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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지리산 화엄사 홍매화, 인기가 이 정도였나

by오마이뉴스

대표 건축물 각황전을 조연으로 밀어버린 나무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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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의 절집 화엄사를 화사하게 밝혀주는 홍매화. 지금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3월 17일 오후에 찍은 모습이다. ⓒ 이돈삼

동백과 매화·산수유로 시작된 남도의 꽃봄이 절정을 향하고 있다. 개나리꽃, 진달래꽃, 목련꽃에 이어 벚꽃까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봄꽃의 행렬에 숨이 가쁠 지경이다. 꽃봄의 행렬에 끼어 매화를 만나러 간다. 주변에 흔한 매화가 아니다. 격이 다른 고품격의, 아주 오래 된 매화다.


우리나라에 명품 매화가 많다. 화엄사의 화엄매, 선암사의 선암매, 백양사의 고불매 그리고 오죽헌의 율곡매를 대한민국 4매라 부른다.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그 가운데 한 곳, 지리산 화엄사에 핀 매화다. 때마침 꽃을 활짝 피워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지금, 그곳이 아니면 또 1년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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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 각황전 옆에서 핀 홍매화. 단청하지 않은 전각과 어우러져 더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3월 17일 오후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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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 각황전 옆에서 진분홍 빛깔로 핀 홍매화. 각황전 뒤쪽에서 본 풍경이다. ⓒ 이돈삼

화엄사의 매화는 각황전 옆에서 만난다. 가지마다 매달고 있는 붉은 꽃망울이 절집의 위엄을 한순간에 흩트려 놓는다. 단청하지 않은 각황전과 어우러져 고혹적이기까지 하다. 평소 화엄사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각황전이지만, 지금은 조연으로 밀려나 있다. 그 자리를 홍매화가 꿰찼다.


각황전과 어우러지는 매화는 수령 300년이 넘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장륙전을 숙종 때 중건하고, 이름을 '각황전'으로 바꿨다. 그때 계파선사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1702년에 각황전을 중건했다. 매화도 장륙전의 이름을 따서 '장륙화'라 불렀다. 꽃이 붉다 못해 검다고 '흑매'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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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 각황전 옆에서 핀 홍매화. 진분홍 빛깔의 꽃이 화려하다. 붉다 못해 검은 빛을 띤다고 '흑매'로도 불린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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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 각황전과 석등 풍경. 화엄사의 풍경을 대표하는 전각과 석등이다. ⓒ 이돈삼

진분홍빛 홍매화가 매혹적이다. 요염하기까지 하다. 먼저 나무의 키가 크다. 10m 가량 된다. 땅에서 두 가지가 붙어 오르다가 잔가지를 펼쳤다. 잔가지도 가늘고, 활짝 편 우산 같다. 둥글게 다소곳하고 예쁘다.


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꽃의 매력에 빨려 들어간다. 한눈에 홀리는 느낌이다. 청초하면서도 매혹적인 매화다. 꽃을 찾아온 여행객들도 감탄사를 토해내며 인증샷을 남긴다. 꽃의 아름다움과 나무의 자태를 보면 '국보급'의 매화다. 하지만 천연기념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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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 각황전 옆에 핀 홍매화. 해마다 봄에 많은 여행객들을 화엄사로 불러들이는 주인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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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상암 앞 연못 가에 핀 백매. 척박한 산비탈에서 수백 년 동안 꽃을 피워왔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 이돈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화엄매는 따로 있다. 화엄사에 딸린 암자, 길상암의 작은 연못가에 있다. 수령 450년으로 추정된다. 천연기념물 제485호로 지정돼 있다. 길상암의 매화는 소박하고 수수하다. 화려한 멋도 없다. 각황전 옆 홍매화에 비할 바가 안 된다.


나무의 키도 크지 않다. 땅이 훨씬 척박한 탓이다. 나무도 위로 뻗어 올라가다가 약간 비스듬하게 섰다. 꼬인 듯, 뒤틀린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꽃도 하얀색 홑꽃이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윽한 향이 일품이다. 개량종 매화보다 꽃이 작고 듬성듬성 피지만, 단아한 기품과 짙은 향은 매혹적이다. 매화의 매력이 향에 있고, 예부터 흠향의 대상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품격이 더 높은 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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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에서 구층암으로 가는 신우대 숲길. 이 숲길을 따라 뉘엿뉘엿 10-20분만 걸으면 구층암에 닿는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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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층암의 석탑. 제대로 복원되지 않은 듯한 모습이 훨씬 더 정감있게 해준다. ⓒ 이돈삼

길상암의 백매를 '들매화'라 부른다. 들에서, 야생에서 자란 매화다. '야매(野梅)'로도 불린다. 누군가 부러 심은 나무가 아니다. 사람이나 동물이 먹고 버린 씨앗이 자연스럽게 싹을 틔워서 자란 나무다. 토종매화 연구의 학술적 가치도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유다.


굳이 천연기념물이 아니어도 괜찮다. 수백 년을 한결같은 빛깔과 생김새로, 그것도 척박한 산중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 온 나무다. 경배하는 마음이 절로 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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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층암 요사채의 모과나무 기둥. 울퉁불퉁한 나무 기둥을 그대로 받쳐 세웠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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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화엄사 계곡. 시원한 계곡 물소리가 봄의 생동감을 느끼게 해준다. ⓒ 이돈삼

화엄사에서 길상암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구층암도 소소하다. 화엄사 뒤쪽으로 아늑한 신우대 숲길을 따라가서 만나는 암자다. 요사채의 기둥도 울퉁불퉁한 모과나무 기둥을 그대로 갖다가 받쳐놨다. 제대로 복원하지 않고 대충 쌓아놓은 것 같은 3층 석탑도 자연스럽다.


길상암과 구층암을 품에 안은 화엄사는 국립공원 1호 지리산의 품에 안겨 있다. 화엄경의 두 글자를 따서 이름 붙인 절집이다. 백제 성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보통 절집이 하나의 중심법당을 갖고 있지만, 화엄사는 대웅전과 각황전 두 개의 중심법당을 지니고 있다.


국보, 보물, 천연기념물 등 문화재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보물창고'다. 절집 옆으로 흐르는 계곡도 장관이다. 화엄사 자체도 사적, 화엄사 일원은 명승으로 지정돼 있다. 사철 언제라도 좋은 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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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제루 옆에서 본 화엄사의 중심 영역. 각황전과 대웅전, 서오층석탑과 동오층석탑이 배치돼 있다. ⓒ 이돈삼

이돈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