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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함소원 빠졌으니 '와카남'은 문제없다?

by오마이뉴스

'아내의 맛' 자기 복제 <와이프 카드 쓰는 남자>... 변화나 성찰의 흔적 보이지 않아

오마이뉴스

▲ <와이프 카드 쓰는 남자>의 한 장면 ⓒ TV조선

TV조선은 최근 가족예능 <와이프 카드 쓰는 남자>(와카남)를 새롭게 편성했다. 현대사회에서 유능하고 경제력 있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가족문화의 중심도 과거의 가부장제와 현모양처 위주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있는 추세다. 오히려 능력있는 아내 덕분에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남편들도 많다.


지난주부터 방송을 시작한 <와카남>은 이처럼 달라진 부부와 가족문화의 일상을 관찰하는 리얼리티 예능을 표방했다. '기부왕'으로 알려진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 부부, 여에스더와 홍혜걸 의사부부, 코미디언 홍현희와 디자이너 제이쓴 부부, 지난 4월 결혼 후 신혼 생활을 만끽 중인 클릭비 출신 오종혁과 박혜수 부부, 트로트 가수로 활동중인 재한 미국인 마리아 등이 출연했다.


6일 방송된 2회에는 이수영 회장과 마리아 가족, 홍현희 부부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수영 회장의 미국에서의 화려한 일상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별장에서 부동산 중개업자를 맞이한 이 회장은 LA 자택의 시가가 구매 당시보다 두 배 가까이 뛰어올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 회장은 미국에서 첫 부동산 투자 성공 스토리를 고백하며 지금은 해당 건물을 카이스트에 기부했다는 미담을 전해 출연자들의 박수를 끌어냈다.


뒤이어 이수영 회장은 은행 직원들의 극진한 대접 속에서 자신의 계좌 내역을 꼼꼼하게 점검한 이후 여고 동창들과 함께 LA 나들이에 나서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연세가 연세이다보니 주변 친구들의 웃픈 근황에서 과거 폭로까지 K-할매들의 필터없는 입담은 스튜디오에서 지켜보던 MC와 패널들까지 모두 빵 터지게 했다.


마리아 가족의 한국에서의 생활도 공개됐다. 마리아는 부모님과 식사를 마치고 가수로서의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하여 출근했다. 마리아의 부모님은 전통시장을 구경하고 식재료들을 구입했다. 마리아 가족은 저녁식사로 갈라레트카와 비고스라는 폴란드식 닭요리를 함께 먹으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마리아는 고국으로 돌아가는 부모님을 위해 깜짝 선물로 요강을 준비하여 MC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마리아가 요강이 복을 가져다 준다는 의미를 설명했고, 부모님에게 진심이 담긴 포옹을 선물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세 만기가 다가온 홍현희-제이쓴 부부는 내 집 마련을 위해 부동산을 방문했다. 유명한 연예인이나 셀럽들이 거주한다는 초호화 주택을 찾은 홍제 부부는 화려한 집안 곳곳을 둘러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하지만 매매가 100억대 초반, 한 달 관리비만 무려 150만 원에 이르는 엄청난 가격대에 경악하여 좌절했다. 부동산 직원이 제일 작은 평수가 75평이고 가격이 60억대, 전세가 50억대에 육박한다고 설명하자 부부는 말을 잇지 못했다. "2061년 6월에 연락하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기고 자리를 떠난 홍제 부부는 마지막으로 주택청약을 기약하며 다음주를 예고했다.

포장만 바꾼 <아내의 맛>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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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프 카드 쓰는 남자>의 한 장면 ⓒ TV조선

<와카남>은 지난 4월 종영한 <아내의 맛>의 사실상 속편이다. 2018년부터 방송을 시작한 <아내의 맛>은 TV조선을 대표하는 장수 가족 예능으로 높은 인기를 모았으나 출연자 함소원 가족을 둘러싼 조작 논란으로 도마에 오르며 불명예 종영한 바 있다. <아내의 맛> 제작진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함소원과 관련된 일부 에피소드에 과장된 연출이 있었다"고 인정하며 "방송 프로그램의 가장 큰 덕목인 신뢰를 훼손한 점에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했다. 출연자 함소원 역시 방송을 하차하며 개인 SNS에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TV조선은 불과 3개월도 안 돼 포장만 바꿔서 사실상 <아내의 맛>을 부활시켰다. <와카남>은 <아내의 맛> 진행을 맡았던 박명수-이휘재를 필두로 홍현희-제이쓴-이하정-장영란 등 출연자들과 스튜디오 구성과 구도, VCR을 지켜보는 관찰예능식 장르, 프로그램 방영 시간, 심지어 PD와 제작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이 전작과 그대로 일치한다. 막장드라마에서 이른바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나온 걸로 완전히 다른 인물들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전혀 다를 게 없는 뻔뻔함이다. <아내의 맛> 당시 논란에 대하여 사과했던 진정성마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와카남>은 이 프로그램만의 관전포인트로, '변화된 시대에 따라 경제력이 높은 아내가 늘어나고 있는 생활 트렌드를 적극 반영하여 세대를 아우르는 리얼리티 가족예능'을 표방했다. 설명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뚜껑을 열자 내용과 볼거리 역시 <아내의 맛>과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아내의 맛>도 시작 당시에는 나름의 지향점이 있었다. 대한민국 유명 셀러브리티 부부들의 식탁문화를 중심으로 '요리와 살림솜씨'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관찰 예능이었다. 하지만 초반부 이후로는 진정성이 의심되는 과장된 에피소드와 출연자들을 둘러싼 잇단 구설수에 휘말리며 사실상 기획 의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


<와카남>이 방송 2주간 지금까지 보여준 내용을 보면 제작진이 표방한 방송취지에 그나마 어울린다고 할 만한 출연자는 이수영 회장 정도뿐이다. 하지만 이 회장의 에피소드는 아내나 개인으로서의 인간적 면모보다는 사업가로서의 화려한 성공과 재력을 부각시키는 데만 초점이 맞춰졌다. 내 집 마련이 절실하다는 홍현희 부부가 처음부터 현실성도 없어보이는 초호화 주택을 둘러보는 에피소드의 개연성도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특히 사회적으로 부동산 문제가 큰 이슈가 되고있는 상황에서 해외 부동산 투자로 큰 돈을 벌었다는 갑부의 이야기나, 50억~100억에 이르는 초호화 아파트 이야기는 일반 서민들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남의 세상 이야기로 박탈감만 느끼게 한다. 더구나 기혼자도 아닌 '미스트롯 출신' 마리아가 뜬금없는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아내의 맛>에 '트로트 신동'들이 등장하거나, 선거를 앞두고 유명 정치인들이 잇달아 홍보성으로 출연했던 장면들을 연상시킨다.


전작 <아내의 맛>이 불명예 종영했던 이유는 단지 함소원 가족만의 문제는 결코 아니었다. 유명인들의 무분별한 사생활 노출과 '노이즈 마케팅'식의 선정적인 연출에만 매몰된 리얼리티 관찰 예능의 진정성에 시청자들이 점점 공감대를 잃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내의 맛>과 <와카남> 모두 출연자의 경제력이 가족 내 위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소재로 부각되며, 부와 명예를 동경하는 세속적이고 과도한 '배금주의' 정서가 유독 진하게 드러나는 프로그램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개인의 탓으로 모든 것을 전가하려다보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단지 함소원만 사라졌다고 해서 <와카남>이 <아내의 맛>과 다를 것이라는 보장이 있을까. 오히려 전작의 기시감은 여전하고 변화나 성찰의 흔적은 눈에 띄지 않는 <와카남>의 뻔뻔한 귀환은 새 출발이 아니라 시청자들에 대한 기만에 가깝다.


이준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