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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리뷰] tvN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조선 정신과 의사의 탄생, 배경에는 두 여인이 있다

by오마이뉴스

왕은 북벌을 계획했다. 백성들이 당한 수모를 좌시할 수 없다는 그의 결심을 중신들, 그 중에서도 좌상 조태학(유성주 분)이 막아선다. 그들의 전횡을 알기에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 왕은 출병을 서두르지만, 출병령을 가지고 가던 군사는 비명횡사했다.


수상한 꽃가루를 넣은 음식을 먹은 왕은 하룻밤 사이에 종창이 부풀어 올랐다. 극중 주인공 유세엽(김민재 분)이 종창을 치료하려 했으나 오히려 피가 멈추지 않아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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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n

tvN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첫 회의 내용이다. 이 내용은 '북벌'을 계획하다 서른 아홉의 나이로 종기 치료를 받다 과다출혈로 사망한 효종의 역사적 사실과 상당 부분 흡사하다. 효종은 형 소현세자와 함께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 대신 왕위에 오른 임금이다.


이덕일이 지은 <조선왕 독살 사건>은 효종의 죽음을 독살로 그렸고, 드라마는 그런 역사적 상상력에 기반한다. 드라마는 이렇게 뒤숭숭한 '호란' 이후의 조선 사회라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마음의 병까지도 고치는 '심의' (心醫) 유세풍이라는 인물을 탄생시킨다.


하지만 아직 유세풍이기 이전에 유세엽인 주인공은 왕을 치료한 자신의 '조선판 메스'가 변색된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왕을 죽였다는 사실에 자지러진다. 일찍이 문과 급제를 했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 유후명의 반대에도 의과에 나서 장원을 따냈으며 친구였던 세자의 급체를 해결하여 왕으로부터 '신침'이라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어의와 결탁한 조태학의 세력은 그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아들을 구하고자 왕의 독살 음모를 밝히려 동분서주하던 아버지 유후명조차 피습당하고 만다. 다행히 친구였던 새 왕은 유세엽의 목숨만은 구해주었다. 하지만 한양에서 잘 나가던 내의원 수재는 이제 성문 밖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때를 기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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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n

계수의원 계지한은 빚을 핑계로 동가숙서가숙하던 유세엽과 그의 집안 머습 만복을 잡아 앉힌다. 하지만 계수의원에 있으면 뭘 하나, 침만 쥐면 온 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은 벌벌 떨린다. 그런 그에게 '돈만 밝히는 스승인지, 빚쟁이인지 헷갈리는' 계지한은 말한다. "때를 기다리라"고.


'의원'으로서의 사명감에 투철했던 유세엽이었다. 하지만 가문은 무너지고, 침도 놓지 못하게 되자 세상을 버리려 했다. 목숨을 구하고 계지한에 의해 다시 의원 노릇을 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의지상실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서은우(김향기 분)가 나타났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존재'가 돼서 말이다. 자꾸 죽으려는 그녀를 어떻게 해서든지 살리고픈 그의 의지가 침이 아니어도 환자를 고치는 '심의' 탄생의 계기가 된 것이다.


드라마는 유세엽이 '심의'로 거듭하는 데 두 여인을 앞세운다. 그 첫 번째 여인은 바로 벼랑 끝의 유세엽을 삶으로 인도한 서은우. 하지만 그녀는 결혼 당일 신랑이 죽고 시어머니로부터 죽음을 강요당하는 청상과부이다. 또 한 사람은 계수의원의 매병(치매) 할망이다.


유세엽은 서은우에게 자신을 '동일시'한다. 시어머니는 가문의 부흥을 위해 열녀문을 하사받기 위해 그녀가 죽기를 원한다. 친정은 '출가외인'이라는 법도를 들어 그녀를 품을 수 없다. 그 누구도 그녀를 바라지 않는 세상에서 죽음을 택하려 한다.


또 일찍이 어머니를 여인 유세엽을 어머니의 품처럼 품어주는 매병 할망이 있다. 그녀의 맹목적인 모성이 '매병'으로 인한 착각이지만 매병 할망을 통해 비로소 유세엽은 계수의원을 자신의 안식처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제 유세엽 대신 할망이 잃어버린 아들 '풍이'가 되기로 한다. 그 이름은 '유세풍'.

마음을 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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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유세엽이 유세풍이 되는 매개가 된 두 여인은 '죽어야 하는 여인, 잊혀야 하는 여인, 버림받은 여인들'이었다.


유교 중에서도 가장 '근본주의적' 성격이 강한 성리학을 사회적 윤리관으로 수용한 조선시대는 중기 이후 '남존여비'의 체계가 확고히 자리 잡았다. 그랬기에 남편이 죽은 양반가의 여성에게는 이른바 간접적 '명예 살인'으로 '자결'이 강요되곤 했다. 그 대가로 수여되는 '열녀문'은 가문의 영광이자, 드라마에서 보이듯이 남은 자손들에게 입신양명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대의와 명분을 위해 여성의 목숨을 희생양으로 삼는 조선이 청에 침략을 당했다. 청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때 소현 세자, 봉림대군과 같은 왕족 뿐만 아니라 수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그중에는 여성들도 있었다. 계수의원의 할망도포로로 잡혀간 여성이었다. 고향이, 자식이 그리워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고향 집의 아들은 그런 그녀를 외면했다.


서은우와 할망, 이 두 여인을 돌보면서 유세엽은 침이 아니라도 의원으로 자신이 할 일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유세엽은 할망이 자신을 부르던 '풍이'를 자신의 이름으로 택한다.

이름은 그저 이름일 뿐입니다.

그는 이제 서은우와 할망같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을 보살피겠다고 다짐한다. 입신양명'했던 '신침' 내의원 유세엽이란 존재를 버리고, 사회가 외면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북벌을 꿈꾼 왕을 죽음으로까지 내몬 권문세가와 '심의' 유세풍의 대결을 드라마는 어떻게 풀어낼까. 퓨전 사극이라지만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의 포부가 결코 가볍지 않다.


이정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