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웨이에 선 '다운증후군 소녀', 그 뒤에서 가슴 졸인 엄마

[컬처]by 오마이뉴스

[넘버링 무비 182] EIDF 2020 상영작 <매들린, 런웨이의 다운증후군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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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메인타이틀 ⓒ EBS국제다큐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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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뉴욕 패션 위크(New York Fashion Week). 18살의 매들린 스튜어트는 최초의 다운증후군 모델로 런웨이에 섰다. 그녀의 도전은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이는 곧 미의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지적되던 모델 업계의 오랜 관습에 대한 도전처럼 여겨졌다. 날씬하고 예쁜 서구형 모델로 가득하던 런웨이에 새로운 아름다움의 기준을 제시하며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비록 완벽한 워킹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도전에 아낌없는 박수와 찬사를 보냈다.


얀 망누손 감독의 다큐멘터리 <매들린, 런웨이의 다운증후군 소녀>는 모두의 편견을 깨버리고 세계적인 모델로 활동 중인 매들린 스튜어트(Madeline Stuart)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여기에는 그녀의 과거는 물론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필요했던 다양한 지점의 이야기들이 함께 녹아있다. 특히, 상염색체 이상에 의한 질병 가운데 가장 흔한 질병으로 알려져 있는 다운증후군(Down Syndrome)이 내외적으로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 왔는지를 보여주고, 또 사람들의 환호 이면의 모습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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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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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매들린은 그 어떤 모델들보다 바쁘게 지낸 인물이었다. 인터넷 상에서는 이미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인플루언서가 되어 끊임없는 관심을 받고 있고, 한 번의 런웨이가 끝나고 나면 수많은 미디어와 언론에 시달리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다. 이렇게 많은 관심과 러브콜을 부르는 스타라면 부와 명예를 모두 가졌을 것이라고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녀가 가진 장애 때문에 다른 스타들만큼의 대우를 받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패션쇼에 초청이 되면 그에 필요한 비용은 해결이 되기도 하지만, 전업을 포기할 만큼의 수익을 얻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또 다른 문제는 다운증후군 증상으로 인해 홀로 활동을 할 수 없는 매들린에게는 항상 엄마인 로잔 스튜어트가 필요하다는 것.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현재 회사를 운영 중인 로잔은 두 사람의 생업을 위해 자신의 일도 포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매들린의 활동을 모두 직접 따라다니며 지원하고 있다. 모두가 포기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세상을 나아가고 싶었던 아이가 바로 매들린이었기에 로잔은 어떻게 해서라도 매들린의 꿈을 이뤄주고 싶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될 줄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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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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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작은 어린 매들린을 데리고 패션쇼를 구경하러 다녀온 것이었다. 패션쇼를 구경하고 온 매들린이 자신도 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엄마인 로잔은 뛰어나지는 않더라도 어떤 영감을 줄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 매들린의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고, 사진을 하나씩 올리기 시작하자 바로 3주 후에 뉴욕패션위크의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물론 그녀의 활동에는 많은 부분 제약이 있다. 사회성 측면에서는 고기능에 속하지만 언어를 비롯한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한 매들린이기 때문에 인터뷰가 가장 큰 문제다. 로잔이 인터뷰어들에게 항상 당부하는 것이 개방형 질문이 아닌 예-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폐쇄형 질문을 활용해 달라는 이유다. 패션쇼 자체에 대해서도 로잔은 예민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기 힘들고, 급변하는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매들린이기에 사전에 협의된 틀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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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가장 큰 어려움은 매들린의 활동에 쏟아지는 좋지 않은 시선들이다. 특히 그녀의 행동을 비웃는 온라인 상의 악플들은 엄마인 로잔이 감내하기엔 가혹한 부분이 있다. 패션쇼에 서기는 하지만, 여전히 세계 유명 브랜드들이 요구하는 클래식한 기준, 일종의 유리 천장이 매들린의 활동을 짓누르는 느낌을 받기도 하기에 그런 비난에 대한 상처는 더욱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매들린을 알지 못하기에 더욱 가련한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런웨이 무대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이후에 따르는 일련의 과정을 사랑하지 못해 부담과 압박감을 느끼는 매들린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무대에 서기 전에는 세상 그 누구보다 밝은 모습이던 매들린은 무대에서 내려와 수많은 매체에 둘러싸이면 종종 그 자리를 뛰쳐나가며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도 보인다. 세상의 주목을 받는 '인플루언서'가 됐지만, 그녀가 감내할 수 있는 몫에 비해 훨씬 더 큰 책임감이 때때로 매들린을 짓누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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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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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브리즈번에서 태어난 다운증후군 소녀가 세상이 주목하는 모델이 되기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담기에 이 짧은 다큐멘터리의 러닝타임은 분명히 부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의 화면이 촬영되던 시기보다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난 지금, 매들린 스튜어트는 훨씬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만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과거보다는 조금 덜 화려할지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매들린, 런웨이의 다운증후군 소녀>의 마지막에서 엄마 로잔 스튜어트는 이렇게 말한다. "20년 동안 사람들은 매들린을 봐주지 않았지만 이젠 아름답다고 말해주죠."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소녀의 꿈과 소녀의 꿈을 지켜내고자 했던 엄마의 꿈은 모두 이뤄진 게 아닐까?


조영준 기자(joyjun7@hanmail.net)

2020.08.2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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