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가 귀하던 시절, 마룻바닥을 활용한 벼루

[여행]by 오마이뉴스

물벼루 흔적 남아있는 영광 매간당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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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효문 2층에서 내려다 본 매간당 고택. 비가 내리는 날, 고택의 풍경이 평소보다 더 호젓해서 좋다. ⓒ 이돈삼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고 있다. 서로 배려하는 안전문화가 절실한 요즘이다. 답사여행에서도 언택트(Untact), 비접촉이 필요한 때다. 접촉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돌아다닐 수 있는 언택트 여행지가 어디일까? 얼마 전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해 발표한 언택트 관광지를 꼽아본다.


관광공사의 언택트 관광지 추천 기준을 훑어본다.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 개별 여행이나 가족 단위 테마 관광지, 야외 관광지, 자체 입장객 수 제한을 통해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관광지 등이다. 언택트 관광이 여행 성수기 유명 관광지로의 편중을 막고, 여행 수요 분산 효과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전한 여행문화 정착에도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간다.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다. 옛집의 마루에 앉아서 내리는 비를 보고, 처마 끝을 타고 내리는 빗물 풍경을 그려본다. 운치도 있고, 감성도 채워 줄 것 같다. 찾는 발길도 거의 없는, 언제라도 고즈넉한 영광 매간당 고택이다.


매간당 고택에서 하룻밤 묵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문화재청과 전라남도, 영광군이 지원하는 고택 활용사업이다. 고택에 스며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예술 공연을 보고, 고택 주변 마을도 돌아본다. 옛날로 시간여행을 떠나 약간의 번거로움과 불편을 체험해보는 프로그램인데, 인기가 좋았다. 지금은 코로나19 탓에 잠정 중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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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간당 고택의 중문에서 본 삼효문과 사랑채. 사랑마당과 어우러진 고택이 옛 양반가의 풍경 그대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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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간당 고택이 자리하고 있는 영광 동간리 풍경. 1586년 연안 김씨 김인택이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됐다고 전해진다. ⓒ 이돈삼

매간당 고택은 조선 후기의 상류층 집이다. 12동으로 규모도 크다. 1868년 김영이 터를 잡고 지었다. 안채의 상량문에 집을 지은 날짜가 새겨져 있다. 연안 김씨 직강공파의 종택이다. 용 문양을 한 삼효문이 우뚝 서 있다.


조상을 모신 사당과 아이들을 가르쳤던 서당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집을 지을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고, 보존상태도 좋다는 평을 받고 있다. 국가민속문화재 제234호로 지정돼 있다. '영광굴비'로 널리 알려진 전라남도 영광군의 군남면 동간리에 있다.


마을 길목에 이르면 솟을대문이 먼저 고개를 내밀어 반긴다. 네 귀퉁이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삼효문을 올린 2층의 누각이다.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한 바깥대문이다. 양쪽으로 여의주를 입에 문 용머리 장식을 하고 있다. 궁궐이 아닌, 민가에서 만나는 용머리 장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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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간당 고택의 삼효문과 하마비. 장맛비가 내리는 날 고택이 한산해서 더 좋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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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다듬지 않은 아름드리 소나무를 그대로 쓴 매간당 고택의 대문 기둥. 자연미가 그대로 배어있다. ⓒ 이돈삼

한쪽의 좁은 문은 일상의 출입문이다. 폭이 넓은 곳은 가마에 앉은 채로 드나드는 문이다. 집안에 큰 행사가 있을 때도 넓은 문을 열었다고 전한다. 대문의 기둥도, 따로 다듬지 않은 아름드리 소나무를 그대로 썼다. 자연미가 배어 있다. 한쪽에 하마비도 있다.


솟을대문의 2층은 유리로 둘러싸여 있다. 비바람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정려각이다. 대문과 정려를 함께 둔 것이 색다르다. 안에는 이재면이 쓴 '삼효문(三孝門)' 현판이 걸려 있다. 이재면은 고종의 형이자 흥선대원군의 큰아들이다.


이 집안의 김진(1599-1680), 김재명(1738-1778), 김함(1760-1832)의 효를 기리고 있다. 대를 이은 효를 나라에서 인정해 내렸다고 전한다. 효자상은 하늘까지 감동시킨 효자가 받는다고 전해진다. 효자상을 한 집안에서 세 사람이나 받았다. 집안의 큰 자랑이다.


김진은 70살의 고령에도 색동옷을 입고 부모를 즐겁게 했다. 부모상을 당하자 3년간 죽으로 연명했다고 한다. 김재명도 부모상을 당해 시묘살이를 했다. 그의 효성에 호랑이도 감복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김함은 한겨울에 두꺼비를 구해 부모의 병을 구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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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효문의 2층 정려각에 걸려있는 정려. 이 집안의 김진, 김재명, 김함의 효를 기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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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에 지어진 매간당 고택의 사랑채. 매간당, 익수재, 구간재 등 3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 이돈삼

솟을대문의 안쪽 계단을 통해 정려각에 올라갈 수 있다. 새시로 만들어진 2층의 창밖으로 집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높지 않은 뒷산이 옛집을 둘러싸고 있다. 집의 터가 매화 떨어진 자리이고, 학의 형상을 한 길지라고 전한다. 사랑채와 안채가 북쪽을 향하고 있는 것도 별나다.


반대편 창밖으로는 마을 앞의 넓은 들이 펼쳐진다. 해마다 봄에 찰보리 문화축제가 열린다. 들에는 모가 새끼를 치며 몸집을 부풀리고 있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다. 고택의 솟을대문이 전망대 역할까지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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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을 들어가서 만나는 ㄷ자 모양의 안채. 왕족에게나 허락됐던 다섯 계단을 놓여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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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간당 고택을 담장 밖에 있는 초가. 옛날에 집을 지키는 사람들이 살던 호지집이다. ⓒ 이돈삼

매간당 고택은 115칸 집이다. 사랑채와 안채, 중문채, 아래채, 곳간채, 서당, 사당, 마굿간 등으로 이뤄져 있다. 사랑채 앞에 정원이 있고, 서당채 앞에는 연못이 있다. 7칸의 사랑채는 1898년에 지어졌다. 매간당(梅澗堂), 익수재(益壽齋), 구간재(龜澗齋) 등 3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매간당은 산속 물가에 핀 매화를 가리킨다. 남의 눈치 살피지 않고 소박하게 지조를 지키며 살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익수재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밝고 건강하게 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간재는 산골짜기의 작은 도랑물까지도 조심하는 거북이처럼 매사 무겁게 행동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매간당은 이 집의 김사형(1830-1909)의 호다. 익수재는 김혁기(1851-1897), 구간재는 김종관(1870-1943)의 호다. 주인과 집을 한몸처럼 여긴 건축물이다. 사랑채 정원에서 중문을 들어가면 ㄷ자 모양의 안채와 一자의 아래채를 만난다.


안채에는 왕족에게나 허락됐던 다섯 계단을 놓았다. 민가에서 보기 드물게 목욕간도 있다. 사당을 지나 뒤뜰로 나가면 초가 두 채가 있다. 집을 지키는 사람들이 살던 호지집이다. 대가의 넉넉한 살림살이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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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간당 고택의 사랑채인 매간당. 산속 물가에 핀 매화처럼 남의 눈치 살피지 않고 소박하게 지조를 지키며 살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 집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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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비들이 쓰던 물벼루. 움푹 파인 바닥에 물을 담아두고 붓끝에 물을 찍어서 마룻바닥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흔적이다. ⓒ 이돈삼

서당채도 별나다. 대청 양쪽으로 동재와 서재를 두고 있다. 바닥에는 온돌이 깔렸다. 향교에나 있던 구조다. 집안의 자제와 마을 학동들의 공부방으로 쓰였다. 서당채 마룻바닥에 조그맣게 파인 물벼루도 눈길을 끈다. 먹을 갈아 쓰는 먹벼루가 아니다. 마룻바닥을 활용한 벼루다.


옛날에 오랫동안 책을 보던 선비들의 발목 복숭아뼈에 눌려 파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는 자국이다. 마루에서 심심풀이로 구슬치기를 한 흔적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여기에다 물을 담아두고 붓끝에 물을 찍어서 마룻바닥에 글을 썼다. 난초도 그렸다. 선비들이 마룻바닥을 종이 삼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흔적이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매간당 고택을 품은 영광군 군남면 동간리는 동편, 오강, 서강 등 3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매간당 고택은 동간리의 동쪽, 동편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동간1구에 속한다. 1586년 연안 김씨 김인택이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불갑천을 따라 들어선 서강마을에서는 보호수로 지정돼 있는 느티나무 세 그루가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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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나무와 어우러진 동간2구 전경. 푸르름을 더해가는 들녘과 마을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이돈삼

이돈삼 기자(ds2032@korea.kr)

2020.07.3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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