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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언택트 시대에 잘 어울리는 김제 메타세쿼이아 10리길

by오마이뉴스

주말 한나절 라이딩, 반나절 드라이브 코스로 딱... 코로나 잠잠해지면 가보세요


대한민국에서 하늘 땅 바다가 선으로 만나는 곳, 지평선과 수평선을 모두 볼 수 있는 유일한 곳.


지평선 한가운데로 뻗은 김제 메타세쿼이아 10리길. 좌우로 반듯한 논들은 동백기름 바른 머리를 참빗으로 가른 듯 번들거리고 가지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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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세쿼이아 길 ▲ 메타세콰이어 길이 가르마를 가른 것처럼 좌우로 반듯하다 ⓒ 나영만

석양을 마주보고 멀찌감치 뒷걸음치다가 숨이 차다 싶을 때 멈춰 서서 길게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길을 좌우로 훑어보자면,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영사기에서 투영 순서를 기다리는 필름 속 피사체 같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출사객과 연인들을 끌어들여 논두렁 풀은 자랄 새도 없다.


구한말부터 해방 때를 배경으로 하는 조정래 소설 <아리랑>의 주 무대이기도 한 이곳은 김제시 죽산면이다. 소설 <아리랑>에서 하시모토가 군산항을 향해 적토마를 타고 지나다니던 길, 인력거꾼들이 죽을 힘을 다해 군산항을 오가던 신작로가 메타세쿼이아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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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세콰이어를 배경으로 지는 해 ▲ 계절마다 출사객과 연인의 드라이브 코스로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 나영만

지금도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과 수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일본인 지주 하시모토가 사용했던 농장 사무실이 부안 김제 군산을 잇는 삼거리 목좋은 곳에 원형대로 남아 있다. 친일파 이완용이 한일 합당 당시 일제와 황실에서 받은 돈으로 매입한 부안 김제의 비옥한 논은 주인이 몇 번 바뀐지 모른다. 면적만 여의도 1.9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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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모토 농장 ▲ 소설 속 하시모토가 일제 강점기 죽산면 일대의 절반이 넘는 논을 사드리고 관리하던 농장 사무실. 죽산 파출소 옆에 있다. ⓒ 나영만

길게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길 만큼이나 일제 강점기 이 지역 민초들의 애환은 깊다. 바둑판처럼 경지 정리가 잘된 김제 만경평야는 일제강점기 전국 최대 곡창지대 중 한 곳으로 일본인 지주와 친일파들의 수탈의 현장이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일제가 김제만경 평야에서 수탈한 쌀을 만경읍-대야면을 거쳐 군산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든 신작로다. 군산항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던 만경강에, 일제는 1933년 우리나라 최초 시멘트로 다리(새창이 다리)를 만들었다.


메타세쿼이아 길이 시작되는 죽산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2km쯤 떨어진 내촌 마을에 소설 <아리랑>의 무대를 재현해 놓은 아리랑 마을이 있다.


남편의 병 수발로 빚진 돈을 갚기 위해 맏아들을 팔아넘기듯 하와이로 보내고 두 딸과 힘겹게 살아가는 감골댁의 초가집, 지삼출이 의병 활동을 하다 일본 순사에 잡혀 한번 채찍질에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며 쇠좆매질을 당했던 주재소, 하야가와의 눈에 들어 일본 정보원이 된 양치성이 일했던 우편국...


소설 <아리랑>을 읽으며 울분 토했던 장면 장면이 오버랩된다. 이곳 아리랑 마을에 오면 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일제와 친일파 처단에 앞장섰던 선조와 독립군들께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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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순사들의 고문도구 ▲ 독립군들을 고문할 때 쓰였던 고문도구들이 주재소 고문실 벽면에 걸려있다. 맨 오른쪽에 길게 걸려있는 것이 한 번 맞으면 살점이 떨어질 정도로 매섭다는 고문도구, 쇠좆매이다. ⓒ 나영만

코로나19 언택트 시대에 한적한 곳에서 가족과 연인, 동료와 함께 드라이브나 라이딩하며 조용한 곳에서 감성을 만끽하고 싶다면 김제 메타세쿼이아 길을 추천하고 싶다. 소소하게 볼거리와 즐길 거리도 있다.


메타세쿼이아 길이 시작하는 죽산면사무소에서 군산 쪽으로 2km쯤 지나 죽동마을 입구에서 서서 동쪽을 바라보면 홍수 지진 같은 천재지변에도 끄떡 않을 교회가 보인다. 노아의 방주를 본떠 돌로 쌓아 만들었는데 100년 가까이 되었다고 하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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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 모양을 한, 돌로 쌓아 만든 듯한 교회 ▲ 메타세쿼이아 길이 시작하는 죽산면사무소에서 2km 쯤 가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죽동교회. ⓒ 나영만

시간 여유가 있다면 마을 안쪽에 대나무밭으로 둘러 쌓인 아담한 도예공방에서 직접 만든 머그컵에 차 한 잔 하면서 메타세쿼이아에 걸려 지는 해를 기다려보는 것도 운치있다.


메타세쿼이아 걸친 해를 왼쪽으로 하고 자동차 전조등이 제 역할을 할 때쯤까지 북쪽으로 10km쯤 달리다 보면, 백제 의자왕 때 만들었다는 망해사가 나온다. 망해사는 우리나라 우아한 낙조로 손꼽히는 몇 안 되는 명소다.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고 얼마 전 이곳에 새만금 동서도로가 놓였다. 새만금 일대가 다 메워지면 살아 있는 동안 이렇게 멋진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날도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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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안 조그만 공방에서 지는 해를 기다리고 있다. ▲ 지는 해를 기다리다가 메타세쿼이아 길을 따라 망해사에서 낙조를 바라보기를 기다리고 있다. ⓒ 나영만

시간과 역사, 감성과 낭만을 잇는 김제 메타세쿼이아 10리길, 사람 만나기 부담스러운 때 라이딩 코스로 한나절, 드라이브 코스로 반나절이면 적당할 것이다.


나영만 기자(nikita71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