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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 ]

노래 위해 암 제거도 포기, 전설의 자리 오른 이 가수

by오마이뉴스

[응답하라 1990년대] 초대 발라드 황제 이문세


지난 2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는 '겨울노래 구출작전' 특집으로 탁재훈, Mr.2, 김범수, 에일리, 정동환, 윤종신 등이 출연해 무대를 꾸몄다(비록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관객은 부르지 못했지만). 그렇게 한창 무대가 진행되고 김범수와 윤종신이 유재석, 데프콘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갑자기 화면에 모두를 놀라게 한 깜짝손님이 등장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영상으로 등장한 최고의 팝스타 존 레전드였다.


존 레전드는 2006년 그래미 시상식 신인상을 시작으로 미국 대중문화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 4곳(에미, 그래도, 오스카, 토니)에서 모두 수상 경력을 가진 EGOT클럽 멤버다. 존 레전드는 로버트 로페즈에 이어 역대 2번째로 어린 나이에 EGOT 클럽에 가입한 전설적인 뮤지션으로 한국의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의 신청곡 < Bring Me Love >를 라이브로 부르며 한국팬들에게 새해 선물을 전달했다.


하지만 그래미 시상식 10회 수상 경력의 전설적인 뮤지션이자 2000년대 미국의 소울 음악을 부흥시켰다고 평가 받는 위대한 아티스트 존 레전드도 <놀면 뭐하니?> '겨울노래구출작전' 특집의 피날레를 장식하진 못했다. 수 많은 겨울 명곡들을 보유하고 있고 어쿠스틱 기타 선율과 호소력 짙은 목소리만으로도 대중들의 귀를 정화시키는 최고의 가수이자 '밤의 문교부 장관'으로 불리던 '초대 발라드 황제' 이문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영훈 만나 비로소 완전체가 된 '초대 발라드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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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세 4집은 3회에 걸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순위에서 각각 40위,16위,13위에 이름을 올렸다. ⓒ 예전미디어

1983년 <나는 행복한 사람>이 들어 있는 1집을 발표하며 데뷔한 이문세는 데뷔 초기에는 그렇게 주목 받는 가수가 아니었다. 이문세는 1984년 '록의 대부' 신중현이 6곡을 작사·작곡한 2집 앨범을 발표했지만 정작 이문세 2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노래는 9번 트랙에 들어 있는 <파랑새>였다. 이미 데뷔 전부터 타고난 입담을 앞세워 라디오 DJ로 활약하던 이문세는 1985년부터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DJ가 됐다.


'방송인' 이문세의 터닝 포인트가 <별밤>이었다면 가수 이문세의 터닝포인트는 바로 작곡가인 고 이영훈과의 만남이었다. 2집까지의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던 이문세는 가수활동에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3집 앨범을 준비하던 중 신촌블루스 엄인호에게 한 신인 작곡가를 소개받았다. 그것이 바로 '오직 이문세만을 위해 노래를 만드는 작곡가' 이영훈과의 첫 만남이었다.


이문세의 기억에 따르면 어느 허름한 연습실에서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젊은 청년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 피아노 소리가 너무 좋아서 이문세는 처음보는 이영훈에게 다가가 앨범을 함께 작업하자고 제안했다. 그 때 이영훈이 연주하고 있던 곡이 바로 이문세 불멸의 히트곡 중 하나인 <소녀>였다. 그렇게 이문세는 이영훈에게 6곡을 받아 3집을 발표했고 <난 아직 모르잖아요>와 <소녀>, <빗속에서>, <할 말을 하지 못했죠> 등을 히트시켰다.


3집 앨범의 성공으로 인해 이영훈 작곡가와의 신뢰가 더욱 두터워진 이문세는 4집 앨범 전체의 작사·작곡을 모두 이영훈에게 맡겼다. 이문세 4집은 타이틀곡 <사랑이 지나가면>뿐만 아니라 고은희와의 듀엣곡 <이별이야기>, <가을이 오면>, <깊은 밤을 날아서>, <그녀의 웃음 소리뿐> 등 수록곡 전체가 큰 사랑을 받았다. 이문세는 4집 앨범을 통해 1987년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가수로서 정점을 찍었다.


최근 아이돌 그룹들은 신곡을 발표하면 빠르면 일주일, 늦어도 2주일 사이에는 '승부'를 봐야 한다. 1~2주 사이에 만족할 만한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하면 새롭게 발표되는 다른 곡들에 밀려 음원 순위에서 순식간에 사라지기 일쑤다. 하지만 이문세가 활동하던 80년대 후반엔 앨범이 나온 지 1년 후에 뒤늦게 사랑을 받는 노래도 적지 않았다. 이문세의 5집 앨범이 4집이 나온 지 1년6개월 만에 발표됐음에도 전혀 늦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이유다.


레전드급 명곡들이 수록돼 있는 이문세 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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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세 5집은 80년대 말과 90대 초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 발라드 명반이다. ⓒ 예전미디어

이문세 5집이 발매된 1988년 9월은 '가왕' 조용필이 건재했고 주현미, 현철 등 트로트 가수들이 장년층을 중심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기에 김완선과 소방차, 박남정이 '댄스 3대장'으로 활약하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우리네 삶을 때로는 흥겹고 때로는 구슬프게 부르는 트로트와 신나는 노래와 흥겨운 춤이 어우러진 댄스 곡들 사이에서 발라드는 상대적으로 심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문세라는 가수는 예외였다. 이문세는 시적인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 그리고 풍부한 감성을 앞세워 트로트는 지나치게 어른스럽고 댄스는 적응하기 힘들었던 대중들을 자신의 팬으로 끌어 들였다. 개인적으로도 이문세 5집은 막 라디오를 듣기 시작하던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오락실 안가고 만화잡지 '보물섬' 안 사며 힘들게 모은 용돈으로 구입했던 생애 첫 번째 '내돈내산' 앨범이었기 때문에 더욱 애착이 큰 앨범이다.


당시 대부분의 앨범이 그런 것처럼 이문세 5집 역시 타이틀곡은 1번 트랙 <시를 위한 시>였다. <시를 위한 시>는 국민적인 히트를 기록했던 3·4집의 타이틀곡 <난 아직 모르잖아요>와 <사랑이 지나가면>에 비하면 그리 크게 히트하진 못했다. 하지만 한 남자가 죽음을 맞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담담하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노래 <시를 위한 시>는 아름다운 가사와 애절한 멜로디가 이문세의 목소리에 실려 애틋함을 극대화한 명곡이다.


이문세 노래 중에서 가장 신나는 노래이자 10대부터 4~50대까지 모두 흥얼거릴 수 있는 국민가요가 된 <붉은 노을>도 이문세 5집에 들어 있다. 지난 2008년 빅뱅은 <붉은 노을>을 리메이크하면서 '난 너를 사랑하네'로 시작되는 후렴구만 집중적으로 인용했다. 하지만 <붉은 노을>의 진짜 매력은 코러스와 경쾌한 키보드 소리, 그리고 잔잔하게 시작했다가 노래의 진행에 따라 점점 강렬해지는 이문세의 노련한 보컬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중반부가 아닐까 싶다.


지난 2004년 이수영이 리메이크했고 동명의 뮤지컬로 제작되며 또 한 번 큰 사랑을 받았던 <광화문연가>도 이문세 5집을 대표하는 곡이다. <놀면 뭐하니?> '겨울노래 구출작전'편에서는 <옛사랑>에 밀렸지만 사실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같은 가사가 등장하는 <광화문 연가>야 말로 제대로 된 겨울 노래다. 덕수궁, 정동길 같은 실존하는 지명이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노래를 듣는 또 하나의 재미다.


B면으로 넘어가 첫 번째로 들을 수 있는 곡은 많은 대중들이 라일락 꽃향기를 궁금해 했던 바로 그 노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다. 경쾌하게 진행되던 전주가 갑자기 느려지며 애절한 발라드로 변하는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은 5분27초의 긴 호흡이 돋보이는 대곡이다. 특히 '내가 사랑한 그대는 아냐' 이후로 이어지는 묵직한 후주(後奏)는 길고도 묘한 여운을 남긴다. 장재인이 리메이크해 젊은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곡이다.


<시를 위한 시>를 시작으로 <붉은 노을>을 거쳐 <광화문 연가>를 지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까지. 베스트 앨범에나 들어 있을 법한 이문세를 대표하는 명곡들이 5집 앨범에 모두 수록돼 있다. 물론 이런 대단한 히트곡들 사이 사이에 들어간 <안개꽃 추억으로>, <이 밤에>, <기억의 초상>, <끝의 시작> 같은 노래들도 그냥 넘기기 아까운 이문세-이영훈 콤비가 만들어 낸 명곡들이다.


노래 부르기 위해 암 조직 제거도 포기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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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는 <그게 나였어>와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이 들어 있는 6집, <옛사랑><가을이 가도>, <저 햇살 속에 먼 여행>이 들어 있는 7집 앨범을 끝으로 이영훈과 잠시 음악적 작별을 했다. 그리고 몇 번의 재회와 이별을 반복하던 두 사람은 1999년 12집 <애수>와 2001년 13집 <기억이란 사랑보다>를 통해 최고의 콤비임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이영훈이 지난 2008년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13집은 두 사람이 함께 한 마지막 앨범이 됐다.


이문세는 1996년 <조조할인>으로 활동하던 시절을 제외하면 가수로서 TV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꾸준한 콘서트 개최를 통해 팬들과 만나고 있다. 특히 90년대 중·후반부터 '이문세 독창회', '이문세 the BEST', '대한민국 이문세' 같은 콘서트의 브랜드화에 앞장서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어느덧 환갑을 훌쩍 넘겼고 10년이 넘도록 '최신 히트곡'이 없는 이문세의 공연이 해마다 매진행렬을 이어가는 이유다.


지난 2007년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이문세는 2014년 갑상선암이 재발해 재수술을 받았다. 이문세는 암이 성대 옆으로 전이돼 의사로부터 성대 옆 암 조직을 제거할 것을 권유 받았지만 '노래를 할 수 없는 자신은 무의미하다'며 끝내 성대 쪽 암 조직을 남겨 두기도 했다. DJ로도, TV진행자로도 충분히 능력을 인정 받았지만 이문세의 최우선 순위는 언제나 노래와 무대였던 셈이다.


사실 이문세는 뛰어난 말솜씨와 친근한 이미지 때문에 노래 실력이 저평가 받을 때가 있지만 한 번이라도 그의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이문세가 얼마나 뛰어나고 진정성 있는 보컬리스트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1989년 늦은 밤까지 <별밤>을 들으며 '별밤지기' 이문세를 동경했던 12살 꼬마는 40대 중반의 아저씨가 된 2021년에도 여전히 대한민국 '초대 발라드 황제' 이문세를 동경한다.


양형석 기자(utopia6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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