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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 ]

고3들도 꿰뚫어본 '펜트하우스' 작가·방송사의 꼼수 [아이들은 나의 스승]

by오마이뉴스

[아이들은 나의 스승] 고등학생들의 드라마 <펜트하우스> 품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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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모이면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중학생과 고등학생, 남학생과 여학생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개는 이 셋 중 하나다. 첫째는 게임, 둘째는 아이돌 같은 연예인,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이나 옷, 신발 따위의 '신상'에 관한 것이다.


그들과 종일 만나야 하는 교사라면, 그 셋과 관련된 기본적인 지식과 소양을 길러야 한다. 그러잖으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기 힘들고, 결국 소통은 시나브로 단절된다. 그들끼리의 천편일률적이고 자극적인 화제를 교육적으로 바루는 것도 교사의 중요한 역할이다.


최근 새로운 수다거리가 등장했다. 느닷없는 TV 드라마 이야기라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남자 고등학생이라 그런진 몰라도, 드라마를 화제로 대화를 나누는 걸 여태껏 본 적이 없다. 대학 입시에 목매단 고등학생들에겐 TV 앞에 앉을 시간적 여유도 없는 터다.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이야기다. TV를 끊은 지 10년도 더 된 터라, 솔직히 펜트하우스가 드라마 제목인지도 몰랐다. 주변에서 하도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라고 떠들어대서 과거 도색잡지의 이름을 딴 특정 개인의 유튜브 채널쯤 되는 줄로 알았다.


언뜻 통계 수치를 잘못 읽을 뻔했다. 축구 한일전이나 월드컵 결승전도 아니고, 요즘처럼 드라마, 예능 할 것 없이 대다수 방송 프로그램들이 시청률면에서 고전하고 있는 때에 드라마 한 편의 시청률이 30%에 육박한다는 걸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과거 온 국민의 퇴근길을 서두르게 만들었다는 드라마 <모래시계> 등에 버금가는 '역대급'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 교실로 쑥 들어온 <펜트하우스>


10대 아이들의 시청률도 그에 못지않은 듯하다. 통계 수치를 굳이 찾아볼 필요도 없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교실에서조차 화제가 되고 있는 것만 봐도 드라마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 드라마 속 남녀 배우들의 인기는 웬만한 아이돌 저리가라다.


백지상태로 그들의 대화에 끼었다. 삼삼오오 나눈 대화가 이내 커져 십수 명이 함께했다. 지금껏 줄곧 시청하고 있다는 아이는 적었지만, 나처럼 드라마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나더러 '속세와의 인연을 끊으셨냐'며 키득거렸다.


드라마의 내용을 전혀 모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인터뷰어'가 되고, 모여든 아이들은 '인터뷰이'가 됐다. 어떤 질문을 하든 그들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직접 본 적은 없고 인터넷 포털 등을 통해 내용을 전해 듣기만 했다더니, 죄다 거짓말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몇몇은 작가와 연출자의 면면은 물론, 배우의 이름과 역할, 성격까지 줄줄 꿰고 있었다. 심지어 이후 전개와 결말의 내용까지 예측할 정도로 '광팬'을 자처했다. 대체 얼마나 내용이 알차고 구성이 탄탄하기에, 목석같이 무뚝뚝한 남자 고등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시즌2 시작 후 하나 더 늘어난 부모님의 불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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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펜트하우스>를 처음 시청한 계기는 둘 중 하나였다. 우선, 부모님이 빼먹지 않고 즐겨보는 프로그램이어서 덩달아 보게 됐다는 것. 지금도 밤늦은 하굣길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면 TV 화면 속 배우들이 먼저 반긴다고 한다.


한 아이는 아들이 오는지도 모르고 TV에 푹 빠져 있는 부모님의 모습이 이젠 낯설지 않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 옆에 앉아 곁눈질하듯 보다가 부담스러워서 그만뒀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부모님의 이해하기 힘든 시청 태도 때문이란다.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본다며 흉을 봤다.


'저게 대체 말이 되는 이야긴가. 시청자를 대놓고 무시하는 것 아닌가. 방송사고 작가고 돈에 눈이 멀어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군. 차마 아이들 보기 민망할 정도인데, 방송심의위원회는 무엇 하는 사람들일까. 쯧쯧, 막장 드라마의 완결판이네…'


누가 보라고 강권한 것도 아닌데 왜 저럴까 싶었단다. 그렇게 혀를 끌끌 차면서도 부모님은 주말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고 한다. 아이는 부모님을 예로 들면서, 이 드라마가 우리 사회에 기여한 공로가 있다면, 많은 이들의 '월요병'을 없앤 거라고 조롱하듯 말했다.


드라마의 '시즌 2'가 시작된 지금은 'TGIF(Thanks God In Friday)'로 바뀌었다고 했다. 방영 시간이 월요일, 화요일에서 금요일, 토요일로 옮겨져서다. 그런데, 바뀐 뒤 부모님의 불평이 하나 늘었단다. 주말 밤이라 어린아이들이 맘 놓고 보게 될까 걱정스럽다는 거다.


교훈은커녕 감동도, 맥락도 없는 MSG드라마


다른 하나는, 유튜브의 추천 영상이어서 우연히 보게 됐다는 것이다. 여전히 '대박 유튜버'를 꿈꾼다는 한 아이는 생각 없이 추천 영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떻게든 <펜트하우스>를 만나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걸 원한다면 '기-승-전-<펜트하우스>'라며 낄낄댔다.


아이들은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추천 영상을 따라가면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다고 서로 맞장구쳤다. 어떻게 알고 마음에 드는 것만 쏙 골라내는지 경이롭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그것이 확증 편향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한 듯하다.


TV보다 유튜브가 훨씬 익숙한 아이들에게 '19금'이라는 딱지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한 동료 교사는 중학생 자녀가 보는 게 탐탁지 않아 애써 막아보려고도 했는데 이내 포기했다는 경험을 들려주었다. 어차피 스마트폰으로 다 볼 수 있는 마당에 헛수고라는 생각에서다.


압도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선 이론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보다 더 자극적일 수는 없다는 것. 불륜과 치정, 살인, 학벌 경쟁과 학교폭력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거라면 모조리 그러모아 버무려놓은 막장의 최고봉이라고 입을 모았다.


교훈은커녕 감동도, 맥락도 없고, 오로지 재미만 추구하는 'MSG 드라마'라고 깎아내렸다. 여론의 지탄을 받게 될 줄 뻔히 알면서도 기꺼이 욕먹기를 각오한 방송사와 작가의 '지조'가 놀랍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들의 '오명'은 압도적인 시청률로 보상받았으니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시청자가 문제일까, 방송이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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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 논쟁이 붙기도 했다. 시청자들이 자극적인 내용을 선호하다 보니 방송 내용이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주장과, 나날이 자극적인 방송이 쏟아지다 보니 시청자가 은연중에 길들어졌다는 주장이 맞부딪혔다. 물론, 둘 다 일리 있는 이야기다.


이는 방송을 당장 금지하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한 아이의 주장에서 파생된 것이다. 워낙 극악한 내용이 많아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특히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해악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악함도 감염병처럼 전염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다수는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막장 드라마의 기준이 불명확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이유에서다. 작가의 창의적 상상력을 억누르는 결과가 초래되어 장기적으로 방송의 질적 수준이 낮아질 우려가 크다는 반론을 폈다.


그러자 표현의 자유가 무한정 보장되면, 결국 나쁜 놈이 이길 수밖에 없다고 재반론했다. 말하자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뜻이다. <펜트하우스>처럼 막장 드라마일수록 시청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그 증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후 몇 차례의 날 선 공방이 이어졌다.


그때 한 아이가 그만두라는 듯 손사래 치며 끼어들었다. '시즌 1'은 유튜브를 통해 일일이 찾아서 봤지만, 얼마 전 시작된 '시즌 2'는 아예 관심을 껐다며 말을 시작했다. 그는 전편이 '그럴듯한 막장'이라면, 속편은 '그냥 막장'이라고 규정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둘의 차이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돈이 되니 내친김에 한몫 더 챙기려는 꼼수. 그러다 보니 내용상 앞뒤가 맞지 않고, '갑툭튀' 소재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배우들의 연기력 하나만 믿고 온갖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을 연출해 시청자들을 현혹하고 있다며 혹평했다.


욕하면서도 챙겨 보는 시청자와, 욕먹을 줄 알면서도 막장 드라마를 제작하는 방송사와 작가. 둘 중 누구의 책임이 더 큰가를 두고 다투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타이르듯 말했다. 대신 드라마가 시청률에 목매달도록 유도하는 광고의 위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펜트하우스>의 앞뒤에 달린 엄청난 광고의 수에 놀랐다고 했다. 그 수가 늘어나는 만큼 드라마의 내용이 더더욱 막장으로 전개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공익성 운운하기에는 방송사도 작가도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에 맞선 방송사의 자정 노력을 두고선, 내성 탓에 더 이상 듣지 않는 항생제로 비유하며 비관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방송사와 작가들 사이에 막장 경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다행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친구들 앞에서 갈무리하듯 내린 이 말에 무릎을 쳤다.


"문제는 돈이야. 돈이 지상파 방송과 유튜브의 경계조차 허물어버린 거지. <펜트하우스>가 막장으로 치닫는 건, 명색이 TV가 이젠 이윤을 위해 유튜브와 경쟁해야 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해. 말하자면, 'TV 시대의 종언'이라고나 할까."


서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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