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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마가린 튀김같은 신해철...? 유희열이기에 가능했던 그 노래

by오마이뉴스

[응답하라 1990년대] 감성을 건드리는 토이 3집 앨범



오마이뉴스

▲ KBS 2TV 의 한 장면 ⓒ KBS

연예인들은 뜻하지 않게 시대를 잘 만난 자신의 캐릭터가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지난 2014년 '으리(의리)' 열풍이 대표적이다. 배우 김보성은 식혜 음료 광고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김보성의 '의리' 캐릭터는 2014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영화 <투캅스> 시절부터 한결같이 '의리'를 외치고 다녔지만 2014년에서야 사람들이 이에 열광한 것.


젊은 사람들에게는 '안테나 뮤직의 수장' 혹은 '감성변태'로 통하는 유희열 역시 마찬가지다. 유희열은 1990년대 고 신해철의 뒤를 이어 MBC FM4U 라디오 < FM 음악도시 >의 DJ를 맡았을 때부터 남다른 언변을 과시했다. 특히 게스트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짓궂은 농담에 특화된 인물이었다.


이러한 유희열의 캐릭터는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tvN < SNL코리아 > <꽃보다 청춘>, SBS < K팝스타 > 등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만나면서 뒤늦게 대중에게 알려졌다. 하지만 유희열을 그저 방송인, 또는 정승환, 샘김, 정재형 등이 속한 소속사 사장님으로만 알고 있는 대중들이 한 가지 잊고 있던 사실이 있다. 바로 유희열은 예능인이기 전에 대중의 감성을 자유자재로 건드릴 줄 아는 '천재 뮤지션'이라는 사실이다.

서울대의 천재 뮤지션, 김연우 만나 완전체로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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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이 3집 'present' 앨범 커버 이미지 ⓒ 이엔이미디어

유희열은 1989년 소개팅인 줄 알고 나갔던 자리에서 선배 가수 김장훈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음악을 시작했다.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김장훈이 결성한 밴드 '한국 사람'의 키보드 주자가 됐던 유희열은 김장훈 1집의 <햇빛 비추는 날>을 만들며 작곡가로 데뷔했다(이 노래는 토이1집에도 유희열이 부른 버전으로 실려 있다).


1992년 제4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 출전해 <달빛의 노래>로 대상을 받으면서 유희열은 김장훈으로부터 독립했다. (같은 해 은상을 받은 인물은 훗날 작사가 겸 가수로 알려지는 심현보였다.) 그리고 1994년 엔지니어 윤정오와 함께 토이라는 이름의 2인 밴드를 결성해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TOY는 TWO + Y, 즉 'Y로 시작되는 이름 이니셜을 가진 사람 2명'이라는 의미였다.


토이 1집은 당시 많은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던 조규찬을 객원가수로 내세웠음에도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결국 유희열은 제대로 된 활동도 해보지 못하고 군에 입대했다. (그래도 1집의 <내 마음속에>에서는 유희열의 간드러진 랩을 들을 수 있다.) 군 복무를 마친 유희열은 원맨 프로젝트로 변신해 1996년 3월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해 아주 맑고 고운 목소리를 가진 동갑내기 객원가수를 내세웠다. 유희열의 영원한 '페르소나' 김연우였다.


김연우의 시원스런 목소리에 실린 유희열의 세련된 음악은 드디어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특히 2집 타이틀곡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에서 '가끔 널 거리에서 볼까 봐 초라한 날 거울에 비춰 단장하곤 해'라는 청승맞은 가사는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고 토이는 같은 해 해체된 공일오비를 대체하는 팀으로 거듭났다.


유희열은 이후 이장우 2집과 윤종신 5집의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뮤지션으로서 활동영역을 넓혔다. 당시 유희열의 음악적 재능에 감탄했던 윤종신은 5집 앨범의 Thanks to를 통해 그에게 '광기 어린 천재'라는 닉네임을 붙여 주기도 했다.

'페르소나' 김연우 없이 제작한 토이 3집

김연우 없이 작업한 토이의 3번째 앨범 Present는 1997년 10월에 발매됐다. 토이 3집 타이틀곡은 김연우 대신 변재원이 부른 <바램>(물론 표준어는 '바람'이 맞다)이었다. 고 신해철과의 인연으로 변재원을 만나게 된 유희열은 당시 변재원의 "썩 대단치 않은 노래 실력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유희열은 3집 앨범을 통해 김연우 스타일의 세련된 보컬 대신 조금 서툴러도 가사의 정서를 최대치로 끌어 올리는 보컬을 원했다. 변재원은 타이틀곡 <바램>에서 '영원히 너를 그리고 아파하며 나 살게 해달라고 기도 드리는' 서정적인 감성을 잘 소화했다.


변재원은 토이 3집에서 <다시 시작하기>라는 노래에도 참여했는데 이 곡은 <바램>과는 달리 지치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는 노래다. 특히 "손을 줘요 부끄러워 말고 그대의 맘을 조금 내게 열어줄 수 있다면"이라는 직설적이면서도 감성적인 가사가 당시 많은 이들에게 힘을 줬다. 변재원은 훗날 솔로 가수로 2장의 정규 앨범과 3장의 싱글 앨범을 발표했고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토이 3집에는 3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진 <선물>이라는 곡이 수록돼 있다. 유희열의 피아노 연주곡인 Part1과 더 클래식 멤버인 박용준의 기운 없는 보컬과 조규찬의 코러스가 돋보이는 Part2도 좋지만 역시 압권은 유희열의 내레이션 곡인 Part3다. <선물 Part3> 속 남자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가 선물을 꺼내지도 못하고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궁상스러운 인물이다.


유희열은 토이 3집에서 절친한 선배들에게 코믹한 변신을 요구하기도 했다. 라이브 황제로 불리는 이승환에게는 <애주가>를 통해 의도적인 음성 변조를 시켰다. 이승환과 롤러코스터 결성 전의 지누가 함께 부른 <애주가>를 들으면 아직도 신촌 어딘가에 있을 법한 '계란말이를 잘하시는 맘씨 좋으신 아주머니'가 계신 선술집을 찾아보고 싶어진다.


하드록 밴드 N.ex.T의 리더이자 음악 팬들에게 '마왕'으로 불리는 신해철에게는 마가린에 튀김가루를 버무려 식용유로 장시간 튀긴 듯한 느끼한 러브송 <마지막 로맨티스트>를 부르게 했다. 특히 신해철이 자신이 가진 모든 음역대를 사용해 '피를 토하듯' 노래를 부른 후 유희열에게 "됐냐?"라고 묻는 장면이 단연 압권이다.


이 밖에도 토이 3집은 연애의 풋풋한 설렘을 담은 <고백>과 1집의 <내 마음 속에>를 불렀던 조규찬이 다시 객원가수로 참여한 <넌 어떠니>, 이혼한 부모를 가진 아이의 마음을 노래한 <외로움>같은 좋은 노래들이 들어 있다.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유희열의 보컬을 들을 수 있는 <스무살 너의 이야기> 역시 유희열 특유의 감성을 가득 느낄 수 있는 노래다.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무알콜 독주'

유희열은 1999년 <여전히 아름다운지>와 <거짓말 같은 시간>, <스케치북> 등이 들어 있는 4집, 2001년 <좋은 사람>,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면> 등이 수록된 5집을 발표하며 대표적인 감성 뮤지션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유희열은 6년의 공백 끝에 2007년 6집 <뜨거운 안녕>을 발표했는데 토이의 <뜨거운 안녕>은 2008년 1월 KBS <뮤직뱅크>에서 1위를 차지하며 토이에게 데뷔 첫 순위프로그램 1위를 안겼다.


유희열은 2009년부터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10년 넘게 진행하고 있고 2013년부터 < K팝스타 시즌3 >에서 심사위원으로 합류해 샘김, 권진아, 정승환, 이진아 등 안테나 뮤직의 주역들을 발굴했다. '감성 변태'와 같은 친근한(?) 별명들이 생긴 것도 이즈음부터였다. 유희열은 방송인 이미지가 짙어지는 와중에도 2014년 토이의 정규 7집 <세 사람>을 발표해 음악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물론 유희열이 김동률 같은 후배들처럼 예능 활동을 자제하고 음악에만 전념해 주길 바라는 팬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유희열의 예능 활동이 음악 활동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토이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저 음악만 들어도 술에 취한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풍부한 감성만 유지한다면 앨범 발매가 늦어지는 것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양형석 기자(utopia69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