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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고루한 느낌까지... 지나친 각색이 오히려 독이 된 '뮬란'

by오마이뉴스

[리뷰] 영화 <뮬란>이 남긴 아쉬움

오마이뉴스

▲ 영화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뮬란>이 디즈니 라이브 액션으로 돌아왔다. 1990년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주역이자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로 손꼽히는 '뮬란'은 파격적인 여성 캐릭터의 선두주자였다. 그랬던 뮬란이 22년 만에 21세기로 바뀐 여성상을 반영하며 '여성이라 안 된다'는 편견을 깬 능동적인 캐릭터로 각색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기존 애니메이션의 큰 줄기만 고수하고 새롭게 만들어졌을 뮬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뮬란(유역비)은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장군이었던 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아 남다른 기(氣)를 지니고 있었고, 무예 또한 특출났다. 하지만 마을에서는 그저 사고뭉치, 기가 세면 수모를 당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자란 소녀일 뿐이었다. 그녀는 얌전히 있다가 좋은 집안과 인연을 맺어 결혼을 잘하는 것만이 자식의 도리, 가문의 영광이라 믿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정략결혼을 준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북쪽 유연족의 리더 보리 칸은(제임스 스콧 리) 강력한 마녀 시아니앙(공리)과 연합해 황성을 빼앗으려 한다. 이에 황제(이연걸)는 군사 징집에 나섰고 어쩔 수 없이 아버지가 전장에 나가야 할 위기에 처한다. 아픈 아버지를 또다시 전장에 보낼 수 없는 뮬란은 가족들 몰래 집을 떠난다.


한편, 황제의 군대를 이끄는 텅 장군(견자단)은 일찍부터 뮬란의 능력을 알아본다. 뮬란은 텅 장군의 신임을 얻으며 내면을 다스리는 능력까지 배운다. 뮬란은 여성임을 철저히 숨긴 채 엄격한 규율과 힘든 훈련을 견디며 전사로 거듭나게 된다.

지나친 각색이 오히려 해가 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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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뮬란>은 딸, 소녀, 여성으로 이어지는 젠더적 성장을 넘어 전사, 장군, 전설로 거듭나는 영웅적 성장을 그려냈다. 유리 천장으로 대변되는 한계를 돌파하려 애쓴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1998년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을 실사 액션 무비로 옮기며 원작의 틀만 유지한 채 대규모 해체와 첨가를 감행했다. 그래서일까. 뮬란이 전사로 거듭나는 성장 속도가 좀 더 빠르다. 아예 재능을 갖고 태어난 무술 천재로 설정했다. 원작의 오합지졸 부대에서 작고 하찮은 것부터 차곡차곡 배워간 평범한 소녀를 처음부터 능력자로 설정한 탓에 보는 이의 입장에선 초장부터 맥이 빠진다.


뮬란이 강력한 기(氣)를 타고난 선택된 존재가 되면서 빌런도 둘이 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영악한 매에 불과했던 조연 캐릭터를 뮬란과 대척점에 선 동병상련 캐릭터로 업그레이드했다는 점이다. 특별한 능력을 갖고도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마녀로 불려야만 했던 시아니앙은 뮬란을 각성하게 만든다. 마법을 부릴 줄 알고 원하는 상대로 능수능란하게 변신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춘 시아니앙은 뮬란이 독주하는 스토리라인에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요소다.


시아니앙은 능력을 갖추었지만, 주류 세력의 횡포에 의해 철저히 아웃사이더가 되어야만 했던 상황에서 쌓인 분노가 만들어 낸 캐릭터다. 예나 지금이나 능력 있는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가는 세태는 나아지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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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뮤지컬 영화'라는 원작 설정을 과감히 버렸다는 것이다. '리플렉션(Reflection)'의 오리지널 사운드는 편곡돼 희미한 배경음악으로만 짧게 들린다. 그래서 시종일관 진지하고 무겁다. 원작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며 재미와 웃음을 담당했던 무슈와 행운의 상징 귀뚜라미도 없어 심심하다. 대신 불사조로 대체되었으며 귀뚜라미를 부적처럼 생각한 할머니 대신 여동생이 등장하지만 인상 깊지 않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각색에도 불구하고 중국 스타일의 무술 영화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겉모습은 중국 영화 같지만 대사를 모두 영어로 하고 있어 정체성도 모호해졌다. 가장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나는 대규모 전투신과 무술 장면은 화려하지만 오히려 잦은 피로감을 유발했다.


하물며 보이콧을 부른 사건들을 논외로 따지고도, 동양 문화의 이해가 부족한 티가 역력했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검에는 충(忠), 용(勇), 진(眞)이 새겨져 있다. 마지막에 효(孝)가 추가되며 가족에 대한 헌신이란 말로 대체된다. 꾸준히 가족애를 강조해왔던 디즈니 영화가 국가에 대한 충성을 중요시하는 중국 문화와 만났다고 할 수 있다.


효(孝)란 자식이 부모를 위해 갖는 마음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정(情)처럼 영어로 대체 될 수 없는 동양의 대표적인 정서라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뮬란>에선 가족을 위한 헌신만이 영웅의 가장 큰 덕목처럼 여겨지는 탓에 고루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동안 꾸준히 자신의 문화권에서 벗어난 작품을 만들어 온 니키 카로 감독이 원작도, 동양 문화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이 메시지를 위해 대규모 전투와 배우들이 평면적이고 소모적으로만 쓰여 안타깝다. 영화 <뮬란>이 어린이들이 좋아할 요소뿐만 아닌, 원작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어른도 흡수하지 못하는 디즈니의 '계륵'이 되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다. 때로는 지나친 과함보다 오히려 빼기의 기술이 필요함을 증명하는 선례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장혜령 기자(doona9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