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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법정 스님의 '무소유 길'로 떠나 봅니다

by오마이뉴스

요사채도, 손수 가꾼 채마밭도 그대로인 순천 불일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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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스님이 직접 짓고 생활한 작은 요사채. 암자를 찾은 여행객이 스님을 생각하며 회상을 글로 남기고 있다. ⓒ 이돈삼

눈이 많이 내린다. 날씨도 춥다. 덩달아 마음도 움츠러든다.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나는 연말연시다. 코로나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조용하면서도 차분한 시간을 떠올린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1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려볼 때다.


우리의 마음속까지 따뜻하게 해주는 '무소유 길'로 간다. '무소유 길'은 법정스님의 법문과 엮인다. 사부작사부작 걸으면서 아름다운 사람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길이다. 비움의 미학까지 배울 수 있다. 여행의 청정지대에 속한다. 무소유의 상징이고, 법정스님의 체취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암자 순천 불일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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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일암의 후박나무(향목련)와 태산목 그리고 요사채. 이파리를 다 떨군 나무 아래에 법정스님이 수목장으로 모셔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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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일암에 내걸린 편액. 볼수록 글자체에서도 무소유의 느낌이 묻어난다. ⓒ 이돈삼

불일암은 법정스님이 계시던 그때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스님이 거닐던 숲길도 그대로다. 대숲터널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불일암도 그 자리에 있다. 스님이 직접 짓고 생활한 작은 요사채도, 스님이 손수 가꿨던 조그마한 채마밭도 그대로다. 스님의 손길이 닿던 채마밭에는 지금도 배추가 자라고 있다. 소방도로가 새로 난 것 빼고는 변함이 없다.


스님이 가장 사랑했던 후박나무도 여전히 암자를 지키고 서 있다. 생전의 스님은 이 나무에 빗대 계절의 변화를 표현하기도 했다. 봄이면 후박나무 꽃이 연꽃처럼 하얗고 은은한 향기를 머금는다고 했다. 여름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아름답다고 했다.


가을엔 잎사귀 떨어지는 소리가 정적을 깨고, 잎사귀를 다 떨군 겨울에는 청빈한 모습이 무소유를 연상케 한다고 했다. 출타한 스님이 암자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이 나무하고 '잘 있었냐?' 하며 인사를 나누고 보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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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일암을 찾은 방문객이 법정스님이 수목장으로 모셔져 있는 나무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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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스님 수목장 안내판. 나무 아래에 조그맣게 만들어져 있다. ⓒ 이돈삼

지금도 불일암을 찾는 사람들이 이 나무를 보면서 법정스님을 떠올리는 이유다. 나무 아래에 잠든 스님을 생각하며, 나무를 껴안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이 나무가 후박나무는 아니다. 일본목련으로 불리는 향목련이다.


후박나무는 겨울에도 푸른 상록활엽수다. 지금도 진녹색의 이파리를 가득 달고 있다. 불일암의 '후박나무'는 지금 이파리를 다 떨구고 없다. 스님이 글의 소재로 많이 등장시키고, 스님이 후박나무라고 써서 많은 사람들이 후박나무라고 여길 뿐이다.


법정스님이 나무의 이름을 제대로 몰라서 후박나무로 쓴 건도 아닐 게다. 순천지방 사람들이 향목련을, 후박나무라고 많이 부른다. 스님도 주민들처럼 후박나무로 표현하고, 불렀다.


법정스님은 이 나무 아래에 수목장으로 모셔져 있다. 45년 전 스님이 암자를 지으면서 심었고, 생전의 스님이 가장 사랑했던 나무 아래다. '법정스님 계시는 곳'이라는 작은 안내판이 하나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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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숲의 끄터머리에서 만나는 불일암. 대숲 사이로 요사채와 채마밭이 보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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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소유'의 상징이 된 법정스님의 다비식 모습. 지난 2010년 3월에 찍은 것이다. ⓒ 이돈삼

눈길 가는 데마다 스님의 얘기가 스며 있는 불일암이다. 흡사 스님이 살아계신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려 준다. 암자의 감나무에선 필요한 만큼만 따고, 다른 생물들이 먹을 수 있도록 나머지를 그대로 둔 스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노루와 사슴, 토끼들도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스님이 얼음까지 깼다는 개울도 보인다. 스님이 겨울 땔감용 장작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조금은 조잡하게 생긴 나무의자도 놓여 있다. 스님의 소박한 산속 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불일암이다.


불일암에서는 스님의 '무소유' 법문도 절로 생각이 난다. 스님은 무소유를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갖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아는 데 있다'고 했다.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라고도 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내려놓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비움이고, 용서이고, 자비라고 일갈했다. 들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지고, 금세 공감이 가는 법문이다. 내 마음까지도 편안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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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소유 길에서 만나는 법정스님의 법문 팻말. 법문은 길지 않지만,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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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일암과 송광사를 이어주는 숲길. 생전의 법정스님도 자주 다녔던 길이다. ⓒ 이돈삼

법정스님은 1932년 해남 우수영에서 태어나 박재철로 살았다. 목포상고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에 다니다가 출가를 했다. 무엇보다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를 사회운동으로 승화시켰다. 무소유를 실천하며, 무소유로 살다가, 무소유로 갔다. 스님답게 살다가 스님답게 간 법정스님이었다.


스님은 불일암에서 7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생활했다. 스님의 속세 나이로 43살 때부터 60살까지 인생의 황금기 17년 동안 머물렀다. 여기에서 <무소유>를 시작으로 <산방한담>, <물소리 바람소리>, <텅 빈 충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버리고 떠나기> 등 많은 책을 썼다.


불일암은 순천 송광사에 딸려 있다. 송광사 주차장에서 솔방솔방 30분이면 닿는 거리에 있다. 법정스님이 생전에 오가던 이 길이 '무소유 길'로 이름 붙여져 있다. 스님의 법문도 팻말로 몇 군데 세워져 있다. 스님의 마음가짐으로,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소리에 귀를 열고 쉬엄쉬엄 걸으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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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일암을 보듬고 있는 송광사의 겨울 풍경. 송광사는 한국불교의 종갓집으로 통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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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당과 우화각, 그리고 홍예교가 한데 어우러진 풍경. 송광사의 풍경을 대표한다. ⓒ 이돈삼

불일암을 보듬고 있는 송광사도 큰 절집이다. 한국불교의 종갓집이다. 불교의 승맥을 잇는 승보사찰이다.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이 불교를 일으킨 정혜결사의 도량으로 삼았던 절집이다. 보조국사의 법통을 진각국사가 이어받으면서 16국사를 배출했다. 국보와 보물 등 문화재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보물창고다.


송광사의 풍경은 계곡과 어우러진 전각이 대표한다. 송광사를 찾은 여행객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보고, 사진을 찍었을 풍경이다. 계곡의 축대 위에다 기둥을 세운 임경당, 다리 위에 누각을 얹은 우화각, 우화각 아래 홍예교가 한데 어우러진다.


그림 같은 풍광이다. 사철 송광사를 대표하는 풍경이다. 지금은 계곡물이 두껍게 얼어 있어, 얼음 위에서 미끄럼까지도 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이래저래 빛나는 암자 불일암이고, 절집 송광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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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송광사 풍경. 저녁 공양을 앞둔 스님이 공양간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다. ⓒ 이돈삼

이돈삼 기자(ds2032@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