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보다 두 배 높은 곳, 자동차 끌고 올라가 보니

[여행]by 오마이뉴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도로를 지나 라다크로 가다

라다크로 향하는 17시간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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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줄기를 따라 내려가는 구름. 덕분에 설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 이원재

날이 밝자 거짓말처럼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달려왔던 도로를 타고 산줄기를 따라 내려가는 구름, 덕분에 마날리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설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해발고도 3000m가 넘는 고지대, 어두운 새벽 내내 1차선 비포장도로를 달린 지프. 하지만 그럼에도 히말라야산맥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퍽 와닿지 않았다.


여정의 끝에 자리한 라다크 지역의 최대도시 레(Leh)가 산맥의 한복판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곳이 히말라야라는 게 와닿지 않았던 건 왜일까. '히말라야'라는 단어에서 오는 거리감과, 지나왔던 길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태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레까지는 나를 포함한 5명의 여행자와 함께하기로 했다. 원래는 현지인이 이용하는 로컬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다. 그건 언제까지나 9월 마날리에서 한국인 동행을 구하지 못했을 때라는 전제 하에 세운 계획이었다. 보통은 동행을 구해 합승 지프를 타고 가는 게 일반적이다.


마날리에 머문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무렵, 여행자들이 소통하는 카카오톡 대화방을 통해 동행을 찾는다는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결과 당장 내일 새벽에 레로 가는 표를 손에 쥐게 되었다. 새벽 3시라는 이른 출발 시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밤을 새운 채 약속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엔 목적지인 레까지 함께할 지프와 운전기사가 있었다.


산을 둘러가는 탓에, 끝없는 구불거림으로 이어진 길. 한국의 태백산맥을 가로지르는 미시령이나 백복령 정도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험난한 길. 하지만 그 덕에 같은 곳에 앉아서 히말라야의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애써 고단함을 잊고자 그렇게 여긴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오르막길이라 해도 마냥 올라가기만 하지 않듯, 라다크로 향하는 첫 번째 관문이었던 로탕 패스를 지나자 강 줄기와 함께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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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옆에 두고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형성된 마을 ⓒ 이원재

길을 사이에 둔 고속도로 휴게소와 같이 상점이나 식당이 여럿 들어선 마을. 고지대로 더 올라갈수록, 사람이 오랫동안 생활하기 힘든 환경일수록 더 간소화된 형태였다. 밤을 그대로 새운 채 뜬눈으로 아침을 맞은 나에게 밀크티는 필수였다. 덕분에 해장이라도 하듯 속이 따뜻해졌다. 피곤함은 이미 날려버린 지 오래, 보이지 않던 주변 풍경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라다크로 가는 길에 마주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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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진 양과 염소 떼의 행렬 ⓒ 류승연

별안간 차가 멈춰 섰다. 도로의 좁은 폭에 비해 유동량이 많았다. 또, 라다크로 향하는 유일한 길인 탓에 마주 오는 차를 비껴가기 위해 멈춰 서는 일은 흔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 오는 양 떼와 염소 떼를 피하기 위해 멈춰 서는 일 또한 흔한 일일까.


짐을 실은 당나귀를 시작으로 양과 염소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차가 멈춰 서고 십 분 가까이 이들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족히 수백에서 수천은 되는 규모가 아닐까. 중간에 양치기 개들이 양이나 염소가 대형을 이탈하지 않게 지키고 있다고 해도, 몇 사람의 힘으로 그런 대규모의 병력을 이동시킨다는 게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도시에서만 자라온 나에겐 상식 밖이었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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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옆으로 이어진 도로 ⓒ 이원재

고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깎아지르는 절벽 옆으로 도로가 이어졌다. 처음엔 눈을 의심했지만, 절벽 밑으로 굴러떨어진 화물 트럭과 자동차의 잔해들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바리게이트 따위 있을 리 만무하고 커브도 많다 보니 자칫 빠르게 달렸다간 절벽 밑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어쩌면 여기 사람들은 이런 사고를 일상처럼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지 이를 조금이나마 막겠다는 듯 도로엔 운전자에게 경각심을 주는 문구가 여럿 보였다. 예를 들면 'No hurry, No Worry'(서두르지 않아도 걱정할 일은 없다) 나 'After whiskey, Driving risky Bro'(위스키를 마신 후 운전하는 건 위험하다) 와 같은 것들. 라임 섞인 문구는 운전자에게 경각심을 줌은 물론, 위트도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노래하는 고속도로'와 비슷한 역할. 어쩌면 당장 사고를 막아줄 것처럼 보이는 바리게이트가 마냥 정답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도로 타그랑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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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도로, 타그랑 라 ⓒ 이원재

지프의 장점은 우리가 서고 싶은 곳에 얼마든지 멈춰설 수 있다는 것이다. 해발고도 5360m에 이르는 타그랑 라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도로, 어쩌면 현지인이 주로 이용하는 로컬버스를 타고 갔더라면 이곳에 멈춰 서긴커녕 여기가 두 번째로 높은 도로라는 것도 모른 채 지나가지 않았을까.


백두산의 두 배 가까운 높이를 두 발 딛고 서있다는 것, 그것도 지프를 타고 도착했다는 사실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5000m라는 높은 고도에 맞게 식생이라곤 거의 보이지 않고 지척엔 만년설이 쌓여있었다. 또, 길 옆면에 얼음이 얼어있는 곳도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라곤 작은 건물과 티베트 불교 경전이 적힌 오색깃발 타루초 뿐. 티베트 문화권인 라다크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흔적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목적지 레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 들어간 숙소엔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고 인터넷 연결도 되지 않아 다른 숙소를 알아보려고 했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모두 해결되어 굳이 숙소를 옮길 필요가 없어졌다. 오늘 하루 동안 열심히 달려온 만큼, 내일은 별일 없이 쉬어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원재 기자(aksdnjsrnjs@naver.com)

2020.08.0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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