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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불륜·치정 떠올렸는데... 감동 준 재벌가 며느리들 연대

by오마이뉴스

[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35] tvN <마인>의 세 여자, 서현-희수-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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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


처음엔 그저 그런 치정 혹은 불륜 드라마인 줄 알았다. 자신들만의 계급을 만들어 생활하고, 일부일처제마저 해체해버린 재벌 효원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tvN 토일드라마 <마인>.


드라마 초반 하준(정현준)의 튜터로 등장한 자경(옥자연)이 하준의 생모라는 느낌이 왔을 때, 나는 이 드라마의 시청을 그만두려 했었다. 불륜과 치정에 관한 이야기라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만 이 드라마에 끌렸다. 여성 캐릭터 하나하나가 마음에 남았고, 결국 지난 8회 방송분 모두를 몰입한 채 시청하고 말았다.


드라마가 딱 절반 지점에 이른 8회, 나는 내가 이 드라마에 끌렸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좁은 문에 갇힌 코끼리가 울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자폐 아동의 작품에 감명을 받은 서현(김서형)은 8회 이 작품을 그린 아동 화가를 불러 이렇게 묻는다.


"좁은 문에 갇힌 코끼리. 그 코끼리가 좁은 문을 나가는 방법이 뭘까요?"


순간 나는 이 드라마의 주요 여성 인물들이 모두 '좁은 문에 갇힌 코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효원가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지닌 서현도, 자신만의 색을 잃고 싶지 않은 희수(이보영)도, 빼앗긴 아이를 되찾으려 하는 자경도 결국엔 효원가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긴 마찬가지니 말이다. 아마도 이들의 몸부림이 여전히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빠져나가고자 애쓰고 있는 현실 속 여성들의 모습과 어딘지 겹쳐 보였기에 그토록 이 드라마에 몰입했던 건 아니었을까.


<마인> 여성 캐릭터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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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벌가와 얽힌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tvN 의 포스터 ⓒ tvN

나 자신을 지키려 애쓰는 서희수


배우 출신으로 효원가의 둘째 아들 지용(이현욱)과 결혼한 희수는 효원가에서는 조금 튀는 존재다. 모두가 무채색으로 된 옷을 입고 가족 모임에 참석하는 줄 알면서도 홀로 당당히 오렌지색 드레스를 입고 참석할 만큼 희수는 자신의 색을 드러낸다(1회). 개인 비서와 '언니-동생'처럼 지내는 그녀는 위계가 철저한 효원가에서 메이드라 불리는 직원들과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 관계 맺고자 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녀는 이런 자신만의 색과 사람에 대한 존중을 지키기 어렵다 느껴질 때면 줄넘기를 한다. 2회 그녀가 처음 줄넘기를 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 자경은 왜 격에 맞지 않는 줄넘기를 하냐고 묻는다. 이에 희수는 "난 날 지킬 거예요. 여기선 그게 젤 힘들어요"라고 말한다. 이처럼 희수는 효원가에 적응하기 보다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인물이다.


하지만 효원가는 그녀의 모든 것을 '아무것도 아닌 취급'을 한다. 2회 그녀가 엠마 수녀(예수정)에게 말했듯 말이다. "배우 커리어를 위해 포기한 대학도 흠이 되고, 스스로 일궈낸 모든 것을 아무것도 아닌 취급을 하고." 그녀의 말은 가부장적인 결혼 제도 안에서 '며느리'이기를 강요받는 현실의 많은 여성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럼에도 희수가 효원가에서 사는 건 바로 남편 지용과 아들 하준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용의 사랑이 진실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날, 희수는 무너져 내린다. 품위를 잃고 자경의 뺨을 때리며 분노하고, 뱃속의 아이마저 잃는다. 이런 분노는 남편의 불륜에 대한 반응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희수가 느낀 분노는 자신이 남편에게 도구처럼 다뤄지고 있음을 간파한 데서 연유한 것이었을 테다. 그토록 자신을 지키고 타인을 존중하고자 했던 그녀에게 스스로가 남편의 도구에 불과했다는 것은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희수는 결코 자기 자신을 완전히 놓지는 않는다. 아이를 잃고 괴로워하던 희수는 잠시 친정에 머무는데 이곳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던 때의 모습을 기억해낸다. 첫 영화의 대본을 살펴보며 자신을 지켜낼 힘을 얻은 그녀는 효원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줄넘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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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희수는 자기 자신을 지켜내야 할 때 줄넘기를 하며 마음을 다진다. ⓒ tvN

전략적으로 살아남기를 선택한 정서현


효원가의 맏며느리 서현은 희수와는 매우 상반된 인물이다. 태생부터가 재벌인 서현은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는 재벌가의 생리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사사로운 감정이나 욕망 따위에 흔들리지 않으며, 말을 절제하고, 표정을 감추며 살아남는 법이 몸에 배어 있다. 매사에 깊게 생각하고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서현은 시가 식구들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는다. 철부지 남편과 막무가내 시누, 감정만 앞서는 시어머니를 모두 조련한다. 아랫사람들에게도 엄격한 위계를 요구하며 냉철한 가모장의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이처럼 강해 보이는 서현이 '좁은 문에 갇힌 코끼리' 그림을 본 순간 눈물을 흘린다. 이는 재벌가의 딸이자 며느리로 살기 위해 자기 자신을 버려야한 데서 연유한 상실과 슬픔의 눈물일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 코끼리에 투영했을 것이다. 여기엔 레즈비언이라는 자신의 정체감을 숨기고, 모두를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속인 채 '갇혀' 살아왔던 아픔이 녹아 있었다. 그녀에게 좁은 문은 어쩌면 스스로 만든 것일지도 모르기에 더 괴로웠을 것이다.


이런 서현은 희수가 위기에 처하자 가장 먼저 나서 그녀를 돕는다. 3회까지만 해도 "동서는 나와 너무 달라"라며 선을 그었던 그녀는 희수가 아이를 잃고 괴로워할 때 가장 먼저 손을 잡아준다. 그리고 "내가 동서 곁에 있을게.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줄게"(8회)라며 희수 편에 굳게 선다. 냉철한 그녀가 이토록 희수에게만은 따뜻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아마도 억압된 자신의 모습을 희수에게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서현은 희수의 아픔에서 자신의 아픔을 읽어낸다. 그리고 희수를 도움으로써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효원가의 높은 벽에 균열을 내고 싶었을 것이다. 이 드라마가 매력적인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다른 재벌 드라마라면 회장직을 놓고 경쟁하며 암투를 벌였을 두 여자가 서로 손을 맞잡고 연대하는 모습이 내겐 무척 인상적이었다.


자식을 잃고 사라져야 했던 존재 강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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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자경은 효원가에게 아이를 빼앗긴 채 죽은 사람으로 지내온다. ⓒ tvN

자경은 드라마의 구조상 '악녀'다. 그녀는 착하고 인정 많은 희수 앞에 갑작스레 나타나 아들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희수의 가정을 파탄 낸 존재로 그려진다. 그녀는 모성을 이유로 안하무인의 행동을 하고 지나치게 감정적인 대처들을 하는데 이런 모습들은 그녀를 악녀로 오해하기에 충분한 설정들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경은 그 누구보다도 효원가의 억압을 크게 받은 인물이다. 그녀는 아마도 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용과 결혼을 허락받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만 받아들인 효원가는 그녀를 사망자로 둔갑시키고, 숨죽인 세월을 보내게 한다. 멀쩡히 살아있으면서 죽은 사람처럼 지내야 했던 사정을 생각해 본다면 그녀를 악녀로만 치부하며 손가락질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그녀의 잘못은 분노의 방향을 희수에게 돌린 점이다. 그녀가 그토록 쏘아보았던 희수는 지용에게 이용당한, 또 다른 피해자일 뿐이다. 자경의 분노가 향해야 할 대상은 "하준이 낳아 준 너. 키워준 희수. 함께 하준이를 위해서 공생하라는 거야. 하준이를 위해서 존재하라고"(5회)라고 말하는 지용이어야 했다. 희수와 자경 모두를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거나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으로 취급하고, 여성을 엄마의 자리에만 묶어두려 하는 지용이야말로 가정을 파탄내는 폭군이니 말이다.


다행히 자경은 지용의 태도가 변하자 본질을 알아차린다. 자경은 8회 하혈하는 희수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홀로 퇴원한 희수에게 밥상을 차려주는데 이는 자경이 희수와 자신 모두에게 연민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사실, 자경은 희수에게 분노를 쏟아붓던 드라마 초반에도 종종 묘한 감정들을 드러내곤 했다. 6회 엠마 수녀는 내레이션을 통해 이렇게 자경의 마음을 알려준 바 있다.


"그녀는 그날 서희수씨를 보며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복잡한 감정을 다 가졌습니다. 질투, 분노, 슬픔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는 그녀에 대한 고마운 감정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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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여성들은 모두 벽에 간혀 울고 있는 코끼리 같은 존재들이다. ⓒ tvN

이렇듯 드라마 <마인>의 세 여성은 모두 효원가라는 막강한 가부장의 억압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이다. 이 드라마가 불륜과 치정의 드라마가 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바로 이 세 여자의 태도에 달려 있지 않을까. 이들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의 유사점을 이해하고 서로에게 공감하며 분노가 정당한 곳을 향할 수 있도록 한다면, <마인>은 불륜이 아닌 여성들이 연대해 거대한 가부장의 억압에 맞서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드라마 속 여성들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대한 억압에 맞서 싸울지, 비슷한 상처를 일깨우는 서로를 상대로 난투극을 벌일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것 같다.


8회 앞서 물은 서형의 질문에 아동화가는 이렇게 답한다.


"원래 벽은 없었어요. 코끼리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어쩌면 벽은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의 것(mine)'을 지키려는 마음이 벽을 만들어내고, 이들을 효원가에 갇히게 만든 것은 아닐까. 드라마의 세 여성이 마음의 벽을 걷어내고 '나의 것'을 지키기보다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제발 이 드라마가 불륜과 치정이 아닌 연대와 희망의 이야기로 마무리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송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