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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리뷰] KBS 1TV <주문을 잊은 음식점2>

치매 노인 4명이 차린 '주문 잊은' 제주 식당

by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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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2TV 스틸 ⓒ KBS

지난 2018년 방송된 KBS 1TV 교양 프로그램 <주문을 잊은 음식점> 시즌1은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경증 치매인들이 직접 음식을 준비하고 영업에 나서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방송에서 치매인들은 비록 주문을 종종 잊기도 하고 자신이 지금 무얼 해야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릴 때도 있었지만 스태프와 손님들의 배려, 도움으로 자신의 임무를 거뜬히 해냈다.


그동안 돌보아야 할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치매인들의 자발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치매'가 사회적 사망 선고가 되는 현실의 윤활유가 되어주었다.

제주도의 주문을 잊은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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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2TV 스틸 ⓒ KBS

그로부터 다시 4년이 흘렀다. 주문을 잊었던 음식점이 다시 한번 그 날개를 펼쳤다.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30일까지 방송된 <주문을 잊은 음식점2>의 배경지는 바다 건너 제주. 하루 3시간, 단 3일의 짧은 시간 동안 치매인들과 비치매인들의 '2인 3각' 경주가 시작되었다.


시즌2를 맞이한 <주문을 잊은 음식점>에서 서빙을 하게 된 경증 치매인들은 총 네 사람이다. 83세의 맏형 장한수씨는 2015년에 치매 판정을 받아, 치매 경력이 제일 오래된 인물이다. 기분이 좋으면 노래를 흥얼거리고 춤을 추지만 불안하면 자꾸 아내와 딸을 찾는다. 늘 베레모와 선글라스를 빼놓지 않는 최덕철씨는 2020년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았다. 매일 보는 홍석천씨를 처음 본 사람처럼 반갑게 포옹을 하는 그는 한때는 카이스트 연구원이었다고 한다.


매번 자신을 '백옥같이 곱다'는 의미에서 옥자라고 소개하는 백옥자씨는 깜빡깜빡 멤버 중 유일한 홍일점이다. "반가운 사람들만 있네"라며 언제나 웃는 낯을 놓치지 않는 백옥자씨는 멤버 중 가장 화사하고 따뜻한 존재이기도 하다. '손님 한 명 기억하기'라는 미션을 손에 써놓고도 다음 날이면 그조차도 잊어버리지만, 그는 계산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손님들의 밥값 계산 만큼은 '귀재'다.


김승만씨가 처음 등장했을 때 다른 멤버들은 모두 '촬영하는 분 아니냐'라고 의아해 했다. 그는 이제 겨우 60세 '조발성 치매인'이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목회 활동도 활발하게 했던 그는 현재 1번 테이블 찾기가 제일 어렵다. 그래도 백옥자씨 못지않게 언제나 미소 띤 얼굴로, 주변 인물들에게 '엄지 척'을 하는 선량한 아저씨다.

날마다 새로운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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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2TV 스틸 ⓒ KBS

출근 첫날의 풍경은 숙소에서 자고 일어난 백옥자씨가 '여기가 어디지?' 하고 낯설어하는 장면에서 시작됐다. 주변 환경을 찬찬히 살피던 옥자씨는 조금 뒤 여기가 제주도라는 걸 알아챈다. 그래도 옥자씨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을까? 셋째 날 함께 출근하던 '깜빡깜빡' 남자 3인방은 당당하게 '주문을 잊은 음식점' 옆의 다른 카페로 들어선다. 들어선 다음에도 "여기가 맞다"고 확신하는 세 사람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과연 단 3일이지만 이들의 음식점 영업이 순탄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대목이었다.


첫날 경증 치매인 네 사람은 화사한 분홍빛 앞치마를 입었다. 옷 색깔에 대한 민망함도 잠시, 자신이 해야 할 새로운 일에 두려움이 앞선 모습이었다. 테이블 번호도 외워야 하고 해야 할 일도 숙지해야 하는 부담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꾸 아내와 딸을 찾던 한수씨는 옆에서 옥자 씨가 "괜찮다"고 달래는 말에 결국 목소리가 높아지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개업한 식당, 다행히 손님들이 한 팀, 두 팀 찾아들기 시작했다. 이제 막 결혼식을 올렸다는 신혼부부가 식당으로 입장한다.


경증 치매인들의 식당에서는 손님들이 직접 주문서 체크를 하는 방식으로 주문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주문서가 때로는 주방에 아예 도착하지 않기도 한다. 음식이 나오면 차례로 손님에게 가져다줘야 하지만 그조차 치매인들에겐 쉽지 않다. 식당 안팎으로 겨우 일곱 테이블인데도 치매인들은 식당 한 바퀴를 빙 돌거나, 식당 안의 1번 테이블을 두고 밖에 나가서 두리번거리기 십상이다. 식당 운영 3일째가 되었어도 이들은 여전히 주문서를 가져다주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새로 등장한 '동파육'이 비싸니 싼 것 먹으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한다. 또한 손님 테이블에서 자신의 이력을 줄줄이 늘어놓느라 서빙의 본분을 잊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증 치매인 4인방은 끊임 없는 노력으로 3일 만에 능숙하게 동선을 자신에게 알맞게 익히며 미션을 완수했다.


또한 경증 치매인들이 식당 운영할 때 벌어질 수 있는 해프닝에 대비해 작업 치료사를 비롯한 여러 스태프들이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손님들이 들이닥치는 시간에 빚어지는 모든 상황에 스태프가 대처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주문을 잊은 식당이 가능했던 건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배려' 덕분이었다. 수저를 안 갖다 줘도 "(수저가) 그림의 떡이네" 하고 마주 보고 웃는 부부처럼, 손님들은 '깜빡 4인방'이 빚어내는 실수들에 관대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리고 그런 배려로 어우러진 장면이야 말로 <주문을 잊은 음식점>을 통해 시청자들이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지점이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치매를 앓았다는 국제 결혼 부부의 아내는 백옥자씨의 손을 꼭 잡고 건강하시라고 말한다. 그 뿐일까. 자신이 직접 만든 마카롱과 팔찌를 선물하며 응원하는 손님들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가 함께 어우러져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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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2TV 스틸 ⓒ KBS

우리나라 노인 인구 중 10%가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한다(중앙치매센터가 발표한 '2016년 전국 치매역학조사' 결과 기준). 김승만씨처럼 조발성 알츠하이머까지 포함하면 약 88만 명이 치매를 겪고 있다. 프로그램이 종영을 향해 달려가자 깜빡 4인방은 모두 "내일도 출근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지만, 경증 치매인들이 비치매인들과 어우러져 사회적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시간은 그 의미가 매우 깊다. 조금만 세상이 이들을 배려한다면 아직은 세상 속에 이들의 자리가 있음을, 우리가 여전히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프로그램은 보여주었다.


특히 <주문을 잊은 음식점> 시즌1에 출연했던 분의 등장은 감격스러운 대목이었다. 시즌1에 출연한 이래 뜨개질을 하는 등 꾸준한 활동으로 치매의 진전이 가속화되지 않은 그의 모습은 뾰족한 치료제가 없는 현실에 등불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남편을 찾아 식당에 온 김승만씨 아내는 "편안하게 다른 사람과 대화도 하고 장난도 치는 남편이 다른 사람 같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홀로 지내던 덕철은 '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라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겨우 3일이었지만 늘 사회와 분리된 채 자신의 병마와 싸우던 이들에게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소중하고 뜻깊은 시간이다. 비록 그들이 이 시간조차 잊어버린다 할 지라도 말이다.


이정희 기자