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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인터뷰] 화천 청년 농부, '돌팍' 김화목씨를 만나다

글 쓰고 3만 평 농사까지 짓는 청년, 이렇게 삽니다

by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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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농부 '돌팍' 김화목 ▲ 돌팍은 제주도 말인데 돌팩, 돌팍, 돌패기 등으로 불리고 무식하게 용감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 나익수

화천군 청년 농부 김화목씨를 만나러 갔다. 김화목씨는 강원도 화천군 선이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정규 학교를 다니지 않은 채 농부의 꿈을 키워 왔다. 나아가 시골에서, 농촌에서 청년들이 살고 싶게 하는 데 관심이 많다. 출판사를 만들어서 책을 내기도 했고, 틈틈이 글을 쓰며 음악을 즐기기도 한다. 스스로 붙인 별명 '돌팍'처럼 무식하고 용감하게 부딪쳐 가는 그의 삶이 궁금하다.


화천읍에서 10분 안팎 거리에 있는 신혼집(김화목씨는 결혼은 하지 않고 여자친구와 살고 있다) 앞에서 김화목씨를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산다. 곧 화목씨가 부모님과 살던 선이골로 자리를 옮겼다. 금방 갈 줄 알았는데, 트럭으로 20여 분을 갔다.


경운기를 타고 가는 기분이 들 정도로 울퉁불퉁한 산골이었다. 차가 없었을 때는 여기를 일곱 식구가 걸어서 다녔겠구나 생각하니 깊은 숨이 절로 나왔다. 선이골이 가까워지자 개복숭아(야생 복숭아)가 많이 보였다. 부모님은 한때 이 복숭아를 생협에 납품하여 생계에도 보탬이 되었다고 한다.

동네 삼촌들이 생각하지 말고 그냥 농사지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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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시절 5남매. 그때 유행하던 배트맨 흉내를 내고 있다 ⓒ 나익수

김화목씨는 벼농사를 많이 짓고 밭농사로 콩, 수수, 무 등을 한다고 한다. 농지가 화천 곳곳에 있다. 다 임대 농지다. 밭에서 밭까지 거리가 35킬로미터 되는 곳도 있으니 다 둘러보는 데만도 두 시간은 걸린다고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곳 선이골에 살면서 농사를 지었기에 논밭 관리도 만만치 않았을 듯하다.

"땅은 얼마든지 있는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 얻기가 진짜 힘들어요. 조건이 좋은 데도 있고 나쁜 데도 있잖아요. 그런데 가려 가면서 얻고 그러면 임대를 안 줄까 봐 막 얻기 시작해서 지금은 3만 평 정도 돼요."

많이도 짓는다 싶다. 이렇게 농지를 많이 늘린 것은 23살부터였다고 한다. 3~4년 전인 셈이다. 제대로 농사지어서 먹고살겠다는 마음이 생겨, 임대 농지를 나오는 대로 얻었다고 한다. 10대 때 농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돈을 벌겠다는 마음으로 몇 년 사이 농지를 늘려나갔다.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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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인삼밭이었던 곳에 벼농사를 지었다. 인삼밭에는 농약을 말도 못하게 많이 치기에 처음 한두 해에는 논에서 풀이 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친환경농사도 할 만하네 하고 자신감을 얻었다고. ⓒ 나익수

그전까지는 먹을 만큼 농사짓고, 음악을 비롯해 하고 싶은 일을 할 생각이었다. 어려서부터 친환경 농사를 해 왔으니 청년이 되어서도 친환경 농사를 지어 왔고, 인연이 닿아 생협에도 농산물을 대고 있었다. 그런데 삼촌들(농사짓는 동네 형님들을 삼촌이라고 했다)과 얘기를 나누고 만나면서, 아니다 싶은 모습을 많이 봤다고 한다.


본인 생각에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보이니까 삼촌들에게 따지고 대들기도 했나 보다. 그럴 때면 '너는 고작 농사를 이 정도 지으니까 그런 소리를 하지' 하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화목씨는 스스로 '돌팍'(제주도 말로 무식하게 용감하다는 뜻이라고 한다)이라는 별명을 지었듯이 가만있지 않았다. '그래? 그럼 나도 좀 늘려 보자' 하는 마음으로 농지를 늘리기 시작했다.


농사 규모도 삼촌들과 견줄 만해지고, 그 덕(?)에 빚도 여느 농부들처럼 지게 되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너는 처자식이 없으니까 입바른 소리를 하지' 하는 말이 나왔다. 이때 '아, 사람들한테 맞추면 안 되겠다'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얘기를 들으며 김화목씨는 별명처럼 저돌적인 모습도 있지만 가다가 멈출 줄 아는 성찰하는 모습도 있구나 싶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지금 시대엔 남만 쳐다볼 게 아니라 자신도 들여다보는 성찰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모습을 김화목씨에게서 엿볼 수 있었다. 자꾸만 믿음이 갔다.


그런데 그 '아니다 싶은 행동'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얘기를 듣고 보니, 여기에 써도 될까 조심스럽긴 하다. 요즘엔 기계도 좋고 비료도 좋고 농약도 잘 나오고 하니 다들 농사는 잘 짓는다. 그러니 농산물 가격도 떨어지고, 돈 되는 농산물에 쏠리거나 보조 사업에 너나없이 달려드는 모습들을 보면서 실망했다고 한다.


더구나 친환경 농사를 한다면서도 그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듯한 일부 삼촌들과 자주 싸우기도 했단다. 그랬으니 삼촌들에게서 '생각하지 말고 그냥 농사지어라' 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구나 싶었다. 그는 생협을 두고도 여러 쓴소리를 했다. '원래 그런' 거는 없으니 앞으로도 김화목씨가 당연한 것에 의문을 갖고 파헤치면서 '생각하는' 농부가 되길 응원하고 싶다.

내 땅 없인 유기농 못 해요

지난해 김화목씨는 후계농업경영인이라는 이름으로 큰돈을 빌려 3000평 되는 땅을 샀다. 자기 땅이 생긴 것이다. 빌린 땅 3만 평까지 있으니 농기계도 빚으로 구입했다. 여느 농부들처럼 큰 빚을 진 채 자기 땅에 농사를 짓게 된 까닭이 궁금했다.


그동안 남의 땅을 빌려 친환경 농사를 짓다 보니 아쉬움이 컸다고 한다. 친환경 농사나 유기농은 땅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남의 땅에 이런 농사를 짓다 보면 2~3년 정성을 들여 땅을 살려 놓았는데 땅 주인이 다시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군말 없이 돌려줘야 하는 형편이다. 또 농기계를 빌려 쓰려면 늘 꼴찌로 작물을 심곤 했다. 농사짓는 때는 다들 비슷하기에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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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자라고 있는 찰수수를 사진에 담고 있는 화목씨 ⓒ 나익수

귀농한 분들을 자주 만나며 소규모로 유기농을 하는 분들에게서 자주 듣던 얘기였다. 친환경 농사는 단순히 값비싼 농산물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라 땅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자기 땅 없이 친환경 농사를 하는 농부들이 겪는 설움은 익히 들었기에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도 큰 빚을 진 채 농사를 지어야 하는 무게감도 걱정이 되었다.


4억이 조금 넘는 빚을 지고 나니 깨달은 게 있었다고 한다. 어느 순간 돈을 따라가는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더구나 농기계가 있어 다른 분들 농사를 기계로 지어 주면서 돈이 들어오는 게 보이니 헤어나기가 쉽지 않겠구나 싶었다. 대출 조건이 나쁘지 않기에 빚에 대한 압박감보다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다짐했다고 한다. 딱 빚 갚을 만큼만 벌고 나머지는 다른 생각으로 방향을 전환해야겠다고.


여자친구도 돈을 따라가려는 모습을 보며 뭐라고 한다고 해서, 둘 다 돈을 중심에 두지 않는 삶을 가려고 하는구나 싶었다. 김화목씨가 '브런치'라는 곳에 올린 글 중에 빚에 대해 쓴 글이 있다. 김화목 씨가 돈에 끌려가지 않고 지향하는 가치에 맞게 방향을 전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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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런치 글 에서 ⓒ 나익수

두더지로 가까워진 여자친구

이쯤에서 여자친구 얘기를 안 꺼낼 수가 없겠다.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두 사람을 잘 아는 분이 서로 잘 맞을 것 같다며 소개해 줬다고 한다. 지난해, 그러니까 2020년에 둘은 처음 만났다. 두더지가 처음 만난 두 사람을 순식간에 가까워지게 했다.


캐릭터 디자인 일을 하는 여자친구는 두더지를 엄청 좋아한다고 한다. 지금도 두더지 캐릭터로 카톡 이모티콘을 만들고 있다. 왜 두더지를 좋아하는지 물어볼 기회를 놓쳐서 아쉽다. 마침 김화목씨는 얼마 전 두더지를 손으로 잡은 영상을 찍어 뒀는데, 이 영상을 보여 주었단다.

"화천으로 거부감 없이 쉽게 왔어요. 고민을 많이 했죠. 사귀다 보면 헤어질 수도 있으니까. 제가 그때 '사람 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냥 와서 살아 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가는 거를 염두에 두고 와라' 이렇게 얘기했어요."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여자친구는 화목씨의 농사일을 응원해 주며 돕고 있다. 그동안은 소비자였다가 농부의 처지가 되니까 억울하고 화가 난다고 한다. 농산물을 비싸게 샀는데, 농민들이 받는 건 얼마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니까. 그래서 둘은 소비자도 적정한 가격, 농민도 적정한 가격을 한번 만들어 봐도 괜찮겠다는 얘기를 많이 나눈다고 한다.


두더지 때문에 가까워졌다고 하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나 가치관 등이 서로 맞는 부분이 많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시골에 살 거라 상상도 못 했지만 시골에 대한 거부감이나 편견이 없었기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인연이기도 하고 말이다. 앞으로 여자친구가 김화목씨를 모델로 하는 농부 캐릭터로 재미난 이모티콘을 만들기를 기대해 본다. 두 사람은 올해 초에 동네에서 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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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때 기념으로 무료로 해준다고 해서 새긴 타투다. 인드라망무늬는 원래 한 사람인데 부러 두 사람으로 바꿔 새겼다고 한다. 돌팍과 망둥이 아닐까 싶다. ⓒ 나익수

싱겁게 끝난 병역거부 선언은 페미니즘을 낳고

화목씨는 브런치(punch.co.kr)에 글을 쓴다.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로 써서 여기에 싣는다. 농부 이야기, 평화 이야기, 페미니즘 이야기 들이다. 이 가운데 <페미니스트는 무엇인가요?>, <여자는 집사람>, <'미투'당하고 싶으세요>라는 글이 눈길을 끌었다.


김화목씨에게 페미니즘은 어떻게 스며들었을까?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물었다. 딱히 없단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했고, 당연한 거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화목씨는 정규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비롯해 역사, 몸의학, 우리말 등을 공부했다. 특히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군대를 살인 연습을 하는 곳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병역거부를 마음먹었다고 한다.


20살쯤 군대 가야 할 때가 다가올 무렵 방법을 찾다 '전쟁없는세상'과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라는 단체를 만났다. 좋은 활동이 많아 지금까지도 이 단체와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 여러 활동 가운데에는 페미니즘 활동도 있었다.


병역거부 선언을 하려고 3년 남짓 해마다 영장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알고 봤더니 학력이 없어 공익 처분을 받게 되는데, 화천에 공익 활동을 할 만한 곳이 없어 기다리기만 하다가 결국 '장기 대기'로 면제를 받았다.


병역거부 선언은 싱겁게 끝나 버린 셈이지만 '페미니즘은 존중'이라는 그의 생각은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숱한 존재를 존중하는 태도는 곧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모습과도 같지 않을까 싶다. 화목 씨 팔뚝에 새긴 타투 무늬가 그걸 말해 주는 듯하다.


참, 화목 씨가 인상 깊게 읽은 페미니즘 관련 책을 독자들께도 소개한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이다. 읽어 보면 좋겠다.

농부로서 자부심을 담아내는 잡지 만들고파

김화목이라는 사람에게 농사란 무엇일까? 어린 시절 일곱 식구가 선이골에서 농사지으며 살 때의 경험과 기억이 농부의 길을 가게 하는 에너지가 아닐까 싶다. 자급자족의 원칙과 생태적인 삶, 대안교육을 실천하는 부모님께 교육을 받으며 자란 영향도 있었을 테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면 어머니가 뭐라고 하실 것 같다는 얘기를 들으니, 무엇보다 어머니가 지향한 삶의 가치를 늘 마음 깊이 새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야 조그만 텃밭 농사를 지으며 뿌리고 거둘 때 즐거움과 신비를 느끼며 호들갑을 떨곤 하지만, 농부로서 화목씨 마음은 더욱 깊고 무게감이 있는 듯하다.


화목씨는 농사 말고도 재주가 많다. 음악에도 관심과 재능이 있고, 혼자 공부해서 출판까지 해냈다. 뭔가에 깊게 파고드는 성격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작은책>이라는 잡지를 구독한 까닭이 궁금했다. <작은책>에 파헤칠 뭔가 있었나?

"한 3년 됐나요? 출판사를 했어요. 잡지를 만들고 싶어 가지고. 그때 구독했어요. <작은책>을 알고 있기도 했고요. 보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알겠다 싶어서 구독했지요."

역시 '돌팍'이다. 마음이 가고 생각이 미치면 용감하게 뛰어든다. 말투로 봐서는 참 순박해 보이는데... 그나저나 잡지라면 어떤 잡지를 만들고 싶은 걸까?

"대단한 잡지보다도 농촌에서 사는 청년들 이야기죠, 그냥. 좀 나아가서 본인의 철학적인 부분, 농사꾼들이 자기 직업에 자부심 갖는 삶들 위주로... 잡지일 수도 있지만 책일 수도 있고요. 농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랄까? 나도 시골에 살고 싶다 생각이 들게 하는 잡지를 만들고 싶어요."

농사를 지으면서 틈틈이 화천에 사는 젊은 농부들과 다양한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가치 중심의 농사를 짓는 청년 농부 몇몇과 이런 고민을 나누고 있다. 다들 한 번쯤은 잡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나 보다.


혼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니 힘을 모은다면 가능도 하겠다 싶다. 더구나 여자친구가 디자이너이니 금상첨화 아닌가! 농사일이 정해진 시간에만 하는 게 아닌 만큼 안정되고 지속되게 청년 농부들이 만나기가 어렵기는 하겠지만 이들의 꿈이 조금씩 실현되어 갔으면 좋겠다.

농장 레스토랑으로 오세요

김화목씨에게 농사는 대물림하고 싶은 자부심이라고 한다. 지금은 좌충우돌하며 친환경 농사를 짓지만 잠깐 관행농을 하기도 한다. 자기 땅에 투자를 하여 땅을 살리는 유기농을 하기 위해서 빚으로 땅을 사기도 했다. 그는 어떤 꿈을 꿀까?

"철학적으로 유기농을 하고 싶어서 무리를 해서 땅을 샀어요. 유기농의 본보기를 보여 주고 싶어요. 주로 체리나무를 유기농으로 심고 길게는 농장 레스토랑을 만들려고 해요. 주위로는 다 밭이 있고, 가운데 자그마한 레스토랑을 지어서 사람들이 와서 농장 체험도 하고, 밭에서 나온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그걸 만들고 싶은 게 가장 큰 꿈이에요."

생각만 해도 참 멋지고 따라 하고 싶은 꿈이다. 나도 소박하게라도 이런 꿈을 실현해 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요즘 광고처럼 '지~금 이 순간' 실행에 옮겨야 할 텐데, 망설이고만 있는 나를 확인하고 말았다. 그래도 꿈은 소중하니까...


제대로 자기만의 농사를 지은 지 네 해째. 앞날을 생각하면 순식간이겠지만, 돌아보면 짧지 않은 기간일 테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고 그 변화 속에서 내면의 변화와 성장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 농사를 지으면서 스스로 달라진 점을 물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달라진 건 농사의 규모가 커진 거죠. 그러다 보니 화천에서 입지가 굳어지니까 내면으로는 첫째 자기합리화, 둘째로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고, 셋째로는 농사를 더 크게 더 많이 지으려는 욕심이 커지는 거예요. 아마도 돈 때문일 겁니다. 다른 면에서는 확실히 점점 부지런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변화가 자신을 향한 성찰로 이어져 더욱 단단하게 성장하는 농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작은 만남'을 마친다.


나익수 기자


덧붙이는 글 | 월간지 8월호에도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