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이 만나봤어?" 언론인과 정치인들 긴장시킨 이 질문

[컬처]by 오마이뉴스

이영광 시민기자 조명한 KBS <다큐인사이트>

오마이뉴스

KBS <다큐 인사이트>'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의 한 장면. ⓒ KBS

"제 아들도 장애가 있지만 그런 장애를 스스로 극복해내고 남들을 개의치 않고. 또 남들도 개의치 않고. 사회 편견에 맞서서 뭔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제 몫을 다 해내는 그런 걸 보면서 우리 아들하고 많이 닮아 있다."

2013년 그를 처음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났다는 방송인 김미화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뇌성마비 진단을 받은 그가 처음부터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단다. 본인 역시 장애인의 가족으로 살아온 김미화는 그를 "영광이"라 편하게 불렀고, 그런 친분을 자랑하는 손에 꼽는 기자라고 했다.


거주지인 전북 전주에서 서울 상경, 하루에 많게는 4~5개 인터뷰를 소화하는 언론·방송계인터뷰 전문 기자. 그렇게 근 10년 동안 <오마이뉴스>와 <GO발뉴스>에 기고한 인터뷰 기사만 1200여개, 인터뷰를 위해 매주 약 500km를 이동하는 그는 '본인 피셜'론 "지구를 몇 십바퀴 돈 것" 같단다.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아니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얼마나 되겠는가.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면서 방송언론 전문 인터뷰어로서 현역 언론인과 정치인, 그리고 연예인 등을 600명 넘게 만난 '시민기자'가 지구상에서 또 존재할 가능성이.


지난달 30일 방송된 KBS1 <다큐 인사이트>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의 주인공이 바로 그 '시민기자' 이영광 기자였다.

'벌새'처럼 취재하다

오마이뉴스

KBS <다큐 인사이트>의 한 장면. ⓒ KBS

"벌새의 느낌이에요. 역학적으로나, 신체 구조상으로나 벌새는 날기 어려운 구조거든요. 짧고 작은 날개에, 몽톡한 몸짓에 꼬리도 제대로 갖춰있지 않고. 그런데 난단 말이죠. 벌새는 그 생각이 없어요. 유체역학이나 신체 구조상의 개념 자체가 없어요. 그냥 날아버려요. 영광씨도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죠." (변상욱 전 CBS 대기자, YTN 앵커)

2009년 첫 인터뷰이로 처음 만나 2011년 말까지 이 기자의 인터뷰 기사를 '코칭'해줬다는 변상욱 앵커. 이 기자가 스승으로 생각한다는 그는 "이렇게 전국구가 될지 몰랐다"면서도 "영광씨의 1초는 삶이 농축된 1초예요. 제가 쓰는 1초와는 달라요"라며 이 기자의 활동을 '벌새'에 비유했다. 벌처럼 공중에서 꿀을 빨아 먹는 것은 같지만, 꿀벌보다 날갯짓을 하는 벌새 말이다.


비장애인 현역 기자들과 비교해 이 기자가 그런 벌새 같은 존재일지 모를 일이다. 인터뷰 대상들은 섭외를 위한 전화 통화부터 놀라기 마련이다. 대중교통을 이용,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는 걸음마다 온 힘을 실어야 한다. 일반 기자도 고역이라 여기는 인터뷰 녹취를 손가락 두 개를 이용해 타이핑한다.


하지만 비장애인과는 다른 발음과 발성이 치명적인 문제일 순 없었다. 그 보다 비장애인이자 업계의 현역 기자들이 하기 힘든 질문은 거침없이 묻는 '본질'이 우선이었고, '집요함'은 덤이었다.


그러기를 어느덧 10년. 이 기자는 이제 "영광이를 안 만났어? 그럼 '셀럽'은 아닌 거예요"(강원국 작가)부터 "이영광 기자와 인터뷰 한 번 안 한 기자, PD, 아나운서는 '일 열심히 안 한 사람이다'란 (방송계) 농담이 있을 정도"(MBC 허유신 기자)란 반향을 이끌어냈다. 어느덧 두세 번 만난 취재원들도 부지기수다.


쉬었을 리 없다. 인터뷰이가 인터뷰어의 질문을 종종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다반사였다. 이를 두고 <뉴스타파> 심인보 기자는 "인터뷰를 하겠다고 온 분인데 대면해서 의사소통이 잘 안 됐다"며 깜짝 놀랐던 기억을 떠올린 뒤, 이 기자의 인터뷰와 기사를 이렇게 정의했다.

"본인의 장애가 가장 극대화 될 수밖에 없는 영역에서 직업을 찾은 거잖아요."

그렇지 않은가. 수많은 업계의 현역들이, 기자들이, 작가들이 '소통'을 화두라 내세운다. 인터뷰란 행위는 그런 소통의 극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자는 처음 만난 이들이 "(어떻게) 잘 알아들어요?"라는 반응이 나올 만큼 쉬운 대화 상대는 아니다. YTN 노종면 앵커는 그렇게 질문하는 후배에게 "너도 두세 번 (인터뷰)하면 잘 알아들을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역설적이지 않은가.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쉽지 않은 장애인 기자가 하필 또 방송·언론을 취재하고 업계 현역 인사들을 두루 만나왔다는 사실이. 그러니까 이 기자의 인터뷰는 일반적인 언어라는 도구가 소통의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진실을 역설하는 진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이 기자는 줄곧 대면 인터뷰를 고수해왔다. 공감이 쉽지 않겠지만, 어쩔 도리 없이 비장애인 현역 기자들의, 아니 비장애인들의 반면교사가 될 수밖에 없는 직업인으로서의 궤적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이 기자는 "다른 세계를 미처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늘 만나는 세계"(변상욱 앵커)였던 대한민국의 방송 미디어를 지키는 감시자이자 파수꾼 역할을 훌륭히 수행 중이다. 이러한 <뉴스타파> 박중석 기자의 평가처럼.

"기자의 정파성, 상업성. 한국 사회에서 언론의 문제점들 그런 것들이 '기레기'라는 단어로 표출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언론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언론 혹은 기자들은 누가 감시할 거냐, 그런 문제들이 발생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미디어에서 표출되고 있는 현상들을 잡아서 취재한다거나 인터뷰를 한다거나, 이런 것들은 또 다른 미디어 감시가 아닐까."

경계와 장애를 넘어

오마이뉴스

▲ KBS 의 한 장면. ⓒ KBS

산부인과 의사가 서약서를 요구하다가 출산 과정에서 태가 먼저 나왔고, 급작스레 제왕절개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 얼굴도 못 본 아이는 인큐베이터에 17일간을 버텼다. 결국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다. 엄마는 하염없이 울었다고 했다.


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 보통의 학교에선 글씨도 못 쓰고, 소통도 어려웠을 터. 선생님은 "영광이는 이 학교엔 못 다니겠다"며 포기했다. 아이를 업고 돌아오는 길, 펑펑 우는 엄마의 등에서 아이가 말했다. "엄마, 울지마. 나 괜찮아."


이후 재활학교에서 1등을 도맡았다. 전학을 간 중학교 친구들은 '누구길래' 하는 마음에 긴장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보통의 학창시절을 영위하려고 노력했다. 2000년엔 <도전 골든벨>에 출연했다. 칠판을 든 친구들과 달리 당시는 최첨단 장비였던 '노트북'을 모니터 화면에 연결하는 특별(?) 대우도 받았다.


학생회장이던 초등학교 동창은 학창시절 그런 이 기자에게 배울 점이 있었다고 했다. 친구들이 이 기자의 장애를 놀리는 걸 제지하곤 정작 가족들 앞에선 본인도 따라해 봤다는 이 동창 친구는 훗날 배운 게 있다고 털어놨다. 이 친구의 현재 직업은 의사다.

"나중에 의학을 배우면서 영광이 같이 몸이 그렇게 뇌성마비를 심하게 앓아도 인지장애는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고 나니까, 그 당시에 영광이 표현을 못 했을 뿐이지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나중에야 미안한 마음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런 시선을 평생 느끼고 인지했던 이가 바로 이 기자 본인일 터. 이 기자 역시도 "그런 눈빛, 장애인을 불쌍히 보고 동정하는 게 싫었고 저를 일반인처럼 대해주길 바랐고 일반인들과 같이 어울리는 게 좋았어요"라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족들은 넉넉지 않은 원고료를 받으면서도 남들보다 몇 배 힘든 두 발로 직접 뛰는 이 기자의 이런 남다른 활동을 어떻게 바라볼까. 삼남매 중 막내인 이 기자가 인터뷰 차 서울로 올라올 때면 하룻밤 신세를 진다는 경기도에 사는 첫째 누나의 평이 인상적이다.

"(언론사의) 상장이나 상패 받아오는 것 보고 그래도 내 동생을 인정해 주는구나. 의사 소통이 쉽지 않을 텐데 응해주시는 것도 감사하다 생각하죠."

그렇게 인정한 이가 또 있었다. 지난해 8월 작고한 MBC 이용마 기자였다. 2013년 파업 당시 만난 이용마 기자는 힘들고 외로운 MBC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직접 찾아온 이영광 기자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서로 절실한 상황임을 알아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듯싶다.


이후 이영광 기자는 파업 이후 공정 방송을 위해 투쟁하는 MBC 구성원들의 상황을 쉼 없이 기사화했다. 생전 이용마 기자는 "언론이 질문을 못 하면 민주주의가 망하는 것"이라는 소신과 신념을 숨기지 않았다. '거침없이 묻는' 이영광 기자의 인터뷰 역시 그러한 소신을 펼쳐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일반인으로서 언론을 볼 때는 그냥 언론에 나오는 걸 믿었는데 지금은 보도의 이면을 알 수 있으니까요. 맹목적으로 믿는 것은 없어진 것 같아요. 언론은 민주주의의 처음이고 끝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이영광 기자)

<다큐 인사이트> 방송 전날인 지난달 30일 <오마이뉴스>엔 <"4대강, 이대로 두면..." 돌아온 최승호 PD의 걱정>이란 이영광 기자의 인터뷰 기사가 게재됐다. <다큐 인사이트> 카메라 앞에서 이 기자에게 "(현장 취재) 결과물 나오면 인터뷰 합시다"라던 최승호 전 MBC 사장이자 현 <뉴스타파> 기자와의 인터뷰 기사였다.


이 인터뷰를 포함, 지난 한 주 이 기자가 써내려간, 두 매체에서 볼 수 있는 인터뷰 기사는 총 8건이었다. 그렇게 이영광 기자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는 오늘도 계속되는 중이다. 세상의 법칙과 무관하게 자신만의 날갯짓을 고수하는, '벌새'와 같이.

오마이뉴스

고 이용마 MBC 기자(좌)와 이영광 시민기자. KBS <다큐인사이트>의 한 장면. ⓒ KBS

하성태 기자(woodyh@hanmail.net)

2020.08.04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