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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갑자기 사라졌다가 예고도 없이 돌아온 그녀의 8년

by오마이뉴스

[인터뷰] 뮤지컬 <드라큘라>로 무대에 복귀한 배우 선민

오마이뉴스

8년 만에 다시 오른 무대 ▲ “저도 제가 첫 공연 때 엄청 떨 줄 알았어요. ‘당연히 떨리겠지?’했죠. 제작사 분들도, ‘얼마나 떨릴까’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해서, 저도 떨릴 것이라 기대(?)를 했는데 너무 안 떨리더라고요. ‘이상하다, 이거 병인가? 왜 안 떨리지?’ (웃음) 오히려 더 차분해졌어요. ‘이게 대체 뭘까’ 고민했는데, 이제 나이가 들면서 무대 위에서 긴장하는 건 해소된 게 아닐까 해요.” ⓒ 곽우신

연극·뮤지컬계에도 '원 히트 원더'가 있다면, 배우 선민은 그 주인공으로 주저 없이 꼽힐 만한 인물이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영화 및 드라마 OST 등을 통해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던 그가 공연계에 데뷔한 것은 2010~2011 시즌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 역을 맡으면서였다. '선민이 소화한 루시가 역대 수많은 루시 중 최고의 루시였느냐'라고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 어렵지만, 선민의 '루시'가 그 전까지 없었던 '루시'였다는 데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 뮤지컬계에 인상적인 족적을 남기게 된다.


캐릭터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에 새로운 노선을 제기한 그는, 같은 대본의 동일한 인물을 표현하더라도 배우에 따라 다른 길을 제시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한 이다. 대한민국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는 선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감히 표현해도, 지나친 미화는 아닐 것이다. '애기루시'라는 별명은 단순히 그가 젊은 나이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전까지의 루시와는 확실히 구분되는 종류의 매력을 선보였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바람처럼 사라졌다. 배우 선민은 2012~2013시즌 <지킬 앤 하이드>에서 루시를 한 번 더 맡은 후, 2013년 <아르센 루팡>의 조세핀으로 출연한 것을 끝으로 종적을 감췄다. 이후로도 왕성한 무대 활동을 예상했는데, 단 두 개의 필모그래피만 남긴 채 뮤지컬 무대를 떠난 그의 복귀를 최근까지도 많은 이가 그리워했다. 유튜브 영상 등 그가 남기고 간 흔적들에는 그의 근황을 궁금해하며 응원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예고도 없이 사라졌던 그가, 8년 만에 뮤지컬 <드라큘라>의 무대로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8년 전 마지막 작품이었던 <아르센 루팡>을 한 그 극장이다. 이번에 맡은 배역의 이름 역시 <지킬 앤 하이드> 때와 같은 '루시'이다. 팬들에게는 말 그대로 "일곱 대양 건너" 온, "오랜 시간 기다린" 주인이 드라큘라가 아니라 선민의 루시인 셈이다. '애기루시'가 '어른루시'가 되는 그 사이, 예술의전당과 블루스퀘어에서 그를 보고 매료되었던 대학생은 기자가 되어, 그를 만났다.

8년의 쉼표, 그리고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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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한국 ▲ “저 한국에 왔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다 물어보더라고요. ‘얼마나 있을 거야?’ ‘잠깐 온 거야?’라고. (웃음) 아직도 ‘다시 가?’ 그러시는데, 그런건 아니고요! 저도 한국 사람이니까. (웃음) 이제 한국에 살아야죠.”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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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후 결혼설에 대하여 ▲ “아니요? 제가요? 아,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나요? (박수치며 웃음) 제 주변에서도 많이들 그러더라고요. 똑같이 물어보던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누가 혼인신고를…. (웃음) 아닙니다!” ⓒ 곽우신

"<아르센 루팡>이 끝나고 사촌언니가 있는 캐나다로 놀러갔어요. 갔는데 너무 좋았죠. 그래서 약간 매료된 거죠. 그렇게 있다 보니까 조금? 많이? 길어지게 됐는데… 그리고는 작년에 돌아오게 됐답니다! (웃음) 아, 너무 많이 생략됐나요? (웃음) 처음에는 정말 그냥 한 달 정도 놀러가는 계획이었어요. (웃음)"


상업적으로 아쉬운 결과를 남긴 <아르센 루팡>이었지만, 선민은 "<루팡> 때문에 쉰 건 아니에요"라며 웃어 보였다. 그저 즉흥적으로 쉬기 위해 갔던 여행이었고, 마음에 들어서 지내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흐르게 됐다.


캐나다의 풍광에 매료됐던 그가 귀국을 결심하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코로나19도 큰 부분을 차지했다. 위험한 환경 속에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인종 차별적인 시선들도 감내해야 했다. 캐나다에 눌러 앉았을 때처럼, '쿨'하게 캐나다를 다시 떠나 한국에 돌아온 게 작년이었다. 그리고 뮤지컬 배우였던 선민은, 자연인 이선민으로서, 정말 오랜만에 편한 마음으로 한 뮤지컬 작품을 관람한다. 그게 바로 2020시즌 <드라큘라>였다.


"처음 봤을 때는, 되게 오랜만에 극장에 와서 뮤지컬을 본다는 것 자체가 더 크게 와 닿았어요. '와, 오랜만에 극장에 왔네', '오랜만에 배우들이 하는 걸 봤네' 이런 거에 더 집중됐다고 해야 할까요? (웃음) 역시나 음악이 너무 좋았고. (웃음) 그때는 사실 제가 이 작품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그냥 사심 없이 봤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쨌든 공연을 보러 가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배우들이 하는 것도 보고, 좀 공부하려고 보는 느낌이 강하다면 그때는 편하게 봐서 좋았어요. (웃음)"


하게 될 운명이었던 것일까. 우연찮게도 귀국 후 처음으로 즐겁게 관람한 그 뮤지컬 <드라큘라>의 오디션 제의를 받게 됐다. 아직 오디션을 봐야겠다는 생각도 미처 하지 못하던 때, 선민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갑작스럽게 가지게 된 긴 휴지기도, 불쑥 무대로 복귀하게 된 과정도, 무엇 하나 계획된 게 없었다. 본능적으로, 끌리는 대로, 자유롭게 삶의 변곡점을 선택해 온 그는 여러모로 루시와 닮아 있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연락처가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연락이 닿은 분 중 한 분이 오디컴퍼니에 계셨던 분이었어요. 제가 한국에 온 걸 알게 되고, 이 분이 '내년에 이런 작품이 올라가는데, 어떻겠느냐'라고 감사하게도 오디션을 제안해주셨어요. 그러면서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제가 먼저 '저 한국에 왔는데 오디션을 보고 싶습니다' 한 건 아니었죠.


물론, 먼저 오디션 제의가 없었다면 제가 그렇게 나섰겠죠? 연락이 없으셨다면 몇 달 정도 지난 후에 제가 '오디션을 보고 싶다'라고 지원했을 거예요. 그러면 아마 이 작품이 아니라 다른 작품을 하게 됐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때는 아직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셔서 '어? 내가?' 했어요. (웃음)"

호기심, 본능, 솔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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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The Mist)'가 가장 좋아하는 넘버인 이유? ▲ “아, 지금은 아니에요. (웃음) 작년에 를 봤을 때는 그 곡이 되게 인상 깊었어요. 연습 들어가기 전에는 그 노래가 제일 좋았는데, (웃음) 마냥 멜로디가 좋고 이게 다가 아니잖아요? 어쨌든 제가 이거를 표현해야 하는 부담감이 생기고 나니까, ‘제일 좋아’ 이건 이제 아니게 됐어요. (웃음) 역시 일이 되니까…. (웃음) 제가 되게 좋아하는 멜로디인 건 맞아요. 꼭 ‘미스트’만이 아니라 넘버 전부가 다요. 음…. 굳이 한 곡을 꼽기는 어려운데, ‘제일 좋아’ 한 곡은 아니지만, 요즘에는 미나의 ‘윙즈(If I Had Wings)’ 앞부분이 너무 좋아요. 그 긴박감이요!” ⓒ 곽우신

뮤지컬 <드라큘라> 속 루시도 그런 인물이다. 선민은 "루시는 일단 호기심이 많고, 본능적이고, 자기 감정에 솔직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작품 속 여주인공 '미나'가 전생에서부터 남주인공 드라큘라와 얽혀온 운명의 상대라면, 미나의 친구로 등장하는 루시는 그 운명에 휩쓸려 드라큘라에게 물리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인물이다. 차분하면서도 드라큘라의 사랑을 거부하고, 운명에 저항하려는 미나와는 성격부터 분위기까지 대조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걱정이 있었어요. 대단한 걱정은 아니었지만, 루시는 '깨발랄'하고 조금은 수다스럽고, 흥분 잘하고, 이런 친구라는 느낌이 있어서요. 물론 저도 웃기고 유쾌하기는 하지만. (웃음) 막 그렇게까지는 아니라서 '내가 저게 될까?' '표현을 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죠. 루시를 제안 받았을 때 제 안에도 의심이 약간 있었어요. 루시를 연기하면서 '아예 뭔가 새로운 걸 해야 된다'라는 걱정이 있었죠. 저도 저한테 갖고 있는 편견이란 게 있으니까, 새로운 뭔가 하나를 만들어서, 아예 '연기'를 해야겠다는 느낌이 강했죠.


그런데 막상 하다 보니 점점 더 편해졌어요. 저에게 없는 부분을 만들어서 루시를 채우고 있다기 보다는, 조금 더 저의 발랄함을 꺼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번에 자신이 없는 부분을 깨어본 게 되게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더 정확하게는 잘하고 편한 부분만 아니라 편하지 않은 부분도 해봤다는 게 저한테는 굉장히 도움이 됐어요."


드라큘라는 미나에게 운명과 사랑을 이야기하며 자신과 함께 하자고 부탁한다. 많은 이가 갈망하는 "영원한 삶"을 약속한다. 그러나 미나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처음에 이를 부정하고 거부한다. 드라큘라는 미나의 거부에 "무덤은 필요없는 삶"을 대신 루시에게 선사한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드라큘라에게 물리게 된 루시는 빠른 속도로 변해간다. 이후 미나가 드라큘라에게 물리고 난 뒤, 저항하며 버티는 것과는 다소 다른 흐름이다.


"연습하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는 했어요. 물론 상황이 좀 다른 건 있죠. 일단 루시는 선택권이 없이 먼저 물려버렸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걸 떠나서, 루시는 드라큘라가 물지 않았더라도, 처음 본 순간부터 홀리는 게 있거든요. 만약 드라큘라가 루시를 찾아가 영원한 삶이 무엇인지 설명했다면, 그 삶을 선택했을 거예요. 그리고 미나보다 훨씬 더 빨리 그리고 강력하게 동화됐겠죠.


루시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더 본능적이고, 솔직하고, 호기심도 강한 인물이니까요. 만약 미나가 아니라 루시가 드라큘라의 운명이었다면, 정말로 둘이 신나게 물고 다니고, '런던을 정복'해서 뱀파이어들의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요? (웃음) 만약 저였다고 하더라도, 고민 끝에 영원한 삶을 선택할 것 같다고 한 건 그게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이잖아요. 늙고 싶지 않은 것, 최대한 늦게 죽고 싶어 하는 것 같은…. 인간에게는 절대 가능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그걸 한번 누려보고 싶을 것 같아요. 그렇게 선택해놓고 머지않아 후회하겠죠. (웃음)"

그에게 끌리다, 그를 선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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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의 죽음 ▲ 마지막에 죽임을 당할 때도 어떻게든 아더에게 옛날의 그 루시인 척 하면서 이야기하지만, 드라큘라에게 물리고 난 후의 루시는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생각해요. 그저 피를 빨고 싶다는 본능만 강하게 남아있는 거죠. 다만, 아더에게 흡혈귀가 된 것이 얼마나 괜찮은 삶인지 말하잖아요? 그걸 보여주고 싶다고…. 저는 진짜 루시도 원래 그런 삶을 살고 싶어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해요. 그런 본능이 가장 앞서있기 때문에, 그 말만큼은 진심이 아니었을까요? ⓒ 곽우신

선민의 말마따나 미나의 친구인 루시는 "그들의 관계를 '빌드업'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캐릭터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해석하고 표현하는 루시가 그저 기능적인 인물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드라큘라에 의해 일방적으로 끌어당겨져 악역으로 변하는 인물로 가두고 싶지 않았다. 아더와 퀸시, 잭이라는 세 인물이 루시에게 같은 날 청혼할 때, 소꿉친구였던 아더를 택하는 것이 루시의 의지이듯, 드라큘라에게 끌려서 물리는 것 역시 그 안에는 루시의 본능과 욕망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루시가 드라큘라에게 끌린 건, 드라큘라가 자신의 힘을 이용해 끌어당긴 것일 수도 있지만, 애초에 드라큘라 자체가 새로운, 미스터리한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제가 해석한 루시가 처음에 아더를 고른 이유 중에도 그런 이유가 있어요. 퀸시는 이런 장점이 있고, 잭은 이런 장점이 있지만, 계속해서 아더는 '잘 모르겠다', '소극적이다'라고 하는데, 결국 아더를 선택하잖아요? 루시 입장에서는 아더는 잘 모르겠는, 미스터리한 매력이 있는 거죠. 다른 청혼자들은 명확하게 어떤 메시지를 주며 다가오는데, 잘 알 수 없는 아더를 선택하는 그런 면이 루시에게 있다고 연결했어요. 같은 이유 때문에 처음 보는 드라큘라에게도 '저 남자는 누구지?'하고 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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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를 이해하다 ▲ “‘드라큘라’라는 인물에게 공감하는 편이에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보면서 ‘왜 저래?’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원래 사람 마음은 잘 변하니까요. (웃음) 왔다갔다 잘 하니까! 드라큘라는 미나가 너무 갖고 싶었고, 자기 욕심이 앞섰지만, 이 삶이 절대 행복과 즐거움만 있는 게 아니고, 감당해야 될 게 너무 많고, 또 다른 외로움이 너무 크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급격한 심경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던 게 아닐까요.” ⓒ 곽우신

그런 면들을 표현하기 위한 고민도 필수였다. 선민은 주어진 역할을 수동적으로 해내는 것만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소화해낸 인물을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배우이다. 관객을 설득할 수 있을만한 설정을 만들고, 제한된 시간과 장면들 속에서 배우가 할 수 있는 디테일들을 통해 이를 드러내는 것. 그런 고민 중 하나가 '드라큘라에게 물리기 이전과 이후의 루시를 어떻게 규정하고 표현하느냐'였다.


"루시가 드라큘라한테 갑자기 불려 와서 물리기 이전부터, 루시는 드라큘라한테 홀려 있어요.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 드라큘라가 왔다가 그냥 떠난 뒤에도 루시 혼자 그 자리를 더 오랜 시간 쳐다보고 있죠. 물리고 나서 아더와의 결혼식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티를 덜 내려고 해요. 결혼이니까 마냥 더 행복하고 본래 루시의 '깨발랄'한 모습을 원하는 목소리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루시가 꿈이라고 믿고 있고, 깊게 물리지 않았더라도, 그 전과는 어쨌든 달라졌다고 생각했죠. 물리고 나서 '꿈을 꿨다'고 말할 때도, 비록 잠결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이미 목소리도 조금 바뀌어요. 루시가 주는 에너지도 훨씬 차분해지죠.


물리고 난 뒤의 루시는 다른 사람이거든요. 연습실 안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물리고 나서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설정했어요. 실제로 드라큘라가 루시의 결혼식에 오기 전까지 루시는 자신이 꿈을 꾼 줄만 알고 그의 존재를 믿지 않았죠. 하지만 이미 지금까지의 루시와는 상관없는 존재가 된 거예요. 물론, 저만의 해석이지만요.


그래서 루시는 드라큘라에게 물리지 않았더라도, 당장은 잘 살았겠지만 또 새로운 상대에게 끌렸을 것 같아요. (웃음) 아더가 아닌 어떤 새로운 상대에게 쉽게 호기심을 갖고, 끌렸겠죠. 뭐 그게 꼭 '막장'으로 가는 것까지를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라큘라만 없었다면 행복하게 잘 살았을 거다' 단순하게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앞으로가 열려 있는, 그래서 더 기대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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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관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 ▲ “배우 한 사람이 작품 전체가 어떤 주제나 메시지를 주려는 것인지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저는 순애보적 사랑이 큰 것 같아요. ‘이 사람을 그렇게까지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랑’이요. 순간 질투도 나고, 자제도 못하고 하지만, 기다려주고,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랑. 그래서 드라큘라가 미나한테 ‘당신이 원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라는 대사를 처음 듣고 굉장히 좋았어요. 내가 당신을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지만, 나는 당신이 원하면 하지 않는다. 기다릴 수 있다, 설득할 수 있다는 게 보이잖아요.” ⓒ 곽우신

"저 원래 공연하는 걸 좋아했어요. 예전에 뮤지컬을 했던 게 되게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거든요. 합동으로 함께 한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드라큘라> 덕분에 다시 알게 됐어요. 나 혼자 튀고, 나 혼자만 표현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하는 것에서 또 배우는 게 있으니까요. 또, 주변으로부터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좋은 얘기, 안 좋은 얘기 다 듣지만, 결국에는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고 가는 것도 배운 것 같고…. 개인적으로 그런 것들이 좋은 시간이었어요."


오랜만에 하게 된 뮤지컬은 예전의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해줬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결정한 귀국이, 귀국해서 처음 본 작품이, 어쩌다 남아있던 연락처가, 이렇게 여기로 그를 끌어당겼다. 그렇다고 그 인력에 그저 끌어당겨져서 무대 위로 돌아온 건 아니다. 그 역시 무대를 갈망할 수밖에 없는 열망이 있는 배우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가 '원 히트 원더'에서 '레전드'가 되어가는 그 변곡점을 함께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드라큘라>는 참 뮤지컬스러운 뮤지컬 같아요. 화려하고, 웅장하고, 멋있고, 음악이 좋고, 보통 '뮤지컬'하면 상상하는 것들이 그대로 웅장하게 재연되어 있죠. 참 재미있고,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주변에서 뮤지컬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왜 뮤지컬, 뮤지컬하는지 알겠다'하게 만드는 작품이요. 그런 작품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되게 감사해요.


제 개인적으로도 이 작품을 하면서 저에게 편한 거, 편하지 않았던 것을 다 해봤어요. 일단 제가 편하지 않은 것에 대해 시도해본 것만으로도 되게 즐거운 경험이었죠. 처음에는 헤맸고, 혼란스러웠지만, 해봤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아요. 그 편하지 않았던 것들마저도 편하게 만든 게 기분이 좋아요. 저 스스로 안 해 본 걸 깨고, 제 안의 편견을 깨고, 성장하는 것 자체를 좋아해요. <드라큘라>가 그런 또 하나의 계기이자 경험이 됐죠."


8년 만에 뮤지컬로 돌아온 선민은 "또 8년을 쉬면 안 되겠죠?"하며 당분간 무대 활동을 열심히 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논의 중인 차기작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우로써 경력을 얼마나 쌓고, 어떤 작품이나 배역을 해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할 수 있는 그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씩 해낼 것이다. 그게 어느 길로 향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본능적으로, 끌리는 대로.


"사실, 계획을 한다고 해서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인생이. (웃음) 그래서 저는 열어놓고 생각하고 싶어요. 아, 이건 전체적인 것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다음에 또 한 작품을 할 수도 있지만, 또 배우라는 게 선택되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다음 작품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죠. (웃음) 제가 막 단기간에, 3년 안의, 5년 안의 목표를 세우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 안에서 작품을 하면서 개인적인 경험도 하고, 또 음악이든 뭐든 다른 뭔가를 할 수 있으면 하고, 원래 제 개인적인 성향은 열려있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열어두려고 노력하는 면이 좀 있어요. 일단, 이 뮤지컬도 '아, 재밌었다'라는 게 사실은 가장 큰 수확인 것 같아요. 보시는 분들도 돈을 쓰고, 시간을 내고 오셔서 재미를 얻어 가시는 게 제일 큰 수확이잖아요? 제가 그 재미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니 더 열심히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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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민의 루시가 받는 평가 ▲ “제가 SNS도 안 하고 그러다 보니까, 사실 관객 분들이 어떻게 평가해주시는지 잘 몰라요. 주변에서 해주는 평가는 있는데, 제가 또 그걸 제 입으로 하는 건 멋이 떨어지잖아요. (웃음) 아, 그래서 남들이 좀 저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해주고 다녔으면 좋겠는데, 나한테만 딱 전해주고다른 데 가서는 안 하더라고요! ‘아, 얘가 입이 좀 가벼웠으면 어떨까’하기까지 했다니까요. 어쨌든, 제가 이렇게 제 입으로 말하면 민망하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아시죠? (웃음)” ⓒ 곽우신

곽우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