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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중국 화장실엔 문이 없더니, 쿠바 화장실엔 '이게' 없다

by오마이뉴스

[40대 백수가 얼떨결에 간 쿠바] 아바나에 도착하다


지난해 2월 19일부터 3월 1일까지 다녀온 쿠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행 직후 전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싣지 못했던 여행기를 1년을 맞아 공유하고자 합니다.

환전과 공무원

밤 11시, 공항에서 나와 가장 먼저 할 일은 환전이었다. 단체 관광이기에 당장 택시를 탈 필요도, 카사(숙소)를 잡을 필요도 없었지만 그래도 환전은 기본이었다. 게다가 공항 말고 시내에서 환전을 하려고 해도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하니 환전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쿠바의 화폐는 외국인 전용 CUC(쿡)와 내국인 전용 CUP(모네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런 이중화폐 제도는 80년대 말 동구권 몰락 이후 생존을 위해 본격적으로 관광산업을 키우기 시작한 쿠바의 고육지책으로, 이를 통해 쿠바는 미국의 경제제재를 피해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했다.


때문에 쿠바에서의 환전은 수수료를 많이 내야 하는 미국 달러보다 캐나다 달러나 유로화가 유리했다. 환율은 1쿡에 1달러, 1쿡에 24모네다 정도였는데, 외국인과 내국인의 물가 차이가 얼마인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액면으로는 24배 차이였지만 쿠바 사람들도 공산품을 살 때는 쿡을 이용한다고 했고, 외국인도 여행을 하다 보면 모네다를 쓰게 된다고 했다.


특히 내국인의 화폐 중에서 외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것은 3모네다라고 했다. 그 지폐와 동전에는 체 게바라의 초상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었는데, 150원 정도 하는 화폐가 우리 돈으로 2400~3600원으로 거래된다고 했다. 화폐 자체가 기념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체 게바라는 자기 때문에 돈을 돈 주고 사는 이 현상을 상상이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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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공항의 환전소 ⓒ 이희동

환전하기 위해 줄을 섰다. 모든 일행이 마찬가지이므로 줄이 길었는데 무슨 일인지 줄이 빨리 줄지 않았다. 뭐지? 환전하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거지?


수수께끼는 금방 풀렸다. 환전을 안내하는 사람과, 환전하는 사람 모두가 느릿느릿 천하태평이었다. 환전소가 국영이라니 이들 모두 공무원일 텐데, 그들은 늦은 시간에 환전하겠다고 줄을 길게 선 우리가 보이지 않은 듯했다. 오히려 퇴근시간이 되었는지 두 명이 환전하다가 한 명이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뭐 이런 경우가 있는가 싶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공무원이 국민들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의 현재 기준일 뿐, 우리의 관공서도 예전에는 불친절하기 짝이 없지 않았던가. 게다가 쿠바는 공산주의국가이니만큼 관료제가 더 심할 것이다.


드디어 내 차례. 12시가 넘었는데도 환전하는 이의 손놀림은 느릿느릿했다. 지폐를 세는 기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확인시켜주려는 듯 한 장 한 장 보여주었다. 좋게 해석하면 믿음을 주려는 행동이었겠지만, 지금 나의 상태는 고맙다고 하기에 너무 지쳐 있었다. 설마 쿠바에서 계속 이런 상황과 맞부닥치는 건 아니겠지?

괜찮아, 여긴 쿠바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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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화장실의 변기. 뭔가 다르더라도 당황하지 말자. ⓒ 이희동

환전을 끝내고 버스에 오르기 전 화장실에 들렀다. 생각보다 화장실의 위생 상태는 양호했으나, 다른 곳에서 당황하고 말았다. 출국하기 전 책에서 읽었던 대로 변기 커버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은 화장실 문이 없어 당황시키더니, 쿠바는 커버 없는 변기라니.


그 뒤로도 나는 여행 내내 화장실에 들를 때마다 습관처럼 변기 커버를 확인했지만, 쿠바에는 대부분의 화장실에 십중팔구 변기 커버가 없었다. 뭐지? 사람들이 떼어간 건가? 아님 원래 그런 건가? 쿠바 사람들은 커버 없이 볼일 보는데 익숙해져 있는 건가?


의문은 숙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풀어졌다. 가이드는 쿠바의 전반적 상황에 이야기 해주었는데, 쿠바를 아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에 모든 물자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공산품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니 상상 이상의 일이 쿠바에서 벌어질 것이라나. 짐작컨대 변기 커버 없는 것도 이런 쿠바의 사정과 관련이 깊은 듯했다.


쿠바의 물자 부족 상황은 이후 여행을 다니면서 계속 확인할 수 있었다. 적지 않은 쿠바인들이 외국인 관광객에게 와서 뭔가를 줄 수 있냐고 물었는데, 그 중 가장 단골 메뉴는 다름 아닌 비누와 세제였다. 가이드에 따르면 아침마다 많은 쿠바인들이 어떤 가게에 줄을 선 것은 비누나 세제를 얻기 위함이라고 했다. 열대라서 먹을거리는 해결이 되도 생활의 가장 필수품인 비누나 세제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북한이 떠올랐다. 쿠바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미국의 경제제재 속에서 살아가는 북한 인민의 삶은 어떠할까. 물론 바로 옆에 중국도 있고, 요즘은 평양도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실제 다른 지역 인민들의 삶은 물자부족으로 인해 역시나 피폐할 것이다. 가능하게 된다면 같은 민족인 우리가 충분히 도울 수도 있을 텐데, 언제쯤 가능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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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바나의Raquel 호텔 ⓒ 김혜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지금 타 있는 버스도 궁금해졌다. 자동차 수입도 힘들어 올드카가 돌아다니는 쿠바인데 이런 관광객들을 위한 전세버스는 어디서 오는 거지? 설마?


맞다. 가이드는 중국 버스라고 설명했다. 어떤지 중국에서 탔던 버스와 비슷하더라니. 동구권이 무너진 이후 중국은 전 세계의 얼마 안 되는 공산주의국가들의 형님 노릇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 이것이 중국의 저력이요, 세계 최강 미국과 싸울 수 있는 바탕일 것이다.


가이드는 쿠바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하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서, 여행을 다니다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질 것인데 그때마다 당황하거나 화내지 말고 다음과 같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괜찮아, 여긴 쿠바니까.' 그래, 한국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책 제목들이 저와 비슷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구나.

아바나에서의 첫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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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드 아바나의 밤거리 ⓒ 박종삼

30분쯤 이동했을까.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더니 버스는 어느 항만가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그곳은 숙소가 있는 올드 아바나로 더 이상 버스가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라고 했다.


올드 아바나는 중세의 흔적이 잘 남아있는 유럽의 어느 작은 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오래된 고딕체의 성당이 보였고, 광장이 있었으며, 족히 100년은 넘어 보이는 돌길이 깔려 있었다. 쿠바가, 아바나가 이런 곳이었어? 처음 마주친 아바나의 풍경은 마냥 쿠바를 못 사는 공산주의국가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을 깨기에 충분했다.


일행들과 함께 캐리어를 끌고 호텔로 향했다. 울퉁불퉁 돌길에 캐리어를 끌기 쉽지 않았지만, 도로 주변에 위치한 고색창연한 건물들에 넋이 나가 신경 쓸 새도 없었다. 올드 아바나는 1500년대 스페인 식민지 때 만들어진 구도심으로서 1982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고 한다. 좁은 공간에 1500년대 스페인식 건물과 1900년대 근대 건물이 뒤섞여 묘한 매력을 풍기고 있으니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 수밖에.


거리는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돌아다니기로 하고 호텔에 들어갔는데 이런, 호텔 그 자체도 하나의 문화유산이었다. Raquel 호텔이었는데 1908년에 지어진 건물이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까지도 그대로 이용되고 있는 중이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호텔 내부 곳곳은 이곳이 얼마나 화려한 곳이었는지 증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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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엘리베이터 ⓒ 박종삼

특히 그 중에서도 로비 한 구석에 위치한 엘리베이터가 가장 눈에 띄었는데, 영화에서 보면 등장하는, 쇠창살문을 닫고 오르내리는 바로 그 기계였다. 그것은 마치 우리를 100년 전으로 안내하는 타임머신 같았다. 쿠바 아바나에 와서 이런 경험을 할 줄이야.


모든 것이 신기하고 낯설었지만 짐을 풀고 잠을 청해야 했다. 24시간이나 깨어있었던 만큼 피곤하기도 했고, 자지 않으면 내일 잘 돌아다닐 수 없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물론 자기 전에 일행 일부와 약소하게 술 한 잔을 했지만 그건 훗날과 비교하면 애교 수준일 뿐이었다. 이렇게 쿠바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갔다.


이희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