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드라큐라 영화가 보여준 황당함과 독특함

[컬처]by 오마이뉴스

[안방극장] 영화 <관 속의 드라큐라>


'안방극장'에선 처음 또는 다시 볼 만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작품부터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품까지 다양하게 다루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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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스터 ⓒ 태창흥업㈜

미국 유학 중이던 성혜(박양례 분)가 졸업을 앞두고 갑자기 귀국한다. 약혼자인 의사 충한(박지훈 분)은 성혜가 귀국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로 불안감을 호소하며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자 친구인 신부 철환(강용석 분)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즈음 목에 이빨 자국이 난 채로 사망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된다. 변사체의 범인은 배를 타고 한국에 숨어든 드라큐라(켄 크리스토퍼 분)였다.


드라큐라는 덴마크의 성에서 마주쳤던 성혜를 쫓아 한국까지 따라왔다. 악령의 존재를 안 충한과 철환이 성혜를 보호하자 드라큐라는 성혜의 대학 동창인 헬렌(킴버리 후드 분)을 이용하여 몰래 접근한다. 성혜가 드라큐라에게 물려 흡혈귀로 변하자 충한과 철환은 악령들을 모두 퇴치하기로 결심한다.


'흡혈귀'를 다룬 영화는 엄청나게 많다. 흡혈귀 불모 지역인 우리나라만 해도 <흡혈형사 나도열>(2006), <박쥐>(2009), <그댄 나의 뱀파이어>(2014), <뷰티풀 뱀파이어>(2018)이 나왔다.


1897년 브램 스토커가 발표한 흡혈귀 고딕 호러 소설 <드라큐라>를 소재 또는 인물로 삼았던 작품도 있었을까? 어린이 영화론 <영구와 흡혈귀 드라큐라>(1992)와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2003), 성인물로는 <드라큐라 애마>(1994)가 만들어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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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의 한 장면 ⓒ 태창흥업㈜

이형표 감독이 연출한 <관 속의 드라큐라>(1982)는 우리나라 최초 '드라큐라' 작품이다.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인기리에 상영된 <괴인 드라큐라>(1958) 등 서구의 <드라큐라> 시리즈의 명성에 묻어갈 속셈으로 기획되었다. 당시 심의용으로 제출한 시나리오 제목이 <크리스토퍼 리 주연의 드라큐라 82>였을 정도다.


제작사는 언론을 이용하여 <괴인 드라큐라>의 주연배우인 크리스토퍼 리가 출연할 뻔 했다고 홍보했다. 그 덕분인지 1982년 6월 25일 스카라 극장에서 개봉하여 4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개봉 후엔 영화에 나온 미국의 드라큐라 전문 배우 '켄 크리스토퍼'가 가상의 인물임이 밝혀져 논란을 빚었다. 당시 주한미군 군사정전위원회 소속 육군중사 켄 궤린이 2주간 휴가를 얻어 영화를 찍었던 걸 크리스토퍼 리의 추천을 받은 켄 크리스토퍼를 기용했다고 사기를 친 것이다.


<관 속의 드라큐라>는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큐라> 속 인물 구도를 그대로 사용했다. 조나단 하커는 의사 충한, 조나단 하커의 약혼자 미나 머레이는 성혜, 아브라함 반 헬싱 교수는 신부 철환, 미나의 친구인 루시 웨스턴라는 헬렌으로 바꾼 식이다. 이야기의 기본적인 흐름도 소설의 것을 앙상하게나마 가져왔다.


<관 속의 드라큐라>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인물과 이야기에 동서양 호러물의 여러 요소들을 마구 섞었다. 드라큐라에 맞서는 신부 철환은 <엑소시스트>(1975)의 신부를 연상시킨다. 관 속에서 나오는 드라큐라의 모습은 서구 영화보단 우리나라 영화의 귀신에 가깝다. 팔을 내밀고 걸어가는 모습은 홍콩의 <귀타귀>(1980)의 강시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유행했던 호러 영화들을 마구 넘나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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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의 한 장면 ⓒ 태창흥업㈜

<관 속의 드라큐라>는 엉성한 묘사로 실소를 자아날 때가 많다. 드라큐라가 관에서 일어날 적엔 피아노줄이 보인다. 피를 빨기 위해 입을 벌릴 적엔 금이빨이 번쩍거린다. 짧은 시간 동안 만든 탓에 낮에 흡혈귀가 돌아다닐 때도 있다. 분장과 특수효과도 조악하기 짝이 없다.


몇몇 장면에선 기존의 흡혈귀 영화에선 본 적 없었던 상상력을 발휘하여 눈길을 끈다. 드라큐라가 혈액원에 제약회사 관계자라 속여서 구한 혈액팩들을 음료수처럼 쪽쪽 빨아먹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시대를 앞서간 발상으로 평가 받을 만하다.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큐라>는 신앙과 도덕심으로 무장한 중산층과 귀족계층의 남성들이 영국 사회를 오염시키는 드라큐라를 처단하는 내용이다. 평자들은 이런 대결 구도에 전통과 과학의 대립, 이성과 비이성의 대결, 과거와 현재의 대치, 본능과 이성의 대항 등 다양한 해석을 덧붙였다.


<관 속의 드라큐라>에서 드라큐라는 나이트클럽에서 어색한 몸짓으로 춤까지 춰가면서 사냥감을 물색한다. 이것은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큐라>의 한국식 변주로 읽을 수 있다. 영화는 우리 사회가 급속히 현대화, 서구화 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사상과 문화가 유입되어 전통적인 공동체와 가치관이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드라큐라로 은유한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도입부에 나오는 성혜의 대사 "미국이 싫어요. 무서워요"는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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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의 한 장면 ⓒ 태창흥업㈜

드라큐라를 무찌르는 건 과학을 신봉하는 의사 충한과 가톨릭을 믿는 신부 철한이 아니다. 영화 중간에 드라큐라와 한번 대적한 바 있던 스님(박암 분)이 마지막 장면에 느닷없이 나타나 염주와 불경으로 드라큐라를 화끈하게 제압한다. 정말 웃기면서 당혹스러운 전개가 아닐 수 없다.


신부와 스님의 기막힌 콜라보레이션은 우리 고유의 드라큐라를 만든 힘으로 작용한다. 한국 사회를 오염시키는 드라큐라를 '현대'를 상징하는 신부와 '전통'을 뜻하는 스님이 힘을 합쳐 이기는 모습엔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안다는 '온고지신'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감탄사가 터지는 결말이다.


<관 속의 드라큐라>는 처음엔 공포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엉성한 완성도와 황당무계한 전개로 인해 무서움을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흡혈귀 장르의 재해석과 기발한 상상력에 재미를 느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컬트 코미디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박쥐>와 만듦새는 다를지언정 흡혈귀를 활용하여 한국 사회의 현대적 욕망을 은유한 시각이 묘하게 닮아서 재미있다.


<관 속의 드라큐라>는 2002년 8월 24일부터 2020년 9월 7일까지 열리는 한국영상자료원 VOD 기획전 <풍문으로 들었소: '컬트적'인 한국영화>에서 만날 수 있다. 보기 힘든 영화이니 이번 기획전을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이학후 기자(hakus97@naver.com)

2020.09.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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