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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고도를 찾아가다 2-2]

이 여름 경주의 밤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by오마이뉴스

[고도를 찾아가다 2-2] 운민의 경주별곡

오마이뉴스

새롭게 복원된 월성해자 ▲ 새롭게 복원된 반월성의 해자는 경주의 새로운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 운민

찌는 듯한 열대야와 짧지만 굵은 장대비가 번갈아 가며 휩쓸고 있는 요즘, 폭염으로 유명한 경주를 찾는 것은 꽤나 고역이다. 남산, 토함산, 선도산 등의 산자락이 도심을 감싸고 있어 분지지형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뜨거운 공기가 경주 전체를 휘감고 있다.


경주 답사는 대부분 걷는 일이 많고, 석조물과 도로에서 반사되어 나오는 열기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의 주요 관광지는 국내외에서 온 여행객들로 북적거린다. 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새롭게 전시관을 개편하고 있는 국립경주박물관(신라미술관은 10월 31일까지 휴관)을 찾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 시기의 경주는 밤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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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과 월지에서 바라 본 경주의 하늘 ▲ 해가 지기 직전 노을이 비치는 경주의 하늘은 어느때 보다 아름답다. ⓒ 운민

장렬했던 햇빛은 어느새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하고 하늘은 어느새 붉은빛과 푸른빛이 교차한다. 파스텔톤의 색감은 이곳이 현실 공간이라는 자각을 잊어버리게 한다. 붉은빛은 자취를 감추고 어둠에게 그 자리를 내어준다.


하지만 그 어둠은 검은색이 아니다. 푸르스름한 빛이 예전 신라의 영화를 되새기듯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적들을 화사하게 감싸고 있다. 지금부터 필자와 함께 가볍게 산책을 하며 신라의 달밤을 거닐어보도록 하자.


모든 여정의 시작은 바로 동궁과 월지 주차장이다. 예전에는 신라의 왕과 귀족들이 연회를 했던 화려한 별궁은 어느새 터만 남았고 기러기와 오리들만 거닌다고 해서 안압지로 부르던 시절이 최근까지 있었다.


이젠 옛 이름을 찾고, 신라 왕경 복원계획의 일환으로 조감도까지 나왔으나 충분한 고증이 부족한 상황에서 유네스코의 반대에 부딪혀 원점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지속적인 정비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작년 겨울부터 봄까지 한동안 동궁과 월지의 물을 빼고 다시 채워 넣는 공사가 있었으며 8월 말까지 건물마다 새로 단청을 칠하는 공사가 이어지고 있다.


다소 어수선한 상태지만 이곳의 핵심은 연못과 조경이기에 야경을 즐기기엔 무리가 없다. 이 기간 동안은 입장료도 무료다. 예전 동궁과 월지의 관람은 건물을 가로질러 가며 가볍게 돌아보는 루트였다면 지금은 경내를 크게 한 바퀴를 도는 형태로 변화했다. 아마도 이곳의 야경이 유명해지면서 넘쳐나는 관광객들을 수용하기 위한 일환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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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과 월지의 야경 ▲ 동궁과월지는 야간개장이후 경주에서 꼭 찾아야 할 유적으로 손꼽힌다. 연못주위를 한바퀴 돌며 이곳의 매력을 살필 수 있다. ⓒ 운민

덕분에 전에 미처 살피지 못한 동궁과 월지의 숲 속 산책을 덤으로 즐길 수 있다. 쾌적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이곳을 걷다 보면 어느새 웅장한 월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복잡한 지형으로 구성된 통일신라시대의 원림은 어느 곳으로 가던지 전체적인 모습을 살피기 어렵다.


건물들이 모여 있는 쪽이 비교적 직선 형태의 형태를 띠며 권위를 상징하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준다면, 자연지형의 축소판 같은 반대편 구역은 다양한 곡선과 복잡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아직 해가 지기 직전이라 조명이 채 들어오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인생샷을 기대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동궁과 월지의 역사적 배경과 주요 유물, 이 장소와 관련된 스토리텔링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경주를 찾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동궁과 월지의 화려한 야경을 감상하기로 하자.


조명의 밝기가 조금만 은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조금 시원해진 밤공기를 마시면서 호젓하게 산책하는 즐거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동궁과 월지는 연못 한가운데 3개의 섬과 동산이 재현되어 있어 산책로를 따라 다양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마치 자그마한 동산에 올라 피크닉을 즐기는 기분이 든다. 예전에는 진귀한 식물과 동물들을 키웠다고 하니 그 시절로 돌아가 신라의 찬란했던 나날을 상상해 본다. 어느덧 한 시간 동안의 산책이 끝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걸어서 반월성 방향으로 이동해보도록 하자. 예전에는 신라의 궁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반월성은 현재까지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다. 최근 반월성 주위의 해자가 복원되어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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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 ▲ 경주를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인 첨성대는 천문관측기구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다. ⓒ 운민

반월성으로 곧장 치고 올라가는 길보단 해자를 온전히 살필 수 있는 동부사적지대로 향하는 길로 가도록 하자. 월성해자는 다른 성곽의 해자와 달리 발굴조사 결과 6개의 독립된 웅덩이가 확인되며, 각 해자는 입, 출수구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 해자에는 수천 점 이상의 동물뼈와 씨앗등이 발견되었고, 목간, 토기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일종의 기복 행위가 이곳에서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더러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은 온전히 달빛 아래 펼쳐지는 월성의 아름다움만이 뇌리에 남는다.


월지와 첨성대 사이의 조연이었던 반월성도 또 하나의 주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제 다양한 색의 불빛이 비치는 첨성대를 멀리서 바라보며 계림 사이 숲 속 교촌마을로 향하는 길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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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교의 야경 ▲ 신라시대때 존재 했던 다리인 월정교는 한때 터만 남아있었지만 많은 논란끝에 새롭게 복원되었다. ⓒ 운민

환하게 비추던 불빛들도 이 구간에서는 어둠에 그 자리를 내어주지만 머지않아 새로운 3막의 주인공인 월정교를 만나게 된다. 교촌마을의 동편에 자리 잡은 이곳 역시 근래에 새롭게 복원되었다. 반월성과 남산을 잇는 남천 위에 세워진 월정교는 경주에서도 좀처럼 보기 드문 화려한 외관을 자랑한다.


목재로 지어진 다리 위에 거대한 누각이 있고, 다리의 양끝엔 2층으로 된 문루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1986년 발굴조사에서 월정교터 아래에 불탄기와와 목재가 대량으로 출토되었기에 이를 바탕으로 복원계획을 수립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일부에서는 충분한 고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복원이라는 비판도 더러 있지만 월정교가 다시 세워지면서 이곳 일대의 관광은 더욱 풍성해지는 효과를 낳았다. 다리를 건너 남천가를 걷다 보니 시원한 강바람이 흘렀던 땀을 씻어준다.


운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