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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물컹물컹, 맛없는 줄만 알았던 가지의 대변신... 이탈리아식 '롤라티니'

고급 레스토랑 뺨치네... 가지의 신세계를 맛보는 법

by오마이뉴스

홀로 사는 자취생 청년이지만, 먹는 일까지 '대충'할 순 없습니다. 나를 위해 정성스레 차려낸 밥 한 그릇에 고단함이 녹고, 따스한 위로를 얻기도 하니까요. 씩씩하게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선사하는 든든한 1인분 음식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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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과 처음 술집에 갔던 날, 세상은 우리를 어른으로 대해줬다. 그렇게 어른이 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 unsplash

어른이 된다는 것

18살 생일이 지나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던 날, 선생님은 이제 너희들도 '어른'이 됐다며 축하해주셨다. 대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처음 술집에 갔던 날, 세상은 우리를 어른으로 대해줬다. 첫 월급을 타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던 날에는 "우리 딸 이제 다 컸네"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께 어른이 되었음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니 주민등록증이 있다고,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직장에서 돈을 번다고 어른이 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포근한 엄마 품이 좋고, 아빠가 어딘가로 마중 나와 주는 순간이 좋다. 학교 다닐 때처럼 아침마다 회사에 늦을까 뛰는 것도 똑같고, 친구들을 만나면 아무 일도 아닌 일에 배꼽을 잡고 웃는 것도 변함없다.


아직도 그때처럼 조급한 마음으로 서둘러 걷다가 넘어지고,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불안감에 문득 울음이 터지고, 누군가의 무심한 한 마디에 쉽게 상처 받기도 한다.


최대한 천천히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타지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한 뒤로 어른이 되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이곳에서는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책임져주지 않았다. 나를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잘 키우기 위해 하루를 책임감 있게 보내야 했다.


귀찮은 마음에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빨래를 쌓아두고, 쓰레기를 제때 치우지 않으면 더럽혀진 집과 함께 나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나를 지키기 위해 어설프지만 밥을 해 먹기 시작했다. 퇴근하는 길에 가까운 시장에 들러 재료들을 샀다.

내 돈을 주고 가지를... 사?!

지금껏 누군가 요리해 놓은 완성된 음식만 먹다가 날 것의 재료를 사는 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신선한 재료로 음식을 해 먹는 것이 재밌어졌다. 어느 날은 길쭉하고 선명한 보라색을 띤 가지가 유독 탐스러워 보였다.


"몸에 좋으니까, 제발 한 입만 먹어봐."


어릴 적 엄마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절대 입을 벌리지 않았던 것이 가지 요리였다. 물컹하고 흐물흐물한 식감이 불쾌했다. 입 안에서 툭 하고 터지는 축축함도 싫었다. 그래서 밥상에 가지 요리가 올라오는 날이면 늘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시장에서 내 돈을 주고 가지를 사 왔다. 문득 가지의 진짜 맛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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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식 가지요리 '롤라티니' ▲ 가지를 싫어하시는 분들에게도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 이은지

가지를 색다르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탈리아식 가지 요리 '롤라티니'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낯선 이름 때문에 만들기 어려운 음식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요리 과정이 간편하다. 그리고 토마토소스와 치즈, 베이컨 덕분에 가지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가지 롤라티니 만드는 법


1) 가지 꼭지를 자르고, 세로로 얇게(0.5cm 정도) 슬라이스 해준 뒤 소금, 후추로 간을 해주세요.

2) 10분 뒤 가지에 수분이 생기면 키친타월로 닦아주고, 기름을 두르지 않은 팬에 구워주세요.

3) 구운 가지 위에, 구운 베이컨과 모차렐라 치즈를 올린 뒤 돌돌 말아주세요.

4) 팬에 다진 양파와 버섯을 버터에 볶아준 뒤, 토마토소스를 넣고 함께 한 번 더 볶아주세요.

5) 만든 소스를 그릇에 부어주고, 그 위로 말아둔 가지를 올려준 뒤 모차렐라 치즈를 뿌려주세요.

6) 치즈가 녹을 정도로 전자레인지에 한 번 더 데워주면 끝!

토마토소스와 함께 가지롤을 한입 베어 문 순간 정말 감탄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고가의 음식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얇게 썰어 구운 가지는 담백하고 고소했다. 가지 속에 있는 베이컨과 치즈가 그 풍미를 더해줬다. 입 안에서는 마치 두툼한 스테이크를 먹은 듯 육즙이 퍼져 나왔다. 토마토소스에 버섯과 양파를 잘게 썰어 같이 볶아 준 것이 음식을 더욱 고급스럽게 했다.


뜨거워서 입 안이 데이는 줄도 모르고 한 접시를 모두 비웠다. 그동안 막연히 가지를 싫어했었는데,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재료였다는 게 신기했다. 가지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안토시아닌' 성분은 혈관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시켜주고, 비정상적 혈전 생성을 막아준다고 한다. 또한 가지는 중성지방을 낮추는 효과도 있어 암과 심혈관 질환 예방에 좋아 건강 식재료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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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를 더이상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 가지와의 거리두기, 이제 그만 할게요 ⓒ 이은지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먹는다는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주민등록증이 생긴 날보다,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날보다 오히려 물컹하고 축축하게만 느껴졌던 가지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되고 나만을 위한 요리를 정성스럽게 차려 먹은 오늘,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을 느꼈다.


가지의 맛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어린이 혹은 아직 오해를 풀지 않은 어른이 있다면 가지의 색다른 변신, 이탈리아식 가지 요리 '롤라티니'를 추천해주고 싶다.


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