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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 ]

"후배 때렸다" 이 선수의 돌발행동이 가져온 예상외 결과

by오마이뉴스

[하성태의 사이드뷰] 드라마 속 '학교 폭력', 그리고 폭로의 연쇄가 준 사회적 교훈


"저 동료 후배들을 폭행했습니다."


달려야 할 선수가 달리기를 멈췄다. 그리고는 카메라 앞에서 '셀프 폭로'에 나섰다. 육상계 간판선수의 돌발행동에 기자들의 질문과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이를 지켜보던 국회의원 아버지도, 에이전시 대표도, 마음이 가는 여성 통역사 오미주(신세경 분) 눈이 휘둥그레 놀랄 일이 맞다.

오마이뉴스

▲ JTBC 드라마 스틸 컷 ⓒ JTBC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런 온>의 단거리 육상 국가대표 기선겸(임시완 분)의 폭력엔 이유가 있었다. 아끼던 후배 우식(이정하 분)이 동료들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폭행 가해자들을 신고해봐야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폭행 가해자들을 직접 때렸고, 오히려 자신이 가해자라고 감독이나 코치, 연맹에 알렸다. 자신과 함께 진짜 가해자들도 처벌받길 바라는 심산이었다.


그는 팀 내 만연한 폭행의 악순환을 끝내고 싶었다. 적어도 자기가 속한 팀이나 육상계에서 이를 공론화하고 싶었다. 본인의 선수 생활을 걸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감독이나 코치, 가해자들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감독과 코치들은 "너만 입 다물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고 "왜 너만 튀려고 하느냐", "다음 경기는 어떻게 할 거냐"는 볼멘소리가 난무했다. 연맹도 육상계에 피해가 돌아올까 쉬쉬했다. 가해자들은 반성은커녕 후배인 피해자를 괴롭혔고, 피해자는 도리어 팀이 자기 때문에 피해를 입을까 입을 다물고 전전긍긍해야 했다.


억눌렀던 정의감을 폭발시킨 이 육상선수가 돌발행동에 나선 이유다. 국가대표를 둘러싼 환경이 이럴 진데, 이 기선겸이 어릴 적부터 운동을 해 온 학교 체육 현장은 어땠을까. <런 온>의 기선겸은 결국 체육계 폭력을 세상에 알린 후 선수 생활을 은퇴한다. '청년' 기선겸의 정의감은 드라마의 주제와 맞닿아 있었다.


드라마는 드라마다. 세상은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스포츠 선수들은 정의감을 발휘하기보다 자기 위주로 돌아가는 세상의 방식에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편한 게 편한 거다. 인간은 다 비슷하다.


굳이 분류하자면 멜로드라마인 <런 온>이 기선겸을 내세워 체육계 폭력을 세련된 방식으로 고발했다면, 최근 한국의 장르 드라마는 학교 폭력과 왕따 문제를 훨씬 더 적극적으로 끌어안는다. 지난해 화제를 모은 작품 중 주인공이 고등학생인 경우엔 거의 예외가 없을 정도였다. 특이한 것은 그 양상이 매우 다채로우면서 구체적이란 사실이다.

'런온'과 10대 학원물, 그리고 쌍둥이 자매가 쏘아올린 작은 공

OCN <경이로운 소문>은 학교 폭력을 극 초반 매우 중요한 갈등 요인으로 내세운 드라마다. 가해자는 신명휘(최광일 분) 시장의 아들이자 일진인 신혁우(정원창 분)와 그 패거리들이고, 주인공 소문(조병규 분)은 이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있던 친구들을 구하면서 '카운터'로서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한다.


더군다나 신혁우는 전형적인 권력자의 아들로서 학교 내 폭력의 온상과도 같은 인물이다. 후반부 그 신혁우도 아버지 신시장의 폭력으로 인한 피해자임이 드러나고 아버지의 몰락과 함께 신분(?)의 급전직하를 겪긴 한다.


하지만 <경이로운 소문>은 그런 곁가지를 진지하게 다룰 생각이 없다. 그에 앞서 이 권력자의 아들은 한껏 폭력을 휘둘렀고, 권력을 누려왔고, 소문과 친구들을 괴롭혀왔다. '카운터'의 힘을 획득한 소문은 이들 일진들을 응징하고, 드라마는 거기서 권선징악의 쾌감을 선사한다.


폭력이나 욕설 표현의 수위를 높일 수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인간수업>과 <스위트홈> 모두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가 초반 주인공들의 '동인'으로 작용한다. 주인공이 '은둔형 외톨이'가 되거나 온라인 10대 성 범죄의 설계자로 뛰어들게 된 계기의 한 축이 바로 학교 폭력인 셈이다.


10대 학원물이자 장르물의 공통분모가 바로 이 학교 폭력이고, 주인공의 공통점이 그 학교 폭력의 피해자란 사실이다. 웹툰 원작이거나 오리지널 스토리이거나 바뀌는 것은 없다. 지금, 여기의 작가들이, 창작자들이 바라보는 학원의 풍경이 바로 학교 폭력이란 공통분모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의 세상을 꼭 닮아 있는, 위력에 의한 폭력과 그 폭력이 사회 전반을 움직이는 작동방식에 다름 아니다. 연쇄 고리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건을 불러일으키고, 피해자를 양산하는 반면 그 해결책은 요원해 보인다.


판타지를 동반한, 혹은 범죄물을 경유한 드라마들이 판타지 속 주인공의 초월적인 힘이나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은 활약에 의존하고 가해자들에게 벌을 주는 이야기 구조를 취하는 것도 어쩌면 현실의 반영일지 모를 일이다. 다만, <인간수업>의 경우 그 주인공조차 나쁜 선택에 빠져 더 나쁜 구조를 완성해나가는 데 일조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드라마는 드라마다. 이러한 장르물, 즉 10대 학교 폭력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서사들은 일반인이 발휘하기 힘든 능력을 발휘해 몸소 권선징악을 실천한다.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그러한 폭력이 타인에게 어떤 고통을 전가하는지를, 또 자신의 내면을 어떻게 좀 먹는지를 성찰한다.


동일한 소재의 드라마가 연이어 출현한 것은 확실히 유의미한 징후다. 또 역시 이를 반영하듯, '학교 폭력' 폭로가 체육계에 이어 연예계로까지 옮겨 붙었다.

드라마는 드라마다

오마이뉴스

▲ OCN 드라마 스틸 컷 ⓒ OCN

'체육계나 연예계는 빙산의 일각이다.'


잇따른 연예계 '학교 폭력' 폭로에 달린 어느 커뮤니티 사용자의 댓글이다. 배구계 이재영-이다영 자매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체육계를 뒤덮은 데 이어 연예계로 번졌다. 봇물이란 표현이 부족할 정도다.


온라인 상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과거 피해 사실을 가리키는 구체적인 증언과 증거들이 속출하고,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나 소속 팀, 회사의 대응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폭로가 양산되면서 사실 여부나 진위를 제대로 가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대로 허위거나 과장된 폭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소문이 소문을 낳고, 제3자가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에 나선 경우도 적지 않다. 그만큼 폭로를 다루는 언론보도도 그만큼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러한 폭로의 연쇄로 인해 한국 사회에, 엘리트 체육 현장에, 학교와 학원에 만연했던 학교 폭력이, 누군가들은 내면화했을 그 폭력의 대물림이 까발려지고 있다는 점이리라.


'체육계나 연예계는 빙산의 일각'이란 지적은 그래서 타당하다. 매스컴과 미디어에 노출되는 이들 외에도 '일반인들까지 그 영역을 넓히면 어마어마 할 것'이란 한탄이 속출하는 중이다.


폭로에 나선 피해자들은 물론 잇따른 폭로를 접하는 이들 모두가 원하는 것은 진실의 규명일 터. 폭로 사실의 진위여부가 명백히 가려지고 또 다른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이후 가해 사실이 확인된 이들의 온전한 사과와 정당한 사회적 처분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피해자들의 연이은 폭로로 인해 학교 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인 건 맞다. 체육인이든,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그리고 10대들 모두 매일의 폭로를 겪으며 그러한 경각심을 부지불식간에 갖게 되는 중이다.


이러한 공동체의 각성이야말로 이번 '학교 폭력' 폭로의 연쇄가 가져다 준 사회적 교훈이 돼야 할 것이다. 연이은 10대 학원물이 학교 폭력 피해자를 내세운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