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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 ]

'터줏대감' 김혜수도 놀란 파격 선택... 감격스런 장면

by오마이뉴스

[하성태의 사이드뷰] 제41회 청룡영화상이 만들어낸 긍정적인 기운

오마이뉴스

'제41회 청룡' 김희애, 중후한 아름다움 ⓒ 스포츠조선

"저희 영화 <윤희에게>는 '퀴어영화'입니다. 보시다시피 지금은 LGBTQ 콘텐츠가 자연스러운 2021년입니다. 그게 정말 기쁘고요. 앞으로 더 고민해서 좋은 영화 찍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9일 오후 열린 제41회 청룡영화상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 <윤희에게> 임대형 감독의 수상 소감이다. 누군가에겐 생각보다 낯설 '퀴어영화'란 표현이 SBS 생중계를 통해 전국으로 타전됐다.


2021년과 'LGBTQ 콘텐츠'의 조합은 자연스러운데 SBS란 지상파와 '퀴어영화'의 연결은 꽤나 낯설다. 청룡영화상이라, 한국영화계라 가능한 장면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윤희에게>가 김희애가 주연을 맡았음에도 2019년 말 개봉 당시 '퀴어영화'임을 전면에 내세우지 못했던 걸 떠올려 보면 가히 감격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코로나19 여파로 한 차례 연기되기 전, 지난해 11월 후보작(자)들이 발표됐을 때부터 예상된 파격이었다. 청룡영화상은 작품상 후보로 <윤희에게>를 비롯해 <남매의 여름밤>, <남산의 부장들>, <소리도 없이>, < 82년생 김지영 >을 목록에 올렸다. 2편이 독립/인디영화였고, 또 다른 2편은 비교적 저예산에 해당하는 영화였으며, 그 중 한 편은 페미니즘 논쟁이 불붙었던 영화였다.


특히 <윤희에게>나 <남매의 여름밤>의 후보 선정은 코로나19로 인해 기존 상업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연기하거나 넷플릭스로 향한 상황임을 감안해도 파격적이라 할 만 했다. 여기에 데뷔작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을 연출한 임대형 감독에게 감독상과 함께 각본상까지 안기면서, 올해 청룡영화상은 앞선 파격이 우연이 아님을 입증해내고 있었다.


그런 청룡영화상이 입증한 것은 파격이 전부가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최악의 위기를 맞은 영화계에 불고 있는 어떤 바람을 청룡영화상 심사위원들이, 그리고 수상자들이 여실히 반영하고 있었다. 실로 긍정적이고 반가운 변화의 바람 말이다.

파격, 그리고 변화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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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청룡' 김혜수-유연석, 청룡의 사회자들 ▲ 김혜수와 유연석 배우가 9일 오후 비대면으로 열린 제41회 청룡영화상 레드카펫과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스포츠조선

"네, 41회 청룡영화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청룡영화상다운 파격적인 시상입니다."


<정직한 후보>의 라미란이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청룡상의 터줏대감인 진행자 김혜수도 이렇게 놀라움을 표현했다. <윤희에게>의 김희애, <디바>의 신민아,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짐승들>의 전도연, < 82년생 김지영 >의 정유미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수상한 라미란 역시 놀랐다는 듯 "저한테 왜 이러세요"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 수상 소감을 이어갔다.


"코미디 영화여서 사실은 노미네이트 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울먹) 왜 상을 주고 그러세요. 34회때 제가 조연상을 수상했었는데 그때 다른 곳에서 상을 받으면서 우스갯소리로 다음엔 주연상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라고 했는데 노미네이트가 되자마자 받아버렸네요.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작년에 우리가 너무 어려운 시기를 지내왔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작은 웃음이라도 드린 것에 많은 의미를 주시지 않았을까 (합니다)."


정말 그랬다. 코미디 영화는 한국의 영화상에서 비주류로 취급받아왔고, 그건 코미디/뮤지컬 부문을 따로 수상하는 골든글로브를 제외하고 예술성이나 완성도를 따지는 유수 영화상에서도 크게 다를 바 없는 일종의 관습이라 할 수 있었다. 한편으론 대중의 기호와 달리 완성도 높은 코미디가 그만큼 많지 않았다는 반증일 수 있고.


그 일종의 '영화상 비주류' 장르인 코미디 정치 코미디 <정직한 후보>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라미란의 수상은 특히나 여우주연상에 있어서 파격을 이어온 청룡영화상 다운 선택이었다. 김혜수도 놀라움을 표시했듯, <히말라야>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지 4년 만에 라미란은 처음 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자 마자 주연상을 수상한 파격의 주인공이 된 셈이고.


올 청룡영화상의 전체 경향이 대체로 그런 방향이었다. <윤희에게>와 <남매의 여름밤>을 주요 후보에 올린 것과 더불어 수상작(자)들의 면면 또한 새로운 기운을 전하는 작품과 인물이 다수였다. <소리도 없이>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유아인 역시 그러한 경향에 놀라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소리도 없이>란 작품이 알려진 것처럼 저예산에, 아주 독특한 스타일의 요즘말로 호불호가 나뉘는 영화다 이런 평을 많이 들었는데, 배우로서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내가 어떤 작품에 참여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참 커지는 거 같아요.


(목소리를 바꾸며) 와, 막 200억짜리 블록버스터 제안이 들어왔는데 내가 이런 걸 한 번 할 때도 됐는데 해 볼까! 사람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인기상도 타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고. 저 또 이러고 있네요."


지난해 10월 개봉, 40만 관객을 동원한 <소리도 없이>는 상대적으로 저예산으로 만든 비범한 범죄 드라마였다. "선배들과 영화인들에게 영감을 많이 얻었다"던 유아인이 농담 반 진단 반 '200억짜리 블록버스터'를 거론했지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경쟁자와 경쟁작들의 면면이 실제 그랬다.


이날 유아인은 <남산의 부장들>의 이병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이정재, <강철비2: 정상회담>의 정우성,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황정민까지 한국영화계에서 독보적인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선배 배우들을 제치고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윤희에게>의 임대형 감독, <정직한 후보>의 라미란 못지않은 파격이라 할 만 했다.

청룡이 전한 안부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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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청룡' 박정민, 변화무쌍한 남자 ⓒ 스포츠조선

"예상은 못했지만, 아주 작은 기대 정도는 하고 있었거든요. 만약에 제가 이 마이크 앞에서 딱 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할 수 있다면, 딱 한 분이 떠오르더라고요. 사실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촬영할 때 항상 '괜찮냐'고 물어봐준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늘 저의 안부를 물어주고 궁금해 해주던 친구가 작년에 하늘나라에 갔어요. 근데 아직 제가 그 친구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제가 만약 상을 탄다면 '괜찮냐'고 물어봐 주지 못한 거에 대해 사과하고, 하늘에서 보고 있는 그 누나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더욱 열심히 최선을 다해 연기하겠다고 꼭 얘기해 주고 싶었습니다."


망설이던 박정민이 조심스럽게 수상소감을 이어갔다. <윤희에게>는 LGBTQ 영화였고, 박정민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트랜스 여성' 캐릭터를 연기했다. 이 또한 파격일 수 있지만, 박정민의 관심은 조금 다른 개인의 영역에 천착하고 있었다.


지난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방송인 고 박지선과 친분을 나눠왔다는 박정민이 그 '친구'를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심정을 위와 같은 수상 소감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암살 직전의 박정희'를 연기한 이성민을 비롯해 신정근, 유연석, 이희준 등 쟁쟁한 선후배를 뒤로 한 채 무대에 오른 박정민의 입에서 나온 수상소감은 다소 의외였지만 분명 진심이 전해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소감은 또 있었다. 한 여성 노동자의 삶과 현실을 그린 단편영화 <실>로 조민재 감독과 함께 단편영화상을 수상한 이나연 감독은 "저에게 지난 2년 동안의 시간은 <실>을 만들고 떠나보낸 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면서 일상을 지켜내려던 시간이었다"고 운을 뗐다.


시상식 직후 명필름 심재명 대표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한국영화 성평등센터 '든든' 관계자로서 이토록 멋진 젊은 여성영화인의 수상소감을 들으니 잠시 가슴이 뜨거워집니다"라는 응원을 보낸, 이나연 감독이 또박또박 발성해 나간 안타까우면서도 '뜨거운' 소감은 이랬다.


"그 과정에서 영화 성평등센터 든든의 도움을 받았는데요. 바쁘신 와중에도 든든을 운영해주셨던 여성 영화인들에게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피해생존자들이 용기를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는 현장을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작품상은 11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남산의 부장들>이 수상했다. 우상호 감독은 <내부자들>에 이어 두 번째로 작품상을 받게 됐다. 어느 정도 예견됐던 수상이라는 중평이었다. 그럼에도 올해 청룡영화상의 선택은 전반적으로 젊고, 새로웠으며, 세심했다.


넷플릭스로 공개된 영화들이 후보작(자)에서 눈에 띄지 않은 가운데 두 여성 배우의 연기가 빛을 발한 영화 <콜>의 박신혜, 전종서가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은 아쉬움을 던져줬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넥플릭스를 통해 공개돼 전 세계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승리호>가 내년 청룡영화상 후보에 이름을 올릴지 궁금해지는 대목이고.


< 82년생 김지영 >의 김미경, <결백>의 배종옥 등 선배 연기자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같이 연기한 박혜수를 제치고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이솜 역시 어떤 새로운 기운을 전하는 수상자 중 한 명이었다. 이솜은 수상 소감에서 "영화를 참 좋아하다"고 털어놨다.


최수종 배우, 민규동 감독, 김홍선 감독,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조혜정 중앙대 교수, 윤성은 영화평론가, 민창기 스포츠조선 편집국장 등 제41회 청룡영화상의 8인의 심사위원도 이솜과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한국영화를 참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그리고 영화인들에게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도 한국영화는 활력을 이어 갈 것이라는 다짐을, 그리하여 위기를 극복해 낸 후에 또 다시 반갑게 만나자는 안부인사를 전하고픈 마음 말이다. 이날 청룡영화상의 파격은, 그리고 수상자들의 안부인사는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은 한국영화계에 긍정적인 기운을 전달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