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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TV 리뷰]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월가 애널리스트' 시각장애인 신순규씨를 붙잡은 한마디

by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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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의 한 장면. ⓒ tvN

'상상을 현실로 이뤄내는 월가의 28년 차 애널리스트' 신순규씨가 지난 25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다. 'OO의 비밀' 편으로 꾸며진 155회에서 신순규씨는 사회심리학자 허태균, 순창 할미넴(박향자·김영자·백성자)에 이어 등장했다. 카메라 앞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신순규씨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알 수 있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유재석은 신순규씨를 '편견을 깬 애널리스트'라고 소개하면서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오래된 증권 회사의 임원이라고 덧붙였다. 신순규씨가 근무하고 있는 브라운 브러더스 해리먼은(Brown Brothers Harriman)은 1818년 설립된 세계적인 투자회사이다. 유서 깊은 가문이나 국가의 중앙은행이 주고객이며, 금액으로 치면 300억 이상을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1994년 JP모건에 입사하면서 시작해 28년의 경력을 쌓은 신순규씨의 현재 직책은 '바이스 프레지던트'로 한국으로 치면 '이사'에 해당한다. 그는 새벽 3, 4시에 기상해 하루 일과를 시작할 정도로 부지런하고 성실한 삶을 살고 있다. "원래 꿈이 애널리스트였습니까?" 유재석의 질문이 이어졌다. 신순규씨는 8살에 실명한 후 어머니의 권유로 피아노를 쳤었다고 대답했다.


피아노를 치면 음악 선생님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실명한 아들에게 피아노를 권유한 것이었다. 신순규씨는 14살 때 미국 필라델피아 맹학교에서 공연을 하게 됐는데, 그것이 계기가 돼 미국에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특수학교 특성상 공부에 열성적인 분위기가 아니었고, 귀국을 고민하던 시점에 한 미국 가족을 소개 받게 됐다. 그들은 "우리랑 같이 살면서 일반 학교에 다니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피아노를 그만두고 시작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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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의 한 장면. ⓒ tvN

미국 가족이 생긴 신순규씨는 피아노를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했다. 학교 생활은 어렵지 않았을까. 시각장애인이 한 번도 없었던 학교라 오히려 선입견이 없었던 모양이다. 교사들은 '방법을 찾아보자'며 적극적으로 도왔다. 화학 분자 모형을 만들기도 하고, 양궁을 시도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그 경험은 신순규씨에게 할 수 없던 게 아니라 할 방법을 찾지 않았을 뿐이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중요한 건, '아, 그럴 수도 있겠다. 같이 일하자'는 한 사람만 나오면 되는 거잖아요." (신순규씨)


치열하게 공부한 끝에 하버드, 프린스턴, MIT, 유펜 모두 합격하는 쾌거를 거뒀고, 좀더 특별한 대우를 해주겠다는 하버드 심리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그 후 어떻게 애널리스트가 된 걸까. 학교에서 장애인법(1990년 통과) 관련 연구를 하던 중 월가 일선에서 일하는 장애인이 없는 현실을 알게 됐고, 교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여 JP모건 인턴으로 인사과에 들어가게 됐다.


근거리에서 보니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게 됐고, 여러 차례의 응시 끝에 입사하게 됐다. 물론 응시 당시에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수많은 자료들을 검토해야 하는데 어떻게 읽을 것이냐'는 현실적인 얘기들이었다. 신순규씨는 시각장애인용 컴퓨터에 나타나는 자료는 다 읽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보다 3, 4시간 더 일하면 된다고 설득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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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의 한 장면. ⓒ tvN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지만, '같이 일하는 건 좀 불편하다'는 사람들을 마주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신순규씨를 다잡은 생각은 '한 사람만 나오면 된다'는 것이었다. 20시간 일하고 겨우 귀가하려는 새벽 2시, 장애인이라고 안 태워주는 택시의 승차거부를 경험할 때마다 그의 마음을 다잡아준 건 'NEXT ONE'이었다. 항상 다음 기회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추스르며 살았다.


"방법을 찾아낸 것일 뿐이에요. 양궁 선생님이 저한테 가르쳐준 게 활 쏘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게 아니라 가능할 거라는 믿음을 가르쳐주신 거였거든요." (신순규씨)


시각장애인 최초로 CFA(국제공인재무분석사 자격증)를 취득했던 것도 방법을 찾아내면 된다는 접근법 덕분이었다. 그는 CFA 측과 협상을 통해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갔다. 유재석은 난관에 부딪칠 때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다가가는 것과 '애초에 안 돼'라고 안 하는 건 굉장히 다른 결과를 만든다며 거들었다. 안 되더라도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신순규씨는 2010년 정도에 한국 보육원에 2만 명 정도의 아이들이 산다는 소식을 접하고, 불공평을 줄이는 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재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재단의 이름은 YANA(You Are Not Alone)로,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야'라는 뜻을 품고 있었다. 지금껏 받은 감사함을 나누고 싶어 만든 유학 프로그램이자 진짜 가족이 되어주는 프로젝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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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의 한 장면. ⓒ tvN

"지금은 너무 쇠약해지시고 작아지셨는데, 저한테는 삶의 거인이었던 엄마가 없었다면 제가 여기까지 못 왔겠죠." (신순규씨)


자신의 삶과 성공에 대해 담담히 얘기를 이어가던 신순규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순간이었다. 그는 병원에서 "이제는 눈을 고치겠다는 것보다는 아이를 교육할 방법을 찾아라"는 말을 듣고 절망했던 엄마,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너무도 서글프게 울던 엄마를 떠올렸다. 8살 아들의 실명은 엄마에게 감당하기 힘든 절망이자 아픔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순규씨의 엄마는 무너지지 않았다. 아들의 눈을 고쳐보겠다는 열정을 교육으로 돌렸다. 점자로 된 참고서가 없던 시절, 일일이 손수 제작해 아들의 공부를 도왔다. 그 절실했던 엄마의 노고를 신순규씨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겠다는 아들의 선택을 존중했고, 피아노를 그만두고 공부를 하겠다는 뜻을 응원했다. 그 결과 지금의 신순규씨가 있게 됐다.


신순규씨의 성공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사실 모든 성공이 그러하다. 그걸 인지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신순규씨가 재단을 만들어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을 후원하고, 기꺼이 그들의 부모가 되어주고자 하는 까닭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김종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