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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 ]

'아내의 맛' 나경원의 막춤에 가려진 진짜 문제

by오마이뉴스

[리뷰] TV조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내의 맛>... 판단은 결국 시청자 몫


지난 5일 TV조선 예능프로그램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내의 맛>에는 나경원 전 국회의원이 패널로 출연하여 화제가 됐다. 오는 12일 방송분에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출연할 예정이다. 두 사람 모두 대한민국에서 인지도 높은 현역 여성 정치인들로 꼽히며 각각 여야에서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유력 출마자로도 언급되는 상황이라 갑작스러운 예능 출연의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갈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맛>은 대한민국 연예인-셀럽 부부들의 일상을 공개하는 관찰예능 프로그램이다. 집과 가족 등 개인사와 평소의 라이프 스타일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은 유명인에게도 부담스러운 대목일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대중 입장에서는 그동안 뉴스나 언론에서 한정된 이미지로 접할 수밖에 없었던 유명 여성 정치인들이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로서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호기심을 가질 법하다.


특히 나경원 전 의원은 유명세만큼이나 논란도 많았던 정치인이다. 법조인 출신에 4선 국회의원, 서울시장 후보, 야당 원내대표까지 여성 정치인으로서는 손꼽힐 만큼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지만,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구설수에 휩싸여 대중적으로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리기도 한다. 불과 최근까지 재판 문제로 법정에 서야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아내의 맛>에서는 이러한 '정치인 나경원'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와 상반된 모습들이 이어졌다. 이날 나경원 전 의원은 예능 신고식을 빌미로 댄스를 요구하는 MC와 출연자들에게 둘러싸여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으로 뻣뻣한 로봇춤을 선보이는가 하면, VCR에서는 자택에서 편안한 복장으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소탈한 모습들을 보여줬다.


정치인으로서는 도도한 엘리트 이미지가 강했던 나경원 전 의원이지만 이날 방송에서는 민낯을 공개하고 거의 다 쓴 화장품을 꼼꼼하게 짜서 쓰는 모습을 비롯해 딸의 드럼 연주에 탬버린을 들고 막춤을 추는 모습, 입대를 앞둔 아들을 위해 관련 온라인 카페에 가입하는 모습 등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을 향한 애틋한 모정을 드러내는 훈훈한 모습은, 이 프로그램의 주요 시청층이라고 할 수 있는 주부들의 공감대를 자아낼 만 했다. 높은 화제성을 반영하듯 <아내의 맛>은 방송 이후 수도권 기준 11.2%(닐슨코리아, 5일 기준)로 프로그램 역사상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오마이뉴스

▲ TV조선 한 장면. ⓒ TV조선

시청자들의 엇갈리는 평가

방송 이후 시청자들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유명 정치인의 인간적이고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어 좋았다는 호평도 있는 반면, 나경원이라는 인물에 대한 불호 때문에 채널을 돌렸다는 비판적인 반응도 있었다. 선거철을 앞두고 여야 출신을 떠나 정치인이 이미지 홍보용으로 방송출연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아무래도 진영논리가 극심해진 최근의 사회 분위기상, 유명 정치인의 방송출연을 놓고 대중의 반응이 갈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이 예능에 출연한 것은 나경원 전 의원이나 박영선 장관이 처음은 아니다.


1996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야당 총재였던 정치인 김대중은 MBC의 간판예능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 '이경규가 간다'에 깜짝 출연하여 화제를 모았다. 당시만 해도 진중한 이미지의 거물급 정치인이 웃고 즐기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민주화 투사에다가 신비주의적인 이미지도 강하던 정치인 김대중이 권위나 격식을 내세우지 않고 예능 MC 이경규와 유쾌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의외로 대중문화에도 상당한 이해를 보여준 장면은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안철수 국민의 당 대표도 예능출연으로 큰 수혜를 입은 대표적 사례다. 그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 청년 멘토로 이름을 높여가던 시절에 <무릎팍도사>라는 예능에 출연하여 본인의 일대기를 어필하여 큰 호응을 받은 바 있다.


심지어 방송의 엄청난 영향력은 실패하거나 잊힌 정치인들에게까지 재기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무명의 정책연구소 소장에서 일약 민주당 국회의원이자 원내 수석부대표까지 지냈던 이철희 전 의원, '아나운서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강용석 변호사,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유시민 작가 등은 JTBC 시사교양예능 <썰전>의 고정 패널로 출연하면서 전국민적인 인지도를 얻으며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정치인이 방송에 출연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본업과 연관되어 있고 사회적인 이슈를 논하는 시사교양-토크쇼 위주였다면, 최근에는 '관찰 예능'에 도전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게 됐다.


<아내의 맛>만 해도 지난 2018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정치인으로서는 가장 먼저 출연한 바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성남시장 시절 SBS 부부관찰예능 <동상이몽-너는 내 운명>에 아내와 함께 심지어 일회성도 아닌 고정 패널로 일정 기간 출연한 바 있다.


연예인과 마찬가지로 정치인도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데 '이미지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는 시대가 왔다. 특히 항상 진영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립과 갈등의 중심에 서야하는 정치인으로서는 예능 출연이 부정적 이미지 탈피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이미지 세탁을 노리는 이들도 있어 이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명확한 건 이미 몇 년에 걸쳐 정치인들의 예능 등 연성 프로그램 출연이 잦아졌고 하나의 흐름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선 제작진의 선택과 대중의 안목이 중요하다. 방송 제작진은 명확한 사실관계 확인 등을 통해 출연 정치인과 관련된 왜곡된 이미지 혹은 포장된 이미지가 시청자들에게 무방비하게 전달되는 일을 최대한 방지해야 하고, 시청자 또한 방송 프로그램 속 정치인의 사적인 모습과 그의 공적 활동을 구분해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바라봐야 한다.


예능 출연을 자처하는 정치인들 또한 방송을 통해 아무리 열심히 포장하고 미화한다고 해도 대중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 그 명성을 오래 유지할 수 없음을 깊이 새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민주주의 사회일수록 정치라는 화두가 결코 금기의 영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정치인이 대중의 유쾌한 안줏거리가 되기도 하고, 방송에서 망가지는 모습도 스스럼없이 그려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단, 미화되거나 왜곡되지 않는 선에서.


이준목 기자(seaofl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