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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직원에 고개 숙인 최태원식 리더십이 주목받는 이유

by오마이뉴스

성과급 논란에서 보여준 '다른 길'...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가치 중시 행보



오마이뉴스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일 서울상공회의소 차기 회장 겸 경제계를 대표하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단독 추대됐다. ⓒ 연합뉴스

"세상이 바뀌고 있는 거예요. 예전 같은 대기업 씨이오(CEO) 이미지와 역할로는 지금의 경영환경에 맞지 않다는 거예요. 특히 앞으로 기업을 이끌어갈 젊은 직원들을 데리고 가려면…"


최근 만난 4대 그룹의 한 중견 임원 말은 의외였다. 코로나19 위기와는 별개로 기업을 둘러싼 내부 분위기가 해를 거듭할수록 크게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 에스케이(SK) 하이닉스에서 벌어진 성과급 논란은 대표적인 사례"라면서 "연봉도 아니고 보너스에 대해 젊은 직원들이 직접적으로 반발하고, 그룹 총수가 고개를 숙이고 연봉을 반납하는 모습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달 초 SK 하이닉스의 성과급 논란은 그의 말대로 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이 고개를 숙이면서 일단락됐다. 최 회장이 직접 자신의 급여를 반납하겠다고 하자, 이석희 하이닉스 대표이사(CEO)도 공개 사과와 함께 성과급 산정기준을 바꾸기로 약속했다. 그러자 삼성전자를 비롯해 현대자동차 그룹 등의 직원들 사이에서 "우리 회장님, 사장님은 왜 조용한가"라는 불만이 나올 정도다.


또 다른 그룹의 고위 임원은 기자에게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최 회장이 이번 논란에서 가장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다"면서 "(최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까지 맡았으니, 이제 재계는 그의 리더십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수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신규 투자에 대한 결단과는 별개로 기업의 투명한 지배구조와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실천해가는 최태원식 리더십을 주목해야한다는 것이다.

유명무실 전경련 대체하는 대한상의 회장으로

그동안 재계를 대표했던 곳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였다. 삼성을 비롯해 국내 주요 재벌 대기업이 주요 회원사였고, 이들 총수들이 회장을 맡으면서 재계 입장을 대변해 왔다. 하지만 지난 박근혜정부 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이들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됐었다. 이후 삼성과 엘지, 현대기아차 등 주요 그룹사들이 탈퇴를 선언했고 현 정부 들어선 거의 유명무실한 단체로 전락했다.


전경련은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아 새 회장을 찾아왔다. 하지만 4대 그룹이 빠진 상황에서 다른 총수들도 회장직을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최태원 회장이 재계의 또 다른 단체인 대한상의 회장으로 나서면서, 전경련의 입지는 더욱 작아지게 됐다. 현재는 지난 2011년부터 10년동안 지에스(GS) 그룹의 허창수 명예회장이 회장직을 맡고 있다. 올해도 마땅한 회장이 나서지 않을 경우, 허 회장이 계속 자리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대한상의는 재계 뿐 아니라 향후 정부를 상대로 한 협상 창구로서의 위상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아우르는 18만 회원사와 함께 138년 역사에서 4대 그룹 총수가 회장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 회장도 지난 1일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M16 반도체 준공식에서 "대한상의와 나라 경제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겠다"고 말하면서 사실상 회장직을 수락했다.


물론 그의 앞에 놓인 여정은 만만치 않다. 당장 코로나19로 인한 산업간, 기업간 격차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계에 봉착한 중소기업의 도태와 함께 대기업의 경쟁력 강화도 중요하다. 게다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비롯한 공정경제 관련 법률, 이익공유제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분위기도 높아지고 있다. 또 다가오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비롯해 대선 등 정치적 일정도 재계 입장에선 부담이 될 수 있다.

사회적 가치 중시... 정부와 교감 이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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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일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M16 준공식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4대 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코로나 위기와 함께 불확실한 정치사회 이슈들이 기업들 입장에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최 회장이 재계의 맏형으로서 정부 등을 상대로 협상 창구에 나설 수 있는 적임자"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정부의 재계 창구였던 전경련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도 대한상의 회장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며 "최 회장이 그동안 중요하게 여겼던 사회적 가치 등도 현 정부의 기조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실제 최 회장은 그동안 사회적 책임을 유독 강조해 왔다. 단순한 이익 창출을 넘어서 사회적 가치 창출을 통한 지속가능한 기업을 주장해왔다. 그는 아예 SK그룹의 모든 계열사를 상대로 사회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실천 방안을 제시하고, 이를 해당 기업 CEO 등 인사에 대한 주요 평가 항목으로 삼고 있다.


또 기업 입장에선 환경 문제 개선을 비롯해 사회공헌, 지배구조 개선 (ESG-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등은 이미 대세가 되고 있다. 최 회장 역시 평소에도 ESG를 경영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지난해 9월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기업 경영의 새로운 원칙으로 ESG를 축으로 하는 파이낸셜 스토리 경영을 설정, 방법론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같은 숫자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에 연계된 실적, 주가,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꿈을 하나로 인식하는 것이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생존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 SK 그룹은 지난달 ESG 경영 강화를 위해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그룹 경영전반을 논의하는 최고협의체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안에 환경을 다루는 '환경사업위원회'와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거버넌스 위원회'를 새로 만들었다. 또 사업적으로는 국내 기업 처음으로 기업의 소비전력 100%를 재생 에너지로 사용하자고 제안한 것도 하나의 좋은 본보기다.

재계·정부·시장이 주목하는 '다른 길'

정부도 최 회장의 역할에 어느 정도 기대를 보이는 눈치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SK 바이오사이언스의 코로나19 백신 생산시설을 방문해 최태원 회장과 SK 그룹을 언급하면서 특별한 감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대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한 주요 정책과 제도 역시 기업쪽의 협력이 필요하다. 당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이익공유제 역시 재계의 협조 없이는 쉽지 않다. 이 대표는 지난 9일 카이스트 경영대학 간담회 자리에서 최 회장의 사회적 가치 경영을 높게 평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에 따라 최근 민주당 지도부에서 최 회장에게 제안한 '당정청과 재계, 3+1 협의체' 구성도 관심을 받는다. 양향자 최고위원은 "최 회장이 직접 협의체 출범을 위한 워킹 그룹 구성에 나서준다면 대한민국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경제상황과 재난지원금 등 여러 현안에 대해 재계의 입장을 들을 수 있는 창구가 있어야 한다"면서 "기술산업계와 재계의 컨트롤 타워를 최 회장이 맡아 주시면 좋겠다"고도 했다.


물론 아직 최 회장 쪽에선 조심스럽다. SK그룹 관계자는 "대한상의 회장으로 공식 취임하는 오는 3월까지는 재계를 포함해 각계의 의견을 들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맏형으로 최 회장은 이제 새로운 도전에 섰다. 그는 30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대규모 투자를 지휘했고, 직원들의 성과급 논란에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연봉을 선뜻 내놓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가치의 중요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앞선 재벌 총수들이 걸어왔던 길과 사뭇 다른 길이다. 재계와 정부, 시장은 그의 새로운 길을 주목하고 있다.


김종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