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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1인분의 위로] 추운 겨울, 헛헛한 마음을 달래주는 근사한 '호빵 에그 번'

호빵에 무슨 짓을... 이렇게 하면 '요리'가 됩니다

by오마이뉴스

홀로 사는 자취생 청년이지만, 먹는 일까지 '대충'할 순 없습니다. 나를 위해 정성스레 차려낸 밥 한 그릇에 고단함이 녹고, 따스한 위로를 얻기도 하니까요. 씩씩하게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선사하는 든든한 1인분 음식들을 소개합니다.

이 겨울에 꼭 생각나는 음식

변화하는 계절을 알아차리는 일은 나에게 행복을 선물하는 것과 같다. 살랑이는 바람이 부는 봄엔 잔꽃무늬 원피스를 꺼내 입고, 무더운 여름밤엔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을 냉장고에 가득 채워둔다.


코끝이 시큰해지는 가을날엔 제목에 '가을'이 들어간 노래들을 찾아 듣는다. 그리고 지금처럼 패딩으로 온몸을 감싸야 하는 추운 겨울이 오면, 지갑에 천 원짜리 현금을 두둑이 챙긴다. 매년 이맘때 집에 들어가는 골목길에서 붕어빵 파는 포장마차를 보고 겨울이 왔음을 알아차린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면, 겨울은 내게 낭만적인 계절이었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학교 앞 문구점 딸'로 통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 앞에서 부모님은 문구점을 운영하셨다. 겨울이 오면 아빠는 문구점 가운데에 난로를 틀어주셨는데, 그 난로 위엔 항상 주전자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호빵 찜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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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빵. ⓒ 위키커먼즈

추운 겨울 호빵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인기가 좋았다. 뽀얀 빵 안에 달콤한 팥이 들어있는 팥 호빵은 어른들에게, 고기만두 맛이 나는 야채호빵과 피자맛이 나는 피자호빵은 어린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나는 팥, 야채, 피자 할 것 없이 모든 호빵을 좋아했다.


너무 추워 눈도 다 못 뜬 채로 등교를 하는 나에게 엄마는 찜기에서 따뜻한 호빵을 하나씩 꺼내 주셨다. 포슬포슬한 호빵을 반으로 갈라 뜨거운 김이 나는 호빵을 대충 호호 불어 급히 입으로 넣고 나면,


"하, 뜨거워 뜨거워."

"조심히 식혀 먹어야지...!"


여지없이 입천장을 데이고 마는 어린 나와, 그런 나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잔소리하는 엄마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따뜻한 호빵을 우유와 함께 먹고 엄마가 챙겨주는 코트와 목도리를 칭칭 감고 나오면, 아무리 추운 겨울바람도 무섭지 않았다.

호호 불어먹던 호빵은 사라졌지만

어린 날의 그때처럼 오랜만에 호빵이 먹고 싶어졌다. 분명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편의점에서 호빵 찜기에 데워진 따뜻한 호빵을 팔았던 거 같은데, 이젠 호빵 찜기가 보이지 않았다. 호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어진 걸까, 아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밖에서 마스크를 벗고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일까.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빵은 포기하기로 하고, 마트에서 봉지째 파는 호빵을 몇 개 구입했다. 집에서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호빵은 이상하게 예전만큼 감동스럽지 않았다.


호빵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새로운 레시피가 있는지 찾아봤다. 그러다 예전에 티브이에서 봤던 '호빵 에그 번' 레시피가 떠올라 시도해봤다. 재료로 들어가는 호빵과 계란, 피자치즈 그리고 베이컨이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라 기대가 됐다. 이 레시피에는 팥 호빵보단, 안에 푸짐한 내용물이 들어간 고추잡채 호빵이나, 야채, 피자 호빵 등이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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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빵 에그 번 ▲ 호빵을 먹는 새로운 방법 ⓒ 이은지

<호빵 에그 번 만드는 법>


1. 준비한 호빵의 머리 부분을 둥글게 파내어 주세요.

2. 파낸 부분 안으로 계란 노른자(흰자와 분리)를 넣어주세요.

3. 노른자 위로 피자치즈를 조금 뿌려줍니다.

4. 마지막으로 베이컨 두 장을 십자가 모양으로 덮어주세요.

5. 에어 프라이기 160도에 15분 정도 익히면 완성!


호빵 에그 번은 만드는 과정이 정말 간단해서 바쁜 아침이나, 간단한 야식으로 안성맞춤이다. 바삭하게 익은 호빵을 반으로 가르면 노른자가 터지면서 속이 촉촉해진다.


한입 베어 물면 흘러내린 노른자와 안에 있는 치즈 덕분에 입안에 고소함이 퍼진다. 거기에 베이컨의 바삭함과 짭짤함이 더해지니 호빵 한 개가 금세 없어졌다. 꽤 든든해서 간식이 아닌 한 끼 식사로 먹기에도 충분하다. 간단하면서도 비주얼과 맛까지 좋은 레시피가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음식을 다 먹어갈 때쯤, 옛날에 먹었던 호빵 맛이 왠지 더 그리워졌다. 분명 그때보다 오늘 먹은 호빵이 더 바삭하고 촉촉한데, 호빵 찜기에서 막 꺼낸 뜨거운 호빵을 찬 바람맞으며 허겁지겁 먹던 그 맛을 이기지는 못했다.


옛 음식이 그리운 걸 보니, 또 이렇게 한 살 나이를 먹었나 보다. 어느새 또 달력이 한 장만 남았다. 끝나지 않는 코로나와 함께 헛헛한 1년이 지났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추운 날씨처럼 마음까지 스산해진다. 따뜻하고 낭만적이었던 옛날의 겨울을 추억하며 퇴근길에 호빵 한 봉지 사보는 건 어떨까.


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