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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예산에 가다] 봉수산 임존성부터 느린호수길까지

느리게 걸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길

by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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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산 해돋이 ▲ 봉수산에서 맞이한 해돋이다. 2018년 11월에 친구가 밴드에 올린 사진이다. 그의 꿈을 응원한다. ⓒ 곽상규

예산을 사랑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출근하기에 앞서 봉수산에서 찍은 사진을 밴드에 올리곤 했다. 퇴근길에는 봉수산에서 해가 지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친구 때문에 예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시월의 끝자락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봉수산을 오르고, 의좋은 형제를 보고, 예당호를 걸었다.

임존성

봉수산에 올랐다. 백제 부흥 운동 중심지 임존성이 있는 곳이다. 임존성은 봉수산 산등성이를 따라 몇 개 봉우리를 에워싼다. 성벽 둘레가 2.5km에 이른다. 성곽길을 걸으며 1500여 년 전 나라를 찾기 위해 모여든 백성을 생각했다.


660년 백제가 망했다. 흑치상지와 지수신이 백제 부흥의 깃발을 내걸고 임존성에 들어왔다. 수많은 백성이 합류했다. 그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의자왕 사촌인 복신과 승려 도침도 주류성에서 나당연합군에 맞서 싸웠다. 의자왕 아들 부여풍을 일본에서 모셔와 백제왕으로 내세웠다. 여러 성을 공격하여 되찾기도 했다.


그러나 부흥군 안에서 갈등이 생겼다.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부여풍이 복신을 죽였다. 부흥군 세력이 빠르게 약해졌다. 부여풍은 고구려로 망명하고, 흑치상지는 당나라에 항복했다.


지수신은 마지막까지 임존성에 남았다. 그러나 당나라 장수가 되어 돌아온 흑치상지와 싸우다가 고구려로 달아났다. 함께한 백성들은 죽거나 노비가 되었다. 그들의 함성은 임존성에 갇혀 더 멀리 퍼지지 않았다. 결국, 부흥 운동은 실패하고 백제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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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당호 ▲ 임존성 북동치에서 바라본 예당호다. 산 아랫마을은 고즈넉하고, 호수는 잔잔하고, 호수 너머 산은 까마득하다. ⓒ 정명조

봉수산 자연휴양림에 갔다. 숲속의집 소나무동 왼쪽에 등산로 3코스 들머리가 있다. 오르는 길은 어렵지 않다. 흔한 산길이다. 내포문화숲길 가운데 백제부흥군길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30분 정도 오르니 전망대다. 임존성 북동치다. 예당호가 한눈에 보인다. 산 아랫마을은 고즈넉하고, 호수는 잔잔하고, 호수 너머 산은 까마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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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존성 ▲ 백제가 망하자 흑치상지와 지수신이 들어와 버티며 싸운 곳이다. 백제 부흥 운동 중심지다. ⓒ 정명조

북동치를 출발하여 성곽을 한 바퀴 돌았다. 성벽은 허물어졌으나, 길은 잘 놓여있다. 오르락내리락 걷기도 좋고, 경치도 좋다. 북서치에 이르면 앞으로는 예당호가, 뒤로는 홍성 들판과 오서산이 보인다. 약 200m 더 가면 봉수산 정상이다. 해발 483.9m다. 멋진 소나무 앞에 정상석이 조그맣게 서 있다. 전망은 좋지 않다. 그냥 쉬어가는 곳이다.


북서치로 돌아와 성벽 남쪽을 따라 걸었다. 좁은 비탈길이다. 내리막길이 끝나면 말끔하게 복원한 성벽이 불쑥 나타난다. 600m 정도 굽이돌며 서 있다. 임존성 최고의 길이고, 사진 찍기 좋은 자리다.


남문지에 넓은 빈터가 있다. 그곳에 '임존성 백제 복국운동 기념비'와 부흥군이 사용했다는 샘터가 있다. 샘물이 고여 있고 바가지도 놓여 있으나 마시기는 망설여진다. 동벽 건물지를 지나 북동치를 거쳐 자연휴양림으로 돌아왔다.

의좋은 형제

의좋은 형제를 보았다. 봉수산 자연휴양림에서 약 1.8km 떨어진 길목에서다. 이곳에 '의좋은 형제 공원'이 있다.


의좋은 형제가 살았다. 가을걷이가 끝난 뒤, 볏단을 똑같이 나누어 낟가리를 쌓았다. 한밤중에 동생은 형의 낟가리로 볏단을 날랐다. 잠시 뒤에 형이 볏단을 갖다 동생의 낟가리에 쌓았다. 다음 날 아침 나가 보니 낟가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상했다. 분명히 지난밤에 볏단을 날랐는데도 그대로였다.


밤마다 볏단을 날랐지만, 낟가리 크기는 여전히 똑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중에 형제가 볏단을 나르다가 마주쳤다. 형은 새로 살림을 차린 동생을 위해서, 동생은 식구가 많은 형을 위해서 볏단을 서로 더 주려고 했다. 20년 전까지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국어책에 실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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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좋은 형제 공원 ▲ 연산군 3년에 세운 이성만 형제 효제비가 발견된 뒤 만들어졌다. 해마다 의좋은 형제 축제도 한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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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동헌 ▲ 조선 시대 대흥군 현청이다. 추사 김정희의 증조할머니 화순옹주 동생인 화령옹주 태실과 흥선 대원군 척화비가 뒤뜰에 있다. ⓒ 정명조

1978년 봄, 가뭄이 심했다. 예당호 물이 빠지면서 물에 잠긴 마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상중리 개뱅이다리가 있던 자리 옆에서 비석이 발견되었다. 의좋은 형제 이야기를 담은 '이성만 형제 효제비'였다. 지금은 대흥동헌 앞 비각 안에 있다. 들여다봐도 글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동화가 아니라, 정말 있던 일이다. 고려 말 대흥에 살던 이성만과 이순 형제 이야기다. 이들의 효심과 우애가 임금에게 알려졌고, 세종은 이를 널리 알려 칭찬했다. 연산군 3년(1497년)에는 효제비를 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2011년에 공원을 만들었고, 해마다 '의좋은 형제 축제'도 한다.

느린호수길

예당호를 걸었다. '느린호수길'이라고 부르는 7km 길이다. 의좋은 형제 공원과 이웃한 중앙생태공원에서 출렁다리를 거쳐 수변공원까지 이어진다. 잘 정비된 데크길이다. 계단이 거의 없어서 어렵지 않았다. 호수를 끼고 걸어서 피곤한 줄 몰랐다. 그늘이 지지 않아서 싸늘하지도 않았다. 더할 나위 없이 걷기 좋았다.


예당호는 국내에서 가장 큰 농업용 저수지다. 둘레가 40km, 폭이 2km나 된다. 1964년에 만들어졌다. 예당평야에 물을 공급한다. 바다처럼 윤슬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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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대 ▲ 예당호 가장자리를 따라 좌대가 280여 개 들어섰다. 낚시꾼이 밤새 손맛을 보는 곳이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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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다리 ▲ 길이가 402m다. 음악분수와 레이저 빔 영상 쇼가 볼만하다. ⓒ 정명조

예당호는 최고의 낚시터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낚시꾼이 붐빈다. 해마다 전국낚시대회를 연다.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좌대가 280여 개 들어섰다. 한가롭게 떠 있다. 낚시꾼이 밤새 손맛을 보는 곳이다.


예당호에 출렁다리가 있다. 걷다 보면 제법 출렁거린다. 2019년 4월 개통할 때는 국내에서 가장 길었다. 길이가 402m다. 음악분수와 레이저 빔 영상 쇼가 볼 만하다. 물과 빛과 음악이 어우러진다.


출렁다리를 거쳐 부잔교를 지나면 길이 막혔다. 공사 중이다. 수변공원에 가려면 큰길로 나와서 찻길을 따라가야 한다. 수문 옆에 수변공원이 있다. 규모는 작지만, 핑크뮬리가 가을을 수놓았다. 느린호수길은 이곳에서 끝난다. 느리게 걸어야 제대로 맛을 느끼고, 게으름을 피워도 괜찮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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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녘 예당호 ▲ 해가 질 때 예당호에 가면 시간이 멈춘다. ⓒ 정명조

예산을 떠나기에 앞서 '백종원 국밥거리'에서 소머리국밥을 먹었다. 요리연구가 백종원은 예산 출신이다. 그의 이름을 딴 길거리를 많은 사람이 찾는다. 국밥과 국수가 맛있다. 부담 없는 가격이다. 주차장도 넓어서 여행 뒤에 한 끼 때우기 안성맞춤이다.


정명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