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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동해가 보이는 메타세쿼이아숲... 백만 불짜리 '공짜' 풍경

by오마이뉴스

[여행] 무료로 개방한 경북 영덕 벌영리의 사유림, 메타세쿼이아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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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영리 메타세쿼이아숲은 주인장이 힘들여 가꾼 숲을 이웃에게 내어주었다는 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여행지다. ⓒ 장호철

한가위 다음날, 가족과 함께 영덕 벌영리 메타세쿼이아숲을 다녀왔다. 주인이 20여 년간 심어서 가꾼 숲을 누구든 찾아와 쉴 수 있게 무료로 개방하면서 알려진 사유림이다. 영덕 여행에 빠지지 않고 소개되어 최근에는 지역관광기관협의회에서 뽑은 전국 비대면(언택트) 관광지 100선에도 이름을 올렸단다.

무료 개방하고 있는 사유림 영덕 벌영리 메타쉐쿼이아숲

요즘 메타세쿼이아('-세콰이어'가 아니라 '세쿼이아'로 써야 맞다)는 흔하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드문 나무라고 할 수도 없다. 주로 남부지방에서 가로수로 심으면서 널리 알려졌고,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전국적인 명소가 되었다.


벌영리 메타세쿼이아숲에 마음이 간 것은 힘들여 가꾼 숲을 '이웃에게 거저 내어주었다'는 대목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정말 아름다운 숲이었는데, 그 풍경을 이웃과 공유했다는 게 아닌가. 방문객마다 주인장의 넉넉한 마음을 기리는 뜻을 표시하는 이유다.


각종 매체들이 다투어 이 숲을 소개하고 있는데도 주인장을 직접 다룬 기사는 찾기 어려웠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장상국 선생이라는 것, 20여 년 가까이 가꾼 숲을 개방하고 있으나 특별히 관의 지원을 받지는 않고 있다는 것 등에 그쳤다.


에스엔에스(SNS)로 소문이 나면서 여행자의 발길이 이어지고 봉화의 백두대간수목원과 함께 '언택트 경북 관광지 23선'(경북문화관광공사, 2020)에도 뽑혔으나 정작 영덕관광 누리집에서는 이 숲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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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에 가면 으레 보이는 조그만 돌탑. 이 역시 방문객들이 만들었으리라. ⓒ 장호철

숲에 갔다가 강구항을 둘러올 요량으로 10시께 출발해 벌영리에 닿은 것은 정오를 지나서다. 명절 연휴여서 혹시 문을 닫을까 염려했지만, 숲 어귀의 주차장에는 방문객들의 차가 빼곡했다.


가로수로는 더러 보지만, 숲은 처음이다. 수령 20년생 전후의, 늘씬한 몸피를 하늘을 향해 뻗은 메타세쿼이아 숲은 아직 젊어 보였다. 1972년에 조성되어 이미 쉰 살을 넘긴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숫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 숲은 메타세쿼이아 같지 않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메타세쿼이아는 키가 35m, 지름이 2m까지 자랄 수 있는 큰 나무이기 때문이다.

1941년 메타세쿼이아, '살아있는 화석식물'로 등장

양쯔강 상류에서 처음 발견할 때까지 메타세쿼이아는 은행나무와 함께 화석나무로만 알려져 있었다. 1941년 일본의 고생물학자 미키 시게루(三木茂)는 일본 각지의 신생대 지층에서 발견되는 식물화석에 주목했는데 이는 오늘날 북미대륙에 큰 나무로 자라는 세쿼이아(sequoia)를 닮아 있었다.


그는 이 나무가 세쿼이아(sequoia)를 닮았지만, 다른 종류임을 확인하고, '세쿼이아'에 접두어 메타(meta)를 붙여 메타세쿼이아란 새로운 속명을 붙여 학회에 보고했다. 세쿼이아보다는 조금 다른 특성을 가진 나무란 뜻이었다. '물가에서 잘 자라는 삼나무'란 의미로 중국 이름은 '수삼(水杉)'이다.


메타세쿼이아는 백악기부터 제3기층에 걸쳐 지구상에서 널리 자랐지만, 화석으로나 만날 수 있는 사라져 버린 나무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같은 해 양쯔강 상류에서 발견된 키 35m, 지름이 2.3m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가 바로 미키가 명명한 그 나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밀 조사 결과 4000여 그루가 양쯔강 연안에서 자라고 있었으니 200~300만 년 전에 사라졌다고 믿어져 온 메타세쿼이아는 그렇게 현존 식물로 등장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메타세쿼이아는 은행나무, 소철 등과 함께 '살아있는 화석식물 목록'에 오른 것이다.


메타세쿼이아는 재질이 매우 약하여 힘을 받아야 하는 곳에는 쓸 수 없다. 한때 지금의 소나무 이상으로 지구를 덮고 있다가 양쯔강 상류 한쪽으로 밀려난 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생장이 급격히 나빠져 경쟁력을 잃었던 결과로 추정한다.


목재의 가치는 떨어지지만, 메타세쿼이아는 정원수나 가로수로 사랑받는다. 가지치기 없이도 자연 수형(樹形)이 나오며 병충해에 강한 속성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계수(境界樹)나 가로수, 가로변 방음 차단목으로 선택된다. 메타세쿼이아는 여느 나무보다 곧게 높이 자라서 수려한 풍치를 조성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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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의 모습과 빛깔은 비슷하면서도 원근에 따라 다른 인상과 느낌을 준다.반려견을 동반한 노부부가 숲을 거닐고 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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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의 모습과 빛깔은 비슷하면서도 원근에 따라 다른 인상과 느낌을 준다. 연인인 듯한 젊은 남녀가 숲을 거닐고 있다. ⓒ 장호철

메타세쿼이아는 초봄의 신록이 아름답고 한여름 내내 풍성한 잎으로 녹음을 제공한다. 적갈색의 단풍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떨어져 쌓인 바늘잎[침엽(針葉)]도 오묘한 시간의 순환을 이야기해 준다. 겨울 메타세쿼이아도 나쁘지 않다. 가지를 15도쯤 위로 뻗은, 잎 벗은 나무 행렬은 황량하다기보다 그 자체로 정연한 질서다. 눈 덮인 메타세쿼이아 숲의 풍경은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익히 보아온 바다.


20살이 채 안 된 벌영리 메타세쿼이아는 높이가 20m쯤 되지만, 아직 잎도 무성하지 않고 밑동도 자랑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메타세쿼이아는 다른 나무보다 2, 3배 성장 속도가 빨라서 1년에 1m쯤 자란다고 하니 십 년쯤 뒤면 이 숲은 더 우람한 풍경이 되어 있을 것이다.


벌영리 숲은 조그마하다. 숲으로 들면 통행로 좌우로 일직선으로 뻗은 나무들이 400m 남짓 경쾌하게 펼쳐진다. 중간쯤 화장실이 있고 군데군데 마주 앉을 수 있는 탁자형 나무 벤치가 놓였고는데, 풀밭도 잘 관리되어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심은 나무가 일정한 높이를 이루는 숲의 모습은 어디서나 어떤 각도로나 비슷할 것 같지만, 찍은 사진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원근에 따라, 파인더에 들어오는 나무의 모습과 빛깔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인상과 느낌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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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영리 메타세쿼이아숲에는 태풍이나 자연재해로 상한 나무도 그대로 살려두었다. 그런 자연스러움이 이 숲의 미덕이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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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로 치솟은 벌영리 메타세쿼이아와 하늘. 여러 장을 찍었는데, 장소에 따라 느낌이 다 달랐다. ⓒ 장호철

화장실에 들렀더니 외벽에 "내가 가져온 쓰레기는 다시 가지고 갑시다"란 적힌 팻말이 기대어져 있었다. 숲 관리의 어려움은 관의 지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방문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때문이라는 주인장의 토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오죽하면 3년 전에는 방문객 편의를 위해 지어놓은 화장실을 폐쇄해야 했을까.


당장이라도 담장을 둘러치고, 입장료를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숲이다. 국도변인 담양의 가로숫길이 입장료를 받은 지 10년이 가까워졌으니 개인이 공들여 조성한 숲을 즐기는 데 보상이 필요하다면 토를 달 수 없다. 그러니 연중무휴로 숲을 여는 주인장의 마음을 헤아려 다녀간 자취를 남기지 않아야 마땅한데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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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의 전망대. 별로 힘들지 않은 완만한 계단을 오르자, 숲의 한쪽과 들판 저 멀리 동해가 아스라하게 보였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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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타세쿼이아는 은행나무, 소철 등과 함께 ‘살아있는 화석식물 목록’에 올라 있다. 잎은 바늘잎[침엽(針葉)]이다. ⓒ 장호철

메타세쿼이아숲 주변의 측백과 편백 숲을 돌아서 입구 반대쪽의 전망대에 올랐다. 완만한 계단을 오르자, 숲과 들판 저 멀리 동해가 아스라하게 보였다. 어느새 숲 한쪽 끝은 시나브로 갈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두 시간을 달려와 만난 숲은 넉넉하고 아름다웠다. 떠나야 하지만, 나는 숲을 이리저리 서성댔다. 숲길에 따로 울타리도 없었고, 더러 부러진 나무도 그대로 둔 숲에는 주인장의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씨가 배어 있는 듯했다. 언제 다시 영덕을 찾으면 꼭 이 숲의 안부를 물으리라고 생각하며 나는 숲을 떠났다.


장호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