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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구덩이 아래 시신, 끔찍한 사진... 학살 추정현장 찾았다

by오마이뉴스

[대전 골령골 유해발굴 3일째] 70년 전 미군 촬영 장면과 폭·지형 매우 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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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현장. 구덩이 위에서는 시신을 내던지고 구덩이 아래에서는 던져진 시신을 나란히 정돈하고 있다. 산자락 바로 아래로 폭 3m, 깊이 2m 가량의 'ㄱ'자 형태의 구덩이가 길게 뻗어 있다. 미 대사관 무관 중령 밥 에드워드(Bob E. Edward)가 찍고, 고 이도영 박사가 1999년 말 NARA에서 발굴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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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유해발굴 과정에서 산자락 아래로 길게 뻗은 구덩이를 확인했다. 사진 속 장면처럼 구덩이는 'ㄱ'자로 길게 뻗어 있었고, 구덩이 폭도 약 3m 정도로 나타났다. ⓒ 심규상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희생자 유해발굴 현장에서 70년 전 학살 현장을 담은 사진 속 장면과 유사한 유해매장 구덩이가 드러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나무가 무성한 숲,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나뒹굴고 있는 시신, 총을 들고 오가는 군인과 경찰, 밭고랑에 엎드려 있는 민간인을 향해 총을 쏘는 군인, 민간인을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는 군경, 손이 묶여 체념한 듯 죽음의 총구를 응시하는 한 청년...


1950년 미 대사관 무관 중령 밥 에드워드(Bob E. Edward)가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정치범 처형 장면을 찍은 사진이다. 대전 골령골 학살 현장이 생생하게 담긴 이 사진은 고 이도영 박사가 1999년 말 NARA(미국 국립문서보관청)에서 발굴해 2000년 2월 <월간 말>을 통해 18장의 사진을 처음 공개했다.


이중 산자락 끝으로 길게 뻗은 구덩이가 담긴 사진이 있다. 구덩이 위에서는 시신을 내던지고, 구덩이 아래에서는 던져진 시신을 나란히 정돈하고 있다.

산자락 아래 'ㄱ'자 형태의 구덩이 " 폭과 지형 매우 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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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현장. 구덩이 위에서는 시신을 내던지고 구덩이 아래에서는 던져진 시신을 나란히 정돈하고 있다. 산자락 바로 아래로 폭 3m, 깊이 2m 가량의 'ㄱ'자 형태의 구덩이가 길게 뻗어 있다. 미 대사관 무관 중령 밥 에드워드(Bob E. Edward)가 찍고, 고 이도영 박사가 1999년 말 NARA에서 발굴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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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유해발굴 과정에서 산자락 아래로 길게 뻗은 구덩이를 확인했다. 사진 속 장면처럼 구덩이는 'ㄱ'자로 길게 뻗어 있었고, 구덩이 폭도 약 3m 정도로 나타났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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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매장 구덩이로 추정되는 곳곳에서 희생자 유해가 발굴되고 있다. ⓒ 심규상

눈여겨볼 것은 구덩이 위치와 형태다. 산자락 바로 아래로 폭 3m, 깊이 2m가량의 'ㄱ'자 형태의 구덩이가 길게 뻗어 있다. 구덩이가 휘어져 그 끝은 가늠할 수 없지만 대략 수십 미터는 돼 보인다. 여기저기 돌덩이도 보인다.


지난 22일부터 40일간의 일정으로 대전 골령골(동구 낭월동 13번지)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을 벌이고 있는 대전 동구청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아래 공동조사단)이 70년 전 사진 속 모습과 유사한 형태의 구덩이를 찾아냈다.


발굴단은 24일 유해발굴 과정에서 산자락 아래로 길게 뻗은 구덩이를 확인했다. 사진 속 장면처럼 구덩이는 'ㄱ'자로 뻗어 있었고, 구덩이 폭도 약 3m 정도로 나타났다.


박선주 발굴단장은 "산자락 바로 아래이고 구덩이 형태도 70년 전 당시 사진 속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라고 말했다. 유해발굴 작업을 총괄 진행하고 있는 안경호 4.9통일 평화재단 사무국장도 "지형과 구덩이 형태로 흡사해 당시 살해 현장을 담은 사진과 같은 장소, 같은 구덩이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해발굴조사단은 사진 속 장면을 참고해 유해발굴을 지속할 예정이다.

2007년에도 사진 속 장면 부근에서 유해 29구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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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현장. 구덩이 위에서는 시신을 내던지고 구덩이 아래에서는 던져진 시신을 나란히 정돈하고 있다. 산자락 바로 아래로 폭 3m, 깊이 2m 가량의 'ㄱ'자 형태의 구덩이가 길게 뻗어 있다. 미 대사관 무관 중령 밥 에드워드(Bob E. Edward)가 찍고, 고 이도영 박사가 1999년 말 NARA에서 발굴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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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사진 속 능선 끝자락 인근에서 29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발굴결과 6.8㎡(1.7m×4m)의 매장지 안에 29구가 7행 4열 구조로 조밀하게 매장돼 있었다. 70년 전 사진 속 모습처럼 쪼그려 앉아 고개를 숙인 형태로 모습이었다. 또 두개골마다 총알구멍이 뚫려 있었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흰옷을 입은 희생자와 동일인들로 추정되고 있다. ⓒ 심규상

실제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골령골 유해발굴을 하면서 사진에 나오는 현장 부근에서 민간인 희생자 유해를 수습했다. 밥 에드워드(Bob E. Edward)가 찍은 현장 사진을 보면 산 능선 끝자락에 흰옷을 입은 민간인 수십 명이 고개를 숙인 채 쪼그려 앉아 있다. 미루나무가 보이고 경찰과 군인이 앉아 있는 민간인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당시 진실화해위원회는 사진 속 능선 끝자락 인근에서 29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유해 또한 좁은 구덩이 안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숙인 형태로 모습이었다. 또 두개골마다 총알구멍이 뚫려 있었다.


대전 골령골은 한국전쟁 전후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이 군경에 의해 최소 3000명에서 최대 7000명이 학살당한 후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례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을 대상으로 대량 학살(1차 : 6월 28~30일, 1400명 / 2차 : 7월 3~5일, 1800명 / 3차 : 7월 6일~17일, 1700~3700명)이 벌어졌다. 당시 가해자들은 충남지구 CIC(방첩대),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이었고, 그들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살해가 자행됐다.


[관련 기사]

대전 산내 골령골 희생자 유해 본격 발굴한다 http://omn.kr/1p09z

"멈춰요, 멈춰!" 흙 사이로 모습 드러낸 두개골 http://omn.kr/1p137


심규상 기자(sim041@ohm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