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여배우의 '엉덩이와 가슴'은 왜 산업의 핵심이 됐나

[컬처]by 오마이뉴스

[리뷰]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 여성이 세상의 반이 되는 그날을 위해


메릴 스트립, 지나 데이비스, 나탈리 포트만, 케이트 블란쳇, 클로이 모레츠, 리즈 위더스푼, 산드라 오 등 전부는 아니지만, 분명 이름을 들어 본 배우들이다. 어디 이름분이랴. 이들이 출연한 영화를 기억하고 있을 만큼 할리우드에서 꽤 유명한 여배우들이다. 이 여배우들이 한 영화에 출연했다. 바로 <우먼 인 할리우드>다. 2018년 개봉작이었던 이 영화가 EIDF 2020 여, 聲 섹션에 초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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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 인 헐리우드 ⓒ EIDF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여배우들 96명이 출연해 화제가 된 영화,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영화 속 내용이다. 아카데미상을 무려 3번이나 받은 메릴 스트립을 비롯하여,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오랜 시간 '차별'받아 왔다는 것이다.


<우먼 인 할리우드>는 할리우드 영화 산업 현장에서의 남녀 차별을 현실감 있게 그린다. 그리고 그 현실은 실로 무겁다.

아카데미 상 받은 여배우가 받은 차별

메릴 스트립의 대표작 <크레이머 vs. 크레이머>는 이혼 법정에 선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이 영화 제작 현장에서 여성은 메릴 스트립 뿐이었다. 메릴은 자신의 생각을 영화에 투영하려 했지만, 결국 영화는 남성의 생각과 감정선을 따라 흘러갔다. 되돌아 보건대 우리나라에도 개봉하여 화제가 되었던 <크레이머 VS. 크레이머>에서 인기를 끌었던 건 여주인공이 가정을 버린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아이와 가정을 지키려 애쓰는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였다.


여배우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영화는 우리를 '부정'했다고. 여자들은 주로 욕망, 욕구, 욕정의 대상일 뿐이었다고. 여성을 통해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소수였다고. <델마와 루이스>로 이름을 알린 지나 데이비스의 경우 영화배우가 되어 했던 첫 촬영부터 '란제리'를 입었다.


지나 데이비스와 세대가 다른 클로이 모레츠라고 다를까? 십대였던 그녀에게 가슴이 작다고 '볼륨 브라'가 주어졌다. 심지어 <캐리>를 찍을 당시 '초경' 장면에서 남자 스텝들이 훈수를 두는 웃픈 상황도 발생했다. '여성의 엉덩이와 가슴이 이 산업의 핵심'이라는 농아닌 농처럼, 여성은 '객체'였고, '타자화'되었고, 주체성은 배제되어왔다고 영화에 등장하는 여배우들은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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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 인 헐리우드 ⓒ EIDF

지나 데이비스는 스스로 '지나 데이비스 미디어 젠더 연구소'를 차려 미디어 속 불평등을 과학적으로 접근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막연하게 피상적으로 보이던 '편견'과 '차별'을 '데이터'로 접근하고 반박하고자 한 것이다.


이 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미국에서 흥행했던 100편의 영화 중 85%가 남성 작가들에 의해 씌여졌다고 한다. 결국 남성들에 의해 남성들의 분노와 고뇌가 주로 '작품화'되고 있는 게 현실인 것이다. <우먼 인 할리우드>에서 등장하는 데이터들은 차별을 명시화한다. 대부분 2018년의 기준인 데이터들, 그럼에도 그 데이터 속에서 여성들은 차별받고, 편견의 대상이며, 소외되어 있다.

구조적이며 내재화된 차별

할리우드 초창기는 지금과 달랐다. 무성 영화 시절 여성이 감독을 하는 등 당시 여성들은 감독과 작가,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 하지만, 영화 산업이 커지고 음향 기술이 도입되고 '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하자 부유한 지배층 남성들의 시각이 '반영'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 산업 전반에서 여성을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는 시선이 팽배해 왔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감독상을 받은 여성은 2009년 캐서린 비글로그 단 한 명이었다. '역대 오스카 상 심사위원에 여성이 좀 더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라고 다큐는 묻는다.


심지어 주요한 영화 평가 기관인 토론토 지수의 평가를 좌지우지하는 평론가들 중 77.8%가 남성이다. 2018년 할리우드 상위 250 편 중 92%가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2017년 여주인공 중심의 영화는 38.1%에 불과했다. 여성에게는 흥행에 기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 감독들에게도 기회는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킴벌리 피어스 감독은 차기작을 9년 후에야 선보일 수 있었다. 감독은 전투적이고 도전적이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여성 감독들의 입지를 줄인다. 심지어 여성 촬영 감독은 더욱 드물다. 여성감독, 여성 작가가 드문 할리우드에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등장을 기대하는 건 당연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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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 인 헐리우드 ⓒ EI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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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보는 미디어 속 자신과 같은 성 역할을 통해 아이들은 자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결정한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 내 미디어의 80%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유포'해 왔다. 이런 '미디어'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지나 데이비스 미디어 연구소에 따르면 2018년 대표적인 작품 중 11편 만이 소수자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배우 산드라 오는 처음으로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여성의, 인종의 이야기를 다룬 <조이럭 클럽>을 보았을 때의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반면, <메리다와 마법의 숲>이 개봉된 후 전형적인 모습과 달리 강렬한 이미지로 등장한 공주, 그리고 같은 해 개봉한 <헝거 게임> 속 여주인공으로 인해 양궁 수업을 듣는 여학생들이 실제 105%나 증가했다고 한다. 'CSI효과'라는 것이 있다. 미드 CSI에 여성 법의학자가 등장하자 법의학을 배우는 여성의 비율이 증가했다. 그 결과 현재 현장 인력의 절반이 여성이 되었다고 한다.


리즈 위더스푼은 150명의 남자 중 유일한 여자였던 현장의 기억을 떠올린다. 여성들에게 안전망은 없었다.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건 위험했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리즈 위더스푼은 '여성 혐오적'인 캐릭터를 두고 동료 여배우들과 경쟁하는 대신 스스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작품화하기 위해 제작사를 차렸다. 그녀가 만든 작품들이 흥행을 하며 여성들의 이야기에 대한 지평은 넓어졌다. 여자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어도 흥행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80년대 유망했던 여성 감독들은 영화 현장에서 여성 권리의 확장을 위해 법적인 소송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런 여성들의 끊임없는 노력은 '자발적 준수'라는 법적인 문턱을 넘어섰지만 효과는 미미했고 정작 여성이 판사였던 연방 법원의 기각으로 좌절되기도 했다.


영화 현장에서 '반반'의 비율이 지켜지는 그 날을 향해 <우먼 인 할리우드>는 목소리를 높인다.


이정희 기자(5252-jh@hanmail.net)

2020.09.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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