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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우리집 마당에 말 2마리가 나타났다 [제주살이를 꿈꾸는 당신에게- 한 언론인의 탐라국 일기]

by오마이뉴스

[제주살이를 꿈꾸는 당신에게] 노루와 뱀도 등장... 원래 이곳 주인이었던 동물들


이제 제주살이 4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에 거셌던 제주 러시 현상은 다소 진정된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제주 이주를 꿈꾸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제주 1년 살이 혹은 1달 살이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이 글은 동아일보 기자와 세종대 초빙교수를 지내고 은퇴한 후 제주로 이주한 한 개인의 일기이자 제주에서의 생활을 소재로 한 수필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제주도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제주의 자연환경,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한국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제주사회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읽을거리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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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을 카톡방에 말(馬)이 등장하는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마을회관 앞을 어슬렁거리는 말 3마리 사진과 함께 말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분은 연락을 해서 데려가도록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마을회관 쪽을 살펴보니 정말로 말들이 있었다. 다행히 카톡방에 공지가 된 지 오래지 않아 말 주인에게 연락이 되는 바람에 아무런 돌발사고 없이 단순 소동으로 끝났다.


사실 말이 마을에 출현한 것은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부근 숲속에 말 키우는 집이 몇 군데 있다 보니 가끔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말들이 외출해 마을 안을 활보하는 일이 벌어진다.


한번은 거실에서 무심코 정원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말 2마리가 나타나 눈앞에서 성큼성큼 가로질러 갔다. 평소에 말이 무섭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 순간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사적인 영역으로 갑자기 나타난 말은 그날따라 훨씬 크게 느껴졌고, 걸음걸이도 빠르고 위협적이었다. 본능적으로 거실문을 닫고 방어 태세에 들어갔다. 말들이 돌담을 뛰어넘어 옆집으로 간 뒤에야 동영상이라도 촬영했어야 하는데, 너무 소심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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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이랑마을은 출입구 쪽으로 나 있는 도로를 제외하면 주위가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말들이야 가축이니까 말 주인들이 통제하고 있어 특별히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숲속 길을 갈 때 말똥만 조심하면 된다.


가장 골치 아픈 존재는 노루다. 마을 부근 숲에 노루 가족들이 살고 있어 자주 목격하기도 한다. 노루는 생각보다 덩치가 작아 개보다 약간 큰 정도다.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잽싸게 도망가곤 한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한밤중에 이 집 저 집 누비고 다니는 모양이다. 상추 같은 텃밭 작물들을 뜯어 먹기도 하고, 화단에 들어가 원추리 잎을 먹어버리기도 한다. 정원 잔디에 똥을 싸고 가기도 한다.


고구마밭은 새싹이 나오자 이놈들이 싹둑싹둑 잘라먹어 거의 수확을 못했다. 옥수수도 영글 만하면 갉아 먹고 가는 놈들이 있는데, 노루의 소행으로 짐작된다. 옥수수 농사도 망친 건 당연했다. 요즘엔 대낮에도 노루들이 마을을 드나들 정도로 대담해졌다. 이런 노루들이 주민들한테 곱게 보일 리가 없다. 모두 한마디씩 한다. 노루 등쌀에 밭에 뭘 심을까 고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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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마을이어서인지 새들도 많아 새들 지저귀는 소리에 새벽잠을 깨기도 한다. 시끄럽기는 까마귀가 으뜸이다. 이집 저집 지붕마루에 올라앉아 저희들끼리 신호를 보내느라 시끄럽다.


봄이 되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 온 마을이 부산해진다. 둥지를 지을 만한 곳을 물색하느라 이 집 저 집 곡예비행을 하며 바삐 날아다닌다. 그러다가 처마 밑처럼 비바람 피하기 좋은 곳을 발견하면 어김없이 나뭇가지 등 재료들을 물어와 둥지를 만든다. 우리집 현관 처마 밑에도 언제부터인가 둥지를 짓더니 새끼를 낳고 살림을 차렸다.


그런데 문제는 제비들이 똥을 둥지 밖으로 싸댄다는 점이다. 그래서 라면박스를 놓아 떨어지는 제비 똥을 받아내고 있다. 어떤 때는 현관문 손잡이에도 새똥이 묻어 놀란 적이 있다. 이쯤 되면 제비와 함께 공생하려던 나의 배려심도 인내의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요즘 이 제비를 어떻게 할지 고심중이다.


제비가 새 중에서도 날쌘돌이라 할 만큼 비행궤적이 유연하고 빠른 데 비해 어수룩하기 짝이 없는 놈이 있으니 바로 꿩이다. 집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게 꿩인데, 인기척에 놀라 도망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차를 몰고 가다 도로에 꿩이 보이면 속도를 줄여 피할 시간을 주어야 할 정도로 행동이 어수룩하다.


얼마 전에는 작은 새 한 마리가 거실 유리문에 부딪쳐 데크 위로 떨어지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투명한 유리문을 미처 감지하지 못하고 힘차게 날아들었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벌써 숨이 멎었다. 작고 예쁜 새였는데, 사진을 찍어 검색해보니 동박새였다. 평소 이 녀석이 즐겨 찾아들었던 굴거리나무 아래 묻어주었다.


말이나 노루, 새들은 그래도 직접적으로 사람을 위협하지는 않으니 참을 만하지만 각종 벌레들이 집 안에 들어오는 건 정말 질색이다. 한번은 잠을 자다가 문득 느낌이 있어 얼굴을 더듬어보니 지네처럼 생긴 벌레였다. 한밤중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려고 불을 켜보면 방바닥에 기어 다니는 놈이 발견되기도 한다. 파리, 모기 정도나 신경 쓰면 되는 도시의 아파트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이런 일을 몇 차례 겪고 나서 벌레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약을 건물 주위에 뿌려 놓았더니 좀 덜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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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벌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것도 크게 신경 쓰이는 일이다. 여왕벌이 분봉해 자리를 잡으면 수백 마리가 따라붙어 덩어리를 이룬다. 한번은 우리집 매화나무 굵은 가지에 토종벌이 무리를 이뤄 매달리고 수백 마리 벌들이 주위를 날아다니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러더니 다음날 사라졌는데 알고 보니 다른 집 처마 밑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결국 소방서에 신고해 소방관 4명이 출동하기에 이르렀다.


소방관들은 물대포를 쏘아 벌을 퇴치하고 돌아갔는데, 아무리 보아도 물대포를 동원할 일은 아니었다. 이번 벌 소동을 겪으면서 관심이 생겨 알아보니 서울의 한 소방서에서는 진공청소기 원리를 이용한 벌 포획기를 만들어 안전하게 벌들을 잡아간다는 것이었다. 소방관 출동 건수의 24%가 벌과 관련한 출동이어서 이런 벌 포획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가끔은 정원 구석에 우거진 풀 속으로 뱀들이 다니는 모습도 보이고, 아침이면 뜰을 거닐다가 간밤에 새로 생긴 거미줄에 닿아 깜짝 놀라기도 한다. 꽃밭이나 텃밭에 맨살을 드러내고 얼씬 거렸다가는 순식간에 모기의 집중 공격을 받기 십상이다.


솔직히 아직도 이처럼 야생의 자연환경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거실에서 기어 다니는 벌레라도 발견하는 날이면 갑자기 아파트 생활이 그리워지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온갖 동식물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제주의 자연이 좋다. 사실 따지고 보면 원래 이 땅은 노루들이 뛰놀던 곳이고, 뱀들이 다니는 길이었고, 새들의 천국이 아니었나. 뒤늦게 들어온 사람들이 나무들 베어낸 자리에 집 짓고 살면서 주인 노릇 하는 격이니, 오히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 같다. (2018.7)


황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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