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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 ]

영화 '기생충'으로 뜬 배우 이정은이 주말 드라마 찍은 속내

by오마이뉴스

[인터뷰] 영화 <내가 죽던 날>로 김혜수·노정의와 기적 같은 경험 나눈 이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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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에 출연한 배우 이정은. ⓒ (주)워너브러더스코리아

영화 <내가 죽던 날>에서 순천댁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한 고교생(노정의) 실종사건, 그리고 그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김혜수) 사이에서 실마리를 주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건을 이끄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미스터리 장르를 표방하고 있는 이 영화는 순천댁으로 인해 치유와 위로의 의미까지 품게 된다.


영화 <기생충> 관련 일정을 마치고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를 촬영 중이던 배우 이정은이 순천댁 옷을 입었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형사 현수를 배우가 표현하기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김혜수가 합류한 상태였다. "김혜수씨가 한다고 하니 저도 하겠다"며 이정은은 밀려 있던 일정까지 조율했다.

절망적 순간에 했던 선택들

사실 영화 자체만으로 걱정도 있었다. 빠르고 박진감 있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각 인물의 정서와 감정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관객들을 기다리게 하고 애잔하게 하는 영화인데 후반부까지 기다려주실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근데 배우가 아닌 일반인으로 술집에 가서 지인들과 시간을 보낼 때면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기 보단 이야기를 안 하는 사람에게 눈길이 가더라"고 이정은은 말했다.


그렇다고 순전히 개인 취향이나 호기심뿐만은 아니다. 앞서 말한 김혜수와의 호흡도 기대했고, 30년 가까운 연기 경력에서 나름 느낀 어떤 깨달음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했다. 고교생 세진이 느꼈던 절망, 현수가 겪는 아픔을 이미 겪어낸 순천댁은 두 캐릭터에게 모종의 희망을 암시하기도 한다.


"2008년 <빨래>라는 뮤지컬을 할 때 건강을 잃을 뻔한 적이 있다.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결혼도 안 해서 혼자라 절망적이었는데 그때 '인생 길다, 금방 끝낼 일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날 구할 사람은 나 자신이더라. 선택은 내가 하는 거잖나. 극복하든지 절망하든지... 그래서 열심히 치료를 받았다. 몸이 나으니 정신도 맑아지더라.


왜 기댈 생각만 했을까. 왜 날 도운 사람이 없지 원망하기보단 냉정함 속에 있던 게 도움이 됐다. 내가 용기를 내야 남들도 날 돕지. 그 이후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와중에 순천댁이 그런 걸 표현하잖나. 이 영화를 만난 건 타이밍이 좋았던 거다."


이정은은 <내가 죽던 날>을 찍으며 겪은 기적 같은 순간을 말했다. 김혜수 또한 여러 차례 언급한 순간이었다. 영화 후반, 순천댁과 수현이 부둣가에서 마주치는 장면인데 촬영 전 멀찍이서 두 사람은 서로의 모습만 보고도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결국 두 사람은 꽤 오래 두 손을 잡고 말없이 울다가 촬영에 들어갔다는 후문. 김혜수는 '숭고한 느낌'이었다고 표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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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수현의 눈이 뭔가 조사하러 온 눈이 아닌 모든 알고 있는 눈빛이더라. 우리가 각자 살아온 세월이 같이 충돌하는 느낌이었다. 눈물이 나면서 손을 잡는데 뭔가 둘이서 같이 이뤄낸 느낌이랄까. 우리 나이가 이후 세대에 대한 생각을 적극적으로 하는 나이여서일까. 그렇게 오래 손을 잡고 있는데 감독님이 그만하시고 어서 작품 찍으러 가자고 하시더라(웃음).


배우들이 촬영하며 감정적 교류를 많이 할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촬영 속도에 묻히거나 장치적으로 쓰이는 때가 많다. 솔직해지냐 아니냐는 배우의 의지잖나. 이 영화에선 (김혜수씨와) 서로 무언의 대화를 던지며 완성해나갔던 것 같다. 혜수씨와는 사실 인연이 오래됐다. 2000년 초반 <타임 플라이즈>라는 공연 때 트렁크 여러 개에 자신이 모은 소품과 의상을 담아 왔다. 연극을 위해 쓰라면서 말이다. 그 뒤에도 후배 배우들을 후원하면서 인재 등용에 기여하시더라. 스타인데 호탕하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최근에서야 연락을 하게 됐는데 자주 얘기하지 않아도 얼마나 영화와 촬영 과정을 존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새로운 역할은 늘 두려워"

오랜 시간 무대 연기를 하다가 영상 연기를 접한 지 이제 약 9년 정도다. 이정은은 "송강호 선배와 영화에서 만난 것도 그렇고(<기생충>), 혜수씨와 만난 것도 그렇고 인생은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라며 "근데 한 번도 혜수씨를 여배우로 본 적 없다. 정말 잘하는 배우 중 하나로 본다"라고 표현했다. 세간의 여성 배우, 여성 스태프라는 프레임을 확장하려는 의미였다.


혹자는 <기생충>으로 미국 아카데미 최고상을 경험한 뒤 주말 드라마 등을 찍는 흐름에 의아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정은은 "어쨌든 작품을 선택할 폭이 좀 넓어졌고, 너무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만큼 책임도 져야 하는 것 같다"며 "제 행보엔 저와 같이 일해 온 사람도 중요하다. 같이 하기로 약속했던 작가님이니 참여한 것이다. 잘 했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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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에 출연한 배우 이정은. ⓒ (주)워너브러더스코리아

다만 숨 고르기가 필요함을 그도 알고 있었다. 50대 초반 누군가는 좀 늦었다고 할 나이에 비로소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는데, 이정은은 평정심과 냉정함을 강조했다.


"지난해와 올해 초까지 엄청난 일을 겪었지. 칸영화제도 좋고, 아카데미도 좋았다. 몇 년 전만 해도 배우라면 아카데미 정도는 다녀와야지 이런 농담 섞인 소릴 하고 그랬다(웃음). 그게 이뤄지니 신기했지. 정신없이 홍보 일정을 소화할 땐 그게 행운인 줄 몰랐다가 코로나19가 와서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가니 10년 전 일 같더라.


친한 후배 하나가 '혹시 언니가 내려온다고 생각할 때 우아하게 내려오세요~' 이러더라. (대중적 인기가 사라지는 걸) 두려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런 건 내가 원한다고 가질 수 있거나 원하지 않는다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행운처럼 있다가 가는 거니까 말이다. 이준익 감독님은 '너가 젊을 때 안 떠서 다행'이라고 하시더라(웃음).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제 작품에 사람들이 관심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근데 모든 행운이 한 사람에게만 쏠리라는 법은 없잖나. 실력으로만 해내야지. <기생충> 전에 출연했던 드라마나 영화에선 사람들이 저인 줄 몰랐다가 어쨌든 이젠 눈에 띄는 배우가 됐는데 그건 즉, 잔재주 부리지 말고 작품 속으로 더 들어가라는 뜻 같다."


이정은의 요즘 화두는 앞서 말했듯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사회가 각박해졌는데 내 새끼, 내 사람만 예쁘게 보는 게 아니라 남의 아이, 다른 사람도 예쁘게 보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며 그는 "아이나 노인 등 보살핌이 필요한 세대에 관심이 간다"고 덧붙였다. 어쩌면 이런 그의 마음이 곧 다채로운 이정은의 매력 중 하나 아닐까.


이선필 기자(thebasis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