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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45년째 인천 배다리서 '박의상실' 운영... 박태순 사장의 나의 길, 나의 꿈

여섯 번 항암에도 놓치 않은 바늘... "꼭 패션쇼 하고 싶어요"

by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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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순 사장은 작업장이며 의상실에서 오늘도 변함없이 바느질을 하고 있다. ⓒ 아이-뷰

'세발자전거 타던 아이가 거기 있었고, 고무줄놀이하던 딸들은 시집을 갔다. 나는 사십 년을 넘게 아직도 이곳에서 바느질을 한다. 인생은 그렇게 한 땀 한 땀 한 발짝 한 발짝.'


그렇다. 그의 싯구처럼 박태순 사장은 오늘도 인천 동구 창영동에서 45년째 바느질을 하고 있다.


"제 고향은 경기도 화성인데 3살 때 인천 중구 사동으로 이사를 왔어요. 그곳에서 10살까지 살았는데 도시계획으로 살던 곳에서 밀려나면서 대토를 받은 곳이 학익동이었죠. 당시 그곳은 허허벌판이었는데 가게를 하던 아버님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셨어요. 그래서 송림동 동산고등학교 뒤로 다시 이사를 했고, 거기서 20대까지 살았어요. 아버님도 그곳에서 돌아가셨고요. 그러고 보니 10살 이후 60년을 동구에서 살고 있네요."

방직회사 취직 실패하고 차린 의상실

박태순 사장은 당시 동일방직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실패하고, 신포동에 있는 개인 의상실(스왕)에 취직을 한다. 그곳에서 몇 년 동안 의상과 관련된 모든 기술을 열심히 익혔다.


"지금 수강생들에게는 당일에 오바로크 치는 법을 알려주지만, 제가 의상을 배우던 1970년대 초에는 3~4년은 족히 지나야 재봉틀을 만질 수 있었어요. 그래도 월급은 받으면서 기술까지 배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서 아무리 힘들어도 참아냈고, 모든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배웠어요."


그렇게 기술을 익혀 26세가 되던 해에 자신의 의상실을 열었다. 동일방직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어찌 보면 그에게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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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의상실 박태순 사장은 인천 동구 창영동에서 45년째 의상실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박태순 사장이 30년 전 만든 옷을 입고 포즈를 취했다. ⓒ 아이-뷰

박 사장은 1977년 창영동 6번지(지금의 학생사 자리)에서 처음 의상실을 시작한다. 당시 창영동에는 '박 의상실' 말고도 5개의 의상실(모두, 우리, 골든, 르네, 정이)이 더 있었지만,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맞춤옷을 입던 시절이라 의상실이 많아도 1980년대 중반까지는 늘 바빴다.


그는 주로 일반 옷을 만들었는데, 4명의 종업원이 한 팀을 이뤄서 단계별로 일을 했다. 심부름을 하면서 감침질을 도와주는 '마도메 시다', 다림질을 해주는 '시야게 시다', 미싱사 바로 밑에서 심지 작업이나 옷본을 그려서 미싱사에게 올려주는 '웃 제자', 그리고 '미싱사' 이렇게 네 명이 한 팀이었다.


박 사장은 재단하고 손님을 받으면서 총괄하는 일을 맡았다. 의상실 문을 열면 늘 일이 많았기 때문에, 4명의 직원과 함께 1980년대 중·후반까지 바쁘게 일을 했다.

암 투병에도 포기하지 않은 바느질

그는 1978년에 결혼을 하면서 아벨서점 건너편(지금의 명진스포츠 자리)으로 의상실을 옮겨 신혼 살림을 같이 시작했다. 그곳에서 아이도 낳았고 하는 일도 제법 잘 돼 10년째 되던 해인 88년엔 지금 살고있는 집(창영동 9번지)을 사게 되지만, 1990년대 접어들자 의상실은 급격히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상황이 어려워자 직원들도 하나둘 떠나고 급기야는 혼자서 운영하는 처지가 됐다. 그래도 당시에는 남편이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벌이가 좋지 않아도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근근이 견뎌오던 2006년 어느 날, 박태순 사장에게 큰 위기가 닥쳐온다. 그해 여름 알게 된 배다리 관통 도로 건설계획과 같은 해 겨울에 닥쳐온 암 선고였다.


"2006년 여름이었는데요, 어떤 사람들이 우리 집 근처를 다니며 측량을 했어요.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관통 도로가 생긴다는 거예요. 측량이 끝나면 바로 펜스를 칠 거라고 하는데 바로 우리 집 앞으로 펜스가 쳐지겠더라고요."


걱정이 된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문의도 하고, 인천시에 민원도 넣으며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그러던 와중에 암 진단을 받게 된다. 수술과 여섯 차례의 항암치료, 25회의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도 그는 지속적으로 관통 도로 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주민들과 천주교 사제들, 그 외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관통 도로는 지하도로로 계획을 바꾸게 됐다.

40여 년 전 만든 옷을 똑같이 맞춰간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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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다리 박의상실 외관 모습 ⓒ 아이-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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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순 사장과 30년 이상 함께한 오바로크 재봉틀. ⓒ 아이-뷰

많은 일을 겪어내면서도 박 사장은 지금도 그 자리에서 바느질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어느 날, 아직도 의상실을 하냐면서 전화가 왔어요. 그렇다고 했더니 직접 찾아왔더라고요. 젊은 사람이었어요. 본인의 외숙모가 우리 의상실에서 맞춰 입었던 간절기 코트라면서 그 옷을 똑같이 맞추고 싶다고 했어요. 너무 오래전이라 저도 생각이 나지 않는 옷이었는데, 라벨을 보니 제가 만든 옷이 맞더라고요. 40여 년 전에 만들었던 옷이었어요."


배다리가 문화마을로 지정되면서 동네 투어를 왔던 사람들이 진열장에 걸려있는 개량 한복을 보고 맞춰 가기도 하고, 때로는 박 의상실에서 만든 옷을 누군가가 입은 것을 보고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 일을 놓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뭘까.


"제 삶이었어요.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네요. 제가 잘하는 일이 바느질이었고 무엇보다 이 일이 지루하지 않았어요. 바느질하는 것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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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여 전 이곳 배다리에 이사를 오면서 창영동 주민이 된 친절한 조은숙씨는 박 의상실에서 인형극에 필요한 인형 옷 만들기를 배우면서 박 사장과 가까운 사이가 됐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박 의상실의 '생활한복 전속 모델'이 되었다. 사진은 동화구연가이며 시인이며 창영당 주인인 조은숙씨가 박태순 사장이 만든 개량 한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아이-뷰

어느 날 동화구연가이자 시인인 조은숙씨를 만나게 된다. 5년여 전 배다리에 이사를 오면서 창영동 주민이 된 친절한 조은숙씨는 박 의상실에서 인형극에 필요한 인형 옷 만들기를 배우면서 박 사장과 가까운 사이가 됐다. 그리고 스스로 박 의상실의 '생활한복 전속 모델'이 됐다.


"조은숙씨가 저를 도와준 거예요. 제게는 귀인이죠."


두 분이 이곳 배다리에서 패션쇼를 하면 어떨까 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아도 조은숙씨에게 그런 제안을 했었다"며 "지금은 만들어 놓은 옷이 없어서 바로는 못 하지만 준비를 해서 꼭 하고 싶다"고 했다. 평생 한길만 걸어온 그의 삶을, 그가 평생 살아온 배다리에서 배다리 사람들과 함께 잘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열망이 커 보였다.


"그때 함께 참여해 주실 분들이 많아요. 조은숙씨를 비롯해서 개량 한복을 맞춰 가신 아벨서점 사장님, 박 의상실 수강생들, 그 외 이곳에서 옷을 만들어 가신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상기된 얼굴로 한껏 미소를 머금는 박태순 사장. 그들의 패션쇼가 기대된다.

박 의상실 수강생들

몇 년 전부터 박 사장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바느질 교실을 운양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각자의 능력에 맞게 맞춤형으로 진행되며, 수강 시간이나 날짜, 기간 모두 개별적으로 운영한다.


"수강하러 오는 사람들의 개인차가 많아서 맞춤형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해요. 재봉틀을 전혀 만져보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어느 정도 바느질을 할 줄 아는 사람들도 오거든요."


그래서인지 박 의상실 앞에는 '바느질 수강'이라는 안내 문구만 있을 뿐 구체적인 프로그램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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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순 사장이 수강생을 대상으로 옷 만들기를 가르치고 있다. ⓒ 아이-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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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순 사장이 수강생을 대상으로 옷 만들기를 가르치고 있다. ⓒ 아이-뷰

취재 당일날 만났던 수강생 두 사람도 만들고 있는 옷이 각각 달랐다. 지난해 8월부터 박 의상실 수강생이 됐다는 이미숙(59)씨는 자신의 잠옷을 만들고 있었고, 지난해 7월부터 이곳에서 수강하기 시작했다는 이논새(60)씨는 여러 개의 청바지를 가지고 와서 바지 단을 수선하고 있었다. 남편 잠옷, 손녀 원피스, 본인들의 옷을 비롯해 몸집이 큰 사위를 위한 옷까지, 지금까지 만든 옷이 많았다.


"여기 다니기 시작하며 옷을 사 입지 않았다"는 이논새씨는 그날 자신이 입고 있던 원피스를 가리켰다. 그렇게 박 의상실 수강생들은 각자가 본인들이 만들고 싶은 옷을 만들어 입거나 현재도 만들고 있는 중이다.


꼼꼼하고 계획성 있게 잘 짜인 프로그램만 보다가 이곳 박 의상실에서 만나게 된 수강 방식은 매우 낯설었으나 오히려 편안하고 다정했다. 철저하게 수강생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박 사장의 교육방식은 더 친절하고 세심하게 느껴진다.


"제 청춘을 이 자리에서 다 보낸 거죠. 1977년도 26살에 이곳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제 삶의 전부라고 봐야죠, 이곳에서의 삶은. 이 동네에서 태어나 자란 큰딸이 올해 마흔네 살이 됐네요. 팔 년 전 남편도 이곳에서 하늘로 보내드렸어요."


박 사장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그 모습이 그동안의 모든 삶을 말해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배다리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과 배다리에서 만난 남편은 모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거나 찾아갔다. 박태순 사장은 지금도 이곳 배다리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 중이다.


글·사진 최시연 i-View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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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순 사장이 자신이 만든 옷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 아이-뷰

아이-뷰 최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