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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인천 산다고 회만 먹는 건 아니지만, 이건 진짜 꿀맛입니다

by오마이뉴스

밴댕이 회무침, 주꾸미 비빔밥... 바다향 가득한 음식들


인천은 항구다. 도시는 달라도 항구가 고향인 사람들은 같은 경험이 있다. 그들을 처음 만나는 내륙 출신 사람 중 열에 여덟아홉은 '회를 많이 먹겠다'며 부러워한다. 듣는 항구 사람들은 좀 어이가 없다. 바닷가라고 삼시 세끼 생선만 먹진 않으니 말이다. 더욱이 그 비싼 생선회를 얼마나 자주 먹느냐를 묻는 것은 '너희 집 부자냐'고 묻는 것과 진배없어 더 그렇다.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산골 내륙 사람들보다는 생선을 자주 접하긴 한다. 우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낚시를 했다. 명색이 바다낚시였다. 대나무 대에 실을 엮어 만든 원시적인 낚싯대로 망둥어를 주로 잡았다. 생김새도 변변치 않고 살도 별로 없는, 그래서 생선 축에도 끼워주지 않는 잡어다. 머리통은 큰데, 머리는 나빴다. 우리 같은 어린애들에게조차 우습게 걸려들곤 했다. 몇 마리라도 낚으면 형들하고 썩썩 썰어 고추장에 찍어 먹곤 했다.


도시락 반찬도 수산물이 흔했다. 갯벌에서 주워 온 작은 게로 담근 게장은 지금 생각해도 일품이다. 우리들(당시 '국민학생') 손바닥만 한 게는 껍질도 얇아 그냥 통째로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생선구이나 조림을 싸오는 친구도 많았다. 조기나 박대구이 한 조각이면 한 그릇 뚝딱이었다. 양미리나 실치조림은 해마다 그때쯤이면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래도 다는 아니었다. 우리도 도시락 밑바닥에 계란 프라이를 숨겨 봤고, 아주 가끔 소시지 볶음도 먹었다.


물론 인천사람들은 지금도 생선류를 많이 먹는 편이긴 하다. 부지런한 어민들이 있어 여전히 수산물이 풍부하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소래포구나 연안부두엔 연중무휴 수산물 시장이 열린다. 좌판의 어항에는 활어들이 펄떡펄떡 물보라를 만든다. 철마다 다른 온갖 수산물을 다 구할 수 있다. 각양각색 젓갈과 건어물도 있다. 시내 곳곳에 유서 깊은 생선 요릿집도 즐비하다. 동인천 쪽엔 삼치구이 골목이 있고, 용현동엔 물텀벙이 거리가 있다.


인천중구 연안부두로 서해에서 잡은 해산물이 집결한다. 그곳의 위판장 주변으론 자연히 싱싱한 해산물을 주제로 하는 해산물 맛집이 지천으로 널렸다. 생선회와 구이, 게 요리와 해물탕 등 종류도 다양하다. 연안부두 인근의 연안파출소 옆에는 3층짜리 해양센터 건물이 있다. 지은 지 오래돼서 외관은 다소 허름해 보이지만 그 안엔 해산물 식당들이 총 집결해 있다. 열댓 개의 식당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데, 그중 가장 흔한 메뉴는 밴댕이 회무침이다.

소갈머리는 작지만 맛은 일품인 밴댕이 회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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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댕이 회덮밥의 빨간 자태 ▲ 얇게 썬 생 밴댕이와 양배추 등의 채소를 고추장에 버무려 내는 밴댕이 회무침 비빔밥, 예전엔 어부의 한끼였다. ⓒ 이상구

밴댕이는 작은 축에 드는 물고기다. 덩치는 작지만 고소하니 맛있다. 회로도 먹고, 구워도 먹고 젓갈을 담가 먹기도 한다. 성질이 급해 그물에 걸리자마자 화병으로 죽어버리곤 해서 그렇지 뭘 해먹어도 맛있다. 회나 구이도 뼈째 먹어야 더 맛있다. 고소하면서 단맛이 돈다. 우리의 이순신 장군께서도 고향의 모친을 위해 밴댕이젓을 보낼 정도였다. 음력 5~6월이 제철이다. 봄을 대표한다. 가을 전어와 쌍벽을 이룬다.


앞서 얘기한 연안부두 해양센터 건물 일대는 아예 밴댕이 회무침 거리가 됐다. 밴댕이와 양배추 등을 고추장에 버무려 새빨갛게 무친 음식이다. 예전에는 어부들의 한 끼였다. 조업으로 한창 바쁠 때 밴댕이 등을 대충 썰어 넣고, 이런저런 채소와 함께 고추장에 비벼 선 채로 먹었다. 그게 뭍으로 올라와 일반인들의 별미가 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상업용 음식이 된 건 20~30여 년 쯤 전이다.


식당들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이곳 상차림은 대개 비슷하다. 산처럼 쌓아 올린 밴댕이 회무침 한 접시, 밑반찬 두어 가지에 구수한 된장국이 딸려 나온다. 하이라이트는 간장 게장이다. 물론 커다란 꽃게는 아니다. 황게나 돌게처럼 씨알이 작은 종류다. 작아도 맛은 훌륭하다. 특히 껍질이 얇고 살이 많은 황게는 별미다. 꽃게를 능가한다. 그걸 기본찬으로 내고 달라면 얼마든지 더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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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리필 황게장 ▲ 밴댕이 회무침 식당에선 게장을 기본으로 낸다. 씨알이 작은 게지만 맛은 틀림이 없다. ⓒ 이상구

밴댕이는 봄철에만 난다. 게다가 금방 상한다. 사시사철 즐길 수 없다. 그래서 밴댕이 식당들은 한창 철에 잡는 밴댕이를 급속 냉동해 두었다가 1년 내내 무쳐 낸다. 길게는 1년 가까이 냉동됐지만 먹어보면 전혀 묵은 느낌이 없다. 얇게 썬 밴댕이는 국수처럼 쫄깃하고 양배추 채는 아삭하다. 둘이 어우러져 최고의 식감을 낸다. 식성에 따라 고추장이나 들기름을 더 넣어 먹어도 좋다. 고소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그것도 다 무한리필이다.


연안부두 회무침 거리에만 열댓 개의 식당이 있다. 이곳 말고도 구월동 문화회관 맞은편 골목길에도 비슷한 식당 대여섯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밴댕이의 천국 강화도에도 여러 곳 산재해 있다. 이 식당들은 디테일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큰 틀에서는 서로 비슷하다. 기본적으로 고추장으로 회를 무치고, 반찬의 구성이나 가격도 큰 차이가 없다. 물론 저마다 숨기고 있는 '한 칼'은 다 있다. 자체 개발한 비법 양념 그리고 손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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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연안부두인근 밴댕이회무침거리 ▲ 연안파출소 옆 3층 짜리 해양센터 빌딩안에 열댓개의 해산물 식당들이 모여있고, 시는 아예 회무침 거리로 지정했다 ⓒ 이상구

매운 불맛 주꾸미의 원조

주꾸미는 문어과의 연체동물이다. 그중 씨알이 작은 편이다. 특히 머리통보다 다리가 짧다. 롱다리를 자랑하는 낙지에 비하면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그래도 맛과 영양은 절대 밀리지 않는다. 가을 낙지, 봄 주꾸미로 1년을 양분했다. 타우린은 낙지의 2배, 문어의 4배 많다고 한다(국립수산과학연구원). 이는 필수아미노산과 함께 지친 간에 활력을 충전한다. 철분이 다량 함유되어 빈혈에도 좋다고 한다.


지금은 이 주꾸미를 주제로 하는 식당이 많이 늘었다. 프랜차이즈 식당들도 많아졌다. 맛있는 건 알겠는데, 이 역시 보관이 문제였다. 주꾸미는 3~5월 산란기가 가장 맛있다. 그 후에는 개체 수도 적고 맛도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한다. 밴댕이와 마찬가지로 물 좋을 때 잡아서 급속 냉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안정적으로 주꾸미를 대주는 공급자와 냉동창고가 필요했다. 진입 장벽이 높아 쉽게 뛰어들지 못했다.


인천 서구 가좌동에 있는 '작은 정원 쭈꾸미'의 김효성 사장은 이를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로 해결했다. 지인들의 도움을 그러모아 아주 일찌감치 사계절 주꾸미 식당을 열었다. 수입산이 아니었다. 벌써 15년 전이니 그럴 때도 아니었다. 개업 때부터 화제를 모은 건 당연했다. 직접 개발한 특제 양념도 식당의 인기에 한몫했다. 지금은 흔한 불맛도 그때 이미 개발했다. 매운맛은 오로지 청양고추로만 조절한다. 보통 맛, 매운 맛 두 가지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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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불맛 주꾸미 비빔밥 ▲ 일찍이 매운 불맛 주꾸미볶음 덮밥을 개발한 인천 서구 가좌동의 작은 정원 쭈꾸미 식당 ⓒ 이상구

매운맛을 순화시켜주는 무 양념 콩나물과 치커리도 특이하다. 콩나물은 절묘하게 데쳤다. 비린내는 없고 꼿꼿하게 숨이 살아 있다. 치커리 잎도 매운 양념에 넣어 비벼도 아삭함이 죽지 않는다. 특유의 향까지 살아 있어 훨씬 풍성한 맛을 낸다. 그 조합을 찾아내기 위해 숱한 실험과 시도를 거쳤다고 한다. 인심도 넉넉하다. 1인분을 시켰는데 주꾸미 대가리만 얼핏 세도 대여섯이다. 쫄깃한 고기 건져먹느라 그 고슬고슬 맛난 보리밥을 다 먹지 못할 정도다.


대구 사람이 사과를 많이 먹어 피부 좋은 건 아니고, 전라도에 가면 매끼 떡 벌어진 한정식 상만 받는 건 아니다. KTX가 2~3시간이면 국토를 가로지르고 인터넷과 모바일이 전국 아니라 세계를 단일 생활권으로 묶은 지 이미 오래인데도 우리에겐 아직 그런 식의 지역적 편견이 남아 있다. 물론 그게 무슨 문제를 만드는 '나쁜 편견'은 아니지만 그런 질문을 받는 당사자는 조금 당혹스럽다.


산 지 조금 됐고, 그동안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출신 지역별로 어떤 특성이 있다는 것쯤은 어렴풋이 안다. 하지만 그 역시 편견이다. 절대 그것으로 지역 전체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설사 전혀 악의가 없더라도 상대방은 불쾌, 불편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개중에는 듣고도 기분 나빠지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지는 편견도 있긴 하다. '인천사람은 짜다'는 표현도 그중 하나다. 그 짠맛의 결정인 소금은 음식의 맛을 풍요롭게 하고 부패를 막아준다. 그래서 그 말은 옳다. 인천사람들은 유사 이래로 쭉 그래 왔다. 인천사람은 짠물이다.


이상구 기자(soleil409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