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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도박만이 삶의 전부였던 한 남자의 최후

by오마이뉴스

[넘버링 무비 189] 영화 <올인 게임>



오마이뉴스

영화 메인포스터 ▲ 영화 메인포스터 ⓒ 넷플릭스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매일 돈이 굴러 들어온다니까요."


시카고 컵스의 경기장에서 매치 데이마다 교통 정리 일을 하는 에디(제이크 존슨 분). 그는 경기장을 관리하는 정규직 직원도 아니면서 경기 때마다 몰려드는 자동차들을 보며 이런 너스레를 떤다. 자리가 날 때마다 경기장 관리인의 연락을 받고 겨우 일당을 챙기는 그는 그렇게 번 돈을 들고 허름한 뒷골목의 창고, 일명 하우스라 불리는 사설 도박장으로 향한다.


푼 돈 몇 푼을 들고 도박장으로 향한 이들의 결말이 언제나 그러하듯이, 그 역시 허무하게 일당을 모두 날리고는 지하철 첫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뿐이다. 다만 한 가지 다행이라면, 그가 생각보다 낯짝이 두터워 보인다는 것. 마치 자신이 주인이 되기라도 하는 듯 집 앞에 있는 식료품 가게에서 외상을 외친다. 외상에 외상에 또 외상. 다음 주에 꼭 갚겠노라 공언한 것이 벌써 몇 주 째다.


초췌한 얼굴로 돌아온 집에는 마이클(호세 안토니오 가르시아 분)이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리 사이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다짜고짜 검은색 가방 하나를 꺼내 보이는 마이클. 곧 교도소에 수감될 상황에 놓인 자신을 대신해 이 가방을 좀 맡아달라는 것이다. 그의 요구는 명확하다. 6-9개월의 수감 기간 동안 열지도 보지도, 만지지도 생각지도 않고 그냥 맡아만 주면 현찰로 1만 달러를 주겠다는 것. 어디서도 그런 큰 돈을 구할 수 있을 리 없는 에디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02.

현금 1만 달러를 대가로 의문의 검정색 가방을 맡게 되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영화 <올인 게임>. 이 영화는 다소 느리지만 단단하게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채워나가고 있는 배우 제이크 존슨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연극과 시나리오를 시작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한 그는 미국 드라마 <뉴 걸>의 닉 밀러 역으로 대중들에게 자신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이후 <쥬라기 월드>와 <미이라>와 같은 블록버스터의 조연을 꿰차며 업사이드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에서 피터 파커의 목소리를 연기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의 리스트 업 가운데 가장 괜찮은 역할을 맡은 것이다.


이 작품이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주연을 맡은 것 뿐만 아니라 시나리오를 직접 작성했다는 점에 있다. 비록 그가 다른 배우들에 비해 빠르게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것은 아니지만 대학 시절에 이미 희곡을 썼을 정도로 다양한 재능을 펼친 바 있는데, 영화 <올인 게임>이 그런 그의 여러 재능을 모두 담아낸 작품에 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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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컷 ▲ 영화 스틸컷 ⓒ 넷플릭스

03.

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위해서는 주인공인 에디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이었는지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자신의 현재를 돌보지 않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얼간이처럼 느껴지지만 말이다. 특히,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형 론(조 로 트루글리오 분)네 가족과 만나는 장면은 그가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벌써 몇 년째 지금과 같은 삶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버지가 남기고 떠난 조경 회사를 함께 운영하자는 형의 제안도 마다하고 있는 상황. 조경 일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밑바닥부터 일을 시작하기가 싫다는 것이다. 지금 진짜 밑바닥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충분히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데도, 그 조금의 노력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매번 실패하면서도 오늘 밤에는 한탕을 제대로 쳐서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헛된 꿈만 꾸면서.


이런 상황에서 그는 자신이 맡겠다고 한 가방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몰라도 정황상 돈이 될만한 물건이 들어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고, 만약 그렇다면 그걸 들고 도박장으로 뛰어가 오늘 들어 왔을지도 모르는 대박의 행운을 가만히 앉아서 놓칠 수는 없기 때문이니까. 그가 가진 최대한의 인내심은 이틀. 그는 마이클이 맡긴 가방을 결국 열어버린다. 가방 속에서 나온 것은 수많은 지폐 다발들. 매일 돈을 잃고 돌아오지만, 자신이 돈을 잃는 까닭은 장시간의 게임을 설계하고 운용할 만큼의 충분한 종잣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그 길로 가방 속에서 500달러를 들고 도박장으로 뛰어간다.


만약에 그 500달러라도 잃고 평소처럼 집으로 돌아왔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500달러면 금방 채워넣을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기도 하고, 그 정도면 정신을 차릴 만도 하니까. – 가방을 맡긴 마이클의 덩치와 인상을 보면 정신이 들 법도 하다. – 문제는 그가 그 날 밤에 2000달러가 넘는 돈을 따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평소에 돈을 잃어왔던 것이 정말로 종잣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증명이라도 하는 듯 말이다. 첫 끝발의 결과는 알지도 못한 채로.


04.

"저는 우연을 안 믿어요. 세상 모든 일은 필연이라고 생각해요. 제게 오늘은 운이 정말 좋은 날이었어요. 게다가 당신까지."


이야기도 이쯤 되면 한 번쯤 꺾어줄 필요가 있다. 로맨스 코미디의 평범한 캐릭터가 아니라 이 영화 속 에디와 같은 캐릭터라면 더더욱. 영화는 그 지점에 에바(에이슬린 델베즈 분)라는 인물을 가져다 놓는다. 에디가 주인 몰래 훔쳐온 돈으로 처음 잭팟을 터뜨린 날 친구들과 자주 가던 펍에서 우연하게 만나게 되는 여성이다. 두 사람은 밤새 같이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평생 공부만 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끌려온 에바와 평생 잃기만 하다 처음으로 도박판에서 돈을 딴 에디. 아마도 두 사람은 서로를 운명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늦은 밤 번호를 교환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그동안 에디의 삶이 무기력하고 어두웠던 이유가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꿈을 심을 만한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제 그에게도 한 줄기 빛이 생겨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시 또 도박장을 찾은 까닭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가 평생의 염원과도 같은 한 방을 성공시켜 그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렇게 찾아온 행운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는 강하고 헛된 예감으로부터 말이다. 결과는 -21,243 달러. – 이 영화에서는 그가 마이클의 돈을 꺼내 쓰는 시점부터 그가 도박판에서 쓴 금액이 화면 한 쪽에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 처음에 마이클의 가방을 맡아주고 받기로 했던 10,000달러 전부로도 갚을 수 없는 큰 빚이 생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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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컷 ▲ 영화 스틸컷 ⓒ 넷플릭스

05.

빈털터리, 아니 마이클의 돈까지 모두 다 잃은 그는 초췌한 모습으로 에바와 다시 만난 뒤에, 그녀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게 된다. 처음은 아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이 시궁창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러기 위해서는 마이클의 가방을 그가 출소하기 이전에 원상태로 되돌려 놔야 하고, 그런 부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친형인 론 뿐이다. 형은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싶다는 동생의 말을 반가워하면서도 스스로의 맹세를 손바닥 뒤집듯이 해 온 전력 때문에 못미더운 눈치. 하지만, 아버지가 남긴 조경 회사에서 밑바닥부터 6개월만 성실히 일을 하면 지금의 빚을 모두 갚아주겠다고 말한다. 어차피 마이클의 수감 생활 역시 6-9개월 정도 걸린다고 했으니 에디에게는 결코 나쁜 제안이 아니다.


에디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열심히 생활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새벽같이 일어나 일터로 향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몫만큼 열심히 했다. 그렇게 일을 해 번 월급으로 주말에는 에바를 만나 데이트를 하는 매우 정상적이고 행복한 시간들. 딱 한 통의 전화, 그 전화만 오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생각보다 조금 더 일찍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교도소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에디는 축하한다며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그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평화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고, 그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하는 상황.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형은 절대 먼저 갚아 줄 수 없다고 으름장이다. 그에게 남은 것은 마지막 하나. 다시 도박장으로 향하는 것뿐.


06.

외부의 상황에 흔들리며 각자의 선택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 한 인간의 삶이라지만, 이 작품 속의 에디는 그 선택의 양단의 폭이 커도 너무 크다. 이렇게 극과 극에 치우치는 선택만 반복되다 보니 그 이후에 감당해야 하는 후폭풍의 몫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삶이 언제나 후회 뒤의 각오와 계획만큼만 움직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삶은 언제나 그 예측치보다 훨씬 크고 넓은 반경으로 흔들리고, 개인을 절망에 빠뜨리곤 한다.


여기까지 그래온 것처럼, 이후 에디의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다. 계획할 수 없는 것들을 계획하고자 하고, 의지할 수 없는 그 약하디 약한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모험수를 던진다.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면, 과거와 달리 지금의 에디에게는 이 행위를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과욕이 되어 또 한번 선을 넘게 될지, 아니면 적절한 때에 멈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될 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말이다.


에디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그 답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있다.


조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