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여행 ]

'죽은 자의 영역'을 찾은 후 눈 덮인 주왕산으로

by오마이뉴스

[경상북도의 언택트 관광지를 찾아 3] 고령의 고분과 청송의 설산



오마이뉴스

▲ 왕버들과 눈이 만들어낸 주산지의 아름다움. ⓒ 경북매일 자료사진

'코로나19 사태'가 지구를 덮친 지난해. 사람들은 죽음이 삶과 얼마나 가까운 곳에 도사리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동양인과 서양인, 노인과 청년, 여자와 남자 구분 없이 언제든 다가설 수 있는 절멸의 공포.


그 속에서 우리는 발견했다. 삶은 죽음 속에, 죽음은 삶 속에 웅크리고 있으며 결국 살아간다는 건 죽음을 향한 과정이란 걸. 슬프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공포가 모든 일상을 온전히 파괴할 수는 없는 일. 인간이 죽을 줄 알면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건 자신이 소멸하는 존재라는 걸 가끔은 잊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잊으려하기 때문이다.


여행 역시 일상의 한 부분. 21세기 현대인들의 스트레스와 갑갑함을 풀어준 '여행'도 '코로나19 시대'가 지속되며 그 패러다임(Paradigm)에 변화가 생겼다. 비접촉, 비대면으로 혼자 떠나거나, 소수와 함께 하는 여행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


전세버스에 동창과 동네주민들 수십 명이 타고, 또는 비행기 좌석 30~40개쯤을 미리 구매해 우르르 몰려다니던 관광 방식이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이처럼 변화된 여행 패턴은 앞으로도 제법 오랜 기간 지속될 것으로 추측된다.


여행지의 선택은 개인의 취향에 의해 좌우된다. 이를 감안해 앞서 경상북도 포항과 경주, 영덕과 울진의 바닷가를 돌아봤으니 이젠 경북의 산으로 가볼까 한다.


오마이뉴스

▲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의 겨울 풍경. 스산하지만 아름답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산 자가 바라보는 죽은 자의 영역 '지산동 고분'


예부터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이라 했다. 그렇다고 바다나 강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이 똑똑한 건 아니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만 어진 것은 아닐 터. 이는 인간이 여행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지를 에둘러 표현한 문장이라고 짐작된다.


그렇다. 여행은 인간에게 현명하고 어질게 사는 방법을 고민하게 하고, 때로는 말없이 이를 가르친다.


경북 고령군은 인구 3만 명 안팎의 조그마한 소읍이다. 대구에서 멀지 않은. 적지 않은 여행자들은 "그 조그만 도시에 뭐 볼 게 있겠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천만에. 고령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야트막한 산에 올라 1천500년 전 조성된 고령 지산동 고분군(高靈 池山洞 古墳群)을 마주하게 된다면 선입견은 얇은 포도주 잔이 깨지듯 단숨에 사라진다.


시인 이영진은 25년 전 <숲은 어린 짐승들을 기른다>라는 제목의 빼어난 시집을 출간한다. 거기서 이렇게 말한다. 저자 서문을 통해서다.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지만 세상에 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단지 산 자의 영역보다 죽은 자의 영역이 나날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진실일 뿐."


우리가 눈 쌓인 지산동 고분을 바라본다는 건 '산 자가 죽은 자의 영역을 넘나드는 것'과 유사한 행위다. 앞서 말했듯 삶과 죽음의 경계는 너무나 허술하고, 때로 죽음은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시인을 포함한 예술가들은 이 자명한 사실을 알고 있다.


오마이뉴스

▲ 지산동 고분군에서 내려다본 고령군의 야경. ⓒ 경북매일 자료사진

아득한 옛날 만들어진 무덤이 전하는 위로의 말


살아간다는 것이 힘겹고 비루하게 느껴져 어떤 것에서도 희망을 찾기 힘든 이들, 아픔과 고통의 시간을 겪고 있는 이들, 허무와 덧없음에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들이라면 고령군을 향하는 버스를 타보길 권한다. 높낮이를 달리하며 솟아오른 지산동 고분군은 당신을 이렇게 위로할 것이다.


"저 아득한 1500년 전에도 사람들은 삶 속에서 웃었고, 죽음 앞에서 통곡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어느 한순간도 세상이 멈추거나 망한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모두가 겪는 일이다. 너만 아픈 게 아니다. 그러니 어깨 펴고 힘을 내라. 네 곁엔 아끼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봄과 여름, 두 차례 지산동 고분군을 찾은 적이 있다. 인간을 사색의 시간으로 이끄는 힘이 그 공간엔 존재한다. 누구라도 철학자나 시인의 마음을 가지게 하는 지산동 고분군이 지닌 매력을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는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삼국시대 대가야의 고분군으로 사적 제79호다. 지산동 고분군에서는 대량의 토기와 함께 금동관, 갑옷, 투구, 긴 칼, 꾸미개류 등이 출토되고 있고, 이를 놓고 볼 때 4∼6세기경에 축조된 대가야 지배 계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대가야읍 서편에 위치한 주산(主山) 봉우리에는 대가야의 산성인 주산성이 있고, 남쪽으로 뻗은 주능선과 동남쪽 사면에 대규모로 고분군이 분포한다. 주능선과 지맥의 정상부를 따라 직경이 20m가 넘는 대형분과 10∼15m가량 되는 중형분이 줄지어 분포하고, 경사면엔 그보다 작은 중소형 봉토분들이 밀집·분포돼 있다.'


오마이뉴스

▲ 청송 주왕산이 선물하는 겨울 풍경. ⓒ 경북매일 자료사진

주왕산 눈을 밟는다는 건 '꿈'에 다가서는 일


"영국은 비틀즈고, 비틀즈는 곧 영국이다"란 말이 있다. 그러니 다음과 같이 말해도 과장은 아닐 듯하다.


"경북 청송은 주왕산이고, 주왕산은 곧 청송이다."


세칭 '단풍놀이'를 좋아하는 한국 관광객들 중 주왕산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없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가을 주왕산이 아닌 겨울 주왕산의 매력을 알고 있는 여행자는 얼마나 될까? '그것이 알고 싶다'.


기암괴석과 향기로운 나무들이 손짓해 부르는 절경 중 절경 주왕산. 최근엔 눈이 자주 내렸다. 만약 당신이 청송을 여행할 때 눈을 만나게 된다면 조금 춥더라도 반드시 눈 덮인 주왕산 인근 숲길을 산책해봐야 한다.


주왕산 눈길을 걷는다는 건 꿈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해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게 기자의 생각. 거기선 이런 시 한 편쯤 읊어보는 것도 좋다. 윌리엄 예이츠(William Yeats·1865~1939)의 '하늘나라 옷감'이다.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은 꿈뿐이니

그걸 당신 발아래 놓습니다

밟고 가소서 그대

거기 부서지는 것은 내 가난한 꿈일지니…


주왕산 바위와 소나무 위에 점점이 쌓인 '눈'은 예이츠가 말한 '꿈'의 은유로 읽힌다. 당신이 대단한 감수성과 시적 감각을 갖추지 않았더라도 짐작만으로 알 수 있지 않은가? 맞다. 청송의 설경(雪景)은 보통 사람도 예술가로 만드는 힘을 가졌다.


주왕산은 197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한국의 3대 암산 중 하나.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은 "돌로써 골짜기 동네를 이뤄 마음과 더불어 눈(目)까지 놀라게 하는 산"이라고 상찬했다.


오마이뉴스

▲ 얼음으로 뒤덮인 주산지. 한 폭의 동양화 같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오마이뉴스

▲ 얼음골에서 ‘겨울 청송의 매력’을 만끽하는 여행자들. ⓒ 경북매일 자료사진

꽁꽁 언 주산지와 얼음골이 선물하는 청량함


청송에 가서 주왕산하고만 인사 하고 돌아선다면 그처럼 우둔한 일이 없다. 왜냐? 지척에 주산지와 얼음골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주산지는 주왕산이 품고 있는 용모 수려한 자식이기도 하다.


주산지는 1721년 조선 경종 때 만들어진 농업용 저수지. 그러나, 현대인들은 이곳을 '최고의 사진 촬영지'로 기억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엔 일 년 내내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저수지 안에서 자란 왕버들 20여 그루가 이곳 풍광을 '전설 속 공간'처럼 연출하고 있다. '아름답다'는 형용사만으로는 그 풍경을 다 묘사할 수 없을 정도.


얼음골 또한 겨울에 제맛을 느낄 수 있는 여행지다. 청송군 주왕산면 내룡리에서 동쪽으로 5리쯤 거리에 위치한 얼음골은 여름엔 시원함으로, 겨울엔 깎아 세운 듯한 빙벽(氷壁)이 관광객의 환호와 탄성을 자아낸다.


"날씨가 맵찼던 1월 중순 주말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얼음골을 찾아 방역지침을 지키며, 청량한 겨울 청송의 매력을 즐기고 돌아갔다"는 것이 청송군청의 설명이다.


홍성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