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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멍게비빔밥에 초장 넣지 마세요, 그거 아닙니다

by오마이뉴스

[봄의 맛] 5월까지 제철... 통영을 한 번에 맛 본 기분

바다향을 품은 멍게

'멍게, 해삼, 말미잘'로 시작하는 욕은 못생긴 외모를 비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뜻밖에도 멍게를 길어 올리는 어부들은 "바다 꽃이 피었다"라고 한다. 그렇다. 선홍빛깔의 멍게는 자세히 보면 이쁘다. 뭐든지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그 맛 또한 마찬가지다.


1월에서 6월 동안 수확되는 멍게는 그 퉁퉁한 몸 안 가득 바다를 한껏 품고 있다. 입안에서 퍼지는 바다향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눈을 찡그리겠지만, 그 맛을 음미하게 되면 봄에 반드시 찾게 되는 음식이다.


원래 멍게는 섬에서 잡히는 대로 소주 안주로 먹던 음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1970년대 자연산 멍게가 급속하게 폐사하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양식이 시작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멍게비빔밥은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2000년 초반에 비로소 상에 오르기 시작했다.


"아마 2002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많이 찾기 시작했어요. 대전-진주 고속도로가 통영까지 연장되면서 관광객 유입이 많아졌고, 지역 홍보를 위해서 멍게비빔밥을 아주 많이 활용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도 그때 식당 메뉴에 올렸어요."


통영중앙시장 옆 어느 식당에 들어가 멍게비빔밥을 먹으며 언제부터 이걸 파셨냐고 묻자 주인이 내놓은 답이다. 통영-대전 고속도로는 정확히 2005년 12월에 개통이 되었다.


멍게비빔밥은 그전부터 조금씩 입소문이 돌면서 유행했고, 새로 열린 육로를 통해 방문한 손님들이 소문을 듣고 많이 찾았을 것이다. 3대째 복국을 팔고 있는 주인은 그 시류에 맞춰서 메뉴에 추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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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중앙시장에 있는 대부분의 식당은 멍게비빔밥을 팔고 있다. ⓒ 홍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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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게비빔밥 ⓒ 홍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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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멍게비빔밥은 취향에 따라 초장을 넣어 먹기도 하지만, 참기름에 그대로 비벼 먹으면 멍게 본연의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다. ⓒ 홍기표

음식을 주문하고 초장을 넣지 않은 채 그대로 비벼서 한 입 먹는다. 입안에 감도는 바다 맛을 목 뒤로 삼키며 코로 숨을 들이킨다. 들이키는 숨 속에 통영항 특유의 냄새도 함께 들어온다. 식당 맞은편 항구에는 정박한 어선 위로 갈매기가 타원을 그리며 "끼룩끼룩" 울고, 시장 특유의 왁자지껄한 정겨움도 함께 들려온다.


나는 그 소리들에 맞춰 천천히 멍게비빔밥을 꼭꼭 씹어 삼켰다. 함께 나온 졸복 지리에 담긴 미나리와 국물을 함께 마셨더니 통영을 한 번에 맛 본 기분이 든다. 금세 그릇은 비워지고 다시 주인께 이 멍게는 어떻게 들어오는 것인가 물었다.


"통영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것들이 거의 멍게 양식장입니다. 보통 1월에서 5월까지 통영 어민들이 수확을 하고 수협에서 위판하는 것을 우리가 사들입니다. 그리고 진공포장을 해서 보관했다가 이렇게 내어 놓는 겁니다."


멍게는 잡은 즉시 바로 먹어야 맛있다고 한다. 그래야 탱탱한 살의 식감과 향기 가득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식당에서는 많은 손님을 한 번에 받기 때문에 손질하는 데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려 멍게가 최상의 상태일 때 사들여 진공 포장했다가 내놓는다고 했다.


가게 밖으로 나가 통영 중앙시장으로 들어섰다. 멍게가 제철이라며 사라고 손짓하는 상인들이 많다. 가게 사장은 중앙시장에서 약 10분 거리에 있는 수륙마을에 가면 멍게를 수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말에 따라 나는 차를 몰았다.

멍게 양식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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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식장에서 걷어 올린 멍게를 선별하는 중이다. ⓒ 홍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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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별작업이 끝난 멍게는 컨베이어 벨트로 옮겨 수협에 실어 보낸다. ⓒ 홍기표

작은 해수욕장이 있는 마을에 어선 몇 척이 둥둥 떠 있다. 그 옆에 큰 뗏목들이 붙어 있었고, 그중 한 군데에서 대 일곱여덟 명이 모여 열심히 선별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유심히 쳐다보며 사진을 찍고 있는 나의 모습이 이상했는지, 나보다 덩치가 두 배는 클 것 같은 어부가 성큼성큼 내 앞으로 걸어와서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 나는 움찔하며 "궁금한 게 있어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정을 설명하니 퉁명스런 말투가 누그러지면서 친절한 설명이 뒤따라 나왔다.


"오전 7시가 되면 양식장에서 끌고 온 멍게 선별 작업이 시작됩니다. 멍게는 정품과 상품으로 나뉘는데, 상품은 수협에서 보내온 트럭에 실어 보내고, 정품은 크기가 작아 상품화하지 못해 따로 빼둡니다."


항구 앞에는 1월부터 6월까지 멍게 채취로 인해서 주변에 주차를 하지 말아 달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여름이 오기 전에 멍게 수확을 마치면, 이 바다는 해수욕을 하기 위한 사람들을 맞이할 것이다. 해수욕을 하러 왔다가 횟집에 들러 멍게비빔밥을 먹을 때, 철 지난 멍게가 그렇게 맛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렇게 건져 올린 멍게가 오늘 아침 나의 배 속으로 들어갔을 테다.

배를 채우고 난 후 영혼의 식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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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혁림미술관 ⓒ 홍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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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혁림미술관과 봄날의 책방은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월, 화는 열지 않는다. ⓒ 홍기표

통영 봉수로에는 전혁림미술관이 있다. 봉수로길은 간판 정화 사업 구역으로 2020년에 아주 이쁘고 깔끔하게 정비되었다. 그 길 중간에 전혁림미술관이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그가 그린 '통영항' 그림이 청와대에 걸렸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그는 작품보다 네트워크가 강조되던 세태를 비판하며 고향에서 오랫동안 외롭게 작품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그의 사후에 그가 머물던 집은 개조되어 미술관으로 남았다. 코발트블루가 진하게 곳곳에 덮인 미술관은 총 3층으로 되어 있는 관람실이 있다. 작품의 수는 적었지만, 1층에 마련된 '통영항'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는 수고는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


미술관 옆에는 마을 서점 <봄날의 책방>이 있다. 든든하게 채운 배와 미적인 감동을 그대로 책으로 가져온다. 작은 서점이기에 더욱 강력한 컬렉션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직접 출판까지 하고 있는데, 그 책들은 로컬, 섬, 서브컬처로 요약할 수 있겠다. 어디서나 듣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오로지 이곳만의 정취와 감정을 담아내려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홍기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