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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보석 박아놓은 듯한 호수, 해발 2000m의 믿기지 않는 풍경

by오마이뉴스

[쓰촨여행 ③] 한 차원 높은 도의 경지 보여주는 주자이거우


이 글은 지난 2020년 1월 5일~10일(5박 6일) 중국 쓰촨 여행을 다녀온 기록입니다.


고산병은 물러갔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고산병약도, 액체 산소도 다 무용지물이었고, 치료제는 해발 3500m 황룽에서의 힘든 적응의 시간이었다. 해발 2000m대인 주자이거우(九寨沟)에서 몸은 이제 아무 문제가 없다. 큰 시련은 작은 시련을 덤덤하게 한다.


매표 후 전용 버스를 타고 주자이거우로 향한다. "주자이거우의 물을 보면 다른 물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九寨歸來不看水)"라는 말이 있는데, 얼마나 아름다운 물빛이기에 그러는지 확인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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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의 바다 ▲ 빛바랜 갈대밭 사이를 비취빛 강물이 구불구불 길을 내며 흐른다. ⓒ 김대오

아홉 채의 소수민족 산채가 있어서 이름 붙여진 구채계곡. 흙과 나무로 지은 장족 민가 앞에 깃발이 나부낀다. 버스 왼쪽으로 흘러내리는 물빛은 차창 너머 얼핏 봐도 예사롭지 않다.


빛바랜 갈대밭 사이를 비취빛 강물이 구불구불 길을 내며 흐른다. 갈대는 보통 해발 800m 이하에서만 서식한다는데, 해발 2140m에서 저렇게 물빛을 돋보이게 하려는 듯 갈색 톤의 배경으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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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군해(樹正群海) ▲ 호수의 물빛들은 저마다 다른 보석을 박아놓은 듯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를 선보인다. ⓒ 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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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군해(樹正群海) ▲ 호수에 담긴 물은 옥빛으로 맑고 푸르다. ⓒ 김대오

좀 더 오르자 나무로 구획이 나눠진 호수가 모자이크처럼 이어진 수정군해(樹正群海)다. 호수의 물빛들은 저마다 다른 보석을 박아놓은 듯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를 선보인다.


물은 나무의 허술한 경계를 넘어 서로 섞이면서도 본연의 색을 잃지 않는다. 나무는 물에서 자라고, 물은 나무 숲 사이로 흐른다(樹在水裏長, 水在林中流). 호수에 담긴 물은 옥빛인데 급류를 이루며 세차게 흐르는 물은 어찌 저리도 하얗게 부서질까. 호수의 물과 급류의 물을 번갈아 바라보니 마치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흘러가는 듯하다.


코뿔소바다(犀牛海)라는 큰 호수가 펼쳐진다. 호수의 물은 아무런 숨길 것이 없는 천진무구한 아이처럼 제 모든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푸른 하늘, 흰 구름, 산과 나무, 날아가는 새는 참 맑은 옥거울을 만나 저마다 얼굴을 비춰본다. 구름은 물속으로 흐르고, 새는 물속에서 난다(雲在水中流, 鳥在水中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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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자이거우 관람 지도 ▲ ‘Y’자 형태로 된 지우자이거우는 전용버스를 타고 관람하게 된다. ⓒ 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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뤄르랑(諾日朗)폭포 ▲ 맑은 물빛에 얼음도 엷게 푸른빛을 띤다. ⓒ 김대오

'Y'자 형태로 된 갈림길 부근에 장족어로 남자 신을 뜻한다는 뤄르랑(諾日朗) 폭포가 있다. 폭이 320m나 된다는데 겨울이어서 수량이 많지 않아 웅장함은 덜하다. 2017년 이곳을 강타한 지진의 흔적도 남아 있지만 물줄기와 곳곳의 빙벽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맑은 물빛에 얼음도 엷게 푸른빛을 띤다. 얼음은 물에서 나오지만 물보다 차갑고, 폭포는 호수에서 흘러내리지만 호수보다 결연하다.


전용버스는 'Y'자의 왼쪽 끝 장해(長海)에 데려다준다. 해발 3101m로 주자이거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한 호수다. 호수 가장자리는 얼었고, 멀리 햇살이 드는 곳만 푸른 물결이 인다. 호수 주변 측백나무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엔 가지가 없고 반대쪽만 가지가 남았다. 모진 한풍에 힘겨운 생존의 장면으로 그래도 의연하게 서 있다. 나무 숲 사이에 경전을 적은 오색 깃발인 타르초가 바람에 날린다. 바람은 누군가의 소원이 깃들었을 경전을 주인을 대신해 무한 반복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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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해(長海) 옆 타르초 ▲ 바람은 누군가의 소원이 깃들었을 경전을 주인을 대신해 무한 반복 읽고 있다. ⓒ 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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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지(五彩池) ▲ 노자가 말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는 이 물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어진다. ⓒ 김대오

해발 4000m 이상의 고산의 물이 장해에 고이고, 이 물은 또 아래의 연못들로 흘러가리라. 그 첫 번째 연못이 바로 오채지(五彩池)다. 황룽의 맨 위에 있던 연못과 이름이 같다. 오채지는 규모는 작지만, 물빛이 제일 맑고 영롱해 '주자이거우의 눈'으로 불린다. 하얀 눈이 쌓인 음지는 색감의 대비 때문인지 물빛이 더 짙푸르고, 햇살이 비추는 곳은 엷어지며 연푸른 에메랄드가 된다.


물빛을 표현할 언어의 빈곤을 느낀다. 문득 노자가 말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는 이 물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어진다. 노자가 함곡관에서 윤희에게 도덕경을 강론하고 떠나면서 청양사(靑羊寺)에서 자신을 찾으라고 했다고 하고, 함곡관, 청양사는 모두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니 노자도 필경 저 물을 봤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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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화해(五花海) ▲ 물빛을 향한 언어는 이미 바닥이 났고, 그저 묵묵히 푸른 거울을 들여다 볼뿐이다. ⓒ 김대오

이번에 버스는 'Y'자 형태의 오른쪽 계곡으로 올라 오화해(五花海)에 도착한다. 물빛을 향한 언어는 이미 바닥이 났고, 그저 묵묵히 푸른 거울을 들여다 볼뿐이다.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을 그대로 담고 있는 아득한 심연에 내 초라한 그림자가 비친다.


깊은가, 깊지 않은가 아무 것도 숨기지 않고 자신을 드러낸 물의 깊이를 세상의 온갖 기준에 혼탁해진 내 눈은 감히 측량할 수 없다. 이곳은 1970년대 초반까지 대규모 벌목이 성행했다는데, 운반 중에 떨어뜨린 나무가 썩지 않고 그대로 물속에 누워있다. 맑은 물은 상처까지도 아름답게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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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탄(珍州灘) ▲ 얕게 흐르는 물 위에 선 키 작은 나무들은 고드름 옷에 붉은 열매를 달고 윤슬의 눈부심 속에 졸고 있다. ⓒ 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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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이거우 ▲ 동화세계처럼 맑은 주자이거우의 자연은 그렇게 무위의 위, 그 한 차원 높은 도의 경지를 보여준다. ⓒ 김대오

오화해 위로 팬더가 물을 마신다는 팬더호가 있는데 버스는 더 올라가지 않고 발길을 돌려 진주탄(珍州灘)으로 인도한다. 얕게 흐르는 물 위에 선 키 작은 나무들은 고드름 옷에 붉은 열매를 달고 윤슬의 눈부심 속에 졸고 있다. 계단을 내려오자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진주탄폭포가 펼쳐진다. 졸졸졸 잔잔하던 피아노 선율이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교향악의 협연처럼 웅장한 소리를 만든다. 물줄기마다 각기 다른 악기가 연주되며 쏟아진다.


폭포를 뒤로하고 걸어 내려오는데 '8.8석'이라는 붉게 새겨진 바위가 강가에 놓여 있다. 2017년 8월 8일 규모 7.0 강진이 이곳을 강타했던 흔적이다. 522톤의 바위가 약 300미터를 굴러내려 왔으니 그때의 참상을 짐작하게 한다. 그렇게 주자이거우의 맑은 물은 흙탕물로 변했고, 곳곳에 상처를 입었다.


더럽혀진 물은 어떻게 다시 맑아졌을까? 인간이 들어가 뭔가 하면 할수록 물은 더 더럽혀진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無爲)'리라. 자연은 '무위의 위'로써 더러워진 물을 다시 맑게 회복했다. 주자이거우의 자연은 그렇게 무위의 위, 그 한 차원 높은 도의 경지를 보여주며 오늘도 꾸밈없이 맑고 깊은 심연의 거울로 흘러가는 하늘, 구름, 산, 나무, 새와 벗한다.


김대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