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죄없이 비난에 휩싸인 여성... 그의 끔찍했던 선택

[컬처]by 오마이뉴스

[리뷰] 영화 <기기괴괴 성형수> 외모 지상주의를 풍자한 웹툰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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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스터 ⓒ (주)트리플픽쳐스

영화 <기기괴괴 성형수>는 오성대 작가의 네이버 레전드 웹툰 '기기괴괴' 인기 에피소드 '성형수'의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수술을 하지 않고도 말 그대로 화장품처럼 바르면 완벽한 외모를 갖게 되는 기적의 물 '성형수'를 선물 받은 예지의 기묘한 이야기다. 6년이라는 긴 제작 기간이 말해주듯 애니메이션계 칸이라 불리는 제44회 안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장편 부분 초청을 비롯해 다수의 영화제를 지나, 제24회 부천국제판타틱영화제도 초청되었다.

외모 컴플렉스에 빠진 여성의 억눌린 자존감

어릴 적 발레를 하던 예지는 실력이 좋아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한계를 느낀다. 보이지 않는 벽의 실체는 실력이 다가 아니었다. 예쁘고 마른 몸이 아니었기에 매일 높은 벽에 부딪히며 살아왔다. 지금은 좋아하던 발레를 그만두고, 톱스타 미리의 소속사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다.


그날도 예지는 분장 대기실에 출근해 미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는 오자마자 화를 내면서 짜증을 냈고, 예지에게 폭언과 외모 품평까지 서슴없이 늘어놓았다. 항상 있는 일이지만 미리의 히스테릭과 폭언은 오늘따라 더 심했다. 예지는 아니꼽고 화가 났지만 겨우 분노를 삼키며 미리의 비위를 맞춘다.


한편, 예지는 신인 배우 지훈에게 첫눈에 반한다. 외모와 학벌, 집안까지 완벽한 이른바 엄친아. 게다가 심성까지 고왔다. 예지도 몰랐던 오묘한 색깔의 눈을 알아봐 준 젠틀맨이다.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처음으로 관심 받은 예지는 지훈을 향한 연정을 품게 된다. 비록 오를 수 없는 나무지만 먼발치에서 혼자만의 짝사랑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홈쇼핑 촬영 코앞에서 보조 출연자 펑크로 예지가 대신 참여하게 된다. 그냥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기에 할 수 없이 카메라 앞에 앉았다. 그러나 그 방송이 화근이었다. 치킨과 피자를 먹는 장면이 '오늘자 극혐'에 오르며 수많은 악플로 큰 상처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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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예지는 그날도 인터넷 마녀사냥의 괴로움을 음식으로 달래고 있었다. 배가 고파서 먹는 것과는 달랐다. 그저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를 달래줄 고칼로리 음식에만 자꾸만 손이 갔다. 인터넷 댓글은 상상을 초월하는 욕설과 손가락질로 도배되어 있었다. 못난이란 자격지심은 스트레스를 유발했고, 더욱 잦은 폭식은 몸과 마음을 병들게 만들었다. 대인관계는 좁아질 수밖에 없고 늘 불안하고 초조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응모한 적도 없는 이벤트 당첨 문자를 스팸으로 생각하나 며칠 뒤 정말로 택배가 도착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박스 안에는 '기적의 물'이라는 이름의 성형수가 예지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어서 나를 사용해 보라고, 그리고 당당하게 세상에 나아가라고 말이다.

수위 센 호러성형괴담, 매니아성 짙어

엄청난 변화와 다르게 사용법은 너무나 쉽고 간단했다. 물과 성형수를 4:1 비율로 섞은 후 20분간 원하는 부위를 담가두면 된다. 그 후 찰흙처럼 변한 피부와 근육 조직을 원하는 대로 DIY하면 끝이다. 언제라도 얼굴과 전신에 리터칭이 가능하다. 의사를 만나고 수술하고 회복하는 번거로움 없는 셀프성형이다.


그 후 예지는 성형수를 사용하고 설혜라는 이름으로 SNS 스타가 된다. 단숨에 인기를 끌어 예전에 미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부작용이 없다는 것은 거짓이었다. 과도한 욕심을 부린 대가는 상상을 초월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는 머릿속의 목소리는 예지를 더 큰 나락으로 떠밀어 버린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위험에 빠트리는 대담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주변의 외모 품평에서 자유롭지 못한 소심한 예지는 훗날의 부작용보다 지금 당장 예쁜 외모를 갖고 싶어 안달이다. 내면의 아름다움? 그건 한 번도 외모로 스트레스 받지 않은 사람들이나 하는 배부른 소리다. 못생기고 뚱뚱하다는 괄시와 차별을 오랫동안 받았었기에 성형수에 쉽게 의존하게 된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자기혐오에 빠져 스스로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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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기기괴괴 성형수>는 강남성형미인, 성형괴물, 성형중독 등 성형이란 단어가 품고 있는 공포감이 잘 반영되어 있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외모지상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주인공의 고군분투를 통해 성형을 부추기는 부조리도 고발한다. 또한 껍데기인 외모로 경제적, 사회적 부를 누릴 수밖에 없는 서열화를 비판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이지만 수위가 높아 어른들을 위한 한국판 환상특급이란 생각도 든다.


'바르는 순간'이라는 유혹적인 문구는 뭐든 빨리빨리에 익숙한 대한민국의 어두운 얼굴이다. 클릭 한 번으로 당일 배송되는 택배, 즉석에서 조리되는 인스턴트 식품처럼 성형이 쉽고 빠르게 소비되는 사회를 비틀어 냈다. 하지만 따뜻함이나 격려보다는 냉담한 시선으로 시종일관 지켜보기만 해 안타까움을 유발한다. 여성이 외모품평에 벗어나지 못해 겪는 고통을 전시하는데 할애하는 부분이 크다. 이는 성형공화국의 오명과 미디어의 폐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이자 누구든지 방관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씁쓸함을 유발하는 결말이다.


장혜령 기자(doona90@naver.com)

2020.09.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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