷하지 않은, '틀린 사람'으로 비칠까 두려워 표면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인도는 그와 반대다. 자신과 다름을 틀림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걸 관용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때론 신기함을 쉽게 표출하면서 타인의 영역을 무너뜨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르게 생긴 외국인을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시답잖은 대화거리로 말을 걸거나, 아니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거나.


인도에서 상권이 활성화되고, 이미 오래 전부터 여행자들이 숱하게 오간 곳의 주민들은 좀 '프로' 같다. 처음 보는 여행자를 어떻게 대할지 알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지 않는다. 때론 여행자들을 성가시게 대해도 상관없다는 착각에 빠지는 이들도 있는 듯하다. 여행자 거리에서 여행자를 상대로 최대한 많은 수입을 얻는 게 삶인 사람들도 있다. 돈이 눈앞에 아른거린다면 뭔들 못하겠냐는 근성은 빠하르간즈에서 절정을 이루는 것 같았다.


그렇다. 빠하르간즈는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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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하르간즈에서 조금 벗어난 뒷골목 ⓒ 이원재

타인의 지갑을 열게 만들기 위해선 숱한 실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나 여행자를 상대로 수입을 얻는 이들의 경우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여행의 역사가 길어지고 해당 국가의 물가가 어느 정도인지 등 여러 정보로 무장한 여행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이 한 번에 큰 수입을 얻은 일도 까다로워졌다.


바가지인지 아닌지, 로컬 가격인지 아닌지는 이미 뭇 여행자들의 내공으로 쉽게 판가름 나는 일이 되었다. 구태여 탈 일이 없을 때 다가오는 릭샤꾼은 성가시기 짝이 없다. 안 탄다고 거절해도 포기를 모르는 태세를 보이는 건 릭샤꾼 본인들에게도 큰 감정 소모이지만, 여행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다가오는 이들이 하루에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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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객과 거절의 반복이 일상인 여행자거리 ⓒ 이원재

혹자는 그런 델리를 보고 정말이지 인도가 철학의 나라가 맞냐며 되묻는다. 인도에 대해 환상을 안고 와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공항에서 갓 나와 처음 마주한 인도의 풍경이 이렇다면, 더더욱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인도인과의 시답잖은 실랑이, 그리고 또다시 이어지는 같은 패턴. 여행자들의 숱한 거절에 따른 민망함을 무마하기 위해 여행자가 했던 말을 똑같이 따라 하며 구시렁거리는 이도 있다. 그런가 하면, 자기네들끼리 킬킬거리며 이를 타파하는 유형이 부지기수다.


개인적으로 나는 실제 인도가 크게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너넨 돈 많은 나라에서 왔고 이 정도 가격이면 너희 나라에선 큰 값어치도 하지 않을 테니 웃돈을 내는 게 당연하다'는 일부 사람들의 태세에 여행자들은 자연스레 진이 빠진다.


천당을 목전에 두고 지옥 불에서 뒹굴 필요는 없다. 본래 2박을 계획했던 일정도 무르고 하루라도 빨리 마날리에 가기로 했다. 예약해 둔 버스표를 변경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수수료도 거의 들지 않아 부담도 덜했다. 델리보단 사람도 적고 혼잡하지도 않으며, 날씨마저 좋은 마날리가 훨씬 낫겠지.


여행자인 나도, 여행자를 상대하는 이들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길 것이다. 달리는 릭샤가 어깨를 밀칠 일도, 다 같이 이성이라도 놓아 거리에서 소리라도 질러볼까 하던 일도 없을 거라, 나는 믿는다.


이원재 기자(aksdnjsrnjs@naver.com)

2020.07.0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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