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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 ]

무대서 주머니에 손 넣은 윤상,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by오마이뉴스

[응답하라 1990년대] 히트 작곡가에서 가수로 데뷔... 뮤지션이 존경하는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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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상 ⓒ JTBC

벌써 2년이 훌쩍 지났지만 '리즈 시절' <무한도전>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특히 2년에 한 번씩 진행됐던 '무도가요제'의 힘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2015년에 방송된 '영동 고속도로 가요제'는 '무도 가요제'의 힘이 많이 빠졌다는 평가 속에서도 그 해 8월22일 21%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당일 프로그램 시청률 1위이자 동시간대 2위였던 <불후의 명곡>(7%)의 3배에 달하는 독보적인 시청률이었다.


'무도가요제'의 힘은 그 시절 음원 순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유 갓지 않은 이유'의 <레옹>이 1위를 질주한 가운데 '무도가요제'의 참가곡 6곡이 다음날 음원차트 1~6위를 휩쓸며 '줄세우기'에 성공했다. 특히 박명수는 2009년 <냉면>을 시작으로 2011년 <바람났어>, 2013년 < I God C >(비록 이 곡은 표절 논란에 휩싸였지만), 2015년 <레옹>까지 4회 연속 음원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호응을 얻은 멤버는 박명수였지만 '영동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가장 놀라운 변신을 보인 멤버는 단연 정준하였다. 그동안 가요제에서 지나치게 편안하거나 난해한 음악으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던 정준하는 < My Life >를 통해 화려한 랩과 댄스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했다. 정준하가 이런 변신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의 뒤에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는 '만능 뮤지션' 윤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가의 악기 구입 위해 가수 데뷔 결심한 미남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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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상은 고가의 악기를 구입하고 싶다는 욕심에 가수 제안을 받아 들였다. ⓒ 스톤뮤직 엔터테인먼트

워낙 오랜 기간 윤상이란 이름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외자인 줄 아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윤상의 본명은 이윤상이다. 하지만 윤상이라는 이름이 워낙 자연스럽기 때문에 굳이 그의 본명을 들춰내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학시절 영국밴드 듀란듀란의 베이시스트 존 테일러를 동경했던 윤상은 충암고 시절 지금은 작사가로 유명한 30년 지기 박창학과 함께 밴드를 결성해 활동했다. 당시 박창학은 자신보다 음악도 더 잘하고 공부도 더 잘하는 윤상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하지만 훗날 두 사람은 <한 걸음 더> <달리기> <사랑이란><마지막 거짓말>,<결국... 흔해 빠진 사랑얘기> 같은 명곡들을 함께 만든 콤비가 됐다).


경희대 요업공예과(현 도예학과) 입학 후에도 학교 공부보다는 음악에 심취한 윤상은 대학 1학년 때 봄여름가을겨울의 베이시스트 영입 제의를 받았을 정도로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그러던 1988년 고교 시절에 만든 데모 테이프가 우연히 김현식의 손에 들어갔고 윤상은 김현식 4집의 <여름 밤의 꿈>을 통해 작곡가로 데뷔하게 됐다. <여름 밤의 꿈>은 훗날 김건모, 김장훈, 아이유 등이 리메이크하며 명곡으로 재조명 받고 있다.


같은 해 고 황치훈의 <추억 속의 그대>를 만들며 작곡가로서 첫 히트곡을 배출한 윤상은 1989년 절친한 기타리스트 손무현과 함께 밴드를 결성해 김완선과 이승철의 백밴드로 활동했다. 과거 김완선의 무대를 찾아보면 베이스를 치는 윤상을 찾을 수 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윤상이 만든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가 대히트를 했고 윤상은 작곡가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윤상은 여느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가수들에게 곡을 주면서 가이드 녹음을 했는데 이를 우연히 들은 김광수 대표(현 코어콘텐츠 미디어, 훗날 조성모, SG워너비, 씨야, 다비치, 티아라 등을 발굴한 인물이다)가 윤상에게 가수 데뷔를 제안했다


사실 윤상은 가수 활동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었던지라 당연히 가수 데뷔 제의를 거절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광수 대표가 가수 데뷔를 조건으로 제시한 계약금이 자신이 사고 싶은 악기들을 구입할 수 있는 거액이라 덥석 가수 데뷔 제안을 수락했다. 다시 말해 윤상은 노래에 대한 꿈이 아닌 '악기에 대한 남다른 집착' 때문에 가수로 데뷔한 매우 특이한 경우다.

어설픈 무대매너가 만들어낸 분위기 있는 남자의 대명사

김광수 대표가 윤상에게 많은 계약금을 투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신인 가수들에 비해 음반 제작비가 상당히 절감되기 때문이다. 사실 한 장의 음반을 제작하기 위해선 프로듀싱, 작사, 작곡, 편곡, 녹음, 악기 세션까지 상당한 전문 인력이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능력자' 윤상은 자신의 데뷔앨범에 수록된 전곡의 작곡, 편곡, 프로듀싱, 건반악기 세션까지 모두 책임졌다. 게다가 작사와 기타 세션은 평소 친분이 있는 박주연과 박창학, 손무현에게 맡겼다.


사실 윤상은 김완선과 이승철의 백밴드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큰 키와 준수한 외모로 여학생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수많은 히트곡을 만든 인기 작곡가라는 명성, 그리고 완급조절에 능하고 분위기 있는 보컬까지 더해지며 '늦깎이 신인' 윤상은 데뷔와 동시에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윤상 1집의 타이틀곡은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를 통해 이미 호흡을 맞춘 박주연이 가사를 쓴 <이별의 그늘>.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윤상이 부른 최고의 히트곡으로 꼽히는 명곡이다. <이별의 그늘>을 부를 당시 윤상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노래를 불러 많은 여성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당시 윤상 특유의 감성과 분위기는 김수정 화백의 만화 <일곱 개의 숟가락>에도 언급됐을 정도.


훗날 윤상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가수 데뷔를 준비하면서 한 번도 전문적으로 무대매너를 배워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지 않은 손을 어찌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윤상의 이 같은 퍼포먼스(?)는 노래의 슬픈 느낌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윤상을 순식간에 '분위기 있는 남자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애절한 발라드 <이별의 그늘>에 이은 윤상의 후속곡은 경쾌한 리듬의 <한 걸음 더>였다. 이 노래의 가사는 윤상의 오랜 음악적 동지이자 이 시대 최고의 응원송 <달리기>를 작사한 박창학이 썼다. "한 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그리 늦는 것은 아냐 이 세상도 사람들 얘기처럼 복잡하지만은 않아"라는 가사 속에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삶의 여유를 잃지 말자는 교훈이 담겨 있다.


"기쁨 아니면 슬픔이겠지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던 아름다운 오해 속에서 울고 웃는 거야"라는 쓸쓸하면서도 염세적인 가사와 보컬이 돋보이는 <잊혀진 것들> 역시 라디오를 중심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4번트랙 <무지개 너머>는 <여름 밤의 꿈>과 <추억 속의 그대> 이후 좀처럼 작사에 참여하지 않았던 윤상이 오랜만에 직접 가사를 쓴 의미 있는 곡이다.


보컬리스트로서 윤상의 능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역시 윤상 본인이다. 따라서 윤상 1집의 곡들은 대체로 음역대가 그리 넓지 않은, 한 마디로 썩 부르기 어렵지 않은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앨범 마지막에 있는 <시간의 얼굴>에서는 윤상이 '나름대로' 폭발적인(?) 고음을 선보인다.


윤상의 1집 앨범은 9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고 윤상은 1991년 MBC 10대 가수와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휩쓸었다. 특히 1991년 MBC < 10대 가수 가요제 >에서는 윤상과 심신, 신승훈까지 무려 3명의 가수가 신인상을 건너뛴 채 곧바로 10대 가수로 선정됐고 그 해 신인상은 <이별 아닌 이별>을 부른 또 한 명의 대형신인 이범학에게 돌아갔다(물론 다음 해 서태지와 아이들은 신인상을 건너 뛰고 곧바로 '가수왕'에 등극했다).

음악과 예능, 그리고 후진양성을 슬기롭게 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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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상은 이제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심심찮게 얼굴을 볼 수 있는 친근한 뮤지션이 됐다. ⓒ MBC 화면 캡처

윤상은 1992년에 발표한 2집 Part1에서도 <가려진 시간 사이로>와 <너에게>를 히트시켰고 대중들과 의식적으로 거리를 둔 Part2 앨범 역시 완성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윤상이라는 뮤지션의 가치를 높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난해한 음악들을 발표하며 대중들에게서 다소 멀어졌지만 현재는 용인대 실용음악과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2018년에는 대중음악인으로는 최초로 평양공연 예술단의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다.


윤상은 2011년 데뷔 20주년을 맞아 무려 9장의 CD로 구성된 베스트앨범을 발표하며 자신의 음악인생을 재조명했고 2014년에는 두 장의 싱글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가수가 되기 전부터 작곡가로 먼저 명성을 얻었던 윤상은 박효신의 <먼 곳에서>, 팀의 <사랑합니다>, 가인의 <돌이킬 수 없는>, 아이유의 <나만 몰랐던 이야기>, 그리고 < Ah-Choo >를 비롯한 걸그룹 러블리즈의 초창기 히트곡들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1993년부터 무려 20년 가까이 TV활동을 자제하던 윤상은 2011년 <위대한 탄생> 시즌2의 멘토를 시작으로 예능프로그램에도 비교적 활발하게 출연하고 있다. 2014년 <꽃보다 청춘>을 통해 유희열, 이적과 페루 여행을 다녀온 윤상은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에게 요리를 배우기도 하고 <무도가요제>에 출연해 파트너 선정에서 무도 멤버들로부터 버림받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복면가왕>의 연예인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윤상은 뛰어난 보컬리스트도 아니고 잦은 방송 출연으로 인해 뮤지션으로서 특유의 카리스마도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승환, 윤종신, 김현철, 유희열, 김동률, 이적 등 비슷한 또래의 뮤지션들 중에서 윤상에게 적어도 음악으로 딴지(?)를 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9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쟁쟁한 뮤지션들 사이에서 윤상의 공식 별명은 '뮤지션이 존경하는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양형석 기자(utopia69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