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 연상호 감독의 의도, 이 세 장면에서 찾았다

[컬처]by 오마이뉴스

[하성태의 사이드뷰] <반도>① - 4년 만에 돌아온 'K-좀비'의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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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관련 사진. ⓒ 영화사 레드피터

<부산행> 이후 마동석은 <이터널스>로 '마블 유니버스'에 입성했다. <부산행> 이후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악인전>(과 연이은 다작 행렬)과 비교해, '좀비마저 때려잡는 근육질 아시아 남성'이란 전무후무한 캐릭터의 쾌감은 <부산행>의 차별화 요인 중 하나였고, 마동석의 '마블 입성'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듯 '좀비영화'로서 <부산행>의 뚜렷한 차별화 지점은 해외 160여 개국 판매는 물론 전 세계 흥행수익 1억 4천만 달러(배급사 기준)란 한국 상업영화의 새 역사를 쓴 원동력이었다. 빠르게 이동하는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적 배경, 그 안에서 짜임새 있게 좀비와의 대결과 평범한 인간 군상들이 펼쳐내는 물리적·심리적 갈등은 당대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란 회의적 평가를 넘어 전 세계 관객에게 소구되는 어떤 보편성을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고전 좀비영화와 달리 '스피디한' 좀비의 공격은 강렬했고 그 자체로 무서웠다. 버스업체 사장 용석(김의성)을 필두로 악역부터 펀드매니저인 주인공 석우(공유)까지, 캐릭터들의 개성은 생생했다. 그들이 한정된 공간에서 벌이는 갈등 구조 또한 액션과 공포와의 적절한 완급조절과 함께 빼어난 현실감을 자랑했다.


이 <부산행>으로부터 정확히 4년, 연상호 감독과 기존 제작진이 뭉친 <반도>(오는 15일 개봉)은 전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간다. 절대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낮과 밤이란 주요 시간 배경, 달리는 KTX 열차와 서울 오목교 인근이란 공간적 배경, 단 한명도 겹치지 않는 등장인물과 외양과 느낌이 전혀 다른 좀비 등등.


'<부산행> 그 후 4년, 다시 한 번 살아남아라'란 메인 카피 자체로 관객들을 설레게 만드는 <반도>는 이렇듯 <부산행>과 차별화된 지점 위에서 출발한다. 속편인 듯 속편 같지 않은 <반도>를 제작진은 <서울행>, <부산행>을 잇는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라 칭한다는데, 이 차별화를 좀비물에 친숙하지 않은 혹은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전편의 '천만 흥행'을 이을 관건으로 보인다.

<부산행>과의 차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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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 컷 ⓒ (주)NEW

4년 전, 부산에서 한국을 탈출하는 한 선박 안에서 좀비가 출몰하고, 군인인 정석(강동원)은 눈 앞에서 누나와 조카를 잃는다. 그렇게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좀비 바이러스가 출몰한 한국은 폐허가 됐다. 북한마저 국경을 닫으면서, 한국인들은 전 세계인들이 거부하는, '반도인'들이라 불리는 난민이 됐다. 관객들이 궁금해 할 '<부산행> 그 후'다.


그렇다. <반도> 속 한국은, 그리고 서울은 이른바 '포스트 아포칼립토'(종말물)의 완벽한 배경으로 탈바꿈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 홍콩. 난민이 된 정석은 왜 그때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살리고자 하지 않았냐고 타박하는 매형 철민(김도윤)과 얽혀 서울행 배편에 몸을 싣는다. 일정 시간 내에 어마어마한 양의 달러가 든 트럭을 확보, 인천항으로 가져오라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하지만 순조로웠던 임무는 갑자기 나타난 좀비 떼와 황중사(김민재)가 이끄는 631부대원들로 인해 저지당하고, 매형을 제외한 일행 둘이 숨진 끝에 정석은 '생존자'인 준이(이레)와 유진(이예원)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이제, 준이와 유진의 보호자이자 가족인 민정(이정현), 노인(권해효)과 함께 정석은 지옥이 돼버린 반도를 탈출하기 위해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인다.


<부산행>은 '불투명한 미래로의 생존탈주기'가 핵심이었다. 반면 <반도>는 '예정된 탈주를 향해가는 탈환의 대결'이 중심을 이룬다. 이렇게 앞서 언급한 시간, 공간, 캐릭터의 차이점을 바탕으로 같은 듯 완전히 다른 지점 위에서 출발하는 <반도>의 야심은 '다른 것'의 재현보다 '익숙한 것'의 구현에 맞춰져 있다.


여기서 익숙함이란 이중 삼중의 의미다. 언론시사 이후 <매드맥스> 시리즈란 '레퍼런스'가 소환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만주 벌판을 내달리는 그 장면을 향해 영화 전체가 달려갔듯, <반도> 역시 폐허가 된 서울의 중심대로에서 펼쳐지는 카 레이싱 장면의 절정부를 향해 내달린다.


핍진성이란 현실감을 제거하고, 오롯이 질주의 쾌감에 집중하는 이 후반부 레이싱 장면은 어느 한국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던, 아이맥스 상영관에 제격인 장관을 연출한다. 이 후반부만으로 <반도>는 여름 텐트폴 영화로서의 제몫을 다한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전편을 채우는 것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등장한 '종말물' 속 폐허의 공간이다. 혹자들이 존 카펜터 감독의 <커트 러셀의 코브라 22시>(Escape From New York, 1981)과 속편 < L.A 2013 >(1996, Escape From LA)을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폐허가 된 서울과 그 안에 자리 잡은 631 부대란 공간은 '종말물'에서 흔히 보아온 무대다.


생존자들이 소리에 민감한 좀비들이 잠든 야간에만 활동하는 시간적 제약 역시 이러한 배경을 활용하기 위한 영화적 제약으로 기능한다. <반도>는 우리 CG 기술로 구현한 그 공간의 구현 자체가 볼거리라 할 만하다. 여기에 <부산행>이 탄생시킨 'K-좀비' 장르의 장점을 가미했다. 누구는 그 장점을 '스피디'한 좀비라는 차별점에서 찾을 것이요, 또 누구는 사회비판적 시선도, '신파'도 가능한 장르의 결합이라 칭할 것이다.


<부산행>이 전면에 내세운 가족애 역시도 일반적인 할리우드 좀비물에선 도드라지지 않았던 소재였고. <반도>는 이 모든 것을 다 아우르려는 야심찬 시도다. 그 시도가 전편과 같은 완급조절이나 개성 있는 캐릭터, 잘 짜인 영화적 이음새로 구축됐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한국형 아포칼립스 대작의 비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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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 컷 ⓒ (주)NEW

KTX 열차 안에 좀비들과 캐릭터들이 뒤엉켰던 <부산행>은 개별 캐릭터가 그 자체로 당대 인간군상극을 형상화하는 탁월한 연출을 바탕으로 장르적 재미와 동시대성 그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그 탁월한 영화적 공간을 잃어버린 <반도>는 그래서 확실한 선악구조에 매달린다. 대한민국의 뿌리 깊은 군대 문화와 '태극기 할아버지'를 연상시키는 631 부대와 황중사가 그 증거요, 이들을 지휘하면서도 자기 욕망에 흔들리는 서대위(구교환)는 그러한 남성 중심 군 문화를 비튼 인물이다.


그 대척점에 모계를 중심으로 하는 민정의 가족이 자리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4년 전 친딸 유진과 살아남은 민정은 631부대에서 탈출, 무기력한 김 노인, 양딸 준이와 함께 일가를 이루며 아지트를 유지해낸 강인한 여성이자, 엄마요 가장이다.


이성을 상실하고 광기에 내몰린 631부대 남자들과 달리, 정석의 목숨을 구해낸 것도, 주도적으로 정석의 탈출을 돕는 것도, 결말의 반전을 이끌어내는 것 모두 민정과 민정 가족이라는 점은 연 감독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기 쉽게 드러낸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그러했듯, 폐허의 전장에서 이뤄지는 여성들(과 같은 약자들이 조력하는)의 연대가 난민 생활로 피폐해진, 강대국의 자본주의에 복종하는 정석을 구원하는 것이다.


2016년 '헬조선' 담론이 폭발하던 시기 도착했던 <부산행>의 속편이 이렇게 남성 권력에 반하는 여성과 약자의 연대를, 그들로부터의 구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영화의 주제를 나타내는 결정적인 대사 역시 김노인의 입에서 나온다는 점, 더 나아가 결말에 등장하는 반전의 구원자가 어떤 인종인지에도 이러한 감독의 시선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그 메시지가 영화적으로 관객들의 공명을 이끌어낼지는 미지수다. 악당들의 개성은 평면적인데 반해 이들의 심리를 설명하는데, <반도>는 꽤 많은 공과 분량을 할애한다. 김의성이 연기한 용석이 한국영화 속 '역대급' 악당으로 손꼽히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중량감이나 몰입도도 다소 떨어진다.


'연니버스' 세계관 안에서 4년이 흐른만큼, 말 그대로 '좀비떼'로 변모한 좀비들이 주는 공포는 전작에 비해 훨씬 덜하다. 또 단일한 주요 공간에서 단단하게 결합된 캐릭터들의 액션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사건의 연쇄였던 전작과 달리 <반도>는 선굵은 액션 장면이 훨씬 부각되고, 이를 영화적인 동력으로 삼는다.


강동원이 연기하는 정석의 캐릭터도 사뭇 다르다. 딸의 생사에 단단히 결속됐던 <부산행> 속 석우와 비교해 정석의 시니컬하고 관조적인 면모는 극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에 반해 "<반도>의 마동석"이라 불릴 만한 이레의 캐릭터는 이 비관적인 아포칼립스 영화에서 유일한 활력을 자랑한다.


영화가 주력한 카 체이싱 장면을 짊어진 '10대 여성' 캐릭터이니 만큼, 이레의 안정적인 연기 또한 눈여겨 볼 만하다. 마치 <기생충>의 '다혜'였고, 연 감독의 전작인 드라마 <방법>의 주연을 맡은 배우 정지소의 활약을 연상시킨다고 할까.


그리하여, <부산행>과의 차별화가 돋보이는 <반도>는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언론 시사 이후 반응 역시 다르지 않았다. 지난 4년 간 'K-좀비'에 좀 더 친숙해진 국내외 관객들이 아포칼립스 장르에 좀 더 다가간 <반도>의 '한국식 비주얼'에 환호할지, 전편 버금가는 '가족애'와 '신파'의 향연에 호응할지, 기시감과 클리셰, 그리고 독창성 사이의 간극을 얼마나 이해할지 말이다.


<부산행>에 이어 칸 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선보였고, 코로나19 시대의 악재를 뚫고 한국영화의 숨통을 틀 것이라 예상되는 <반도>.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으며 개봉하는 이 올해 첫 텐트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180개국 해외 선판매 수익을 제외한 250만 명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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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부산행 그 후 4년 ▲ 8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상영관에서 열린 영화 시사회에서 김민재, 김도윤, 구교환, 이정현, 이레, 이예원, 강동원, 권해효 배우와 연상호 감독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는 '부산행' 그 후 4년, 폐허가 된 땅에 남겨진 사람들이 벌이는 최후의 사투를 그린 영화로, 2020년 칸 국제 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작품이다. 15일 개봉. ⓒ 이정민

하성태 기자(woodyh@hanmail.net)

2020.07.1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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