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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우리나라 3대 암산, 월출산에 올랐습니다

by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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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입구 ▲ 월출산입구에서 서울 사는 친구와 함께 한 컷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월출산은 국립공원으로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습니다. 물론 오후 3시 이후에는 통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산을 오르는 시간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 권성권

우리나라 명산을 아내와 함께 순례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벌써 51번째 산을 오른 서울 사는 친구인데, 이번에는 내가 살고 있는 목포와 가까운 영암 월출산을 올라간다고 해서 나도 함께 따라나섰습니다. 평소 허리가 좋지 않은 나는 가끔씩 침을 맞고 있는데, 허리 근육을 키우는데 산을 오르는 것보다 좋은 것도 없겠다 싶어서 함께 오른 산행길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금요일 회사 일과를 마치고, 서울에서 출발해 밤 12시가 넘어서 목포에 도착했습니다. 그 부부가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나는 목포 앞바다 근처에다 방을 잡아줬습니다. 우리나라 명산을 순례할 때마다 그 부부는 금요일 오후가 되면 출발하곤 했으니, 이제는 제법 이력이 났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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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 월출산 산 중턱에 하나씩 정도 피어 오른 동백꽃입니다. 3월 말이나 4월 초입이 되면 산 곳곳에 동백꽃이 멋지게 피어 있을 듯 합니다. 물론 그때가 되면 진달래와 철쭉도 만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권성권

토요일 아침 일찍, 목포 평화광장 앞쪽에 있는 콩나물국밥집에서 아침밥을 해결했습니다. 왜 그렇게 서둘러야 하는지는 월출산(月出山) 정상 천황봉(天皇峰)에 올라섰을 때 알게 됐습니다. 중학교 시절에 처음으로 나는 월출산 아랫자락만을 밟아봤고, 지금은 목포에 7년 넘게 살고 있지만 한 번도 월출산 정상까지 올라가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부랴부랴 식사를 마치고, 우리 일행이 월출산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였습니다. 그때 차에서 짐을 내려서 짊어지고 입구에서 온도계를 측정한 후에 곧장 산행은 시작이 됐습니다. 그 친구와 그의 아내는 입구에서부터 '멋지다' 하는 감탄사를 자아냈지만 시골 출신인 나로서는 별로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좋네, 괜찮네' 하면서 호흡 정도는 맞춰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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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 월출산 명소 구름다리입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그 다리를 지나가는데 쉽지 않았는데, 그나마 양쪽에 칸막이가 쳐져 있어서 다행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살짝 출렁거릴 때는 그 느낌이 어질어질했습니다. ⓒ 권성권

그 입구에서 정상는 천황사를 거쳐, 월출산의 볼거리인 구름다리를 지나, 환상적인 뷰를 제공하는 사자능선을 향해 오르고, 이후 경포대 능선을 거쳐 천황봉을 오르는 마지막 관문 통천문을 지나는 코스였습니다.


그 길이 무려 3시간 20분이나 걸렸습니다. 왜 그렇게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는지 그때 비로소 알았습니다. 더욱이 중간중간에 구름다리와 경포대 능선에서, 통천문에서, 쉼을 얻어야만 정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너무 힘든데요. 그런데 진짜로 수묵화 같은 느낌이네요."

"그렇죠. 월출산은 우리나라 3대 암산(바위산)이에요."

"그래요? 어디 어딘데요?"

"설악산, 월출산, 그리고 주왕산이에요."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산이라 그런지 기가 셀 것 같은데요?"

"그렇겠죠. 그런데 정말로 기가 센 산은 나침반이 안 잡힌다고 그래요."

"그럼 이 월출산도 나침반이 안 잡힐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다음에 올때 나침반을 꼭 가져와서 봐야겠네요."

월출산 정상 천황봉(809m)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는데, 언제 그렇게 올라왔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자 줄을 섰습니다. 우리 일행이 출발할 때만 해도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어디에서부터 그렇게 올라왔던 것일까요?


알고 봤더니 천황봉까지 오르는 코스가 세 개나 더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오늘 정상을 찾은 사람들의 수는 예년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코로나19 때문인 듯 싶었습니다.

"서울 마천동에 살 때 주일 오후에 남한산성을 올라갔죠. 2시간 족히 걸렸었죠."

"인조가 왜 남한산성으로 피한 줄 아세요?"

"글쎄요."

"본래 강화도로 피하려고 했는데, 청나라 군대가 그 길을 지킨다는 걸 알고, 급히 피한 거였어요."

"와우, 그랬어요?"

"사실 광해군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진즉 멸망했을지 몰라요."

"왜죠?"

"임진왜란 때 선조가 도망가면서 세자인 광해군에게 조정을 맡겼거든요."

"그래서요?"

"임진왜란 7년을 광해군이 버텼고, 또 7년을 지키면서 불탄 궁궐들을 모두 세웠죠."

"와우, 재밌네요. 오늘 역사공부 꽤 되겠는 걸요?"

"대동법도, 동의보감도 그때 만들었죠. 또 명청교체기라 부하장수에게 눈치를 보라고 했죠."

"지금처럼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쪽에 너무 쏠리지 말란 뜻이었네요?"

"그렇죠. 그토록 훌륭했는데 패륜정치를 했다고 신하들이 인조반정을 주도하고, 제주도로 유배시킨 거예요."

"그 뒤에 인조가 맥없이 남한산성으로 도망친 거였네요."

"광해군은 폭군으로 알려져 있지만 진짜로 조선시대에 위대한 왕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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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 육형제바위입니다. 내려오는 길목에서 찍은 사진인데, 육형제바위전망대에서 찍을 수 있습니다. 진짜로 수묵화 그 자체 같았습니다. 바위산인데도 너무나 멋졌어요. ⓒ 권성권

산을 내려오는 길목이 오를 때와는 달리 완만했던지, 그 친구는 내게 조선왕조시대의 역사를 그렇게 읊조려 줬습니다. 조선 역사에 대해 문외한인 내게는 정말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뒤따라오던 그 친구의 아내는 산을 오를 때마다 들어서 그랬는지, 이제는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라며 웃어댔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며 내려온 코스는 천황산 정상에서 광암터 삼거리를 지나, 육형제 바위 전망대를 거쳐, 바람폭포를 지나, 천왕사가 있던 원점이었고, 1시간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산행도 그렇지만 인생도 실은 오르막길보다 내려올 때가 더 힘든 법인데, 조선시대 역사를 들으면서 내려오는 길목이라 그랬는지 더욱더 실감났습니다.


해가 질 무렵 곧 달이 떠오를 때가 가장 멋지다고 해서 이름 붙였다는 월출산(月出山). 산 전체가 수석 전시장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온갖 기암괴석과 바위들로 가득 차 있던 그 월출산. 봄에는 동백꽃과 진달래와 철쭉이 피고, 여름철엔 시원한 폭포수와 천황봉 정상에 구름이 떠오르고, 가을에는 단풍과 억새가 멋지다는 그 월출산. 그 월출산 정상까지 총 6시간에 걸쳐 오르고 내려왔다는 게, 초행인 나로서는 너무나도 뿌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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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 천황봉 정상에서 육형제바위전망대를 지나 내려오는 길목이었으니, 아마도 바람폭포 그 아래쪽 지점인 것 같습니다. 그 아래에 서면 저렇게나 멋진 장소가 눈에 띕니다. 이 자체만 봐도 한 폭의 수묵화 그 자체 같지 않나요? 이제 3월 말이나 4월 초입이 되면 저 산 곳곳에 진달래와 철쭉이 만개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는 또 다른 모습의 월출산을 보여주겠죠? ⓒ 권성권

우리 세 사람이 월출산을 찾은 그때가 3월 초입같은 중순이라 그런지 동백꽃도 하나 둘 밖에 피어있지 않았습니다. 가끔 산 중턱에 진달래가 피어 있긴 했지만 철쭉은 아직 꽃봉우리도 올라오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3월 말이나 4월 초입이 되면 월출산 곳곳의 바위 틈에 울긋불긋한 철쭉과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피어있을 때 쯤이면 다시금 한 번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는 월출산이 나를 부를 것 같습니다. 그때가 되면 연약한 내 허리통증도, 서울서 내려와 월출산을 오르도록 이끌어준 그 친구 덕분에, 말끔히 나아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권성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