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소년은 왜 스스로 살인자가 되어야 했을까

[컬처]by 오마이뉴스

<악의 꽃>... 편견은 어떻게 삶을 망가뜨리는가


참으로 불편했다. tvN 드라마 <악의 꽃>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을 느꼈다. 살인 사건에 대한 묘사가 많았던 드라마 초반, 반복되는 적나라한 시신 장면에 그만 눈을 감아 버렸다. 유난히 '피 튀기는 장면'을 싫어하는 나는 평소 같았으면 화면을 꺼버리고 두 번 다시 이 드라마를 찾아보지 않았을 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인공 도현수(이준기)의 눈빛이 잊히지가 않았다. 섬뜩하면서도 슬픔을 가득 머금은 듯한 그 눈빛의 이유가 너무나 궁금했다. 난 그렇게 이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8회 방영분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누나 나 기분이 썩 괜찮아. 정말 괜찮아. 누나만큼은 평범하게 살아. 있는 힘껏 살아. 어차피 난 아니야. 그러니까 난 괜찮아"

현수는 누나 해수(장희진)가 정당방위를 위해 저지른 살인의 누명을 스스로 쓰며 기분이 썩 괜찮다고 한다. 도대체 현수는 왜 스스로 살인자가 되어야 했을까? 그의 슬픈 눈빛은 바로 이 지점과 관련 있었다. 그가 스스로 살인자가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살펴본다.

믿는 것만 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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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 거짓과 진실의 경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드라마 tvN <악의꽃> 포스터 ⓒ tvN

현수는 작은 시골에서 자라났다. 간간이 등장하는 어린 시절 장면으로 추측하건대, 그는 어머니의 부재 속에 매정하고 무서운 아버지의 양육을 받았을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현수는 사람들과 잘 어우러지지 못한 채 자라난다. 마을 사람들은 현수를 '이상한 애'로 여긴다.


그런데 이 마을에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아마도 마을은 불안에 휩싸였을 것이다. 범인은 현수의 아버지 도민석(최병모)으로 밝혀진다. 하지만, 민석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마지막 희생자의 시신은 찾지도 못한 채 수사는 종결된다. 흐지부지 마무리된 수사는 이웃에 연쇄 살인범이 살고 있었음을 알게 된 주민들의 충격과 공포, 불안을 잠재우지 못한다.


사회심리학자 고든 올포트에 따르면, 불안과 공포는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심리적 기제다. 사람들은 감당하기 힘든 공포와 불안을 느낄 때 이를 투사할 대상을 찾는다. 그리고 그 투사의 대상을 희생양 삼아 그동안 쌓아 두었던 분노를 터뜨린다. 아마도 마을 사람들에게 현수는 가장 투사하기 좋은 대상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어딘지 이상했던 아이. 게다가 살인범 아버지에게서 양육된 아이.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공포와 불안을 모두 현수에게 투사한다. "지 아버지랑 똑같았대", "마귀가 씌었대", "종일 붙어 있었대"라고 수군거리며 그를 굿판으로 끌고 간다.


현수는 이렇게 '마귀 들린 악마'로 낙인된다. 편견은 마을 사람들의 시야를 막는다. 이제 이들은 자신들이 믿는 대로만 현수를 바라본다. 때문에 현수가 극악무도한 짓을 하는 것을 본 이가 아무도 없는데도 현수가 이장을 살해했다고 굳게 믿는다.

나를 비추는 거울이 왜곡되었을 때

그런데 현수는 이런 마을 사람들의 폭력에 적극 대처하지 않는다. 심지어 스스로 누나를 대신해 누명을 쓰고 살인자임을 자처한다. 대체 왜 그랬을까?


이는 사람들이 '자기개념'을 만들어가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자기개념을 형성해 가는 기제를 '거울반응(mirroring)'으로 설명한다.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거울 없이는 알 수 없다. 거울에 비춰봐야만 생김새를 알 수 있다. 이렇듯 심리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개념을 형성해가는데도 '거울'이 필요하다. 이 거울은 바로 타인의 반응이다. 어린 아이는 양육자의 반응을 보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간다. 양육자가 내게 해주는 말, 사랑의 표현 등을 통해 마음 속에 자신에 대한 상을 형성해 간다. 성인이 되어 가면서 사람들은 다양한 타인들의 반응을 접하고 이를 통해 자기개념을 더욱 확장해간다.


매정한 아버지에게 양육되었을 현수는 아마도 유아기 때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며 공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때문에 감정표현이 없고 타인에게 냉담한 성격을 갖게 된다. 현수의 이런 특징들은 6회 지원이 검토하던 현수의 어린 시절 심리상담 기록에 적혀 있듯이 '분열성 성격장애'의 특징들이다. 분열성 성격장애는 정서적인 냉담, 사회적 고립, 둔마된 감정반응을 특징으로 하는 성격장애로 범죄자의 특징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이런 현수의 특징을 '사이코 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의 특징이라 단정지어 버린다. 단지, 아버지가 살인범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결국 현수를 비춰준 거울은 '분열성 성격장애'를 '사이코 패스'로 오인할 만큼 왜곡된 거울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심하게 왜곡된 거울에 자신을 비춰볼 수밖에 없었던 현수는 스스로를 '사이코패스의 피가 흐르는 이상한 놈'으로 개념화했을 것이다. 때문에 현수는 마을 사람들의 편견에 저항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사랑을 베풀었던 누나 해수를 위해 스스로 '살인자'가 되어버린다.

왜곡된 거울을 수정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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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심리상담기록에 따르면 도현수의 특징들은 '싸이코 패스'를 의미하는 '반사회성 성격장애'가 아닌 '분열성 인격장애'로 분류된다. ⓒ tvN

결국 현수의 슬프고도 섬뜩한 눈빛은 자라면서 받아온 편견을 내면화해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수는 8회 솔직한 마음을 밝힌다. "난 백희성으로 살고 싶어. 아무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 백희성으로 살고 싶어. 그것뿐이야. 내 인생을 잃고 싶지 않아. 절대로"라고. 이는 누나와 헤어진 후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봐주었던 지원(문채원)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즉 사랑받고 싶다는 간절한 외침으로 들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수의 이 간절한 바람을 들어줄 수 있을까? 먼저, 현수를 '살인마의 아들'이 아닌 '독립된 개인'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마을 사람들이 현수를 그토록 쉽게 살인범으로 오인할 수 있었던 것은 현수의 아버지가 살인범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살인범이었으니 아들도 그러하리라는 오류는 부모와 자녀를 한 덩어리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이들은 부모의 삶과 자녀의 삶을 구분 짓지 못한다. 심지어 부모조차 자녀가 자신과 다른 존재임을 잊기도 한다. 때문에 부모와 자녀가 상대방의 잘못과 성취를 마치 자신의 것인 양 혼동하는 일이 잦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의 발견은 다르다.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는 자라나면서 부모 외의 사람들을 다양하게 모델링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을 쌓아간다. 이를 통해 부모와는 다른 독립된 인격을 가진 한 사람으로 성장해간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부모가 저러니 애가 저렇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드라마 속 인물들이 드러내는 이런 사고는 현수와 해수의 인생을 파괴했다. 5회 해수를 찾은 한 기자는 "아버지가 연쇄살인범인데 어떻게 명문 미대에 진학할 수 있었냐"는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아버지와 해수를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무례한 질문이었다. 한 개인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할 때만이 이런 오류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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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살인자'와 '다정다감하고 사랑많은 남편이자 아빠'. 두 가지 모습을 모두 지닌 현수 혹은 희성. ⓒ tvN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한 가지 필요한 것은 지원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다. 지원은 6회 "전 더 많은 사실을 원합니다. 누구든 죄지은 만큼만 벌을 받아야 하니깐요. (…) 저는 제가 보는 것만 믿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이 믿는 대로 보는 것과는 반대되는 태도다. 대상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마도 편견에서 벗어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일 것이다. 실제로 심리학자들은 많이 알수록, 더 많이 접촉할수록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드라마에서도 증명됐다. 현수를 연쇄살인범의 공범으로 확신했던 박경춘(윤병희)은 6회 현수에게 이렇게 털어 놓는다. "내가 너에 대해 아는 것 소문들뿐이라는 사실. 그리고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진실"이라고. 현수를 실제로 만나보니 진실은 따로 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는 김무진이 현수에 대한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사실 도현수는 소위 말하는 '착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이장 살해사건의 진실을 묻은 것, 신분을 세탁하고 백희성으로 살아온 것, 자신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들을 협박하고 때로는 죽이려 했던 것 등은 분명 범죄행위다. 하지만 지원의 말대로 "누구든 죄는 지은 만큼만 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법적 형벌이든 사적 감정이든" 간에 말이다.


잔혹한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악의 꽃>에 빠져들고 있는 건 아마도 이런 메시지가 주는 울림 때문일 것이다.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악의 꽃>의 정체를 따라가면서 주변을 한 번 돌아보자. 우리 역시 어떤 편견으로 누군가를 단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우리가 비추는 왜곡된 거울이 누군가에게 스스로를 포기하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지금 누군가가 6회 현수의 항변처럼 이렇게 외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도 너희랑 똑같아!"


송주연 기자(serene_joo@naver.com)

2020.08.2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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