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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초가을 전망 감상하기 좋은 군산오름

자동차 후진 못하면 조심하세요, 공포의 제주 오름

by오마이뉴스

제주의 마을, 오름, 폭포와 그 안에 깃든 제주의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에는 정상 바로 아래의 주차장까지 차로 올라 갈 수 있는 오름이 있다. 서귀포시 중문과 산방산 사이에 동서로 길게 가로누운 군산(軍山) 오름이다. 대평리 넓은 들에 우뚝 솟아 있어서 제주도의 오름과 바다를 내려다보는 경치는 제주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다.


감산리 안덕계곡에서 대평리(서난드르)를 잇는 대평감산로에 접어든 차는 군산오름 서쪽사면의 급경사를 가로지르며 구불구불 이어진다. 언덕길을 조금 더 내려가자 대평리 앞바다의 시원스러운 전망이 펼쳐졌다. 갓길에 차를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바다 뒤편에 군산오름이 대평리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었다.

차로 갈 수 있지만, 초보운전자라면 조심해야 할 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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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오름 주차장 ▲ 위험한 외길을 올라와 주차장에 도착하면 비로소 안도하게 된다. ⓒ 노시경

대평감산로에서 군산오름 주차장까지 향하는 1.5km 산길은 악명이 자자한 곳이다. 편히 오르기 위해 택한 자동차 길이지만 언제 어떤 상황과 맞닥뜨릴지 모르는 공포의 길이다. 좁은 1차선 도로인데 절벽 쪽으로 가드레일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 차선에서 차가 오지 않으면 행운이지만 차가 나타나면 피할 길이 없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시간에 오면 무척이나 위험할 것 같다. 가끔 길 중간에 차를 피할 수 있는 작은 공간들이 있지만 꼭 이 공간에서 차를 맞딱드린다는 보장이 없다.


오름 주차장까지 올라가는 길은 긴장의 연속이다. 한번 막혀 버리면 여러 대가 엉키는 최악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자동차 후진실력이 없는 초보 운전자는 절대 오르면 안 되는 길이다.


내려오는 차가 있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구불구불한 산길을 아슬아슬하게 올라가는데, 다행히 내 차 앞에는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차가 한 대 있었다. 차 2대가 함께 올라가니 산길을 내려오는 차가 후진해 물러섰다.


정상 140m 아래 부분에 주차장이 조성돼 있는데, 주차장도 차 몇 대를 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편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숨을 돌리니 비로소 바다가 펼쳐져 보였다. 아마도 주자창 중에는 제주도에서 가장 좋은 전망을 가진 곳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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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동굴 입구 ▲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제주도민을 동원해 만든 진지동굴이다. ⓒ 노시경

주차장에서 정상부 능선까지는 경사진 계단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계단길 중간에 보니 일제강점기 당시 만들어진 제8 진지동굴이 보존돼 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일제는 이 군산오름에 제주도민을 동원해 9개나 되는 진지동굴을 만들어 놓았다. 제주도에 일본군 7400명이 주둔할 당시 해안 및 산간에 만들어진 군사시설로, 미군의 폭격에 대비해 군수물자를 보관하고 일본군이 대피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든 것이다.


진지동굴 안쪽이 막혀 있지는 않지만 좁고 어둡고 거미 같은 벌레들이 많아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없다. 잠깐 안으로 들어가보니 마치 일제강점기 시대의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동행한 아내가 이런 끔찍한 동굴을 아주 싫어하기 때문에 바로 동굴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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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오름 능선에서 본 전경 ▲ 서귀포 서남쪽 바닷가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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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오름 정상 ▲ 산 정상에는 붉은 송이 덩어리로 이루어진 바위가 독특하게 버티고 있다. ⓒ 노시경

제주 바다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

계단길을 따라 능선에 올라서자 서귀포의 바닷가 풍경이 드넓게 펼쳐졌다. 초가을의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곳은 쌍선망월형(雙仙望月形)의 명당 자리이지만, 이곳에 묘를 쓰면 가뭄과 흉년이 든다고 하여 무덤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능선길과 오름의 자연이 잘 보존돼 있다.


생김새가 군막(軍幕)과 비슷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원추형 오름인 군산오름은 골짜기가 많아 굴메오름, 코메오름으로도 불린다. 평지 같은 능선을 지나 150m가량을 걸어 가니, 붉은 현무암 바위로 만들어진 335m의 정상 봉우리가 나온다.


정상 바위로 올라가는 길은 약간 험하고 미끄러운데, 지나가던 동네 주민 분이 올라가기에 더 안전한 길을 알려준다. 이 분은 다른 말도 없이 산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운동 삼아 산을 걸어서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는 것 같았다. 강철 같은 건강으로 오름 하나를 집 안 마당 같이 오르내린다. 한동안 한라산 방향을 바라보며 명상을 취하다가 내려가는 주민의 모습을 보니 차를 타고 올라온 내가 괜히 머쓱해졌다.


돌산 같이 생긴 정상은 내륙지방의 일반적인 산 정상과는 다른 모습이다. 산 정상에는 붉은 송이 덩어리 같이 독특하게 생긴 붉은 바위가 버티고 있다. 군산오름 정상부의 이 바위가 용 머리에 쌍봉이 솟았다고 하는 두 개의 뿔바위이다. 이 뿔바위는 좁은 현무암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상 위의 면적이 좁아서 여러 사람이 함께 서 있기에는 불편하고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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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앞바다 ▲ 서귀포 혁신도시, 중문단지, 범섬, 문섬, 섶섬이 한눈에 펼쳐진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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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산 방면 전경 ▲ 산방산 너머 송악산이 바다를 향해 돌진하는 듯이 보인다. ⓒ 노시경

눈 앞에 펼쳐질 풍경에 잔뜩 기대를 하고 올라간 산의 정상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정상의 사면이 모두 막히지 않아 가슴이 탁 트이는 비경을 보여준다. 정상 동쪽으로는 서귀포 혁신도시, 중문단지와 함께 바다 위의 범섬, 문섬, 섶섬이 한눈에 펼쳐지고, 서쪽으로는 묵직한 산방산과 함께 송악산, 형제섬, 가파도, 마라도가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온다.


바다를 향해 달려가다가 굳은 용암이 만들어 놓은 해안선이 마치 바다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다. 고개를 돌려보면 한라산과 그 앞의 대지가 광활하게 펼쳐지고, 제주의 수많은 오름들이 나를 반기는 것만 같다.


꽤 험한 군산오름의 정상 위에 작은 반려견 한 마리가 주인을 따라 올라왔다. 사랑을 듬뿍 받는 이 포메라니안은 많은 여행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이 귀여운 반려견은 뭇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면서 오름 아래의 전망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름 위에는 초가을을 알리는 풀벌레 소리가 진동했다. 조금씩 가을의 석양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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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서 만난 반려견 ▲ 사람들 시선을 즐기면서 오름 아래 전망을 내려다보고 있다. ⓒ 노시경

노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